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가 무엇이기에 땅을 기업으로 주는가?
본문 : 마태복음 5장 3-12절
로뎀장로교회 최순철목사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조금 빠르게 말하면서도, 부드럽고 담대하게, 웃으면서 선포하라>
실례 : 흑인 소녀가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몸이 몹시 뚱뚱했으면서도, 가난했고, 불행했던 어린시절 당한 폭행으로 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지니고 자랐습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소녀의 손에 책을 쥐어 주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권 정도는 독서를 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오늘날 그녀는 “출판업계의 마이다스”로 불리웁니다. 그녀가 괜찮다고 추천하는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 셀러가 됩니다. 지금 그녀는 “미국이 다시 책을 읽게 만들겠다”고 외칩니다. 그녀는 이제 어른이 되었습니다. “독서가 내 인생을 바꿨습니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으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오프라 윈프리입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사는 열가지 좌우명이 있습니다.
1. 남들의 호감을 얻으려 애쓰지 말라.
2.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외적인 것에 의존하지 말라.
3. 일과 삶이 최대한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하라.
4. 주변에 험담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라.
5.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라.
6. 중독된 것들을 끊어라.
7. 당신에 버금가는 혹은 당신보다 나은 사람들로 주위를 채우라.
8. 돈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라면 돈 생각은 아예 잊어라.
9. 당신의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지 말라.
10.포기하지 말라.
오프라 윈프리의 성공은 그녀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쇼로부터 출발합니다. 수많은 토크쇼 중에서 윈프리 쇼가 탁월한 이유에 대하여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평가는 “평범함과 따뜻함”입니다. 그녀의 쇼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겪고 있는 가슴아픈 사연들을 누구나 내려 놓을 수 있는 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윈프리는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출연자들속에 있는 아픔으로부터 함께 탈출케하고, 희망을 준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속에서 늘 따뜻함을 품고 살아갈 때 세상은 달라지고 변할 수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 말씀은 팔복 중에서도 가장 따뜻한 마음, 온유의 비밀을 배우려고 합니다.
온유함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5:5)
‘땅을 기업으로’라는 말은 원어 상 ‘그 땅’이라는 말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는데, 그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땅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약속의 땅 가나안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땅은 언제나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은 참으로 비옥하고, 풍요로웠습니다.
둘째로 ‘그 땅’의 의미는 ‘하나님이 다스려 주시는 땅’을 뜻하는 말입니다. 주님이 돌보시고 다스리는 상태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다스리심 밖에 살수도 있고, 그분의 다스리심과 통치권 안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주님이 다스리시고, 돌보시는 곳에는 언제나 형통하는 역사와 기쁨과 즐거움의 결실이 보장됩니다. 반면에 주님이 다스리시는 땅을 떠나 살면, 내 삶에 곤고한 일들이 생기게 되고, 어둡고 희미한 현실속에서 꿈도 잃고 희망도 상실하고 헤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돌보심과 통치하심 아래서 살아야만 합니다.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게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은 장사가 잘되는 몫 좋은 곳에 땅을 아주 좋은 값에 사도록 도와주시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씀은 우리가 성경의 약속들이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지고, 우리가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되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돌봐주시고, 다스려 주신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업’이라는 말입니다. 기업은 아들에게 물려주는 땅입니다.
먼저 아들이 되게 하십니다. 온유의 기업은 아들이 되는 축복입니다. 그 아들에게 주시는 땅입니다.
그렇다면 온유한 자가 된단느 것을 무엇입니까?
온유한 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온유는 우유부단한 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남들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유약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장 5절에 나오는 온유한 자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겸손한 자라는 뜻입니다.
온유하다는 것은 겸손하다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하나님의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8-29)
겸손은 내 삶에 닥친 무거운 짐을 주님이 대신 짊어지시도록 내어드리는 힘이 있습니다.
무거운 짐은 내려놓게 되고, 마음은 쉼을 얻게 됩니다.
온유한자의 마음에는 쉼이라는 에덴의 문이 열립니다. 참된 안식의 세계가 열립니다.
우리의 삶이 왜 고단하고 무겁고, 두려울까요? 내 짐을 내 힘으로 짊어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려고 하는 것은 아무리 가벼워 보여도 무겁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무거운 것이라도 주님께 짊어 달라고 하면 가벼워집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둘째는 순종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순종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이 부딛 칠 때 자신의 생각을 꺾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5장에 보면, 아람나라 군대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에서 어떻게 고침받게 되었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여종의 말을 듣고 엘리사를 찾아 갔는데, 엘리사가 얼굴도 보이지 않고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했던 것입니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왕하5:11)
그리고 몸을 돌이켜 아람으로 떠났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았습니다. 몸이 그토록 아팠는데도, 치료가 그토록 절박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선지자의 말에 분노가 올라왔습니다. 만약 자신의 고집을 끝까지 주장했더라면 그는 고침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아만 장군의 주위에 충성스럽고 설득력 있는 종들이 있었습니다. 나아만은 종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나아만은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종들이 하는 말을 듣고 순종했을 때 치료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의 마음속에 있는 겸손의 땅을 통해, 순종의 땅을 통해서 치료가 일어났습니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긋하게 되었더라”(왕하5:14절)
그가 병고침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일곱 번까지 순종했을 때 비로소 치료되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
예수님의 겸손은 많이 배운자가 잘난척 하지 않고, 아는 체 하지 않는 수준의 겸손이 아니었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분이 자신이 만든 피조물인 인간의 모습으로 말구유에 누우신 겸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말씀 몇 조각을 도덕적인 차원에서 지킨 순종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죄인들을 살리려고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순종이셨습니다.
이렇게 순종하셨고, 이렇게 겸손하셨기에 예수님이 받으신 땅의 기업은 무엇이었습니까?
빌립보서 5장 9-11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땅이 있습니다. 순종과 겸손의 땅입니다. 이것이 온유한 마음입니다.
마지막 품군
온유한 사람, 순종과 겸손의 사람을 찾아 성경 속에서 추적해 보았습니다.
그때마다 제 삶에 가장 큰 용기를 주시는 무명의 사람은 바로 마지막 품꾼이었습니다.
무엇이 모자랐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니면 모든 것이 부족해 보였는지 모릅니다.
그랬기에 그토록 늦은 시간까지 그 어떤 주인도 그를 쓰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종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종은 주인이 자기를 찾기까지 기다리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오후 여섯시면 문을 닫힙니다.
그런데 이미 다섯 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종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자리를 지키는 모습에서 저는 순종의 의미를 발견해 보았습니다.
마지막 품꾼으로 부름 받은 그 순간 그가 들어가 일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 토록 짧은 시간을 일하고도 많이 일한 사람들과 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그가 한 데나리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주인의 배려요, 은혜요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주인의 마음을 움직였던 종의 겸손과 순종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실례 : 인생에서 가장 심각하고 진지하게 던져야 할 질문은 영생입니다. 구원의 문제입니다. 구원은 마음의 죄짐을 던져버린 천로역정의 기독도처럼 가벼워진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세상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세상이 문제입니다. 세상을 보는 나의 시각이 문제입니다. 체스터턴은 “천사가 날 수 있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무겁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날마다 자신을 가볍게 해가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쓰시게 쉬운 사람이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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