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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대략적인 역사

명호경영컨설턴트 2010. 1. 23. 10:05

★ 고구려 -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는 기원전 37년 주몽이 건국하였다.

고구려는 A.D 1세기 무렵이 되어서야 고대국가를 형성하게 된다.

소수림왕이 불교수용, 율령반포, 태학을 설립하여 사상을 통일하고 유학의 보급과 문화 향상, 국가체제를 정비하여 고대국가의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

광개토왕은 이를 바탕으로 하여 요동으로 진출하여 만주를 차지하고 남으로는 한강상류까지 진출하여 국토를 넓혔고, 장수왕은 평양으로 천도하여 더욱 고구려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고구려는 거듭되는 외환 - 수와 당의 침입- 으로 국력이 약해지고 연개소문의 독재정치와 연개소문 사후 권력투쟁 등으로

내분이 일어났고, 대외적으로는 나당연합군(신라와 당)이 형성되어 고구려를 공격함으로써 멸망하고 말았다(668년)

 

 

 

★ 백제 - 백제는 고구려 유이민인 온조에 의해 B.C 18년에 건국되었다.

3세기 고이왕때 한강 유역을 장악하고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정치 체제를 정비하였다. 백제의 전성기는 4세기 근초고왕 때이다.

이때는 중국의 요서지방으로 진출하고 산둥지방과 일본 규슈까지 진출하는 등의 활발한 대외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백제는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밀려 웅진으로 도읍을 옮기고 다시 사비로 도읍을 옮겨 백제의 부흥을 꾀하지만 이미 쇠약해진 국력은 다시 일으키기 힘들었다.

또한 지배층의 향락으로 국가적 일체감을 상실한 백제는 신라의 공격으로 멸망하고 말았다 (660년)

 

 

 

★ 신라 - 경주 지역의 토착민과 유이민 집단이 결합해 B.C57년 건국되었다.

초기에는 박,석,김의 3성이 교대로 왕위를 차지하다가 4세기 내물왕 이후에는 김씨왕위세습이 되었다.

지증왕때에 이르러 신라는 국호를 신라로 바꾸었고 법흥왕때에 율령의 반포, 공복의 제정, 불교의 공인을 통해 국가적 기틀을 다졌다.

6세기 진흥왕 이후 신라는 삼국의 항쟁을 주도하게 되었는데 이는 단양적성비와 4개의 순수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

신라는 고구려의 반격을 우려하여 백제를 막기 힘들었고, 고구려와 연합을 꾀하려 했으니 성공하지 못하자 당과 군사적 동맹을 맺게 된다.

이리하여 나,당 연합군이 형성되게 된 것이다.  먼저 백제를 멸망시킨 후 고구려를 멸망시키게 되는데 이때 당은 점차 야욕을 드러낸다.

당이 백제땅에는 웅진도독부, 고구려땅에는 안동도호부를 두어 한반도를 지배하려 하자 신라는 당과 정면으로 대결하였다.

유명한 싸움이 매소성싸움, 기벌포 싸움이다. 당의 군을 물리치고 삼국통일을 이룩하게 되지만, 외세를 이용해 삼국통일을 했다는 점, 대동강과 원산만까지를 경계로 그 이남의 땅만 차지하게 되었다는 점이 그 한계점이다.

 

 

 

☆ 남북국시대

통일신라가 대동강과 원산만 이남지역을 차지했다면, 고구려 유이민과 말갈 집단이 힘을 합해 대조영을 주축으로 그 이북지역에 발해를 세운다. (698)

이리하여 남북국시대가 이루어진것이다.

 

통일신라에 이르러서는 전제정치가 더욱 강화되고 지방행정조직을 나눔으로써 더욱 효율적으로 다스릴 수 있도록 행정제도를 개편하였다.

이때는 골품제가 더욱 짙어져 진골만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6두품 이하는 능력이 뛰어나도 더이상 진출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후기에 가면 서로의 왕위다툼이 잦아지고, 중앙정부가 약해지면서 지방에 대한 통제력도 약화되면서 호족세력이 등장하게 된다.

점차 왕권은 약화되고 사치와 향락에 빠진 귀족들에 의해 농민의 생활은 더욱 피폐해져만 간다.

결국 호족과 6두품세력이 봉기하고 농민봉기도 일어나 사회혼란이 더욱 증폭된다.

 

 

 

☆ 후삼국

10세기에 들어오면 견훤과 궁예가 신라 말의 혼란기를 이용해 독자적 정권을 수립한다.

신라는 지배권이 경주일대로 축소되어 삼국이 다시 정립하는 후삼국시대가 전개되었다.

견훤은 전라도를 중심으로 후백제를, 궁예는 개성에 도읍을 정하고 후고구려를 세웠다.

궁예는 새로운 관제를 마련하고 새로운 정치를 추구했지만, 지나치게 사람을 많이 죽이고 미륵신앙을 이용한 전제정치로 신하들에 의해 축출되었다. 

궁예를 몰아낸 후 신하들의 추대로 왕위에 오른 왕건은 후고구려의 이름을 고려라 하였다. 

왕건은 신라와는 우호적, 백제와는 대립하는 정책을 취했다.

신라의 신망을 얻은 왕건은 전쟁없이 신라 경순왕의 항복을 받아 신라를 통합하고, 후백제는 그 안에서 내분이 일어나 견훤이 고려로 오자 후백제를 정벌하여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936)

 

 

 

1. 신라, 삼국통일(676)

 

2. 왕권의 쇠퇴와 귀족들의 사치, 농민의 반란으로 국력 쇠퇴

 

3. 견훤, 후백제 세움(892)

 

4. 궁예, 후고구려 세움(901)

 

5. 왕건, 혁명을 일으켜 궁예를 몰아내고 국호를 고려, 수도를 송악(지금의 개성)으로 정함(918)

 

6. 신라, 친고려 정책 씀

 

7. 견훤, 신라의 수도인 금성(지금의 경주)을 함락하여 경애왕 살해 후 김부를 왕(경순왕)으로 세움(926)

 

8. 견훤, 왕위계씅문제로 맏아들 신검이 금산사로 유페하였으나 탈출, 고려에 투항(927)

 

9. 경순왕, 민심이 고려쪽으로 기울어져있고 영토도 점점 줄어듦에 따라 고려에 투항(935)

 

10. 후백제, 고려에 의해 멸망. 후삼국통일(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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