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자이나교
불교와 자이나교는 비슷한 시기에 인도에서 발생한 종교로 태동환경이나 교의 등에서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윤회설이나 유별나게 업보(카르마)를 강조하는 부분에서 뿐만 아니라 수행과 해탈을 중시하는 부분 등은 당시 카스트라는 엄격한 계급 제도 하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부산물이라는 측면이 강한 것이다.
자이나교
자이나교는 "마하비라"라고 불리는 한 위대한 인물의 깨달음에서 비롯된 종교이다. 자이나교의 전통에 의하면 마하비라는 "티르탕카라" 라고 불리는 선지자 계열의 24번째 계승자이다. 마하비라의 본명은 바르다마나로서 기원전 540년에 지금의 인도 비하르주 지방의 바이샬리 부근의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부처의 출가전의 이름과 똑 같은 싯다르타로서 유명한 크샤트리아계급의 우두머리였으며 어머니 트리샬라는 리차비족의 족장인 체타한 빔비사라 왕의 왕비였다. 이처럼 마가다의 왕족계급에 속하는 마하비라는 붓다와 마찬가지로 여려서는 왕족으로서의 호사스런 생활을 영위하다가 나이 30세에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었다.
그 후 12년 동안의 고행 속에서 나체로 떠돌아 다니며 단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오랜 세월동안 엄격히 계율을 지키며 살았다. 12년이 지난 후에 그는 모든 고통을 넘어서 궁극의 깨달음을 얻었고 이때부터 위대한 영웅이라는 의미의 마하비라 또는 정복자를 뜻하는 지나(jina)라고 불리게 되었다. 깨달음을 얻은 마하비라는 이후 30년간을 코살라, 마가다, 미틸라, 참파 등지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깨달음을 전파하다가 기원전 468년 72살의 나이로 오늘날의 라지기르 근처에 있는 파바푸리에서 열반에 들었다. 이후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자이나라고 불리면서 자이나교라는 종교가 형성되었다.
불교와 마찬가지로 비정통(非正統) 브라만교에서 발생한 출가주의 종교이다. 불전에서 니간타(Nigantha:尼乾陀)라고 전하는 종교를, 석가와 같은 시대의 마하비라(Mahvra)가 재정비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최고의 완성자를 지나(Jina:勝者)라 부르고, 그 가르침이라 하여 지나교 또는 자이나교라는 호칭이 생겼다. 불타에서 연유하여 '불교'라는 호칭이 생긴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 종교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마하비라의 가르침은 먼저 그는 돌과 먼지를 포함한 모든 사물에 영혼이 들어있으며 살아 있는 존재라고 믿었다. 따라서 이들은 "아힘사"를 그들의 제1 덕목으로 삼았으며 이것은 그들의 삶의 방식과 직업까지를 결정짓게 만들었다. 이 아힘사의 교리가 붓다로부터 온 것인지 아님 인도전래의 사상에서 온 것인 지는 확언할 수 없으나 이것은 분명히 비 브라만종교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자이나교는 거짓말을 하지 말 것,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지 말 것, 사유재산을 소유하지 말 것, 금욕을 지킬 것 등을 다섯가지 기본적인 계율로 가르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처음 네가지는 마하비라 이전에 있었던 스승들의 가르침이었고 오직 다섯번째만이 그가 추가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불교의 오계와도 흡사하기도 하다. 또한 교조(敎祖)의 출신과 인간형성, 지리적·문화사적 배경, 교단 성립의 경위도 불교와 유사한 점이 많다. 인도에서 하나의 종교로 성립된 이후 불교·힌두교와 더불어 커다란 영향을 미쳐 왔으므로, 인도의 전통적 문화와 그 유형 무형의 유산에 관해서 자이나교를 무시하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불교와 자이나교간의 밀접한 교섭은 양종교의 원시 경전에서도 여실히 엿볼 수 있다.
자이나교는 다섯가지의 가르침 중에서도 생명있는 존재를 해치지 말라는 불살생 또는 불상해의 계율을 가장 강조한다. 그렇기에 후대의 자이나교도들은 땅속의 벌레들을 해칠까 봐서 농사를 짓지 않고 오직 상업에만 종사하고 철저하게 채식위주로 생활했다. 이것은 후에 자이나교공동체를 인도에서 부유한 계층에 속하게 한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후에 자이나교는 흰색옷만 입는 쉬브탐바라(Shvetambara)와 어떠한 옷도 걸치지 않는 디감바라(Digambara)로 나뉜다. 그 나누어진 이유는 기근으로 인한 수행방식의 차이가 빚어 낸 어설픈 결과였으며 이때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한 측을 디감바라라고 부르며 수정을 가한 측을 쉬브탐바라라고 부른다. 마하비라는 사람들이 높거나 낮은 가문에 태어나는 것은 그가 전생에 지은 행위의 결과(카르마)때문인 것이다. 그렇다고 낮고 천한 계급에게 인간적인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전생에 쌓은 업에 의하여 현생의 삶이 결정되기 때문에 누구든 전생에 쌓은 카르마를 보다 빨리 해소하고 현생에서 더 이상 카르마를 쌓지 않는다면 모두 다 해탈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브라만종교와도 흡사한 것으로 이후 자이나교가 별무리 없이 힌두교에 흡수될 수 있는 여지가 여기에 있다. 또한 신분의 차이와 더불어 신을 인정하고 있는 것 등이 힌두교와의 차별성이 흐려지게 만드는 요인이 되어서 결국 후대에 불교는 세계로는 번져 갔으나 인도에서는 사라지고 자이나교는 세계로는 퍼져 나가지 못했으나 지금도 그들의 명맥을 여전히 어느 정도 유지할 수가 있었다는 것이 재미있는 차이점이기도 하다. 그는 또한 제사의식이나 희생제와 같은 행위는 해탈에 도움을 줄 수 없으며 오직 올바른 지식과 올바른 행위 그리고 올바른 믿음만이 진정한 깨달음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이점은 불교와 유사한 것으로 불교에서 말하듯 무엇인가에 의존하여 자신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과 자신이 깨달음의 주체라는 것을 자이나교 또한 직시하고 있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교와 흡사한 부분으로 볼 수가 있다.
원시 경전에서는 비교적 상세한 교의가 정립되어 있으나, 그 이후로는 불교만큼 다채로운 발전을 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후세에 와서 인식론이나 논리학은 불교의 영향이 현저한데, 오랫동안 산일되어 있던 불교의 작품들이 최근 자이나교의 승원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현재 교도 수는 인도 전역에 걸쳐 180만 정도 밖에 되지 않으나 상호부조적인 성격이 강하고 상인이나 금융업자가 태반을 차지하고 있어 경제적 영향력 또한 막강하다. 그 실천생활상의 특색으로서 승려를 통하여 불살생(不殺生:Ahimsa)이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다. 교의로는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을 주창한다. 즉 생명(jiva)과 비생명(ajiva)으로 이루어져 있고, 비생명은 다시 공(空:운동의 원리)·비공(非空:정지의 원리)·물질재료·허공·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이 형이상학적 원리에 입각하여 다음 7종 또는 9종(선·악을 포함하여)의 실천론적 계열이 모든 가능태로 제시된다. 즉 생명·비생명·선·악·누(漏)·박(縛)·차(遮)·멸(滅)·해탈(解脫)이 바로 그것이다. 생명이 외적 대상의 영향을 받아, 물질재료가 생명 속에 누입(漏入)하고[漏], 그것이 물질적 업을 형성하여 생명을 속박한다[縛]. 그리고 외적·내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업물질의 누입을 정지시키고, 또한 이 업물질을 멸한다. 이 멸한 상태가 해탈이다. 해탈에 이르게 하는 덕목으로는 정견(正見)·정지(正知)·정행(正行)으로 요약되거니와, 구체적으로는 불교의 오계에 해당하는 오금서(五禁書:브라다), 신(身)·구(口)·의(意)의 삼업(三業)에 해당하는 삼기율(三紀律:구프티), 오용심(五用心:사미티)이 특히 요구되고 있다.
'고행’ 강조한 자이나교
불교가 처음 일어나던 때에, 상당수의 신흥종교인들은 고행(苦行)에 전념하였다. ‘고행’이란 자기를 학대한다는 것인데, 자신이 욕심을 내는 건 바로 몸이 있기 때문이고, 모든 욕심의 근원인 이 몸을 다스려야 한다는 차원에서, 욕심을 일으키는 원흉인 이 몸을 학대하는 것이다. 이런 흐름을 가장 잘 대표하는 가르침이 바로 자이나교였다. 자이나교는 불교와 더불어 당시에 일어난 신흥종교를 대표하는 쌍두마차의 하나였다. 이 종교의 가르침을 간단히 정리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자아는 아주 맑고 깨끗한 것인데, 미세한 물질들이 몸 밖에서 들어와서 아주 청정한 자아를 꽁꽁 묶어 놓아 온갖 고통을 겪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비상령을 내릴 수 밖에 없는데, 우선 외부에서 들어오는 미세한 물질들은 차단하고, 그 다음에 이미 들어와 있는 불순한 세력은 고행을 통해서 녹여 버린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테러분자가 들어오면, 우선 미국의 경우와 같이 공항을 폐쇄하고, 국내에서 암약하고 있는 고정간첩 같은 무리에게 수배령을 내리는 것이다. 자이나교에서도 이와 같이 강경 진압해서 본래 청정한 자아를 회복한다는 것이다.
홀딱 벗어야 무소유(?)
그런데 자이나교와 불교의 분기점은 고행을 어느 정도까지 할 것이냐에 있다. 자이나교 쪽에서 볼 때, 불교는 뜨뜻미지근하게 수행하는 것이고, 불교 쪽에서 자이나교를 보자면, 자이나교는 너무도 고행을 위한 고행을 하는 것이다. 자이나교에서는 강하게 계율을 지킨다. 가장 인상적인 건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다는 ‘무소유’인데, 그것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 벌거벗고 지낸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건 팬티도 입지 않고 홀딱 벗는다는 사실이다. 예나 지금이나 종교인구는 여성이 주류를 이루는 경향이 있는데, 자이나교의 고승들은 지금도 수많은 여성신도 앞에서 홀딱 벗으신 채 근엄한 표정으로 아주 어려운 철학을 강의한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불교에서는 무려 옷을 3벌이나 소유하는 걸 허락하고 있다. 자이나교에서 보자면 이 얼마나 사치인가! 하지만 옷이 3벌이라고 해도, 요즘같이 비싼 승복을 입는 게 아니다. 승복이 대량생산되지 못하기 때문에 매우 비싸다는 말을 신문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온 동네 굴러다니는 넝마 같은 천조각을 모아서, 그걸 잘 빨고 기워서 옷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그게 말이 옷이지 무슨 멋이 있거나 맵시를 부릴 수 있는 건 아니다.
동남아로 전파된 불교
불교 쪽에서 자이나교를 보자면, 자이나교의 무소유 수행이 도를 닦는다고 광고하러 다니는 짓이다. 몸이란 욕심의 근원이기도 하지만, 도를 이룰 수 있는 중요한 그릇이기도 한데, 어떻게 함부로 내놓고 천대할 수 있겠는가 한다. 그래서 욕심만 안내면 됐지,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처방을 내릴 필요는 없다고 보고 있다. 아무튼 자이나교가 중국이나 다른 외국에 전래되었다는 말을 어디서도 듣지 못했는데, 아마도 이런 극단적인 수행이 그 빌미가 되었을 것이다. 그에 비해, 불교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뿌리를 내렸으니, 그건 불교 쪽의 선택이 더 현명했음을 보여 주는 객관적인 예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불교와 자이나교가 서로 세력을 다투는 기원전 6세기 무렵이 아니다. 이 두 종교의 세력다툼에 좀더 냉정해 질 수 있는 시점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이나교와 불교의 고행정신은 정도의 강약에 차이점이 있다고 해도 그 기본정신은 매우 필요한 것이다. 편의를 위한 시대, 자신의 고통은 조금도 감내하지 못하는 시대에서 보자면, 자신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고자 했던 이 두 종교는 감탄과 경이의 눈길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
이병욱 (고려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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