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을 고쳐야 하는 열가지 이유
1.주기도문은 염불이 아닙니다.
"정구업지는 수리수리 마수리 수수리 사바하" 학교다닐 때 한 친구는 틈만 나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염불을 외웠습니다. 특별히 불심(佛心)이 있어라기 보다 친구들을 웃기려고 인도어로 된 불경을 읇조렸던 기억이 납니다. 한번은 그 친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지금 여태까지 열심히 왼게 뭐냐? 꼭 마술 주문 외는 것 같다야?" "뭔지는 몰라. 전혀 몰라. 하여튼 할머니가 이걸 자꾸 외우면 복받는다고 해서 외우는 중이야" "나무 사만나 못다남 옴도로도로 지미사바하" 야 - 참 고거! 참,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지만 천수경이랍니다. 천수경을 외우면 엄청나게 장수하고 크게 복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염주라는 도구가 바로 한번 외울때마다 알을 하나씩 넘기는, 그러니까 몇 번 외웠는지 횟수를 세는 도구입니다. 뜻은 모르지만 뭔가 자꾸자꾸 입으로 그 것을 시인하고 공개하면 자기가 오래 살고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은 그렇게 정구업지가 아닙니다. "이렇게 기도하라" 했을 때는 그 뜻을 깨닫고 기도해야 되는데, 마치 주기도문을 그 뜻도 모르는 염불처럼 외우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아주 주문 외우듯 외웁니다. 외고 외고 외고 외고 외면 어느 순간에 도통 좀 하지 않으려나, 무슨 은사가 좀 오지 않으려나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2. 주기도문은 예배가 끝났다는 사인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기도문은 이제 예배가 끝났다, 모임이 끝났다고 하는 싸인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으로 마치겠습니다." 하면 "휴~ 드디어 끝났구나!" 그래서 그 내용,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실한 자세는 볼 수 없고 1초라도 빨리 끝내고 싶은 사명감으로 "하느레 ~ 계 ~ 우라버지 ~ 이르미 ~ 시고" 아주 혀가 팍팍 돌아가면서 30초만에 다 외워버립니다. 저같이 느린 사람은 따라가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은 예배가 끝났다는 사인이 아닙니다. 그렇게 빨리 외워 버려서는 안되는 기도입니다. ⓒ최용우
3. 주기도문을 외운다고 다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어느 해 부흥회를 하는데, 동네 이장님이 참석 하셨습니다. 물론 안 믿는 분이시지만 동네에서 하는 대소사에 이장의 자격으로 빠질 수가 없어서 체면치레로 참석하여주신 것이지요. 모든 순서가 다 끝나고 주기도문을 하는 시간이 되자, 순간 이장님의 눈이 반짝 하였습니다. 그리고 유창하게 주기도문을 외우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장님! 언제 교회 다니셨어요? 어떻게 그렇게 주기도문을 잘 외우세요?" "내가 뭘, 전에도 이런 자리가 있어 참석했는데 그때는 사람들이 뭐라뭐라 하는데 나만 입을 딱 다물고 있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나도 모르게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웠다니까... 이번에도 그럴까봐 어젯밤 새도록 '주기도문'을 구해서 외워가지고 왔다니까."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아마도 가장 먼저 해야될 일이 주기도문, 사도신경을 외우는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우는데 급급한 나머지 주기도문 안에 숨겨진 엄청난 축복은 지나치고 있다 그말 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도 응답되는 기도인 줄 모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주기도문에 대한 응답이 오리라고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최용우
4. 주기도문도 응답되는 기도입니다.
사업 잘 되고, 자녀들 공부 잘 하고, 교회 크게 부흥하고, 식구들 건강하게 잘 살고, 뭐 이런 기도제목만 응답 받는 기도인 줄 알았지 '주기도문'도 응답 받는 기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주기도문을 응답해 달라고 하면서 몸부림치며 기도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주기도에 대한 응답 받았습니까?" 하면 "주기도문도 응답이 있어요?" 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물구나무를 서서 머리를 땅에다 비비면 머리가 자극이 되어서 아주 좋다는 말을 들었답니다. 그런데 물구나무를 서고 있으면 몇 분 서있었는지 시계를 볼 수가 없어서, 주기도문을 한번 외울 때마다 몇 초 걸린다는 것을 알고, 매번 물구나무를 서서 주기도문을 다섯 번씩 외웠더니 건강해졌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소릴 들었습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을 시간 체크하는데 쓰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단 몇분도 걸리지 않는 이 짧은 기도속에 성경의 전 내용과 하나님의 전 축복과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전 내용이 다 들어있다는 것을 깨닫고 기도했다면, 우리는 그 기도를 통해서 지금 엄청난 축복의 사람,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최용우
5.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면 안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사탄들이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사람들을 어떻게든 교회에 못나가게 해라" 그러나 핍박을 하면 할수록 교회는 성장하고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왕 교회는 나가게 했으니 할 수 없지. 그럼 예수를 모르게 해라" 쫄개들이 예수를 모르게 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사람들은 더욱 예수를 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도 이제 알아버렸으니 어떡하면 좋습니까?" "마지막 남은 방법이 또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를 믿어도, 기도하지 않는 신자를 만들어 놔라. 그것만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 너희들 목숨 걸고 나가서 기도하지 않는 신자만들어라."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사탄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좋다, 얼마든지 기도하도록 내버려 두어라. 그 대신 뜻 모를 기도를 하도록 '주기도문'을 어렵게 만들어 버려라" 과연, 마지막 방법은 효험이 있어서 사람들이 기도를 하기는 하는데 지금까지도 뜻 모를 염불만 외우고 있게 되어버렸습니다. ⓒ최용우
6. 성경을 일 점 일획이라도 바꾸면 안 된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나라이' '이루어 지이다' '오늘날' '주옵시고' '사하여' '대개' '나이다' 이런 말들은 요즘 쓰지 않는 말입니다. 오래 전에 번역되어 지금까지 쓰여지고 있는데, 문제는 신학적인 해석은 둘째치고 번역 상 오역(誤譯)이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기존의 주기도문 중 한 구절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원문대로 번역 같은 경우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성경을 일 점 일획이라도 바꾸면 안 된다는 이상한 관념 속에서 뜻도 이해되지 않는 주기도문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오랫동안 외워왔습니다. 그러나 언어는 세월이 흐르는 대로 흘러 변합니다. 그 뜻을 보전하는 새로운 단어로 바꾸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머리 받기 금골'이 무슨 뜻인지 맞춰 보세요. 북한에서 쓰는 말인데, 지난 월드컵경기에서 이탈리아와 싸울 때 안정환 선수가 '헤딩으로 뽑은 골든 골'입니다. 우리는 마치 '헤딩으로 뽑은 골든 골'하면 금방 이해가 되는 것을 '머리 받기 금골' 하는 식으로 주기도문을 외우고 있다 그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성경의 일 점 일획도 바꾸면 안된다는 말은 작은 점 하나의 위치만 바뀌어도 뜻이 달라지는 '히브리어'의 특성상 나오는 말이지 한글이나 영어에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서울의 어떤 교회에서는 자체적으로 쉽게 고친 주기도문을 여배시간에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일이 신문에 특별기사로 나왔습니다. 주기도문을 쉽게 고쳐서 사용한다는 일이 대단한 신문기사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최용우
7. 주기도문은 '주님과 함께' 하는 기도입니다.
헬라어로 '함께'를 '프로스'라고도 하고 '메-타'라고도 합니다. '메-타'는 "추종자가 되어서 한패거리가 된다."는 뜻이고,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추종하여 하나님과 아주 한패거리가 돼버린다는 뜻입니다. 주기도문은 '메-타'입니다. 아주 하나님과 한패거리가 되어서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해야되는 기도라는 말입니다. '프로스'라는 것도 '함께'라는 뜻인데 즉, 누구누구의 유익을 위해서 같이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유익을 위해서, 그리고 그의 자녀된 내 유익을 위해서, 바로 같이 같은 마음을 품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주기도문은 하나님과 같은 방향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동쪽을 향해서 가길 원하시는데, 나는 기어코 서쪽을 가는 기도를 했습니다. 주기도문은 하나님과 방향을 같이하고, 수준을 같이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리고 바로 하나님의 가치와 내가 기도하는 가치가 같은 너무너무 훌륭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 가르쳐 주신 기도는 길이도 짧고, 초등학생도, 할머니도, 심지어 불신자들 까지도 무슨 명시(名詩)를 암송하듯 외우니까 시시하게 생각해요. 나같이 똑똑한 사람이 그런 시시한 기도를 할 수가 있겠느냐, 뭔가 다르고 고상하게 해야지 해서 처음서부터 내가 하고싶은 기도를 외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은 '메-타' 이고 '프로스'입니다.
8. 기독교는 기도교입니다.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말은 '기도교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으면 기독교인이라 할 수 없지요. 이렇게 중요한 기도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어떻게' 기도하느냐 입니다. 그 완벽한 해답이 '주기도문'입니다. 주기도문 안에는 크게 여섯가지의 기도내용이 있는데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 육적, 영적, 정신적인 모든 것을 다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말 번역 주기도문에는 몇 군데 현재형 동사가 과거형 동사로 바뀌어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과거에 있었던 하나님의 역사인 것처럼 오해하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본문연구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완료형)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현재 진행형)같은 예) *참고로 이 칼럼은 최용우의 독창적인 연구 결과물이 아니고 '주기도문'에 관련된 10여권의 다른 참고서적을 면밀히 비교 분석하여 합리적인 것들을 뽑아낸 것입니다.
9. 주기도문은 '너희'의 기도입니다.
어중이 떠중이 누구나 밑져야 본전식으로 주기도문을 외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누가 주기도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정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3:9-11은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의 비밀을 알도록 허락되어진 '너희'와 허락 받지 못한 '저희'로 구분합니다. '너희'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밤마다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던 제자들을 가리키는 말이고, '저희'는 예수님의 기적과 이적을 보며 열광했던 들판의 수많은 '무리'들을 가리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자기에게 무엇이 있어야 할 줄을 알고 기도했고, '저희'들은 사람의 일을 생각하며 자기의 의로 기도하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주기도문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 '너희(휘메이스)'는 군중속에 묻혀 나를 숨기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선명하게 노출시키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님과 연합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원하시는 주기도문을 반드시 해야하는 부탁을 받은 자들입니다.
10. 거지기도를 하면 안됩니다.
기도는 언제든지 두 가지가 있는데, 내가 원하는 것이 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도 주세요, 저것도 주세요, 복도 내려 주세요, 오래 살게 해주세요, 무엇도 잘되고 저것도 잘되고..." 나는 그걸 원하고 있는데, 주님 가르쳐주신 기도를 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먼저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기도하는 사람은 거기에서 첫단추를 잘 끼워야 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먼저 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것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고 하면, 샤머니즘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무얼 먼저 구할 것인가, 주님 가르쳐주신 기도에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먼저 구하라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응답받는 비결입니다. 기도하려고 눈감으면 "이것 주시옵소 서, 저것 주시옵소서." 하여튼 거지기도를 합니다. 아주 주기로 약속되어 있는데, 좀 부모의 뜻에 함께 하려고 하는, 아주 한패거리가 되어서 방향도 같이 하고, 뜻도 같이 하고, 수준도 같이 하고, 가치도 같이 하려고 하는, 이 엄청난 축복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아이고! 내가 달라는 것부터 내놓고 봐라." 이렇게 떼거리 거지기도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에는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먼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관심을 그대로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