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편
지나간 모든 것이 아름답다
이틀 지나 월요일이 되면, 한 해를 시작하는 시무식을 하고 결재를 하고 어디론가 부지런히 전화를 하고 누군가를 만나 부탁도 하고 의논도 해댈 겁니다. 작년에도 그랬고 작년의 작년에도 그 이전에도 그랬습니다.
반복하는 삶과 흐르는 세월. 세상사는 일은 언제나 똑 같았습니다.
어둠이 내려앉은 뒤 바람이나 쐬려고 혼자 마당에 나갔습니다. 스산한 겨울바람이 정원을 차갑게 지나고 있었고 나트륨가로등 주황불빛이 쓸쓸했습니다.
그 속에서, 아! 매화가지에 붉은 새눈이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정지되었는데 유독 매화만 꿈틀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 겨울 끝자락이 되면 저 새눈에서 또다시 꽃이 피고 새잎도 솟을 겁니다. 사라져 없어져버릴 것만 같았던 작년의 매화는 새로운 존재로 혼자 태어나고 있었습니다.
<책 읽어주는 남편> 허정도가 아내에게 읽어준 책 4편
김구의 『백범일지』
위대한 어머니에게 위대한 자식이
198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분들은 그 시절 거리의 추억이 가슴에 사무칠 겁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지워지지 않는 시대가 남긴 흔적입니다. 그때는 절절히 아팠지만, 지나고 보니 그 아픔조차도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 시기에 우리 부부에게는 특별한 역할이 있었습니다. 지역을 방문하는 분들의 숙식문제를 우리가 자청하여 맡았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을 모신 뒤에 얻은 넉넉함을 잊지 못해서였습니다. 손님을 접대한다는 일 자체가 그리 대단치는 않지만, 감시의 눈이 있던 시절이라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주빈 한 사람에 보통 열 명 이상의 사람들이 동행했습니다. 오랜만이라, 또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라 자리는 번번이 밤이 깊도록 이어졌습니다. 자정을 넘기기도 다반사였습니다. 때로는 시국을 한탄했고 때로는 희망도 나누었습니다. 대개 저녁 식사 이후의 뒤풀이여서 주로 맥주와 과일을 준비했지만 때때로 늦은 식사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더러는 헤어지기 싫어 잠자리를 함께하기도 했는데, 이분들을 위해서는 아침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마침 남는 방이 하나 있어서 손님들에게 내드릴 수 있었습니다.
초청이야 내가 했지만 뒤치다꺼리는 전부 아내 몫이었습니다. 자주 치르는 일이라 어지간히 귀찮았을 텐데, 좋아서 하는 일이라 그랬는지, 혹은 남편 체면을 세워주느라 그랬는지 군소리 한번 없이 손님을 맞았습니다.
훗날 어떤 분은 날더러 ‘사업하는 처지에 권력기관의 눈총받는 일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만 당시에는 그런 계산을 하지도 않았고 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 시절이 남긴 자취는 우리 부부에게 삶의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그분들처럼 살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그분들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 위즈덤하우스 『책 읽어주는 남편』 도서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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