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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기도문을확 바꿔라04]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8. 18. 07:20
[주기도문을확 바꿔라04]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1. 아버지!

  주기도문은 전체적으로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반부는 신학적으로 Doxology라고 하는데 하나님께 영광 돌리 는 것을 먼저 구하는 부분이고, 후반부는 우리 개인을 위해서 필요한 것을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기도문의 첫 부분은 "파테르(아버지여) 헤몬(우리의) 호(그) 엔(안에 계신) 토이스(그) 우라노이스(하늘들)"입니다. 직역하면 '하늘들 안에 계신(분이신) 우리의 아버지시여'입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하고 시작하는데 원문에는 "아버지!" 하고 시작합니다. 편지를 쓸 때 헬라 사람들이나 미국 사람들은 To. 하고 받는 사람 이름을 쓴 다음 주소를 쓰는데, 우리는 그 반대로 주소부터 쓴 다음 이름을 뒤에 쓰는 차이입니다.
파테르! 아버지!
기도는 편지인데 그 편지를 받을 분이  <To. 파테르!> 아버지 라 그 말입니다. 그래서 큰소리로 아버지! 하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기도가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에도 기도가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도 기도를 시작할 때 그 대상을 부르면서 시작합니다. 샤머니즘도 조상님을 부른다든가 고목(古木)이나, 하다 못해 커다란 돌덩이라도 부르면서 기도를 시작합니다.
  어디에 대고 기도하는지도 모르는 허공을 치는 기도를 하지 마시고, 기도를 받을 주소를 확실히 해야 됩니다.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분이 'To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에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분은 아버지시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해야 됩니다.

2. 하늘에 계신

  남미에 있는 이름도 생소한 작은나라 사람들은 두 개의 코리아를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지난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4강에 오른 남한팀을 북한팀과 구별하지 못하고 "전에 8강에 올랐던 북한팀이 이번에는 4강에 올랐다"고 뉴스를 내보내기도 했다는 신문기사를 보았습니다.
  편지를 보낼 때 주소를 정확하게 써야 됩니다. 남한 코리아냐, 북한 코리아냐, 같은 코리아지만 편지가 도착하는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그 말입니다.
  에베소서 6;12절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했습니다. 잘 보세요 '하늘에 있는 악의 영'이라니, 그럼 하나님도 하늘에 계시고, 악한 영들도 하늘에 있다는 말인데, 하나님과 악한 영이 함께 있을 수 있습니까?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하늘'은 세 종류의 하늘이 있고 각 하늘마다 일어나는 일이 다 다릅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하늘이라고 해서 다 같은 하늘이 아니라 3개의 하늘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개역성경은 세 단어를 모두 '하늘'이라고 번역해 버려서 하늘을 뒤죽박죽(?)만들어 놓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3층천-우라노이스(헤븐) -피조물계를 초월한 영원한 하늘, 거기에는 타락된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아니하고 하나님만이 온전히 존재하고 계신 가장 높은 하늘(왕상8:27,역대하2:6,시148:4)
2층천 -에프라니우스(스페이스)-대기권을 더 벗어난 그 위쪽에 타락한 악한 영들이 지배하고 있는 하늘. 그러니까 우리의 기도가 1층천 우라노이스의 하늘까지 정확하게 올라가지 못하면 악한 영이 있는 데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하시라 그 말이에요. 그렇게 기도를 많이 하고 여러가지 신비한 체험을 했다던 사람이 막판에 이단 교주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왜 그렇습니까? (영 분별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금방 알지요.) 기도하면서 하도 뭘 보기를 원하고 체험하기를 소원하니까 중간 하늘(계8;13)의 마귀가 기도를 가로채 뭔가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면서 뭘 봤다, 뭘 받았다는 사람은 일단 조심해야 됩니다.
1층천 -이에르(스카이) -시간세계의 하늘. 인간이 바로 숨쉬며 살 수 있는 대기권, 우리가 눈을 들어 보는 저 파란 하늘입니다. 이 하늘 역시 에베소서 2;2 '공중(이에르)의 권세 잡은 자' 들에게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악한 영의 영향이 미치고 있는 곳입니다. 가장 수준이 낮은 곳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돌덩이나, 그 안에 우글거리는 벌레 밖에 없는 고목(古木)이나 달이나 해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종교는 가장 수준이 낮은 종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정확하게  "하나님의 하늘에 계신 분에게 기도해라." 악한 영이 지배하는 그 하늘도 아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대기권도 아니고, 하나님이 계신 그 곳을 향해서 기도해라고 정확하게 주소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3. 쉿! 조용히 하세요. 마귀가 들어요.

한 열심히 특심인 여집사님이 친구를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처음 교회에 나온 친구를 데리고 기도원 금요철야집회에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열광적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처음 본 친구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까무러질 뻔 하였습니다.  
앞에서 목사님이 "주여 삼창하고 우리 뜨겁게 기도합시다" 하나까 사람들이 냅다 지붕이 떠나가도록 "주겨- 죽여----주겨---"하더니 콩볶듯이 다다다다다다 기도를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방방 뛰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눈물을 줄줄 흘리는데 어찌나 정신이 없던지 "아이고 사람들이 단체로 미쳐버렸구나" 하고 슬그머니 일어서려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울랄라랄 울랄랄라 울라라랄"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내더랍니다. 그래서 방언이 뭔지 몰랐던 친구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쳐버렸답니다.
  하나님은 귀먹지 않으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 -" 하고 부르면 그렇게 크게 안불러도 잘 들으십니다. 그렇게 크게 부르며 기도하면 마귀가 다 들어요. 하나님과의 은밀한 대화를 마귀가 다 듣도록 공개적으로 소리를 치면 어떻게 합니까.

4. 하늘들 안에 계신

  '우라노이스'를 번역하면 '하늘들'로 복수남성명사이고, 단수로는 우라노스로 씁니다. 단수로 썼을 때 개역성경은 '하늘, 공중, 천(天), 보좌'같은 단어로 번역하였고, 우라노이스 복수로 썼을 때는 존재적인 의미로서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하늘'로 썼습니다.
  "여로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창19:24)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는데, 그 하늘이 어디에 있는가? 인간은 시공간을 통하여 존재 알리바이를 증명하지만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어디에든 편만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3계단이라 하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가장 높은 하늘에 있다고 하니까, 고개를 들어 창밖의 하늘을 쳐다보며 저위, 더위, 그 위 어디쯤에 하나님이 계시것지? 하는 것은 어리석은일 입니다.(그것이 유한한 인간의 한계입니다.)
  성부와 정자와 성령은 하나입니다.(삼위일체) 그 삼위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삼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라노이스의 하늘, 나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계신 하늘은 내 안에 있는 것이지. 저 밖의 하늘 꼭대기 어디가 아닙니다. 먼데서 찾지 마세요.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은 물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을 만나려면 내가 영적인 사람이어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참으로 막연합니다. 흔히 교회에서 성경읽기, 기도생활, 전도생활, 주일성수 등등등 여러 가지 실천목표를 정해 놓고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하여 애를 씁니다. 우리는 종종 이러한 실천 목표들을 잘 지키면 내가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신앙을 그런 잣대로 재기도 하구요. 바리새인들이 그러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왔던 부자청년도 그러하였는데,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책망하였습니다. .
'영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할만한 적당한 말을 아직까지 찾지 못했습니다.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아무리 설명해도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5. 약속

  기독교는 언약(약속, 계약, 테스트먼트, 신약, 구약)의 종교입니다. 누구와 누구의 약속입니까? 하나님과 나와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속의 개념이 희박해서 기독교를 오해 할때가 많습니다. 하나님도 약속을 어기실 수 있습니까? (설마 하나님이 약속을 어기시는 분이라고 믿는 분은 안계시지요?) 그렇다면 약속이 깨졌을 때 그 원인은 항상 누구입니까?
  약속이 깨졌을 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은 상대방의 자비입니다. 상대방이 용서해주면 다행이지만, 용서를 안해줘도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약속 불이행에 대한 댓가를 달게 받기 보다 "변명"으로 일관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 했습니다. 그만하면 최소한 누구누구보다는 잘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언약 내용과, 언약의 당사지인 하나님을 이해하려 하기 보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려 합니다. 그래서 기도도 내용 이전에 그야말로 쎄~~~게, 더 강도 높게, 더 큰 목소리로 기도 했는가 아닌가에 더욱 초점을 맞추는 식입니다. 마치 실력으로 높은 점수를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밥 사주고 교수와 인간적으로 친밀해져서 점수를 높이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통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고 기도하라는 말은 얄팍한 술수를 쓰지 말고, 하나님과 나와의 약속(언약, 계약)을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6. 우리 아버지여.

'우리'에 해당하는 '헤몬'이라는 단에 안에는 '나의 이웃'과 '예수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간에는 "한 형제"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아버지가 되시고, 아버지에게 기도하는 우리는 한 아버지의 형제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라고 지칭한 사람들은 보편적인 모든 사람을 다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 있었던 제자들입니다. 주기도문은 사적인 개인기도라기 보다 '우리'된 사람들이 드리는 공동적인 공기도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여' 하면 훨씬 친한 것같이 들릴 수도 있는데, '내 아버지'가 아니라 바로 '우리 아버지'라고 이렇게 기도해라. 아주 중요한 겁니다. 헬라어 문법에는 셋부터는 복수로 인정하기 때문에 '우리' 라고 했을때는 많은 사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이웃을 부인하고 이웃을 멸시하는 상태에서 기도를 하면 안됩니다.

7.우리 아버지여.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인 내가 마지막 날에는 '하나'가 되며 '우리'가 됩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  2천년 전에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우리'로서 하나가 되어 존재했는데, 마지막 때 그 날에는 하나님, 예수님,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도 하나가 되어 '우리'가 됩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7)
임마누엘 하시는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고, 그 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대해서 아버지의 뜻대로 구하고, 그 삶을 주님과 연합해 가는 사람들만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8. 아버지여

개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개역개정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공동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한글kjv/이송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현대어성경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여, 는 기도의 대상을 부르는 호격(呼格)인데, 개역성경은 그것을 분명히 나타내기 위하여 "아버지여~"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이름, 나라, 뜻 앞에는 2인칭 대명사나 그것에 대신하는 명사의 소유격을 붙이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아버지여" 하는 것보다 '아버지'가 어감상 더 낫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부를 때 "아버지여~"하고 부르는 것보다 "아버지!'하고 부르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습니다. 개역성경을 제외한 다른 번역본은 모두 '아버지,'로 번역하였습니다.

출처 : 울밖교회*워쉽축복
글쓴이 : 아침동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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