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애 초기의 예수
1. 세례자 요한을 만나시다.
복음서 기자들은 세례자 요한을 메시야이신 예수의 선구자적 역할(엘리야와 같은)을 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으나,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확실한 것은 그의 제자들과 예수의 제자들이 경쟁적인 관계에 있었다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그의 죽음 후에도 상당히 오랫동안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세례자 요한의 출현은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예언자와 같은 삶을 살면서 예언자적인 목청을 드높였다. 세례자 요한이 등장하기 전까지 400여년동안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졌었다. 다시 말해 예언자들이 이스라엘 가운데서 끊어졌던 것이다(제 2 바룩서 85:1-3). 그러한 가운데 요한은 예언자의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영이 임할 것이라고 외쳤다. 이 메시지도 유대인들에게는 예사 소리가 아니었다. 학개와 스가랴, 말라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하나님의 영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Tosefta Sota 13:3; 마카비상 4:46; 9:27; 14:41; Josephus Against Apion 1.41).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영을 받을만한 인물이 이스라엘 가운데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더 이상 임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세례자 요한의 메시지는 유대인들에게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세례자 요한은 베일에 쌓여있는 인물이긴 하나, 금세기 최대의 발굴물이라 할 수 있는 사해사본이 발굴됨에 따라, 점차 그 베일이 하나씩 벗겨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가 활동한 광야에서 북서쪽으로 10마일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쿰란 공동체가 살았었다. 이들은 공동생활을 하며, 철저한 금욕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회개"를 중요시하였으며, "세례" 의식도 중요시하였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에 대해서 세례자 요한과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이 그들 가운데 움직이고 있다고 믿었으며,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 . ."라는 구절은 그들이 가장 중요시 하는 성경 가운데 하나였다(1QS 8:12-14). 이러한 쿰란 종파와 세례자 요한의 유사성 때문에 학자들은 세례자 요한을 쿰란 종파 출신으로 생각하기도 하며, 더 나아가서 쿰란 종파의 지도자였던 "의의 교사"를 바로 세례자 요한으로 보기도 한다.
2. 세례 받으시다.
세례(immersion, 물에 잠김)는 쿰란 종파에서도 행해졌다. 그러나 이 세례는 "오늘날의" 기독교적인 세례와는 상당히 다르다. 우선 이 세례는 세례자에 의해서 베풀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행해졌다. 세례자 요한이 베푼 세례는 회개의 세례였다. 사람들은 그에게 나아와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다. 쿰란 종파의 세례도 회개와 연관되어 행해졌다(1 QS 3:4-9; 5:13-14; 6:14-23).
한편,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하기 위해서는 3가지 의식을 행해야 했다. 먼저 할례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세례(물에 잠겼다가 나오는 의식, immersion)를 받은 후 성전에 올라가 제물을 바쳐야 했다(Maimonides, Hilkh. Iss. Biah 13.5).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부정하다고 여겼다. 따라서 부정한 것을 씻는 예식으로서 세례를 받도록 했던 것이다. 이처럼 세례는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 받는 예식이었다.
그러면 유대인들은 세례를 안 받았는가? 그렇지 않다. 여인이 생리가 끝나면 온 몸을 물에 잠갔다가 나오는 예식을 행해야 했다(immersion, 레 15:28). 대제사장이나 제사장이 제의를 행하기 전에 이 의식을 먼저 행해야 했다. 한편 대속죄일 전에 회개와 정결 예식으로서 이 세례를 행하기도 하였으며,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하여 이러한 의식을 행하기도 하였다. 성전에 올라가는 사람들도 이 의식을 행하였다. 이 의식을 거행하는 장소를 mikveh(직역하면, 물을 모아놓은 곳)라고 하는데, 성전 주변에 이러한 장소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최근에도 성전 주변에서 48개에 이르는 mikveh를 발굴하였다. 요셉푸스는 전쟁 기간(66-73)에도 이 의식이 철저하게 행하여졌다고 기록하고 있다(Wars 4:205). 그리고 메시야를 맞을 준비를 하기 위하여 매일 이러한 의식을 행하는 종파들도 있었는데, 교부들은 그들을 "Hemerobaptist"("매일 목욕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에세네파에 속한 사람들도 매일 이러한 의식을 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독교의 세례는 바로 이러한 유대인들의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처럼 그 기원을 유대교의 두고 있는 기독교의 세례는 본래,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물에 잠기는 의식이었다고 한다(William Lasor, David Daube). 2세기의 로마의 카타콤에서 발견된 벽화 가운데 예수께서 세례 받으시는 장면이 그려진 것이 있다. 세례를 행하신 후, 즉 물에 자신을 담그신 후, 강에서 올라오시는 예수를 강둑 위에서 세례자 요한이 도와주고 있는 그림이다. 기독교 세례에 대한 가장 최초의 작품인 이 벽화는 예수께서 오늘날 기독교의 세례처럼 세례자에 의해 세례를 받으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에게 세례를 행하신 것이었다(self immersion).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요한이 예수의 머리에 손을 얹고 예수를 물 속에 잠갔다가 다시 올리운 것으로 대체적으로 생각을 한다.
그러나 1세기 당시의 세례 의식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미 언급한대로, 세례자가 세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세례는 스스로 행했다. 다만 거기에는 그 의식의 증인들이 있었다. 이들을 "fathers of the baptism"이라고 부르는데(Kethub. 11a; Erub 15a), 세례에 참여하는 자들은 이들 앞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옷을 완전히 벗은 채로 몸을 완전히 물 속에 (대체적으로 3번) 잠갔다. 이 때 그들은 똑바로 선채로 물 속에 들어갔다 나와야 했다.
예수께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성경에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마 3:16)고만 번역되어 있지만, 영어 성서(KJV)에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똑바로(straightway) 올라오셨다"고 번역함으로서, 예수의 수세 장면을 잘 묘사하였다. 세례받으시는 예수의 모습을 세례자 요한이 예수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연상하는 것은 우리의 선입견인지도 모른다. 1세기 유대적 배경에서 보면, 예수께서는 스스로 요단 강 물 속에 자신을 잠그셨다가 나오셨으며--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이--세례자 요한은 그 세례 의식의 증인으로
그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세례 의식은 아무데서나 행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세례는 반드시 흐르는 물로 하게 되어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세례 의식을 위하여 특별히 만들어 놓은 mikveh가 있었으며, 세례를 행하기 위하여 가장 좋은 곳은 강이나 샘물이었다. 세례자 요한은 요단 강에서 세례 의식을 행했으며,예수께서 세례 받으신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3. 시험받으시다.
성령께서는 예수를 광야로 내몰으셨다. 그리고 40일동안 그곳에서 시험을 받으시게 된다. 광야는 성서에서 메시야 시대의 도래와 함께 새롭게 창조되어지는 장소로 나타나는가 하면(사 11:6-9; 32:14-20; 40:3; 65:25; 호 2:18), 부정적으로 저주받은 장소로서 사탄이 지배하는 곳(사 13:19-22; 겔 34:25; 눅 11:24-28)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시험받으신 "광야"는 들짐승들이 거하며 (막 1:13) 사탄이 역사하는 장소로 묘사되고 있다. 들짐승과 사탄은 많은 신구약 중간기 문헌 가운데서 연관되어 나타나고 있다(이삭의 유언 7:7; 납달리의 유언 8:4; 베냐민의 유언 5:2). 예수께서는 들짐승과 함께 거하셨으나 천사가 수종을 들었다(막 1:13). 시편에서도 들짐승과 천사가 대조적으로 나타나고 있다(시 91:11-13).
광야에서의 시험은 공생애를 시작하기 위한 최종적인 준비였다. 예수의 사역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였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주권자로서 다스리시는 나라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세상의 임금은 사탄이었다. 예수께서는 사탄으로부터 이 세상의 통치권을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었다. 예수께서 사탄을 여러차례 내어쫓으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의 상징이었다. 사탄의 일을 멸하기 위해 오신 예수는 따라서 공생애를 시작하심에 있어서 사탄과의 결정적인 대결을 하셔야만 했던 것이다. 예수께서 사탄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신 것은 이제 전개되어질 예수의 사역의 전주곡이었다.
한편 성서의 위대한 인물들은 누구나 다 큰 시험(유혹)을 이긴 사람들이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쓰실 사람들은 먼저 시험하신다고 믿었다. 아브라함이 받은 열가지 시험은 유대인들에게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다(미쉬나 Avot 5:4).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에도 사탄들이 시기하여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미혹하였으나, 아브라함은 그것을 이기고 아들을 바쳤다고 한다(희년서 17장; 탈무드 Sanh. 89b). 한번은 다윗이 하나님에게 왜 하나님을 "다윗의 하나님"으로 부르지 않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부르느냐고 불평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은 모두 시험을 이긴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다윗은 자신도 시험을 이길 수 있으니 자신을 시험해보라고 하나님에게 요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의 정결을 가지고 시험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한다(우리야의 아내 사건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시험해 본 다음에 사람들을 사용하신다고 믿고 있던 유대인들에게는,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심에 있어서 사탄에게 시험받으신 사건은 당연한 일이었다.
4. 회당에서 사역을 시작하시다
예수는 당시의 다른 랍비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모든 랍비들이 그랬던 것처럼, 회당에서 가르쳤고, 제자가 있었고, 순회하면서 가르쳤고, 청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비유를 사용하여 가르쳤다. 그의 가르침의 방법이나 주제들 또한 다른 랍비들의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것이 하나 있다고 한다면, 그는 다른 랍비들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감탄을 했고" "놀랐던" 것이다(눅 4:22; 마 7:28-29; 요 7:46).
예수 당시의 랍비들은 대개가 어느 한 곳에 머물러 가르치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가르쳤다. 예수역시 다른 랍비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성과 촌에 두루 다니면서" 가르치셨다(막 6:6; 마 4:23). 특별히 예수께서는 주로 회당에서 가르치셨는데(마 4:23; 막 1:21; 6:2; 눅 4:15; 눅 6:6; 눅 13:10; 요 6:59; 18:20), 이는 다른 랍비들도 마찬가지였다. 유대인들의 회당("함께 모임"이라는 의미)은 예루살렘 성전과는 달리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 위한 장소였다. 복음서에서 "회당"은 예수의 가르침의 장소로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다(마 4:23, 9:35; 13:54; 막 1:21, 1:39; 6:2, 눅 4:4, 4:15-16, 6;6; 6:59, 13:10, 요 18:20).
이곳은 성전보다는 학교에 가까운 곳이었다. 회당은 각 지역마다 있었으며, 나사렛에도 이러한 회당이 있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예수께서는 어려서는 부모님과 함께 나사렛 회당에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고, 공생애 동안에는 안식일마다 각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셨다.
"언제나 나는 유대 사람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고, 아무것도 숨어서 말한 것은 없다"(요18:20).
복음서에서 예수의 사역과 관련하여 "회당"에 관한 언급이 40여차례 나타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회당에는 특별히 회당일을 맡아서 전담하는 (오늘날 교회의 목사와 같은) 성직자가 따로 없었다. 회당장(nasi)이 있긴 했지만, 그들은 그 마을에서 일어나는 문제나 분쟁들을 해결하도록 하기 위하여 회중 가운데서 뽑은 사람들로서 각 회당에는 세명이상의 회당장들이 있었다(참조. 눅 13:10-16; 막 5:22-24; 5:35-43; 눅 8:41-42; 8:49-56; 13:10-17). 2세기 중반까지도 교회는 목사라는 말 대신에 nasi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었다(Justin Martyr).
또한 회당을 감독하는 사람(chazen)이 있었다. 그는 안식일 예배를 준비하는 일을 주로 했다. 예수께서 고향 회당에 들르셨을 때 그에게 성경을 읽도록 한 사람은 바로 이 사람이었다(눅 4:16 이하; 마 5:25; 마 10:16-21).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 7교회에 보내는 메시지의 수신인들이 모두 "angel of the church(assembly)"로 되어 있는데, 이들은 바로 회당의 일을 책임맡고 있던 chazen을 일컫는 칭호였다(John Lightfoot).
이처럼 특별한 책임을 맡은이들이 있긴 했지만, 누구나가 회당에 참석하는 사람이면 가르칠 수 있었고 예배를 인도할 수 있었다. 랍비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에게만 회당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지는 않았다. 누구든 기도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할 수 있었고, 원하면 그 말씀에 대한 설명을 할 수도 있었다. 방문자에게도 이러한 권한이 주어져 있었다. 따라서 랍비들은 여러 회당들을 순회하면서 가르쳤던 것이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가장 먼저 회당을 찾아갔던 것도, 회당은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토론하고 가르칠 수 있는 곳이었음으로, "새로운 가르침"인 복음을 전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였기 때문이다(행 15:19-21, 17:1, 19:8).
유대인들은 매 안식일마다 회당을 출입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다. 물론 예수께서도 안식일마다 회당에 나가셨다(눅 4:16). 이 회당에서는 안식일마다 읽게 되어있는 성경 일과표가 있었다. 이 일과표에 따라 성경을 봉독하고 거기에 대한 설명이나 주석, 설교가 덧붙여졌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회당을 통해서 성경에 익숙해 있었다. 초대 교회가 말씀 중심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도 사실은 초대 교인들이 회당에서의 말씀 중심(예식이 아니라!)의 예배에 익숙해있었기 때문이다. 뭍론 초대교회의 심볼이나 건물 구조 등도 회당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은 것도 사실이다.
예수께서는 늘 그러셨던 것처럼, 한 안식일에 회당에 참석하셨다. 그곳은 어렸을 때부터 다니던 고향 회당이었다. 예수께서는 이미 갈릴리를 중심으로 제자들을 모으고 두루 다니며 가르치고 많은 기적도 행한다는 소문이 이미 고향 나사렛에도 나 있었던 터라,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에게서 직접 무엇인가를 들어보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예수께서 이 회당에 참석하였는지라 chanzen은 그에게 성경을 봉독하고 짤막하게 설교를 해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이렇게 하여 예수께서는 그 날 성경을 봉독하도록 되어 있는 다른 여섯 명과 함께 고향 회당에서 성경을 봉독하게 되었다(4:16-30). 그들은 순서대로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가 차례가 되면 두루말이를 건네받아서 서서 읽었다. 순서가 되어 예수께서도 일어나 두루말이를 건네 받아 "서서" 성경을 봉독하였다. 이 때 읽은 성경은 예언서인 이사야 61:1-2절이었다. 고대의 회당에서는 메시야와 성령이 서로 관련된 말씀이 3개가 있다고 믿었는데, 이 본문은 바로 그것 가운데 하나였다. 이 예언서의 말씀을 예수 자신이 선택해서 읽었는지, 아니면 그날의 일과표에 따른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유대 문헌 미쉬나에 따르면 예언서의 말씀을 봉독한 사람은 "쉐마"와 기도문을 암송하도록 되어 있었음으로, 예수께서도 그렇게 하셨을 것이다. 예언서의 말씀을 읽은 사람은 그것에 대하여 설교나 강해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예수께서도 이사야서의 말씀을 읽고는 다른 랍비들처럼 "앉으셔서 가르치기를 시작하셨다." 그리고 그 말씀에 대하여 컴멘트를 붙이셨다. "이 말씀이 오늘 여러분들 가운데서 이루어졌 습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다 어리둥절하고 회당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제껏 그런 식으로 가르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랍비가 성경을 가르칠 때는 기본적인 교리를 가르치든지 아니면 다른 권위 있는 랍비들을 인용하면서 가르쳤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의 이 말씀은 자신의 메시야성을 주장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이 일로 인해서 예수는 고향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5. 12 제자를 택하시다.
제자될 사람이 스승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관례
스승에게는 제자가 있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1세기 당시에도 모든 랍비들에게는 제자들이 있었다. 고대에 있어서 스승은 아무나 제자로 삼지 않았다. 고명한 스승일수록 더욱 그러했다. 제자는 곧 스승을 대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랍비와 제자의 관계였다. 어떤 랍비의 제자(tannaim, 또는 talmid)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그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랍비가 제자로 받아주지 않으면 제자가 될 수 없었다. 한편 랍비는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요청하지 않는 한 제자로 삼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그를 제자로 삼을 수가 없었다. 스승은 제자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만 제자를 택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도 다른 모든 랍비들처럼 제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고명한 스승이었기 때문에 그의 제자가 되기를 요청하고 허락 받아서 제자가 된 사람들이 아니었다. 예수의 12 제자 중 자원해서 제자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모두가 다 예수께서 직접 제자로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당시에 이러한 식으로 사제지간이 맺어지게 된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를 따르려면
1. 예수께서는 12제자들과 모든 성을 두루 다니며 "순회 랍비"로서 가르시셨는데, 그러면 그들은 어떠한 식으로 생활을 할 수 있었겠는가? 다시 말해서 경제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었겠는가? 예수께서는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온 사람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에 나는 보금자리가 있건만 인자는 머리둘 곳도 없다"고 하셨다(눅 9:57-58). 예수의 형편에 대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랍비들은 가르치는 일 외에 한가지정도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기술이나 수단을 갖고 있었다. 유대 문헌은 자식에게 생계를 위한 기술을 한가지씩 가르치지 않는 것은 자식을 도독으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가르치고 있다(탈무드 Kiddushin 29a).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는 그것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되었다(미쉬나 Aboth 4:5). 그래서 유명한 랍비들이나 바울도 다 생계를 위한 기술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물론 오늘날의 유대의 랍비들은 그렇지 않다).
이처럼 랍비들도 생계를 위한 기술을 갖고 있었음으로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그들(랍비와 그의 제자들)을 대접하는 일이 많았다. 사람들은 랍비들을 상당히 존경하였으며, 그들을 대접하는 것은 하늘의 큰 상급을 쌓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창세기 랍바 58:12, 레위기 랍바 34:8, 참조. 마 10:40-42). 그래서 음식과 숙소를 마련해주는 집이 있으면 그곳에서 신세를 지고, 결혼식 같은 것이 있는 곳에서는 그곳에서 대접을 받기도 하면서 매일매일을 지냈던 것이다. 제자가 되기 위하여서는 이런 생활을 각오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께서 목수(석수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일을 하면서 사역을 하셨다는 기록은 갖고 있지 않다.
2. 예수께서는 집에 가서 아버지 장례식부터 치르고 예수를 따르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죽은 사람의 장례는 죽은 사람들이 치르게 두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여라"고 하시고, 또 집에 가서 인사를 하고 오겠다는 사람에게는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엄하게 말씀하셨다(눅 9:57-62). 예수께서 너무 지나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1세기 당시에는 현인(현자)이 제자들에게 그러한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결단력이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3. 예수의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나섰다(마 4:22, 눅 18:28).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그렇게 한 것은 잘 한 것이고 또 그렇게 해야한다고 하셨다(눅 18:29-30). 예수를 따르겠다고 찾아온 한 부자 청년에게 예수께서는 모든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다시 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청년은 다시 예수를 찾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제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철저하고도 완전한 희생을 요구하셨는데, 이는 지나친 것은 아니었으며, 1세기 당시에는 누구나 어떤 현인(랍비)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서는 그런 정도의 희생은 각오를 해야 했다.
4. 부모나 가족을 "미워하지" 않으면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셨다(눅 14:26-27). 부모 공경은 오경의 613계명 중 가장 지키기 어려운 계명으로 유대인들은 생각해왔다. 그만큼 부모 공경을 중요시해온 것이다. 예수께서도 어느 계명도 어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모든 계명을 다 중요시해야 된다고 가르치셨다. 따라서 이 말씀을 문자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면 계명을 파기하라는 셈이 된다. 그러나 그런 뜻이 아니다. 여기에서 미워하다는 표현은 셈어적 표현법으로서, "덜 사랑한다" "덜 중요하게 생각하다"는 의미이다(참조. 창 29:31; 신 21:15). 이 가르침은 예수를 따르는 일이 부모를 공경하는일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를 따르기 위해서는 부모나 가족까지라도 떠나야 하는가? 유대 문헌은 부모 공경과 버금가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토라를 공부하는 것이었다(Peah 1:1).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 위해 집을 떠난 것이었다. 베드로는 아버지를 "버리고" 떠났다. 그에게 가족이 있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당시에는 18살 이전에 다 결혼을 했기 때문에 많은 제자들에게 가족이 딸려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가족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참조. 눅 18: 29). 미쉬나는 가족이 있는 경우, 어떤 현인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집을 떠날 때는 먼저 아내의 하락을 받도록 하였다(ketubot 5:6).
부자지간보다 더깊은 사제지간
여기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미쉬나의 한 구절을 인용해보기로 한다. "여기 아버지와 스승이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하자. 그러면 누구의 것을 먼저 찾아야 하는가? 스승의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아버지는 그를 이 세상으로 데리고 왔지만, 그에게 지혜를 가르치는 스승은 그를 내세의 영생의 세계로 인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학식이 스승의 학식못지 않다면 아버지의 것을 먼저 찾아야 한다. . .아버지와 스승이 둘 다 포로가 되었다고 하자. 그러면 스승을 먼저 구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를 구해야 한다"(Bava Metsia 2:11).
여기에서 우리는 고대 세계에 제자들이 스승을 존경하였으며, 또한 스승이 얼마나 제자들을 사랑하였는지를 잘 볼 수 있다. 그들 사이는 단순한 사제지간이 아니라 부자지간을 뛰어넘는 그런 관계였다. 예수와 제자들간의 관계가 바로 그런 관계였다. 예수께서 "아버지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셨을 때, 듣는 이들은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하는 것인지 그 뜻을 다 알아들었다. 1세기의 제자들은 아버지보다 스승을 더 준경하고 사랑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와 제자들의 관계였다.
왜 하필 12명뿐인가?
어느 현자나 많은 사람들이 따르기를 원했다. "많은 제자들을 만들라"고 하는 것은 제자들에 대한 모든 랍비들의 가장 큰 바람이었다(Pikre Aboth 1:1).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대로 행하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전승에 의하면 사도 바울의 스승이었던 가말리엘은 1천명의 제자들을 두었다고 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 명령도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었다(마 28:19). 이것은 1세기의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12명만을 제자로 삼으셨다(복음서에서 제자는 사도를, 사도행전에서는 일반적으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가르킨다). 성서에서 이 12명의 그룹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고린도전서 15:5에 나타난다. 바울은 여기에서 12제자 그룹을 단순히 "열 둘"(The Twelve, 한글 성서에서는 "열 두 제자"로 옮겼다)이라고만 지칭하고 있다. 사도행전 6:2에서도 그들을 단순히 "열 둘"(The Twelve)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의 기독교인들에게 이러한 용어가 익숙해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열 둘"이라고 할 때 기독교인들은 "열 두 제자"(사도)를 뜻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12라는 숫자와 그 의미에 익숙해있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의도적으로 12사람을 제자로 택하셨다. 이는 12라는 숫자가 유대인들에게 상징하는 바와 예수의 사역이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12는 상당히 상징적인 숫자이다. 그들은 12지파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예수 당시에는 열지파는 사라졌고 두 지파(유다,베냐민)만 남아있었다. 다른 지파는 주전 722년, 사마리아가 멸망당할 때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임하는 때에 흩어졌던 모든 지파들이 다 예루살렘으로 다시 모여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12지파의 회복이 그들의 종말론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Sanders, Jesus and Judaism). 이러한 사상은 신구약 중간기 문헌과 사해사본 가운데 잘 반영되어 있다(시락서 35:11; 48:10; 바룩 4:37; 5:5; 마카비하 1:27-28; 2:18; 희년서 1;15; 솔로몬의 시편 11:2-3; 17:28-31; 17:50; 1QM 2:2-3; 2 QT 8:14-16; 57-5-6).
이렇게 12지파의 회복에 대한 강렬한 기대를 갖고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께서는 12지파를 상징하는 12제자를 택하심으로(참조. 마 19:28),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 가운데 이미 임하였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말하자면 12제자들은 예수의 메시지의 핵심이었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가시적인 선포"(visual proclamation)였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결코 12명의 그룹이 숫자적으로 적당한 사이즈였기때문에 12을 택하신 것이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12사람을 제자로 택하심으로서, 자신의 메시야성과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임재, 그리고 종말의 도래를 상징적으로 선포하신 것이었다.
이 12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는 고린도전서 15:5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서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열 둘"(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12제자에게가 아니라 열 한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해야 맞다. 이미 가룟 유다는 빠져버렸고, 아직 가룟 유다 자리를 보선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11제자에게가 아니라 "열 둘"에게 나타나셨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그러한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에 이런 실수를 한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초대 교인들에게는 11명이냐 12명이냐 하는 사실적인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바울이나 당시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실제적인 숫자보다 "열 둘"이 상징하는 바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열 두 제자를 "열 둘"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다음 초대 교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는가? 열 둘에서 빠져나간 하나를 채우는 일을 그들은 가장 먼저 했던 것이다. 즉 가룟 유다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선택하는 일이었다. 여기에서 맛디아가 선택되었다. 그리고 예수의 제자단은 다시 열 둘을 이루었다. 그러나 주목할만한 사실은 이 때 선택된 맛디아는 그 이후로는 성서에 그의 활동상에 대하여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행전이 12에서 빠져버린 한 사람을 채우는 일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은 예수와 마찬가지로 초대 교회도 12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상당히 중요시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 12제자만이 늘 예수와 함께 다녔는가? 그렇지 않다. 12제자 이외에도 늘 12 제자들처럼 예수를 따라 다닌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예수께서 12제자만을 데리고 다니신 것은 아니었다.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람을 뽑을 때 제자들은 "주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에,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로부터 시작해서 예수께서 우리를 떠나 하늘로 올라가신 날까지 늘 우리와 함께 다닌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자격을 제시했다(행 1:21-22). 그리고 그 가운데서 둘을 천거하여 맛디아가 뽑히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처럼 늘 예수와 12제자와 함께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할 때부터 예수와 함께 다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제자와 다들 바가 없었으나, 제자라고 불리지 않았다. 오직 12만이 제자라고 불렸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12제자를 선택하신 예수의 의도를 발견하게 된다.
제자의 역할
예수께서는 두루말이나 책에 한 글자도 남기지 않으셨다. 대신 그는 12제자를 선택하셨다. 그리고 예수의 가르침은 그들을 통해서 전해내려 오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었다. 유명한 랍비들은 제자들에게 모든 가르침들을 암송하게 하였다. 스승의 가르침을 외우는 것이 제자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였다. 제2차 성전이 무너지기 전까지 모든 랍비들의 가르침은 이런 식으로 해서 구전되어 내려왔던 것이다. 이러한 구전들이 후에 편집되어 집대성된 것이 미쉬나와 탈무드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문헌에 보면 모두가 다 "어떠 어떠한 랍비가 이렇게 이렇게 말했다"는 표현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의 제자들의 가장 큰 공헌 가운데 하나도 바로 그들이 예수의 가르침들을 암송하고 전수해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암기의 정확성에 대해서 의심할 필요는 하나도 없다. 고대인들의 암기력과 현대인들의 암기력은 비교가 안된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제자들의 가장 큰 임무가 스승의 가르침을 암송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우리는 주지할 필요가 있다. 초대 교회에 있어서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의 가장 큰 책임은 예수의 가르침들이 바르게 전해지도록 하는 것이었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제 2차 성전이 무너지고 이스라엘이 파국에 이르게 될 때에 유대인들이 구전으로 전승되어 오던 것들을 기록으로 남겼듯이, 유대 기독교인들도 구전되어 오던 예수의 가르침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것이 바로 복음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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