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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꽃 같은 절, 칼 같은 선의 `스님 사관학교`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12. 22. 07:20
2007-03-29 중앙일보
꽃 같은 절, 칼 같은 선의 '스님 사관학교'
송광사는 아름답다. 청아한 단청의 색조에 보는 이의 가슴까지 물이 든다. 그러나 그 속엔 ‘선(禪)’을 향한 엄격한 전통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한 스님이 징검다리에 앉아 물에 비친 전각을 보고 있다. 물 속의 나와 물 밖의 나. 어디가 실(實)이고 어디가 허(虛)인가.
미국인 현각 스님이 전남 순천의 송광사에 간 적이 있다.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인 그는 '가장 한국적인 사찰'의 속살을 느끼고 싶었다고 한다. 이튿날이었다. 현각 스님은 새벽 예불을 드린 뒤 빗자루를 들었다. 그리고 일주문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쓸려고 나갔다.

거기서 그는 깜짝 놀랐다. 직접 빗자루를 들고 걸어오는 큰 스님을 본 것이다. 현각 스님은 합장을 한 뒤 물었다. "아니, 직접 청소를 하세요?" "그럼요" "원더풀입니다. 멋져요. 어떻게 큰 스님이 직접 빗자루를 드세요?" "하하, 멋진 게 아닐세. 송광사에서 이건 기본일세, 기본!" 현각스님은 그날부터 1년간 송광사에 머물렀다.

해인사의 입구는 거칠고 우렁차다. 반면 송광사 진입로는 차분하고 운치가 넘친다. 동양화 뺨치는 바위가 줄을 잇고, 그 사이를 누비는 개울, 그리고 단풍을 웃도는 단청의 청아함에 탄성이 절로 터진다. 봄을 깨는 매화의 향, 담장을 넘는 산수유의 색, 그 속에 송광사가 있었다.

겉만 보면 그 아름다움에 취할 정도다. 그런데 속을 보면 딴판이다. 송광사에는 소름이 쫙쫙 돋는 '엄격함'이 흐르고 있었다. 그건 소리치고 윽박지르는 '선언적 엄격함'이 아니라, 일상의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실천적 엄격함'이었다.

뿌리가 있었다. 불가에서 송광사는 '명문가'를 자부한다. 보조국사 지눌이 타락한 고려 불교에 맞서 '정혜결사'를 꾸린 근본 도량도 송광사다. 고려 때는 무려 16명의 국사를 배출했다. 그 맥이 효봉, 구산스님을 거쳐 지금도 내려온다.

특히 '해인사 성철, 송광사 구산'으로 불리었던 구산스님(1909~83)은 '솔선수범'의 화신이었다. 송광사 스님들은 요즘도 입을 모은다. "총림 송광사의 최고 어른인 방장임에도 구산스님은 남달랐죠. 밭에서 돌을 캐고, 김을 매고, 배추를 뽑는 일도 빠지는 일이 없었죠."'예불도 같이, 공양(식사)도 같이, 울력(노동)도 같이'하는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의 공동체 룰을 고스란히 되살린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송광사의 배추밭은 늘 '선방'이다. 배추를 뽑을 때도, 법당 앞을 쓸 때도, 거름을 나를 때도 아래 위가 없다. 공부에 궁금한 게 있으면 그 현장에서 문답이 오간다. "스님, 화두가 막혔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이게 배추를 안고서 던지는 물음이다.

송광사는 방장 보성스님, 주지 영조스님을 비롯해 강원에 80명, 선원에 40명, 율원에 25명의 스님이 머물고 있다. 다 합하면 150여 명에 달한다. 국제선원도 유명하다. 지금껏 거쳐간 외국인 스님만 400명이 넘는다. 러시아 해군 장교 출신의 한 스님은 "송광사 선방 생활이 러시아 군대 생활보다 더 힘들다"며 너스레를 떨 정도다.

일귀스님은 "선과 무사도가 하나죠. 지나간 과거는 놓고, 오지 않은 미래는 잡지 않고, 오직 이 순간만 파고드는 마음이 닮았죠. 송광사는 '선검일여(禪劍一如)' '선무일여(禪武一如)'를 좇습니다"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송광사는 일명 '스님 사관학교'로 불린다.

선방의 수장인 유나 현묵스님을 찾았다. 그런데 앉자마자 스님은 일어섰다. "참선 시간이네요. 5분이라도 늦으면 선방의 기강이 안 섭니다. 내일 다시 오시죠." 유나스님은 서둘러 방을 나갔다. 난감했다. 동시에 섬뜩했다. 한 점, 한 점 스님들의 피와 살로 녹아든 '솔선수범'의 견고함이 무섭게 날아왔다.

이튿날, 다시 갔다. 현묵스님은 차를 건넸다. "송광사의 자랑이 무엇입니까." 스님은 "산세를 보라"고 했다. 송광사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대웅전에서 보면 왼쪽 산등선은 '수행'과 직결되는 좌청룡, 오른쪽 산등선은 '재물'을 가리키는 우백호다. "좌청룡은 겹겹이 송광사를 감싸고 있죠. 그래서 수행의 기운이 강합니다. 반면 우백호는 팔을 오므리지 않고 펴 버립니다. 그래서 송광사에는 살림이 쌓이지 않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하죠. 가난 속의 수행, 스님들이 공부하기엔 최상의 여건이죠." 송광사에서 가난은 이미 수행의 주춧돌이 돼 있었다.

21세기, 절 밖의 화두는 '웰빙'이다. 현묵스님은 "마음의 웰빙이 빠진 모든 웰빙은 허상"이라고 했다. "진정한 웰빙에는 불안함이 없어야 합니다. 매순간 쫓기는 세상에서 불안함을 떨치는 대안이 바로 '선(禪) 수행'이죠."

송광사에는 탑이 없다. 절터가 연꽃을 닮았기 때문이다. 무거운 석물을 세우면 연꽃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그래서 넓디 넓은 뜰에도 탑이 없다. 송광사를 나설 때에야 알았다. '그 뜰을 오가는 선승들, 그들이 바로 탑이구나. 송광사의 숨 쉬는 탑이구나!'

순천 글.사진=백성호 기자
출처 : 환상의 C조
글쓴이 : 얼음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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