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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위대한 신라

명호경영컨설턴트 2010. 1. 23. 10:04

요즈음 인기리에 방영되는 선덕여왕에서 선덕영왕인 덕만 공주가 유모와 함께 도망하여 살았던 곳이 타클라마칸 사막 끝의 도시인 카슈카르(카스)이다. 대본을 쓴 저자가 만들어 낸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으나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며 매우 흥미를 끄는 대목이다. 원래 신라를 세운 조상은 박혁거세로서 거서간이라고 불렀는데 거서간은 서쪽에서 살다가 온 하느님 즉 ‘한’을 뜻한다. 여기서 간干 은 천신인 한汗을 뜻하는 말로 처음에는 한汗을 간干 으로 적었음직하다. 타클라마칸馬干 사막은 마간이라고 적는데 중국발음으로는 마한으로 발음한다. 따라서 타클라마칸 사막이 바로 마한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덕만 공주는 타클라마칸사막을 지나서 신라에 들어오게 되는데 당시의 상황에서 한반도의 경주까지 여자혼자의 몸으로 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신라라는 나라가 중국의 섬서성 서안 근처에 존재했었다는 주장이 훨씬 일리가 있다. 즉 신라의 수도는 중국대륙에 있었고 한반도의 경주는 신라왕족의 무덤이 있는 즉 고향이었다. 옜날에는 한국을 하늘나라라고 불렀으며 또는 죽음 뒤의 세계인 명계라고도 했으며 수메르기록에는 쿠르(코리아)라고 했다. 쿠르는 죽음 세계의 나라임을 뜻한다. 따라서 이곳에는 신들만이 사는 나라였고 이 곳에서 중국대륙을 통치하기위하여 사람을 보내었다. 그리고 왕이 죽으면 그 시신은 당연히 고향인 한반도에 묻히었다. 전 세계의 고인돌은 모두 8만기인데 그중 5만기가 한반도와 그 주변에 있으니 이 내용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하늘나라인 한반도는 매우 중요한 땅이었으므로 세계의 초강대국이었던 고구려, 백제, 신라가 나누어서 점령하였고  각 나라의 종묘사직이 있는 땅이므로 매우 중대한 땅이었다. 그래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기 국내성을 한반도에 두고 실제로 국민을 다스리는 국외성을 중국대륙에 두었다.

《삼국사기》에는 삼국이 메뚜기에 의한 피해기록이 신라14회, 백제 5회, 고구려 8회가 나온다. 메뚜기 피해는 중국대륙에만 있었다. 주로 광동성과 강서성에서 발생했는데 강서성은 특히 심했다.

지진과 화산기록은 신라 57회, 백제 14회, 고구려 19회, 백제는 강진 기록이 4회 있다.

가뭄기록은 신라 55회, 백제 30회, 고구려 10회, 홍수기록은 신라 28회, 백제 6회, 고구려 6회로 기록되었다.

일식기록이 전체 67회, 행성의 이상한 현상 40회, 혜성이 나타남 63회, 운석 42회, 기타 14회 금성이 낮에 나타났다는 기록 총226회 천체이상 기록이 있다.

8회 일식 관측기록이 있는데 관측지가 한반도가 아닌 중국대륙 곳곳에서 넓게 펴져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위의 기록으로 유추해 보면 신라가 가장 커다란 나라였음을 알 수가 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 백제 의자왕 편에 신라고사에서 하늘에서 금궤가 내려와 성을 김金이라 했다고 전해왔는데 김부식은 그 말이 괴이하여 역사책을 고쳐쓰기로 했다. 전하는 말로는 부족들이 흩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신라사람은 스스로 소호금천/디오니소스/요임금의 후손이라 하여 김金씨라고 하였다. 고구려 역시 고신씨의 성을 따서 고씨라고 했다는 기록이 《진서晉書》에 있다.

김씨의 조상은 ‘김방이’이라 하며 밥을 얻어먹으며 살았기에 ‘걸의식국’이라 하였다. 오디세우스 이야기와 흡사하다. 오디세우스는 오랜 여행 뒤에 걸식을 하면서 거지차림으로 고향에 돌아왔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신라인은 자고 이래로 소호금천씨의 후예이므로 김씨이다. <삼국사기 열전>김유신의 증조부는 신라인이었던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다. 그러므로 김씨라고 김유신 비문에 쓰여 있다.29)

난나신(난나+신sin)을 성서에서는 ‘카이난’(두발카인+난나)이라고 한다. 카이난을 새로운 달이라고 한다. 즉 신라新羅이다. 즉 환웅桓雄/오시리스/단군과 니누르타(치우/아쉬타르)가 하나로 합쳐서 신라新羅라는 나라를 건설하게 된다. 신라新羅(새로운 달)는 옛 달인 호胡족(복희-여와/엔키 종족/고구려)들과 전쟁을 하게 된다. 진시황은 호胡족을 막기위해 만리장성을 쌓았다. 따라서 진시황이 통일한 나라 전체가 진라辰羅였음을 알 수가 있다. 염제신농 족은 태양족인 백제의 전신이 된다.

《성서》에 두발카인은 대장장이의 선조라고 하였다. 옛날에 대장장이는 왕의 계급이었다. 철이라는 글자만 보더라도 이夷족과 쇠가 합하여진 글자이므로 이夷족이 쇠를 처음으로 생산한 종족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두발카인의 홍수 때 그가 한반도에 도착하였다면 가라가 철의 수출국이었고, 위의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성서》에서는 두발카인을 낳은 라맥의 두 번째 부인 이름이 신라이다. 따라서 최초로 신라를 세운 인물은 라맥(제우스)이고 이는 환인桓因을 물리치고 새로운 태양신으로 등장하는 라맥(지우스)자신을 뜻하는 말로 신라라고 썼을 가능성도 있다. 신라新羅는 제우스를 뜻하는 라맥羅貊과 소호금천을 뜻하며 새로운 달인 초승달을 뜻한다.

한반도의 남쪽 해변에서 살던 동이족의 다른 이름으로는 조이鳥夷라고도 또는 鳳夷족이라 하였고, 또는 도이島夷라고도 하였다. 또한 이들은 새鳥로 표현되므로 백인계열인 소족이며, 매우 먼 거리를 이동하여 한반도에 정착한 민족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쇠金는 새鳥와 발음이 같고 원래 같은 어원에서 발생한 단어이다. 조이란 조상의 얼굴이 새와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고, 도이는 주로 섬으로 옮겨 다니며 살았기 때문이다.

동東은 우리말로 ‘새’이다. 아마도 동쪽에 매일 아침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기 때문에 그렇게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따라서 ‘신라新羅’라는 뜻은 ‘새로운  라羅Ra국’ ‘새로운 태양신의 나라’라는 뜻도 되지만, ‘새의 나라’, 또는 ‘동쪽의 나라’라는 뜻도 있다. 신라는 보르네오어로는 ‘시라히스’로 ‘해가 뜨는 곳’이라고 하며 일본과 같은 뜻이라 하여 일본학자 가시마노보루는 신라 일본부를 주장하기도 한다.

동녘바람은 샛바람이요. ‘날이 샌다.’의 새도 동쪽이다. 새로 날이 밝은 것이 새벽(새밝)이고, 새벽에 뜨는 별이 샛별이므로 모두 동명東明이다.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사람이라서 쇠(새)金이라 하였고, 이는 새(鳥)와도 같다. 신라인들은 금오金烏‘금시조金始鳥’를 조상격인 봉황새와 비유하니 일리가 있다.


금을 얻은 거북이가 눈을 크게 뜨고 여섯 금의 알을 화하게 하여 영리하고 훌륭한 아들을 두게 하였다. 그 아들은 성장하면서 출중한 인물로서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고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그리하여 성을 김씨로 했다. 즉, 금 알이 성이 되었다. 한 건무 (AD 25-56)


“육부의 촌장들이 약을 캐는 날에 모여서 선도산 단묘의 성모가 알을 낳았다는 말을 듣고, 여러사람이 가서 보았다. 동쪽우물을 덮보로 덮어 가리고 껍질을 벗겨서 남아를 얻었다. 몸에서는 빛이 나고, 귀가 부채만큼 컸다. 곧 박朴 으로서 성을 삼고 이름을 혁거세라 하였다.

을미(서기전 86년)한소대에 부여의 고도를 점거하여 나라를 동명이라 하니, 이것이 신라의 땅이다. 사로의 첫 왕은 선도산, 성모의 아들이다. 《부도지》


위의 내용에서 선도라는 지명은 양자강의 무한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선도산은 무한근처에 있으므로 이곳이 신라였다는 사실은 명백해진다.

박혁거세는 진한辰韓사람으로 표주박이라하여 박씨라고 했다. 운남성 곤명에 사는 소수민족 중  자신들의 조상이 표주박에서 나왔다고 하여 포랑족이 있다. 박혁거세의 신화는 우물이 있는 숲 속에서 말이 닷되나 되는 큰 알을 갖다놓고 꿇어앉아 울었다.

《양서梁書》에서는 “진한고명지왈 진한辰韓故名之曰秦韓”으로 되어 있다. 《삼국사기》<신라본기 제1편> 혁거세 즉 ‘거서간’에 보면 여섯 촌으로 신라가 이루어진 것처럼 되어 있다. ‘거서간居西干’은 서쪽에서 살다가 온 왕을 뜻한다. 《부도지》에는 거居는 거据요, 간干은 방防이요, 장長이다. 즉 서방에 의거하여 경계하는 방어장이라는 뜻이다. 서방은 즉 그들, 서침하여 거짓도를 행하는 자들이다. 라고 되어있다.

이때 동방과 서방의 경계선은 옥문으로 지금의 둔황 옆에 있는 과주(안서)였다. 즉 진시황의 땅이 모두 신라였다.

눌지마립간訥祗痲立干,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 등에서 마립간麻立干은 마고麻姑/이시스/치우가 세운立 ‘한’干 이라는 뜻이다.

신라新羅는 비단을 뜻하는데 비단길의 중심도시였던 감숙성 무위시가 신라의 경주慶州였음을 중국지명대사전에 있다. 고려 초기 전에는 한반도에 경주慶州라는 지명은 없었다.

사천성 동쪽 신라27대 선덕여왕과 31대 신문왕의 묘터가 있었던 흔적을 찾았다.30)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현덕왕 8년에 흉년이 들고 백성이 굶주리니 절강 동쪽으로 가서 먹을 것을 구하는 자가 170명이었다’라고 되어 있는데 절강성은 바로 무한이 있는 호북성의 동쪽에 있는 성 이름이다.

이중재님은 《새 가야사와 삼국열전》에서 신라41대 헌덕왕 묘지는 《삼국사기》<헌덕왕편>에 천림사泉林寺 북쪽 배미산에 있다고 한다. 산동성 사수현 동쪽50리에서 천리사泉林寺라고 쓰여진 비석을 찾았다. 뒷산에서 1961년 공산당 시절에 세운 비석에 배미산陪尾山이란 글귀를 찾았다고 한다.

신라의 ‘고란사’는 유명한 옛 절인데 무위시 근처에 ‘고란’이라는 지명이 있다. 서안 주위에 김유신의 조상이 살던 ‘제메정택’이 있었다. 김유신의 묘와 거서간(혁거세)의 묘가 중국대륙에 있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왕오천축국전》에서 혜초는 중국대륙 광주廣州를 배로 출발 인도에 도착하여 히말라야 산을 넘어 신강성의 많은 도시들을 거쳐서 토로번에 도착하고 그의 기록은 둔황에서 발견되었다. 한반도에서 출발한 어떠한 증거도 없으며 한반도에 들어온 적도 없다. 최근에 학자들은 그가 신라사람이 아닌 중국인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시중에는 분명히 계림사람임을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당시 중국대륙에 신라가 있었다는 것이 훨씬 설득력을 갖는다.

신라의 고승 혜초가 쓴 ‘왕오천축국전’은 둔황의 막고굴 17호실에서 발견되었다. 따라서 이곳이 신라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계림鷄林이라는 국호는 치우의 후손임을 밝히는 것이다. 치우의 상징동물은 암탉이다. 중국대륙은 암탉의 형상을 하고 있으므로 역시 치우의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신라는 원래 ‘사래’라고 부르다가 ‘사라’로 부르다가 ‘신라’고 고쳤다. 성서에서는 아브라함의 부인이름이 원래 ‘사래’였는데 야훼하느님이 그 이름을 ‘사라’라고 바꾸어 부르도록 한다.얼마전까지만 해도 여자들의 이름은 자신이 살던 지역의 이름을 따서 불렀다. 아브람은 원래 우르 사람이었는데 우루가 당시에 ‘사래’였음을 알 수가 있다. ‘사래’는 원래 ‘사래벌/서라벌’의 준말로서 식민지의 중심도시를 뜻했다. 당시 귀양자들을 새로운 식민지에 보냈는데 도망을 못가게 하기 위해 긴 깃발을 항상 꽂도록 했는데 그 깃발을 ‘사래’라고 했고 그것들이 많이 모인 벌판을 사래벌이라 했다. 즉 야훼는 사래의 이름을 사라라고 바꾸는 것은 그들이 조선의 식민지였음을 숨기기 위한 것이었다. 신라의 이름은 ‘사라’로 바꾸는데 티벳의 수도 ‘라사’가 바로 ‘사라’를 거꾸로 발음한 것이다.

성서에서는 이스라엘12지파인 단 민족에 대하여 나오는데 아브라함 시기에 이미 단이라는 지명이 있었다. 단 민족이 살던 도시를 ‘시라이’라고 불렀는데 나중에 ‘사’의 발음은 ‘시’로 바뀐다. ‘시라이’를 거꾸로 발음하면 ‘라이시’가 되고 이가 바로 ‘사라’이다. ‘사라’는 ‘시라’라고도 불렀다.

단 민족은 단군의 민족인데 중국 운남성 대리국의 왕족은 단족이었다.

출처 : 내 인생의 벗은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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