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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리뷰] 집행관일기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8. 30. 20:31

 

 

 



 

 

대통령 구속 수사관이 집행관이 되어 서민경제의 최전선을 누빈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집행관으로, 라면국물을 뒤집어쓰고 쇠파이프를 막아내며 서울 하늘 아래 인간사의 온갖 그늘을 헤집고 다녔다. 전직 두 대통령을 구속한 역사의 현장에서부터 유명 정치인을 모셔가기 위해 한겨울 12시간을 떨어야 했던 일까지.

32년간의 검찰수사관 재직을 마치고 집행관을 인생 2막으로 선택한 저자는 대한민국 경제의 최전선을 목격했다. 하나 남은 밥벌이 수단을 빼앗기고, 애지중지 아껴온 살림살이가 경매되고, 수십 년 우정이 단돈 몇 십만원에 허물어지며,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자식들이 두 주먹을 움켜쥐는 현실.

이 책은 가진 자와 없는 자, 뺏은 자와 뺏긴자, 속인 자와 속은 자가 날을 세우고 대립하는 집행현장에서 차마 표현하지 못한 저자의 착잡함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한국사회의 세밀화를 그려 보이며, 힘든 시절일수록 스스로 위로하고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길 줄 알아야 희망을 지킬 수 있다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당신들은 주인 허락도 없이 남의 집을 무단침입했습니다. 형법 제319조 1항의 주거침입죄에 의거해 징역 3년에 처해집니다!”휴, 오늘 저는 어느 삼 형제 때문에 식은땀 꽤나 흘렸습니다. 남의 땅을 20년간이나 억지로 점유하면서 그곳에서 구멍가게로 생계를 이어온 한 남자의 무허가 건물 철거를 지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구멍가게 주인의 세 아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나서면서 일이 복잡하게 꼬였습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분노 뒤엔 한없는 약함이 숨어 있다는 걸 아는 제 눈에 삼 형제의 들끓는 분노에 가린 슬픔이 함께 보였습니다. “둘째 아드님. 희망이라는 건 남의 땅에서 키울 수가 없는 겁니다. 척박하고 좁더라도 자기 땅에서 키워야 해요. 설사 남의 땅에서 키워냈다 하더라도 그건 모래 위에 지은 집이나 마찬가집니다.” - 2장 '삼형제 이야기' 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사내는 제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식탁 위에 놓여 있던 프라이팬을 집어 들고 제게 성큼 다가섰습니다. 사내가 들고 온 프라이팬을 뒤집어 제 머리를 향해 내리칠 때 이미 때는 늦어버렸습니다. 결국 제 머리와 오버코트는 퉁퉁 불어터진 라면 쪼가리와 국물로 더렵혀졌습니다. 라면 냄새 나는 머리통이야 목욕탕 가서 씻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오늘 처음 입고 나온 이 오버코트는 어찌할까요. 깊어가는 한겨울 늙은 몸 하나라도 따뜻해야 한다는 제 아내의 마음이 담겨 있는 이 새 오버코트 말입니다.
두 눈에서 뜨거운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려고 합니다. 눈물이야 흘려보내면 그만일 테지만 제 가슴에 차오르는 이 모욕감을 꾹꾹 눌러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하긴 살아낸다는 것이 이런 것이겠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참고 또 참는 것이 인생일 테니까요. 언젠가 다가올 마지막에 이르러 ‘난 끝까지 이것을 지켜내며 살았습니다’라고 말할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도 참 명예로운 순간이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 살아내고 있습니까. - 3장 '모욕' 중에서

집행관인 저의 마음속에도 칼이 몇 자루 숨어 있습니다. 저 스스로를 향해 벼린 칼은 놓아버리고 싶었던 인생의 몇몇 순간들을 참고 버티게 해준 은혜로운 칼이 되었지만, 타인을 향했던 것들은 혹시라도 튀어나올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어르고 달래느라 몹시도 저를 지치게 했습니다. 오늘 저는 분노가 만든 칼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몇 년째 월세를 내지 않고 사는 세입자를 내보내달라는 집행요청이 들어와 서울의 한 임대주택을 찾았습니다. 현관 앞에서 몇 번을 불러봤지만 대답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가려는 순간‘퍽’소리와 함께 문간방 문을 째고 어른 팔뚝만한 칼이 나왔습니다. ……저 좁은 방안에서 칼을 품고 혼란에 휩싸여 있을 남자의 모습이 눈에 선했습니다. 세상을 향해서, 집행관인 저를 향해서, 혹은 남자 스스로를 향해서 겨누고 있을 날카로운 칼의 형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습니다. 남자는 저 방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나약한 마음에 품은 칼이 얼마나 무력하고 고독한 도구인지 몇 밤이나 지나야 알게 되는 것일까요. 여러분도 오늘은 마음속에 품은 칼에 스스로를 비추어보시길 바랍니다. - 4장 '마음의 칼' 중에서

“쓰벌 놈들! 어떤 놈도 내 차에 손 못 대!”공영주차장 한 귀퉁이에서 50대 초반의 남자가 버스 앞을 몸으로 딱 가로막고 버텼습니다. 그는 1억 원 상당의 돈을 주고 모 관광버스 회사 소속의 버스를 한 대 산 지입차주였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채권자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하자 채권자는 명의상 회사 소유인 지입차주의 허점을 이용해 남자의 버스에 가압류를 신청한 것입니다. “말기폐암 수술한 지가 엊그젠데. 내 차를 빼앗아가면 내 병원비는 어쩌고, 마누라하고 애새끼는 또 뭘 먹고 사냐! 야! 이 더러운 놈들아! 내가 진 빚도 아닌데 왜 내 차를 뺏냐고!”
나쁜 놈입니다. 정말로 나쁜 놈입니다. 그 버스 회사 사장인가 하는 놈 말입니다. 이보시게, 기사 양반. 내 말 좀 들어보시게. ‘처자식 먹여 살릴 피 같은 밥벌이 잘려 나가는 그 고통 내가 잘 알지.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라네. 지금 이건 가압류네. 가압류. 모든 것이 끝장난 게 아니라고. 여기서 이러고 넋놓고 있지 말고 퍼뜩 이의신청하고 사실 소유관계도 밝히고 법적 절차를 밟으시게. 어서 일어들 나서 소중한 밥벌이 지켜 싸우시게. 얼른.’ - 1장 '슬픈 밥벌이' 중에서

조그마한 거실 하나에 방 두 개가 붙은 좁은 공간의 살림살이를 들여다보다 저는 그만 작은 문간방에 걸린 옷 한 벌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회색 벽의 대못에 걸린 옷걸이의 교복 한 벌……. 중학교 2, 3학년쯤 되었을 법한 소녀의 감색 저고리와 치마가 가지런히 걸려 있었습니다.
집행관인 제게는 서늘한 눈길조차 주지 않던 저 아주머니가 정성스레 빨고 다려놓았을 교복 한 벌이 가슴을 뜨겁게 만들더니 콧잔등이 시큰해지면서 눈시울마저 뜨끈해져버리고 말았습니다.‘에라, 이 사람들아! 그래서 부자가 됐어야지. 아니면 넉살 좋게 좀 비벼보기라도 하든가.’아주머니 코앞에 대고 하고 싶던 말이 혼잣말이 되어 입 속에서 구릅니다.‘누구도 아닌 자네들 딸을 위해서 말이야.’ - 1장 '교복 한 벌' 중에서



기원섭 - 1948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문경중학교와 대구고등학교를 다닌 후 서울로 상경, 스물다섯이 되던 해 검찰서기보로 9급 공무원이 되다. 마흔셋에 5급 수사사무관 승진시험에 합격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관으로 근무했고, 이후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과 서울지방검찰청의 여러 부서를 거쳐 2005년 대검찰청 감찰부 근무를 마지막으로 31년 9개월의 검찰공무원 생활을 마무리했다.

대검 중수부 수사관 시절,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 수사에 참여했고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구속 시에는 민주당사 앞에서 열두 시간을 민주당원 1000명과 대치하기도 했다. 2005년 10월부터 집행관으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면서 인터넷 다음 카페‘참 아름다운 동행(cafe.daum.net/kiwonsub)’에 집행관 일지를 남겨왔으며, 2009년 봄이면 3년 6개월의 집행관 임기를 마치게 된다.

누구는 돈을 꽃이라고 하고 누구는 돈이 사람을 노예로 만든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돈의 주인이 되어 꽃같이 쓰고 사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지만 어쩐 일인지 참 많은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되어 똥덩어리만도 못하게 써버리는 세상입니다. 집행관인 제가 하는 일 전부가 바로 이 돈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다툼에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돈이란 놈은 언제 어디서고 말짱하게 그대로인데 변하고 다치고 상처 입고 후회하고 눈물 흘리는 쪽은 항상 사람이라는 겁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돈이 돌지 않듯이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살이가 어려워질수록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닫힌 마음을 열고, 막힌 마음의 통로를 뚫어 마음들이 잘 흐르게 만들지 않으면 점점 더 곤궁해지는 것이 마음의 경제학이 아닐까요. - 기원섭

    

|프롤로그|

1장 슬픈 밥벌이
슬픈 밥벌이 | 집행관의 하루 | 헌 가게, 새 가게 | H빔 사연 |
착한 사람 | 교복 한 벌 | 살아간다는 것 | 딴 세상 | 설득 |
빨간 딱지 | 밥풀때기 | 집 지키는 아이 | 강아지풀 | 집주인의 눈물

2장 사노라면
삼 형제 이야기 | 찰거머리 인생 | 사노라면 | 할머니와 냉장고 |
마음 먹기 | 봉을 잡다 | 얌체 인생 | 마음의 자 | 꽃이든, 똥이든 |
과거라는 감옥 | 이별 이야기 | 일어서기 | 유치권을 아시나요 | 인생의 그늘 |

3장 똥배 집행관 이야기
천사의 집행 | 비둘기의 재난 | 불행한 바보 | 닭집 여자 | 야간 집행 | 두 토막 가게 |
기도하는 하루 | 오만과 편견 | 모욕 | 인생의 저울 | 세 가지 거짓말 |
보리문디 | 경마장에서 | 설악 회상 | 딱 하루 부자 | 문신 청년

4장 가시나무 인생
인생의 가시 | 부탁 유감 | 우중 집행 | 우정의 대가 | 마음의 칼 | 어떤 남자 | 금고 따기 |
나무에서 떨어지다 | 무표정 가족 | 인두겁 이야기 | 두 가지 시선 | 그림자 밟기 |
망치 우정 | 몽골 아주머니 | 가시고기 유감 | 어떤 상처 | 함정 | 불실본색

|에필로그|

출처 : 부동산 재테크 패밀리
글쓴이 : 김용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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