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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브로큰 임브레이스', '여행자'

명호경영컨설턴트 2010. 1. 10. 09:27

사랑과 증오의 긴밀성, ‘브로큰 임브레이스
어린날에 대한 연민 ‘여행자’

 

기억되는 것은 긴 세월이 아니다. 떠올려지는 것은 언제나 순간이다. 어떤 순간은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면서 삶 전체를 관통하는 섬광이 된다. 이제 한 해를 서서히 마감해야 할 시간. 여기, 영겁회귀하면서 생(生)의 의미를 결정지어버린 어느 짧은 나날들을 곱씹는 두 편의 신작 영화가 있다.

 

스페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들에서 사랑은 많은 경우 스캔들이다. 서로 다른 사랑이 뒤엉키는 상황 속에서 열정의 불꽃보다 중요하게 묘사되는 것은 치정의 얼룩이다. 그가 그려낸 연인들은 언제나 주저하지 않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행동주의자들이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그의 작품들에서 격렬한 욕망은 세월을 겪어내며 점점 더 관조나 회한의 밑그림이 되어가고 있다. 영화의 시작에 등장하는 연인들과 끝부분에 묘사되는 연인들이 서로 달라지는 이 격렬한 짝짓기의 세상 밑바닥을 흐르는 것은 다름 아닌 애수다.

 

알모도바르는 언제나 휘청거리는 인간들에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휘청거리게 하는 것이 이전에 욕망이었다면 이제는 시간이다. ‘브로큰 임브레이스’는 어느덧 예순을 바라보게 된 알모도바르의 영화와 사랑에 대한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신작이다. 극중 주인공 마테오가 현재 시점에서 열정으로 들끓었던 과거의 어떤 날들을 되풀이해 아프게 떠올릴 때, 알모도바르 역시 회상한다.

 

백만장자 에르네스토(호세 루이스 고메스)의 애인인 레나(페넬로페 크루즈)는 배우가 되려는 오랜 꿈을 이루려 오디션을 치르다 감독 마테오(루이스 호마르)와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는 에르네스토는 그들을 감시하기 위해 아들로 하여금 촬영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카메라에 담는 기록영화를 만들도록 한다.

자기파괴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는 알모도바르의 세계에서 사랑과 증오는 긴밀하게 작용하면서 그 합의 총량에서 항상성을 유지한다. 누군가의 새로운 사랑은 다른 누군가의 눈먼 분노를 그만큼 촉발한다. 이 불평등한 사랑의 세계에서 마테오와 레나의 타오르는 열정 못지 않게 의미심장한 것은 그들이 이전에 유지했다가 포기한 관계에서 피어오르는 질투와 탄식이다. 에르네스토가 입술을 읽는 전문가의 목소리를 통해 영상에 담긴 연인의 속마음을 직접 전해 듣는 대목은 서로 독립된 시각과 청각이 아이러니하게 결합되어 야기하는 상처를 생생하게 중계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페넬로페 크루즈가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4번째로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다. ‘라이브 플레쉬’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귀향’을 거친 그는 이 작품에 이르러 알모도바르와의 협업 중 가장 인상적인 순간들을 빚어냈다. (알모도바르가 자신의 1988년작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를 느슨하게 옮겨 만든) 극중극 ‘여자와 가방’에서 오드리 헵번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낸 크루즈의 모습은 ‘브로큰 임브레이스’가 선사하는 보너스다.

 

또 한편의 신작은 ‘여행자’. 삶에는 영영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 아빠는 오지 않는다. 아이는 새 옷을 사 입고 아빠와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아빠는 오지 않는다. 아이는 아빠가 자신을 잠시 보육원에 맡긴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빠는 오지 않는다. 아이는 숱한 밤을 기다림으로 지샌다. 그래도 아빠는 오지 않는다. 아이는 슬퍼한다. 아이는 자책한다. 아이는 결국 마음을 다친다. 그러나 끝내 아빠는 오지 않는다.
 
우니 르콩트 감독의 ‘여행자’에는 자전적인 작품이 갖고 있는 절실함이 있다. 그 절실한 감정이 관객을 끊임없이 흔들고 어김없이 울린다. 영화 속 어린 주인공 진희(김새론)처럼 이 영화의 감독 역시 서울에서 태어나 아홉살 때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고 결국 프랑스로 입양되어 우니 르콩트란 이름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마흔을 넘겨 만들게 된 첫 영화에 자신의 오랜 기억을 새겼다.
 
1970년대 서울 근교의 보육원을 무대로 한 이 작품에서 카메라의 눈높이와 앵글의 사이즈는 철저히 아이들을 기준으로 설정되어 있다. 심지어 초반부에서 진희와 함께 등장하는 아버지(설경구)는 대부분 프레임 바깥으로 밀려나 얼굴조차 잡히지 않는다. 비슷한 모티브를 다룬 김소영 감독의 ‘나무 없는 산’에서도 카메라가 그와 유사했다. 하지만 ‘나무 없는 산’에서 시종 아이의 얼굴 클로즈업 위주로 앵글을 짠 것이 미학적 의도를 강하게 드러낸다면, ‘여행자’에서의 그것은 좀더 정서적이고 자전적인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감독은 자신이 겪었던 보육원 시절의 일들을 어렴풋하게만 기억하고 있다.) ‘여행자’의 화법은 다큐멘터리에 가까워 보이지만, 이야기는 상당히 극화되어 있고 플롯도 탄탄한 편이다.

 

극중 에피소드들은 예외 없이 진진하고 처연하다. 두 세계를 잇는 교량 같은 보육원에서, 버려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아이들은 어둠 속에서 화투로 점을 치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를 넘겨다보려 애쓴다. 그리고 그 다리 위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생(生)의 냉정함을 나누어 어깨에 졌던 아이들은 다시금 서로 이별을 고하는 것으로 제각각 다른 세상을 향해 걸어간다.

 

‘여행자’의 감독은 영화라는 지난한 여행을 통해 삶이라는 쓸쓸한 여행을 말한다. 그리고 삶이란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프게 전한다. 하필 기분이 가라앉았던 날이라면, 당신은 상영시간의 절반도 되기 전에 쏟아지는 눈물로 몸이 덜덜 떨리는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눈에 불현듯 밟히고, 가슴에 차곡차곡 쌓이는 영화니까.
 
김새론은 어떻게 저런 연기가 저 작은 몸에서 나올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떠나지 않을 정도로 특별하다. 의사 선생님 앞에서 울먹거리며 자책할 때 이 어린 배우는 관객들의 가슴을 온통 헤집어놓는다.

세상에는 꼭 만들어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우니 르콩트 감독에겐 아홉살 무렵 자전거에서 느꼈던 아버지의 따스한 체온에 대한 감각이 그랬을 것이고, 그런 아버지로부터 끝내 사랑을 받을 수 없었던 어린날에 대한 연민이 그랬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삶 전체를 사로잡아온 아픈 기억을 극화하고 외화(外化)함으로써 마음의 고단한 여정을 이제 막 마쳤다.

 

이동진 영화평론가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10여년 간 조선일보에서 영화 전문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1인 미디어 ‘이동진닷컴’을 운영하며 섬세한 글쓰기와 명쾌한 감성으로 다수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출처 : 나-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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