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면서 사귐이 있는 공동체
본문 : 느헤미야 3:1-6
로뎀장로교회 최순철목사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실례 : 헨리 제이콥스는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몇 번 넘어졌더라도 다시 일어설 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 머물러 있습니다. 현실을 두려워하는 눈빛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일어서서 하나님의 힘을 활용해야 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아요.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랬더니 지진이 일어나고 감옥의 문이 열리고, 쇠고랑이 풀렸습니다.
실례 : 운동장에서 네 아이들이 풍선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의 풍선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아이가 그만 울려고 하자, 옆에 있던 아이가 자기 풍선을 터뜨렸습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터트렸습니다. 그러자 울려했던 아이가 깔깔대며 웃었습니다. 아이의 슬픔에 동참했던 둘째 아이로 인해 모두가 웃고 즐거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용서하라”)골3:13-14)
지난 몇달동안 저는 로뎀교회의 15년의 발자취를 추적하면서 지나온 흔적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처음 5년은 개척기였고, 다음 5년은 성장기였습니다. 그리고 성장해서 맛본 쓰디쓴 아픔들이 세번째 5년에서 경험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기간을 시련기로 보았습니다. 이제 네번째 5년을 시작하는 원년입니다. 우리는 이 기간을 성숙기로 삼으려 합니다. 성도 개개인의 신앙의 성숙과 교회로서의 본질을 확립하고 사명선언이 확고한 교회로서 섬김과 사귐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이에 그 모델을 느헤미야에게서 찾아 보았습니다.
느헤미야
2500년 전에 살았던 느헤미야.
느헤미야는 페르시야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이민 2 세로 아닥사스다왕 관원으로 출세합니다.
그런데 민족이 나라를 되찾아가는 과정에서 성전은 세워졌지만 성벽 재건이 어려웠습니다.
에스라와 스룹바벨의 리더십으로는 불가능한 성벽재건을 느헤미야는 52일 만에 끝냅니다.
이 놀라운 역사가 어떻게 가능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 느헤미야 3장에 나옵니다.
이 본문은 겉으로 보면 별로 은혜 될 내용이 없어 보입니다.
이 3장을 하품하지 않고 성경을 읽는다는 것이 기적일 것입니다.
성벽재건에 동참한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우리 같으면 아무개 이하 몇 명이 작업했다고 기록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저들의 이름을 낱낱이 기록했을까요?
성경은 사람이 썼지만 하나님이 쓰시게 한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쓴 것입니다.
이 아까운 성경의 페이지를 왜 이토록 사람의 이름들로 가득 채우셨을까요?
하나님한테 중요했기에 기록한 것입니다. 여기에 승리의 축복과 성공의 비결이 숨겨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리더십을 배울 수만 있다면 내 인생의 무너진 성벽을 다시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잘 배우기 위해서 먼저 이 시대 최고의 리더십 전문가 한 사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실례 : 하바드 경영대학원의 죠셉 바다라크 교수입니다. 그가 쓴“조용히 다스리기”에 보면 “조직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은 카리스마틱한 탑들의 힘이 아니라 성실하게 자기 맡은 일을 묵묵히 이루어가는 개미군단같은 무리들과 이들을 격려하고 조용히 움직여가는 중간 리더들의 하나됨이다”고 했습니다.
중간리더들은 화려한 무대 위의 스타가 아닙니다. 스타를 조련하는 무대 밑의 조력자입니다.
조직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은 눈에 보이는 힘이 아닙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자기 일을 성실하게 묵묵히 감당하는 개미군단 같은 무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개미군단을 섬기는 중간리더라는 것입니다.
회사마다 제품 생산 라인을 걸쳐 완성된 제품을 검사요원이 렌덤샘플링을 합니다.
이때 팀장이 불량품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커다란 신용을 얻게도 하고 잃게도 합니다.
불량보고서를 제출해야하고 공정을 점검해야하는 일을 귀찮다고 무시하면 어떨까요? 큰일납니다.
실례 : 우리 교회가 지난 15년 동안 집도 없이 나그네처럼 험악한 세월을 살았으나, 이만큼 성장을 이루고,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묵묵히 참아주고 견디어낸 성실한 여러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섬기는 조용한 중간 리더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탁월한 중간리더가 되려면 세 가지를 강화시켜야 합니다.
첫째 자기감정을 통제하는 사람들입니다. 감성적 자기통제능력입니다.
사역을 하다보면 감정적으로 부디 치는 일이 생깁니다.
자신의 실수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사람들, 요령을 피우는 사람을 보면 감정에 불이 납니다.
중간리더도 사람이기 때문에 감정이 있습니다. 욱하고 싶은 성질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홀로 울지라도 사람 앞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묵묵히 조용히 현장을 가꾸어 갑니다.
중간리더의 아름다운 자기 통제력이 소속한 공동체를 견고하게 세워가는 것입니다.
실례 : 탐 윌슨 “장미에 가시가 붙어 있다고 불평할 것인가, 아니면 가시에 장미가 붙어 있다고 좋아할 것인가?”
둘째 겸손입니다.
누가복음 22:27절에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실례 :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무릎을 꿇고 땀흘리며 비석을 다듬는 석공이 있었습니다. 거칠고 모난 돌을 깨끗하게 다듬어서는 그 위에 글을 새겨 넣었습니다. 한 정치인이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석공에게 다가가서는 말했습니다. “나도 돌같이 단단한 사람들의 마음을 유연하게 다듬는 기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돌에 글을 새겨 넣듯이 사람들의 마음에 내 자신이 새겨졌으면 좋겠습니다.”그러자 석공이 대답했습니다. “선생님도 저처럼 무릎을 꿇고 일한다면 가능한 일입니다.”무릎을 꿇는 겸손이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여호와를 높이는 가장 아름다운 삶은 겸손함입니다.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하루 해가 지고 일을 마칠때도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 꿇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기를 기다립니다. 새날이 시작되면 또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주는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주인은 낙타의 사정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타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짐을 얹어 줍니다. 낙타는 한번도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셋째 강인함이 있습니다.
그들은 삶이 마라톤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박을 꿈꾸지 않습니다. 일확천금을 보지 않습니다.
매일 매일 못을 하나하나 박는 것처럼 차분합니다.
영적전쟁에서도 적이 포기할 때까지 끈질기도록 게릴라전을 펼쳐갑니다.
작은 승리에도 오만하지 않습니다. 실패에도 쉽게 절망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종이 울릴 때까지 자기 역할에 끝을 보고야 허리를 펴는 사람들입니다.
자기감정통제가 그렇게 쉬운일일까요? 겸손한 사람이 되어져 가는 일이 쉬워요?
강인한 심성을 갖는 것이 간단한가요? 아니지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우리 곁엔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시편17:8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파괴적인 생각, 두려움, 걱정, 불신, 무기력, 불안으로 이어지는 생각은 당장 처리해야 합니다.
이런 생각은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 아닙니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긍정적이고 멋진 생각을 마음에 품고 외쳐보세요. 그러면 놀라운 길이 뻥 뚫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실천한 사람이 바로 느헤미야였습니다. 자신의 리더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힘을 끌어내어 쓸 줄 알았던 사람이 바로 느헤미야였어요. 한 번 보십시다.
느헤미야에게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첫째 시작의 원칙입니다.
1절“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했습니다.
느헤미야는 가장 먼저 양문을 시작했습니다. 양문은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에게 맡겼습니다. 양문은 하나님에게 제사를 바치는 양들의 길이었습니다. 이것이 느헤미야의 철학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범사의 시작을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하나니를 통해 예루살렘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느헤미야는 먼저 하늘 하나님 앞에 금식합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느1:4)
저는 여러분이 하루를 시작할 때 양의 문으로부터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성막의 불기둥을 보며 깨어났고, 불둥을 보면서 잠들었습니다. 삶의 중심이 교회였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삶의 첫 단추가 바로 교회여야 합니다. 이것이 느헤미야의 시작의 철학이었어요.
둘째 위치선정의 원칙입니다.
어디를 담당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위치선정이 중요합니다.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함이었습니다. 첫 번째 법칙은 자기 집과 가까운 성벽을 짓도록 했습니다. 자기 집 앞을 짓게 했습니다. 자기 집 앞을 세우는데 누가 열심히 하지 않겠어요. 출퇴근도 용이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도 가족을 돌볼 걱정이 훨씬 줄어들었어요.
실례 : 헌신은 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100% 헌신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선교사로 헌신했다고 곧바로 아프리카로 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소속하고 있는 곳에서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가까운 이웃부터 전도하면서 섬기는 것입니다.
승천하시기 전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고 흩어지라고 하셨을 때 어떻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아프리카로 가라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가장 가까운 곳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점차적으로 훈련을 받으면서 좀 더 먼 곳으로 나아갑니다. 서서히 퍼져갑니다.
가까운 곳이 가장 힘든 곳일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등 돌린 사마리아가 가장 가까이 있어요.
가장 가까운 곳과 가장 가기 힘든 곳을 통과해야만 땅 끝까지 성공적으로 갈 수가 있습니다.
셋째 이음새의 원칙입니다.
“그 다음은 누가”“그 다음은 누가”였습니다.
아무리 헌신된 사람일지라도 그 옆에 누구를 세우느냐에 따라 달라요.
누가 함께 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다릅니다. 바울은 바나바를 만나면서 사역이 빛을 발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삼일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이것을 연구했습니다.
먼저 도착한 백성들이 예루살렘을 어떻게 정착해 있는지를 철저히 조사했습니다.
실례 : 어느 마을에 요한이라는 집배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같이 오십 마일을 오가며 우편물을 배달해왔습니다. 어느날 요한은 마을로 이어지는 거리에서 모래 먼지가 뿌옇게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풀 한포기, 꽃 한 송이 피어 있지 않은 황량한 들판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흙 먼지만 마시면서 살다가 인생이 끝나버릴지 모든다는 막막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나에게 주어진 일이고, 매일같이 반복된 길을 따라 오가야 한다면 이 삭막한 길을 아름답게 만들면 좋겠군!”그는 다음날부터 주머니에 들꽃 씨앗을 넣어 가지고 짬짬이 길가에 뿌렸습니다. 이것은 꽤 여러달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가 지나는 길에는 어느덧 오색 찬란한 꽃들이 다투어 피어났습니다. 봄이면 봄꽃들이 피어났고, 여름에는 여름꽃이, 가을에는 가을꽃 들이 피었습니다. 그 길을 오가는 이들이 늘어났고, 빈들을 찾아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도 늘어만 갔습니다. 몇해가 지나면서 그곳은 꽃마을이 되었고, 지금은 수많은 이들이 찾아드는 아름다운 명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이 너무나 기대가 됩니다. 주님의 날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 하겠습니다. 구하는 자마다 복을 내려 주시는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주실 복과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보장해주신 승리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와 사랑이 우리 속에 가득하기에 사단의 거짓이나 우리를 넘어 뜨리려는 그 어떤 술수에도 이기게 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를 위한 특별한 목적이 있을 줄 믿습니다. 때때로 밀려오는 삶의 시련에 무릎을 꿇고 신세를 한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않겠습니다. 할 수 있다는 마음을 살려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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