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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찔레꽃과 크로싱 - 탈북자들의 비극과 삶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9. 27. 08:32

찔레꽃과 크로싱



몇 달 전, 탈북자 가족을 다룬 영화 <크로싱>(김태균감독, 차인표주연)을 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찔레꽃>이라는 탈북자 소재의 연작소설집(정도상, 창비)을 읽게 되었다. 이 한 편의 영화와 한 권의 소설집은 태생이 같다. 똑같은 상황과 비슷한 사연들이 만들어낸 쌍생아들인데, 비슷한 시기인 올 여름에 하나는 소설로, 하나는 영화로 태어난 것이다.

 

  

 

정도상의 소설은 동일한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7편의 중단편을 시간과 공간을 뒤섞어 놓은 연작 소설집이다. 중국의 심양에서 시작해서 한국의 소래포구에서 끝나는 순서이지만 그 배열은 시계열적이지 않다. 주인공인 탈북여성 충심은 신분을 속이고 조선족으로 행세하면서 심양의 안마소에서 일한다. 그러나 빌린 돈을 갚지 않으려는 얄팍한 배신에 의해 공안에 쫓기게 된다. 이러한 쫓김은 탈북 이후의 충심에게 일상적인 것이었지만 점점 견디기 어려운 심리상태에 빠지고 결국 거부하던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다.


쫓김은 <크로싱>의 용수(차인표)에게도 마찬가지 운명이었다. 아파서 죽어가는 아내의 약값을, 그리고 무엇보다 약을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탈북한 그는 벌목장에서 일해서 번 돈을 탈북자 단속을 피해 도망치다 모두 잃어버리고 만다. 그는 죽어가는 아내를 살려야 한다는 한시적인 상황에 쫓긴다. 이제 그의 남은 선택은 아내의 약값으로 쓸 수 있는 돈을 준다는 한국으로 가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용수는 베이징의 스페인대사관 담을 뛰어넘는 무리에 끼어들었고 결국 한국행에 성공한다.


애초 충심은 함경도 함흥의 음악학교 학생이었다. 운명의 여름방학 때, 그녀는 어려운 집안 형편을 돕기 위해 돈될 만한 중국 물건을 사오라는 어머니의 당부를 받고 국경도시 남양의 이모집에 간다. 거기서 이종사촌인 미향과 함께 인신매매조직의 꾀임과 강박에 의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국경을 넘을 수밖에 없는 올가미에 걸렸다. 탈북자가 된 것이다. 이후의 상황은 그녀들의 의지와 아무런 상관없이 흘러갔다. 인신매매조직에 의해 중국 흑룡강성의 농촌 마을에 팔려간 두 사람 중 미향은 결국 미치게 되고 먼저 탈출한 충심의 도움으로 간신히 지옥같은 참상에서는 빠져나오나 결국 죽게 된다.


브로커에게 거액의 수수료를 약속한 이후에 이루어진 충심의 한국행 경로는 중국~몽골 국경을 넘는 코스였다. 그 길의 가장 큰 어려움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밤의 추위와 허기 속에 무인지경의 몽골 초원을 며칠씩 헤매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충심 일행은 고초 끝에 한국행에 성공하나 단 한 사람, 여덟 살짜리 영수 만은 몽골 초원에 그 외로운 어린 육신을 묻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 <크로싱>에서 준이가 그랬던 것처럼.


<크로싱>에서 한국행에 성공한 주인공 용수는 브로커를 통해 북한의 아내가 죽었슴을 알게 되고, 하나 남은 11살짜리 아들 준이만은 데려오고자 돈을 보낸다. 그들이 준비한 경로가 바로 중국~몽골 코스. 용수는 울란바토르에 가서 기다리지만 가슴에 팻말을 걸고 혼자서 국경을 넘은 준이는 오질 않는다. 결국 용수에게 전해진 것은 준이가 그 초원에서 죽었다는 비보다.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꺼억꺼억’ 가슴으로 통곡하는 용수의 모습에 나도 계속 같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내 가슴 속에 화인처럼 남은 장면이다.


“찔레꽃 붉게 피~인 북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위의 초가 사~암간 그리~입습니~다.” 충심이가 함흥 음악학교에서 배웠다는 이 찔레꽃이란 트로트는 이제 그가 한국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며 부르는 18번 노래가 되었다. 그녀는 어렵사리 번 돈을 함흥의 엄마에게 보내며 찔레꽃 화분을 벗삼아 이빨을 앙다물고 한국에서의 부초같은 삶을 다져간다. 북의 가족들은 이미 가슴 속에 묻어버렸지만 영화 속의 용수도 아마 이 남쪽에 새로운 뿌리를 내리고 <찔레꽃>을 부르며 그렇게 살아가리라.


<찔레꽃>이 탈북자들의 탈북과정과 이후의 삶에 대한 작가의 안타까움을 애써 억누른 냉철한 보고서같은 것이라면, <크로싱>은 내게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질타하는 한 편의 고발장같은 것이었다. 비디오나 시디(CD)가 나와 있나 모르겠다...

출처 : 김영춘 BLOG
글쓴이 : 아차산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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