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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물이 닿으면 묘비의 이름이 바뀌는 김유신 묘..

명호경영컨설턴트 2010. 12. 5. 10:54

 

비가 오거나 물이 닿으면 묘비의 이름이 바뀌는 김유신 묘..

 

경주여행을 하면서 이것저것 몰랐던 신라시대의 역사를 더 많이 알아가는 재미가있었다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돌아본 경주는 해설자와 동행을 했기때문에 사진을 찍으면서

눈으로 보이는 장면을 담기에는 다소 불편했지만 내가 몰랐던 부분까지 이야기를 통해

속속들이 알아가는 재미가 더 솔솔하니 나중에 경주게 가게되면 이번에는 다른코스로

시티버스를 타고 한번 더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할정도로 해설자를 통해

전해들은 신라시대의 이야기는 흥미롭고 때론 위대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신라시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선덕여왕이며 그중 또한사람은

김유신 장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엠본부에서 성황리에 막을 내린

선덕여왕에서 비춰졌던 김유신은 역사속에서의 모습보다 더 섬세하게

보여졌으니 드라마로 통해본 김유신과 해설자가 전해준 김유신의 이야기는

경주를 알고 신라시대를 충분히 흥미롭게 할 정도였다..

 

경북 경주시 충효동에 위치한 사적 제 21호 김유신 묘에는 김유신 장군이 모셔져있다

김유신은 금관가야 마지막왕인 구영왕의 증손으로 15세에 화랑이 되었으며

무예와 지략이 뛰어났으며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때마다 앞장서서 나를 구했으며

신라 태종무열왕 7년에 나당 연합군이 결성 되었을때 신라군 총 사령관이 되어 백제를

병합하였고 문무왕 8년에는 고구려를 병합하였으며, 한반도 침략하여 복속시키려는

야심을 가지고있었던 당나라 군사도 물리쳤다고하니 그의 위대함은 지금까지도

높이 살만하다고 할수있다... 문무왕때는 태대각간이라는 관작을 받았으며

뒤날 흥덕왕때는 흥무대왕으로 추봉되었다고 하는데 그의 묘를 보면 알수있다..

 

 

김유신 묘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옆으로는 소나무숲이 장관을 이루고있었다

이곳 소나무는 삼릉하고 또 다른 느낌의 노송들이 햇빛을 살짝 가려 그늘을 만들어

주고있으니 여름날 이곳에 들어서는 솔냄새가 가득한 바람이 잔뜩 불어올거같았다

잠시잠깐 이곳을 들어갔다왔는데 해설자를 놓쳐 버릴까바 오래 머물지 못했다..

 

 

 

 

 

김유신 묘를 가만 들여다보면 십이지신상이 새겨져있는 보호석을 볼수가있는데

십이지신상은 모두 평복을 입고 무기를 들고있는모습들을 하고있으며 몸은 사람의

형체이고 머리는 동물모양을 하고있었는데 난 이렇게 십이지신을 보면

내띠부터 찾느라 정신이 없으니 매번 볼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곤한다..^^

 

 

 

 김유신 묘를 돌아보고 있는 해설자님이 신기한걸 보여준다고 빨리 오라고한다

비석에 적혀진 한문이 변하는 신기한 마술같은 거라고하는데 설마.. 하는 마음으로

뚫어지게 바라보고있었는데 비석에 물을 뿌리지마자 신기하게도 릉이 묘로 변한다

맑은날에는 왕릉으로 보이고 물을뿌리거나 비가 오는날이면 묘로 변하는 김유신묘..

릉자위에 묘자를 다시 새겨 흙으로 채워넣은건지 아님 묘자위에

릉자 다시 새겨 흙을 다시 채워놓은건지는 설명을 듣는동안에 마냥 신기했다

왕으로 추대된걸 모른채 묘로 새겨놓았는데 나중에 그사실을 알고 릉으로 바꿨다는

말도 있으며 다른 세력(?)에 의해 릉이 묘로 바뀌었다는 말도 있지만

분명한건 신라를위해 충성을 하고 삼국을 이룩하는데 큰 공을 세운건 분명하다

 

 

이유야 어찌되었던간에 아직까지도 흥미롭고 신기한 김유신 묘의 비석은

미스테리로 남아있기 충분하겠지만 역사적으로 많은 공을 세운 김유신의 업적만

생각하면서 나라를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길이 살만하다고 볼수있겠다..

 

 

무더운 여름날 힘들게 돌아본 경주여행을 통해서본 신라는 우수한 민족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문화재 하나하나 완벽하게 보존하고 가꿔놓은 경주..

그래서 아직까지도 신라시대의 유물이나 문화재는 위대하고 훌륭하다..

 

 

 

 

출처 : 난 바람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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