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에이미 2편입니다.
에이미멀린스, ‘역경의 기회’ – 당신은 준비되었는가 Come dance with m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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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o JinKyung | 08.14, 2010 10:13 am | ShareThis |
유의어 사전에서는 “장애”의 유의어로 “쓸모없는”이나 “불구” 를 들고 있지만, 신기원을 이룬 육상선수 에이미 멀린스는 장애의 정의를 다시 쓰고 있다. 정강이뼈 없이 태어난 역경을 딛고, 장애와 관련된 수식어를 극복하고 있는 그녀는 역경이 개개인의 잠재력을 어떻게 끌어내는지를 직접 보여주고 있다. 번역 | ChangHyun Lee리뷰 | JY Kang |
“우리 언어들은 개개인의 능력을 현실로 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막고 있습니다.”
“결함으로 여겨지는 것들과 우리의 위대한 창조적 능력은 동반자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역경은 그저 우리들이 아직 받아들이지 않았던 변화에 불과합니다.”
“제 생각엔 우리들이 만들어왔던 가장 큰 역경은 ‘정상(Normal)’이라는 개념인 것 같습니다. 자, 그럼 누가 정상이죠? 정상적인 것은 없어요. 보통이라거나 전형적인 것은 있어도 정상적인 것은 없습니다.”
“진정한 장애는 억눌린 마음입니다. 억눌려서 아무 희망도 없는 마음이죠.”
“모든 아이들이 신을 알고 있다네, 혼내지도 않고 하지 말란 얘기도 없고 오로지 네 개의 단어만 알고 계속해서 반복하네.
Come dance with me – 이리 와서 나랑 춤추자.”
위의 문장들은, 에이미 멀린스의 강연을 보면서 내 마음을 가장 크게 헤집고 지나간 말들이다. 강연을 보는 내내, 반성과 감동과 존경의 마음이 교차했고, 끝내 눈물이 맺혔는데, 그 순간, 눈물이 맺힌 것까지도 반성하게 한 강연이었다. 어찌 보면 그 눈물도,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장애를 염두에 두고 흘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몹시 부끄러웠던 것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편견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이 강연을 듣고 알았다. 나 역시 철저하게 편견에 갇혀 살아온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진짜 장애를 가진 사람은 마음이 병든 사람이고 편견을 가진 사람’이라는 메시지가 캠페인처럼 한 때 유행인 적도 있었는데, 이 강연을 보고 나니, 그 역시 ‘장애’라는 개념에 대한 편견에 휩싸인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류가 만든 가장 큰 역경이라는 에이미의 말이 뇌를 흔들었다.
<강연을 통해 내가 새롭게 선물 받은 생각의 기회들>
이 강연을 보고, ‘말의 힘’에 대해 다시금 고찰할 기회를 선물 받았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을 보면, 말 한 마디, 단어 한 개의 의미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긍정적 단어를 붙여 놓은 물은 생명수가 되고 긍정적 단어를 붙여놓은 밥은 향기가 좋게 발효가 되지만, 부정적 단어를 붙인 물과 밥은 시간이 흐르면 썩는다. 우리 몸도 단어 하나에도 쉽게 반응한다. 70% 이상이 물로 이뤄진 개체니까- 그래서 누군가를 욕하면 가장 크게 해쳐지는 건 내 몸이다.
에이미 멀린스가 ‘장애’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언급한 것도 이런 내용들과 일맥상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 번 인식된 단어의 부정적인 의미, 늘 말하면서 사는 단어의 부정적인 의미들이 우리의 상상을 가로막고, 편견을 심화시키고, 진정한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강연의 후반에서 예로 든 실험 역시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그런 실험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건,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우리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억누르는 부정적인 사고방식, 죄책감, 편견, 이런 모든 사고들이 나의 언어를 결정짓고, 끝내는 삶 전체를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그렇기에, 긍정적 자기 암시가 우리의 삶 전체를 바꾼다는 많은 사람들의 주장은 더 명확해지는 것 같다. 가장 먼저 바꿔야 하는 건 단순해보이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사고의 전환, 이다. 이게 가능해진다면 이전에 전혀 알지 못했던 파라다이스를 만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또, 이 강연 중에서, ‘역경은 단지 변화의 일부’라는 에이미의 말을 통해, 나 자신과 내 꿈들, 타인과 타인의 꿈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기회를 선물 받았다.
언제나 막연하게, ‘성공한 사람들을 키운 것은 끊임없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시 도전한 것이다.’ 라고 생각만 했지, 내가 겪는 역경이 삶의 일부이며, 길게 본다면 성공을 위한 열쇠가 될 수 있다고 현실적으로 굳게 믿으면서 즐겁게 생각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또 중요한 건, 에이미의 다음 말이었다. 역경을 마주할 것이냐 아니냐의 여부보다도 ‘어떻게’ 마주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그 말. 어떤 역경에 맞서야 하는 나 자신도, 또 모든 역경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모든 타인들도, 온전한 인격체이며 무수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에이미와 같은 시각에서 사람 그 자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닌 모든 결함 속에 숨어 있는 창조적인 능력들이.. 그 가능성이-
그래서 누군가의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 대해서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로 결심하게 됐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 내가 너무 늦게 꿈꾸는 게 아닌가에 대한 의심조차 버리기로 했다. (I love you, Aimee~)
끝으로, 내가 얻은 선물은, 어쩌면 이번 강연을 통해 받은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딸아이가 더 크기 전에, 내가 딸을 키워나갈 마음가짐과 관련된 사고방식을 더 긍정적으로 수정할 기회를 선물 받았기 때문이다.
강연의 말미에서 그녀가 소개한 14세기 페르시아 시인 Hafiz의 시, <네 개의 단어만 아는 신>은, 에이미의 모든 생각을 담고 있는 정말 아름다운 시라고 생각했다.
“모든 아이들이 신을 알고 있다네, 혼내지도 않고 하지 말란 얘기도 없고,
오로지 네 개의 단어만 알고 계속해서 반복하네.
Come dance with me – 이리 와서 나랑 춤추자.”
네 살 난 딸아이를 기르면서, 물론 사랑한다는 말도, 스킨십도, 칭찬도 많이 해주긴 했지만, 알게 모르게 꽤 많은 시간을, 내 기준으로 호되게 혼내거나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며 지낸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미안하기도 했다. 딸이 가지고 있는 – 어쩌면 우주를 담을 수 있을 만큼 무궁무진할 수 있는 – 잠재력을 내 기준에서만 바라보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했다. 사실 많은 부모들이 저지르는 실수이기도 할 거다.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확실히 알았다. 내 뱃속으로 낳은 딸이지만, 그 아이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생각해야 더 제대로 키울 수 있다는 걸. 다만, 끊임없이 사랑해줘야겠다는 걸.
시에서처럼 딸에게 진심을 담아 말할 수 있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리 와서 나랑 춤추자- 라고.
이 세상을, 치열한 곳이라고 일러주기에 앞서, 즐거운 곳임을 보여줄 수 있어야겠다고- 즐거운 곳이라는 걸 뼛속부터 느끼고 인식해 나가게 되면, 아이가 역경이라고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그냥 변화의 일부로 느끼고 ‘행복’의 감정을 영원히 가지고 살아갈 테니까- 그리고 모든 사람은 너와 똑같이 소중하고 모든 걸 해낼 수 있다는 걸 말해줘야겠다. 그 역시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며 큰다면, 성인이 됐을 때 사람과 사물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가지게 될 테니까-
이제 나는,
에이미의 강연을 통해, 조금은 준비가 된 것 같다.
행복하게 살아갈 준비, 꿈을 향해 더 열심히 달릴 준비,
그리고, 다른 사람을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볼 준비도!
Come danc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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