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h Piaf - Non Je Ne Regrette Rien (난 후회하지 않아요)
Non! Rien de rien ...
Non ! Je ne regrette rien
Ni le bien qu'on m'a fait
Ni le mal tout ca m'est bien egal !
Non ! Rien de rien ...
Non ! Je ne regrette rien...
C'est paye, balaye, oublie
Je me fous du passe!
Avec mes souvenirs
J'ai allume le feu
Mes chagrins, mes plaisirs
Je n'ai plus besoin d'eux !
Balayes les amours
Et tous leurs tremolos
Balayes pour toujours
Je repars a zero ...
Non ! Rien de rien ...
Non ! Je ne regrette nen ...
Ni le bien, qu'on m'a fait
Ni le mal, tout ca m'est bien egal !
아니예요! 그 무엇도 아무 것도
아니예요!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내게 줬던 행복이건 불행이건 간에.
그건 모두 나완 상관없어요!
아니예요! 그 무엇도 아무 것도.
아니예요!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그건 대가를 치뤘고, 쓸어 버렸고, 잊혀졌어요.
난 과거에 신경쓰지 않아요!
나의 추억들로
난 불을 밝혔었죠.
나의 슬픔들, 나의 기쁨들
이젠 더이상 그것들이 필요치 않아요!
사랑들을 쓸어 버렸고
그 사랑들의 모든 전율도 쓸어 버렸어요.
영원히 쓸어 버렸어요.
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거예요..
아니예요! 그 무엇도 아무 것도.
아니예요!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내게 줬던 행복이건 불행이건 간에.
그건 모두 나완 상관없어요!
아니예요! 그 무엇도 아무 것도.
아니예요!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나의 삶, 나의 기쁨이
오늘, 그대와 함께 시작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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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발라드인 샹송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피아프의 노래는 그녀 자신이 겪은 인생의 비극을 반영한 것이었다. 카페의 가수였던 어머니는 그녀가 태어나자마자 그녀를 버렸으며 할머니가 그녀를 키웠다. 3세 때 뇌막염의 합병증으로 실명했으나 4년 후 시력을 되찾았다. 서커스 곡예사였던 아버지는 그녀를 데리고 떠돌이 생활을 했으며 그녀가 노래하도록 처음으로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카바레 주인에게 발탁되어 처음으로 나이트클럽에 일자리를 얻기까지 파리 거리에서 노래를 했다. 파리 사람들의 속어로 '참새'를 뜻하는 피아프라는 이름을 그녀에게 붙여준 것도 바로 그 카바레 주인이었다. 데뷔 공연 때 청중 속에 있었던 모리스 슈발리에의 극찬을 받았다.
1935년 피아프는 극장에서의 첫 공연을 가졌으며, 몇 년 후 파리의 대형 음악 홀에서 노래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프랑스의 전쟁포로들을 위한 위문공연만을 고집했으며 그들의 탈출을 여러 차례 도왔다. 그후 몇 년 동안 유럽·남아메리카·미국 순회공연을 가졌다.
그녀의 단순하지만 극적인 노래와 고음에서 가련하게 떠는 쉰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는 폭넓은 명성을 가져다주었으며, 청중들이 자리를 뜨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인생은 질병, 사고, 개인적인 불행으로 점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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