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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백전백승의 명장 오기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8. 26. 00:43

 손자병법과 함께 중국의 2대 병서인 오자병법의 저자로 알려진 오기는 76번의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백전백승의 명장이지요.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라는 이순신 장군의 유명한 명언도 오자병법에서 인용한 것이지요.

 

 오기는 위나라 사람으로 젊어서 동네의 젊은이 30여명을 죽인 죄로 고향을 떠나 증자의 문하에 입문하였지요.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오기가 장례식에 가지 않자 증자는 오기를 파문시켰지요.

 오기는 이후 실력을 인정받아 노나라의 장군이 되었는데,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자 오기는 장군이 될 기회를 얻게 되었지만 오기의 아내가 제나라 사람이라는 점이 걸림돌이 되어 오기의 장군 임명이 불투명하게 되자 오기는 아내를 죽여 자신의 결백을 밝혔지요.

 제나라와 아무 관련이 없음이 밝혀지자 오기는 장군이 되었고 장군이 된 오기는 제나라를 대파하여 명성을 얻었지만 아내를 죽인 탓인지 그에 대한 여론이 좋지 못해 결국 해임되었고 오기는 위나라로 갔지요.

 오기를 장군으로 등용한 위나라는 오기의 모국이 아닌 진나라에서 분리된 삼진 중에 하나인 위나라였지요.

 당시 위나라의 군주인 문후는 오기를 중용하였고 오기는 서하의 태수가 되어 진나라와 싸워 연전연승하여 땅을 크게 넓혔지요.

 장군이 된 오기는 병사들의 종기를 직접 빨아준 일화로 유명하고 진군할 때는 말을 타지 않고 병사들이 지는 짐을 지고 함께 걸었다고 합니다.

 오기는 병사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항상 병사들의 신뢰를 얻으려고 노력했지요.

 문후가 죽고 이어 왕위에 오른 무후는 오기를 신임하였지만 무후는 전문을 재상에 임명하여 오기는 원했던 재상이 되지 못했지요.

 전문이 죽은 후에 재상이 된 공숙좌는 오기의 존재를 꺼려하여 오기가 무후의 신뢰를 잃게 만들기 위해서 계략을 세웠지요.

 공숙좌는 무후에게 오기는 대단한 사람이기 때문에 위나라를 떠날지도 모르니 공주를 그에게 시집보낼 것을 제안했습니다.

 무후는 공숙좌의 제안에 따라 공주를 오기에게 시집보내려고 했지만 이것은 오기와 무후를 이간시키려는 공숙좌의 음모였지요.

 공숙좌는 계획적으로 공주를 화나게 만들어 공주가 자신을 꾸짖도록 만들었습니다.

 오기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서 공주를 화나게 만들었지요.

 공주가 공숙좌를 꾸짖는 모습을 보자 오기는 공주와 결혼하지 않을 것을 결심하고 왕에게 공주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지요.

 오기의 청혼 거절은 공주를 화나게 만들었고 무후의 심기를 분편하게 만들었지요.

 공숙좌의 음모가 성공한 것이였지요.

 공주는 오기를 미워하였고 무후 역시 오기를 신뢰하지 않아 오기는 결국 위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갔습니다.

 초나라의 도왕은 오기의 명성을 들어 오기를 재상에 임명하였지요.

 재상이 된 오기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며 초나라를 단숨에 최강의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오기는 귀족들에게 세금을 내게 만들어 귀족들의 원한을 샀지요.

 도왕이 죽자 귀족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오기를 죽이려 했습니다.

 오기는 도왕의 관에 엎드렸지요.

 아마도 오기는 화살이 도왕의 관을 맞추면 대역죄로 자신을 죽인 무리들이 멸문당하게 만들려고 그런 것으로 추측됩니다.

 결국 반란에 참여한 귀족들은 왕의 관에 화살을 쏜 죄로 멸문당했지요.

 오기는 죽으면서도 복수를 염두할 정도의 임기응변이 대단한 사람인 것 같네요.

 

 오기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출세를 위해서 아내를 죽인 일 때문에 부정적인 평가도 있지요.

 하지만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명장 중에 한 명인 오기의 저서 오자병볍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애독되고 있지요.

출처 : 조정우
글쓴이 : 유토피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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