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테크/교회소식

'아이티는 울고 있다'

명호경영컨설턴트 2010. 1. 24. 11:28

'아이티는 울고 있다'
글쓴이 : 국민일보 2010-01-18 오후 3:19:12 | HIT : 108
이미지 전체보기
이미지 전체보기

아이티의 눈물

[미션라이프] 아이티는 울고 있다. 두려워서 울고, 아파서 울고, 배가 고파 울고, 목이 말라 울고 있다. 울면 소리가 난다.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아이티 하늘을 울릴 것 같지만 아이티에서 통곡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울고 있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프리카의 한 가난한 나라로 아는 사람이 많은 나라 아이티, 아이티로 가는 길은 멀었다. 서울에서 뉴역, 뉴욕에서 도미니카공화국으로 가서 육로로 가야했다. 지진으로 공항이 폐쇄됨으로 인접한 도미니카공화국을 거쳐서 가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위험한 길’이었기에 더욱 멀게 느껴졌다. ‘현지시간 2010년 1월 12일 오후 5시, 아이티에 규모 7.3의 지진으로 10만 명 사망’이란 뉴스를 접하고 그날 저녁 뉴욕 행 비행기를 탔다. 뉴욕에서 하룻밤을 자고 도미니카공화국에 도착해 구호품을 구입하고 또 하룻밤을 보냈다.

서울을 출발한 사흘째 되는 날 육로로 아이티를 향했다. 지진 소식을 듣고 도미니카공화국 수도 산토도밍고에서 다섯 시간을 달려 아이티 국경을 한 시간 거리에 남겨 두고 아이티에서 경찰관 다섯 명이 성난 아이티 사람들에 의해 죽었고, UN창고도 털렸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방금 아이티에서 나온 사람을 통해 들은 이야기라고 했다.

그 날 아침 도미니카공화국에서 발행되는 신문 첫 화면에 실린 사진이 떠올랐다. 수많은 시신들 사이에서 가족을 찾고 있는 한 사람 사진이 1면에 크게 실렸다. 사진 속 시신들을 처음에는 환자인 줄 알았다. 나중에 기사를 보고서야 그것이 시신인 것을 알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사람이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마음이 무거워졌다. 계속 가야하는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하는가? 동행하고 있는 도미니카공화국 주재 아이티 영사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영사는 통신이 두절된 상태이기 때문에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차를 함께 타고 있던 일행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잠을 하루 2-3시간 밖에 자지 못한 이유만은 아니었다.

도미니카공화국과 아이티 국경에 도달했다. 차량 4대에 흩어졌던 팀들이 함께 만났다. 아이티 국경을 밤에 넘었다. 오는 도중에 차가 고장 나서 수리를 한 차도 있고, 펑크가 나서 수리를 한 차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티로 들어섰는데도 전화가 가능했다. 서울은 이른 아침 시간이다. 누구에게라도 전화를 하고 싶었다. 큰 딸에게 전화를 했다. 연결되지 않았다. 문자를 썼다. 문자 전송도 실패했다. 오른쪽은 강이고 왼쪽은 산인 좁을 길을 따라 아이티로 들어섰다. 과연 어떤 상황이 우리를 맞을 것인가. 아이티는 깜깜했다. 강진과 함께 전기와 통신이 두절된 상태다. 길을 따라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길 가에 사람들이 모여 있기도 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앞을 지날 때는 차가 속도를 냈다. 말이 없었다. 차량이 대열에서 흐트러지지 않도록 단단히 일러두었다.

국경에서 1시간쯤 달리자 아이티 수도 포토프린스가 나타났다. 지진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두운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있었다. ‘지진 피해를 입은 불쌍한 사람들’로 보여야 하는데 ‘언제 달려들지 모르는 위험한 사람들’로 보였다. 긍휼한 마음 보다 두려운 마음이 위에 올라와 있었던 것 같다. 오는 동안 계속 의논에 의논을 거듭한 우리는 최종 목적지를 자유무역지대인 소나피공단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한 교민의 공장으로 정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미니카공화국을 비롯한 몇 나라에서 온 NGO들이 그 공단 안에 캠프를 설치하고 있었다. 중무장한 UN군이 공단을 지키고 있었다.

소나피 공단에 도착하니 두려운 마음과 긍휼한 마음이 교대를 했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이티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국경으로 오는 도중에 들었던 것을 비롯해 그동안 전해들은 것들의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대부분 그런 일 없었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6시에 구호계획을 세우기 위해 지진현장을 차를 타고 둘러보았다. 지진 피해가 심하다는 델마, 부동, 뾰쫑빌, 다운타운이라고 일반적으로 불리는 라빌 등 지진피해가 심한 주요 네 지역을 돌아보았다. 빈민가로 불리는 시티 솔레도 지진 피해를 당했지만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했다. 이른 시간인데도 거리에 사람들은 많았다. 대부분 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굴에 두려움이라고 써있는 것 같았다. 지진 피해를 당한 아이티 사람들은 대부분 지금도 마당이나 길에서 잔다. 집이 무너지지 않은 사람도 집에 들어가기를 두려워한다. 지금도 여진이 있다. 땅이 좌우로 흔들리는 것은 느낄 수 있다. 이번 지진은 땅이 좌우로 흔들린 것 같다. 현장에서 이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도로를 보면 된다. 도로가 심각하게 손상된 경우는 땅이 상하로 흔들린 경우다. 땅이 좌우로 흔들리면 건물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큰 피해가 발생하는데 상대적으로 도로 파손은 적은 편이다. 아이티의 경우 도로에서는 지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도로 상태는 좋다.

시내로 들어서자 강진의 흔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참상은 이내 눈앞에 펼쳐졌다. 큰길가에는 시신들을 대부분 치웠지만 안쪽 길로 들어가자 여기 저기 시신들이 널려 있었다. 천에 싸인 시신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대로 쓰레기처럼 버려져 있었다. 그 앞을 사람들이 코를 막고 지나가고 있었다.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시신이 부패되면서 나는 악취를 막지는 못했다. 이렇게 길가에 널린 시신들은 사람들이 수습하지 못하고 중장비를 이용해 처리하고 있었다. 사람의 시신이 쓰레기와 같이 처리되는 기가막힌 일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시내에 있는 공동묘지 안에 있는 화장장에서는 하루 종일 검은 연기가 끊이지 않고 올라왔다.

사망자를 10만 명으로 추정한다는 기사를 서울을 출발하기 전에 읽었다. 아이티에 도착하니 20만 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고 전해 주었다. 지금 누구도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번 지진으로 인해 죽었고 다쳤다. 2008년 미얀마에서 발생한 사이클론으로 인해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했을 때 강 주위에 널린 시신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10년 넘게 크고 작은 재난 현장에서 구호활동을 했지만 도심 한 가운데 시신들이 널려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재난이 발생하고 4일이 지난 상황인데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은 충격이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무너진 건물 속에는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명구조작업은 몇 곳에서만 진행되고 있다. 인명구조작업을 못할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나 이웃들에 의해 어렵게 구조된 사람들도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병원도 많이 무너졌다. 어느 병원을 가도 환자들이 넘쳐난다. 평소 같다면 의사 몇 명이 긴급하게 수술을 해야 할 환자들이 병원 앞길에 누워있다. 링거 주사라도 맞고 있는 환자는 그나마 다행이다. 병원마다 약과 의료용품이 동이 났다. 구호품으로 준비한 의료용품을 전달하기 위해 찾아간 한 병원에서는 우리를 붙잡고 마취제가 있느냐고 했다. 마취를 하지 못한 상태로 수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취제를 구호품 목록에 넣었다가 마지막에 제외시킨 것이 후회가 되었다. 팔이나 다리가 골절되었는데 기브스를 할 재료가 없어 종이 상자나 막대기를 대고 끈으로 묶어준 경우는 허다하다. 의사나 간호사들이 수술용 장갑을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품위 있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자의 권리 같은 것은 꿈같은 이야기이다.

재난 발생 5일이 접어들면서 통신이 조금씩 복구되고 있다. 현지에서는 이동전화가 가능해졌다. 로밍을 해 온 전화는 여전히 불통이지만 현지 이동전화는 통화가능지역이 제한되고, 통화품질은 떨어지지만 사용이 가능하다. 전기는 여전히 들어오지 않고 있다. 발전기가 설치된 집에서는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물을 구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영업을 중단했던 주유소가 어제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주유소 앞에서 기름을 사려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위성 인터넷을 사용하는 집들은 발전기를 돌리면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다.

현재 아이티의 치안 상태는 대규모 지진피해를 입은 것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던 폭동이나 약탈 사태 같은 것은 지금까지는 발생하지 않았다. UN군이 치안 유지를 담당하고 있는 것도 치안 안정의 한 요인이다. 세계 많은 나라들이 구호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치안 안정이 절대적이다. 이 일을 위해 아이티 정부나 UN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구호활동을 위해 호위를 요청할 경우 UN군이나 경찰이 가능하면 들어 주고 있다. 우리 팀도 오늘은 현지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구호활동을 했고, 내일은 UN군의 호위를 받으면 구호활동을 하기로 했다.

오늘 오후에 다시 찾아간 지진 피해지역에 장이 섰다. 손바닥만 한 좌판에 쌓인 물건들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거기서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가 있었다. 다시 살아야 하겠다, 다시 시작해야 하겠다는 사람들의 외침소리를 거기서 들었다. 호객하는 소리가 ‘우리 함께 다시 살아보자’는 소리로 들렸다. 아이티는 일어나야 한다. 유난히 아픔과 상처가 많은 나라, 아이티가 울고 있다. 손수건 하나 마련해서 아이티의 눈물을 닦아 주고 싶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조현삼 목사(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단장)

[출처 :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