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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미(美)의 여로 2 - 석탑과 부도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12. 22. 07:21
미(美)의 여로 2 - 석탑과 부도
 
한국 미술사학에서 불교미술이 차이하는 비중은 실로 막대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이후 그 어떤 철학도 불교만큼 사회와 개인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종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상황은 지금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우리나라의 크리스찬 인구가 엄청나기에 이제는 우리나라의 정신세계는 기독교적 영향이 가장 크다고 말씀하는분도 있지만 저는 그 말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크리스찬 누구를 만나보아도 그 내면 깊숙히 잠재되어 있는 불교적 사고방식과 습관을 발견하는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우리나라는 불교국가라고 생각합니다. 불교는 조선초 강력한 숭유억불 정책에서도 토착신앙과 결합하며 더욱 백성의 생활 깊숙히 스며들었으며 그후 많은 환란속에서 호국불교라는 독특한 발전으로 민중들의 삶에 뿌리내려 왔습니다.
 
따라서 문화재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이 불교관련 문화재며 불교 문화재 중 가장 대표적인것이 건축물과 석탑을 비롯한 석조유물들 입니다.  오늘은 그중 석조유물중 가장 대표적인 석탑과 부도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석 탑  
언제나 사찰에서 본존 건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탑이 보입니다. 그 탑으로 인해 대웅보전이 더욱 엄숙하고 장엄하게 느껴지며 비로서 부처님 앞에 서있다는 실감이 나는것이죠.
 
탑의 유래를 살펴보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인도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자 다비를 하여 연고가 있는 나라와 부족들이 사리를 나누어 각각 탑을 세우니 이를 일러 "팔분사리탑(八分舍利塔)"이라 부르는 것으로 불교에서의 탑의 기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즉 탑이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세운 건조물을 가리키는데, 부처님이 이 세상에 안계시므로 탑속의 부처님 사리를 모시고 늘 부처님을 따르고 공경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하겠습니다.
 
신라시대의 금석문에는 산스크리트어 stupa를 음역하여 솔도파(堵婆) thupa를 음역하여 탑(塔婆)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한국 석탑의 발생기는 삼국시대 말기인 600년경으로 추정되며, 불교가 전래된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말엽까지 약 200년간은 목탑의 건립시기로서 이와 같은 목탑의 경영과 그 전통의 연마가 마침내 석탑을 발생케 하였습니다.
 
7세기 전반부터는 백제에서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을 비롯해 석탑을 건립하기 시작하였는데 건축 기술이 가장 발달한 백제에서는 목탑 양식을 모방하여 석탑을 세웠습니다. 신라의 석탑으로는 전탑 양식을 모방한  경주 분황사 석탑이 전해지며. 통일신라 경덕왕 때 세워진 경주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 등으로 이어진 석탑 양식은 고려시대에 다양한 형태로 발달하였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쇠퇴하였습니다.
 

 

백제 무왕이 세웠다는 국보 11호 익산 미륵사지석탑.
'서동요'의 인기에 힘입어 관심이 높아졌지만 현재는 해체보수중이므로 볼수 없다.
 
 
현재 전국 1,300기가 넘는 대부분의 불탑이 석탑으로서, 한국 불탑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이렇듯 석탑이 그 주류를 이루게 된 까닭은 질 좋은 화강암이 풍부한 자연적 조건과 일찍부터 돌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도나 중국을 '전탑의 나라', 일본을 '목탑의 나라'라고 한다면 한국은 '석탑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것입니다.  
 
탑의 세부 명칭에 대해 정리 해보겠습니다.
 

 

찰주 : 탑의 꼭대기에 있는 장대를 말한다. 심주, 찰간, 간이라고도 하는데 보통 나무나 철로 만들고 그 끝에 보주를 장식하였다. 목탑의 경우는 찰주가 기단부에서 중심부를 지나면서 상륜부까지 계속되어 이를 심주라고 부르지만 석탑에서는 상륜부에만 표현된다.
 
보주 : 여의주, 여의보주라고 하며 어떤 소원이던 다 들어주고 질병이나 고뇌를 없애주고 재앙을 막아주는 공덕이 있다고 한다.
 
용차 : 불탑 상륜부에 연못,용왕,연꽃,물안개 등 물과 관련된 형상과  내용을 도입한것은 찰간에 벼락이 맞거나 도괴, 훼손등을 방지하기 위한 뜻이 담겨있다.
 
보개 : 보산개라고도 부르는데 구륜과 수연사이에 닫집 모양의 부분.
 
보륜 : 불탑의 탑머리에 앙화와 보개 사이에 있는 장식물
 
우동 : 낙수면과 낙수면이 만나는 지점에 형성되는 합각선으로 지붕의 마루에 해당한다.
 
낙수면 : 옥개석 상면에 형성된 경사면으로 지붕에 해당한다.
 
우주 : 기단의 면석과 탑신석의 가장자리에 세워진 기둥으로 석탑이 목조건축에서 번안하였음을 보여주는 요소이다.
 
부연 : 상층기단 갑석의 밑부분에 만든 받침으로 주로 각형1단으로 조성된다. 간혹 낙수홈을 마련하여 빗물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탱주 : 탱석이라고도 하는데 우주 안쪽 면석부에 세워진 기둥으로 탱주의 수량은 시대별로 보여주고 있어 석탑의 건립시기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탱주는 탑의 몸체부분 가운데에 도드라지게 새겨 지붕을 기둥처럼 받치는 형태로 목조건축에서 평주를 번안한 것이다.     
 
지대석 : 지댓돌, 지대를 쌓아 놓은 돌, 기단부와 지면에 닿는 부분에 놓이는 석재로 구조물을 세우는 기초이다.
 
 
 
부도
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하는 묘탑으로 부도, 부두, 포도, 불도 등으로 불리우기도 합니다. 원래 불타佛陀 또는 도솔파率堵波(탑) 이란 음이 잘못전해진것으로 처음에는 불상이나 불교사원,  불탑을 의미했으나 뒤에는 고승들의 사리를 담는 석조소탑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불교가 전래된 후한後漢시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말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 당나라로부터 禪宗이 들어온 9세기 이후에 각 구산선문九山禪門에서 師資相承(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 법을 이어 전함)으로 법맥이 이어지면서 불상 숭배보다는 祖師들의 사리와 유골을 담은 묘탑이 중요한 예배 대상으로 되어 많은 부도가 건립되었습니다.
 
신라에서 가장 오래된 부도는 기록상으로 보면 627년~ 649년 사이에 원광법사의 부도가, 백제에서는 혜현스님의 부도가 세워졌다는 기록이 있고, 이후 신라 헌덕왕(813)때 단속사에 부도가 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모두 남아 있지 않으니 추정하는 것이고. 현재 남아있는 것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844년 건립된 염거화상탑입니다.
 
 

 

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서있는 전흥법사 염거화상탑

 
 
불탑은 가람의 중심이 되는 곳에 세운 데 비해, 승탑인 부도는 사찰 주변에 석비와 함께 단층으로 건립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석등과 함께 조성하였습니다. 
 

 

보발(오른쪽 네번째) : 탑의 노반위에 바리때를 엎어놓은듯한 모양의 부분

 
노반(다섯번째) : 불탑 꼭대기 층에 네모난 갓처럼 생긴 부분
 
옥개석(여섯번째) : 탑의 옥신석 위에 덮는 돌로 옥개라고도 한다. 목조건축의 지붕부에 해당한다. 옥개받침은 옥개서의 하면에 마련된 각형받침으로 목조건축의 공포부분에 해당되는데 옥개받침수가 시대별로 특징을 보이고 있어 건립시기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사천왕상(왼쪽 첫번째) : 수미산 정상의 중앙부에 있는 제석천을 섬기며 불법뿐 아니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의 수호하는 호법신이다.  동쪽-지국천왕, 남쪽-증장천왕, 서쪽-광목천왕, 북쪽-다문천왕
 
탑신석(오른쪽 여덜번째) : 석탑의 몸체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몸돌이라고도 한다. 각면 가장자리에 우주를 세운다.
 
문비(오른쪽 아홉번째) : 문이나 창의 한짝, 문짝
 
 
탑과 부도의 명칭을 정리하면서 인터넷 검색 한번이면 다 나와있는 정보를 굳이 올릴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하지만 읽는것과 직접 손으로 자판을 치면서 정리하는것은 많이 차이가 나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바램을 가져보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건  문화재의 세부 명칭이나 문화재의 연대와 출처를 밝히는것이 아니라 탑과 부도를 향해 곱게 합장하였던 지극한 그 마음.  탑돌이를 하면서 쌓아갔던 공동체의 연대감과 더불어삶의 자세를 올곳게 배우는것이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소박한 저의 글이 탑을 향해 두손모아 합장했던 옛님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닮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금강안金剛眼
출처 : 환상의 C조
글쓴이 : 얼음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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