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데렐라 맨>(Cinderella Man)을 보지 않은 분들께
지난 설 연휴에 나는 교육방송(EBS)로부터 귀중한 선물을 받았다. 바로 <신데렐라 맨>의 방영이었다. 이야기만 듣고 못 봐서 아쉬웠던 영화인데, 요즘 교육방송의 다큐멘터리 프로들에 반해 자주 그 채널을 찾다가 우연히 맞닥뜨리게 되었다. 1930년대 미국의 한 복싱선수의 실화를, <뷰티플 마인드>의 론 하워드가 연출한 2005년 작품이다. 러셀 크로우와 르네 젤위거가 주연을 맡아 우선 영화를 대표하는 얼굴들이 쟁쟁하다. 이런 스타 캐스팅의 영화들이 작품은 그저그런 경우들이 많은데 <신데렐라 맨>은 그런 우려를 기분좋게 배반한다.
무대는 대공황시대의 뉴욕, 제임스 브래독(러셀 크로우)은 권투선수 출신 노동자이다. 사랑하는 부인 매(르네 젤위거)와의 사이에 어린 3남매가 있다. 과거 프로권투 선수로 80전을 치르면서 강펀치를 자랑했으나 말년 성적은 시원찮았다. 남은 자랑거리는 그가 단 한 번도 KO패를 당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벌어놓은 돈마저 몽땅 주식투자에 쏟아부었다가 주식시장 붕괴로 무일푼의 신세가 된 브래독에게 권투는 가족들을 부양할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하지만 그런 선수 생활마저 경기 중에 오른 손목이 부러지는 바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부인은 생활이 훨씬 어려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얻어맞는 대가로 돈을 벌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은연중 기뻐하며 대공황기의 곤궁한 살림을 꾸려나간다. 그러나 현실은 고달픔 그 이상이었다. 브래독은 다친 오른손을 채 치료하지도 못한 채 생업전선에 뛰어들지만 부두에서의 일용 노동마저 일거리를 못얻는 날이 많고, 일을 하더라도 다섯 식구의 생활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4달째 밀린 전기세 44달러를 못내고 전기가 끊겨버린 브래독의 집, 먹을 게 없어 어린 막내에게 주는 우유마저 물을 타서 먹여야 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그 와중에 큰 아들이 정육점에서 소시지를 훔치는 사건까지 발생하자 브래독은 정육점에 물건을 돌려주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에게 약속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너와 헤어지지 않겠다”고. 하지만 부인 매는 브래독이 없는 중에 어린 아이들이 겨울 추위 속에서 기침과 고열에 시달리기까지 하자 아이들을 형편이 나은 친정집으로 보낸다.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브래독은 분노하지만 그 해결책은 우선 집에 끊긴 전기라도 다시 연결하는 수밖에 없다. 그는 긴급빈민구제소에 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19달러를 얻고,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버리고 복싱계 사람들이 모이는 클럽에 가서 구걸을 한다. 그렇게 해서 밀린 전기세를 내고 다시 아이들을 찾아온 브래독에게 행운의 여신이 찾아온다. 지난번 클럽에서 만났던 그의 과거 코치겸 매니저인 조(폴 지아매티)가 헤비급 세계타이틀전의 오픈게임으로 세계랭킹 2위의 선수와 대적할 긴급 대타 선수의 티켓을 갖고온 것이다.
시합 당일 먹을 양식이 떨어져 굶은 채 게임에 출전한 브래독은 당연히 질 거라는 관계자들의 예상을 뒤엎고 통쾌한 KO승을 거둔다. 오직 오른쪽 주먹만 강했던 과거의 그에 비해 이제는 오른쪽 손목이 다쳤을 때 치료도 채 하지 못한 채 뛰어들었던 부두 하역장에서, 일하며 단련된 왼주먹의 위력이 더해진 것이다. 대전료로 자신의 몫 123불을 받아 빚을 갚고 한숨돌린 그에게 조는 계속 시합을 주선해준다. 세계랭킹 1위와의 격돌에서도 승리한 브래독은 빈민구제소에 가서 그가 얻었던 구호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되갚는다.
마침내 세계챔피언 맥스 베어와의 타이틀전이 확정된 브래독은 기자회견을 갖는다. 왜 갚지 않아도 되는 돈을 되갚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답한다. “우리는 어려움에 처한 한 사람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주는 위대한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최근 저는 운이 좋아 경제 상황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선과 따뜻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다. 국가의 작은 도움에도 감사해하고 대통령 루즈벨트가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는 소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그 기자회견에서 감독은 이 영화에서 그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쏟아붓는다. 왜 옛날보다 강해졌는가를 묻는 기자들에게 브래독은 “이제 나는 뭘 위해 싸워야 하는지 이유를 분명히 안다. 그것은 (아이들의) 우유값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브래독의 메시지에 같은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의 열광이 뒤따른다. 브래독의 승리를 통해 자신의 고통을 보상받고 또 스스로의 미래 희망을 그의 분투 가운데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3만 5천명의 대관중이 운집한 타이틀매치에서 브래독이 맥스 베어의 야수같은 주먹을 물리치고 챔피언벨트를 획득하고, 그 뒤 이러저러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등의 뒷이야기는 중요한 게 아니다. 실화라서 사실을 바꿀 수는 없었겠지만 설령 브래독이 타이틀전에서 패배하는 설정이었더라도 이 영화의 감동은 전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그 감동이 제임스 브래독의 강한 주먹 때문이 아니라 그의 뜨거운 가족 사랑과 그 가정을 지키기 위한 피눈물나는 노력을 지켜본 후에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는 갑자기 하늘에서 행운이 뚝 떨어진 ‘신데렐라 맨’의 이미지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고난을 이겨내고 가족을 지키는 일은 로또에 당첨되는 식의 행운에 기대서는 결코 아니될 일이며 오직 브래독과 같은 성심과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일 것이다. 가족간의 진정한 사랑을 꿈꾸는 이라면, 그리고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꼭 한 번 보시라. 재미와 유익과 감동이 함께 있는 보기 드문 베스트 영화이다. 인터넷에서 유료로 다운받으면 아주 싸게 보실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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