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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계7대불가사의 앙코르 왓

명호경영컨설턴트 2012. 3. 26. 22:05

                     크메르 제국의 영광 앙코르왓

 

캄보디아 씨엠립은 앙코르 왕국의 근거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곳이다.

우리 일행은 베트남 관광을 마치고 하노이에서 1시간 비행으로 씨엠립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캄보디아는 지금 겨울철인 건기에 속하지만, 기온은 30도를 오르내리는 우리나라 여름과 같은 기후이다.

공항은 중소도시의 여객터미널같이 규모가 협소하고 시설도 빈약하다. 캄보디아에서는 두 번째로 큰 도시라는데 즐비하게 늘어선 저층 건물에 거리는 한산하고 가로등도 희미하다. 군 소재지 정도의 시골풍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국민소득 300불 수준으로 가난한 나라라는 인상이 첫눈에 느껴진다.

그런데 입국 비자를 받는 과정에서 그들의 관행이 된 촌극(?)까지를 통과해야 했다. 캄보디아는 도착비자 발급비용을 받는 나라다. 공식적인 비자발급 비용 20불 외에 소위 뇌물로 1인당 1불씩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과거 우리나라에도 성행했던 급행료이다. 그래야 수속을 빨리 끝내준단다. 사람이 많을 때는 3불이 되기도 한다. 1불이냐 3불이냐는 상황에 따라 입국자가 판단해야 한다. 우리는 가이드의 일괄 제공 덕분에 쉽게 입국절차를 마칠 수 있었다.

모두투어 직영식당에서 한식으로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이동하였다. 우리가 묵을 소피텔은 5성급 초특급호텔답게 넓은 부지에 잘 다듬어진 정원, 풀장, 객실, 식당 등 호화로운 시설을 갖추고 있다. 건물 구조는 2층으로 배치되어 자연 친화적인 정원과 조화를 이루어 넉넉하고 편안한 휴양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일본인이 경영한다고 한다.

앙코르왓을 관광하기 위해서 이동이 편리한 ‘톡톡이’를 옵션으로 타야했다. 손수레와 오토바이를 결합하여 2인승으로 개조한 톡톡이는 옛날 우리나라 인력거와 비슷하다. 다만 사람이 이끄는 대신 오토바이 동력을 이용한 것이 다를 뿐이다.

씨엠립 유적지에는 지금까지 290여개의 사원이 발견되어 수많은 석조유적이 산재해 있다. 이러한 세계최대 석조유적지의 배경에는 힌두교와 불교 그리고 최강의 문화를 꽃피웠던 크메르왕조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우리는 그 중 대표적인 유적지로 사프롬 사원, 앙코르 톰, 그리고 목적지인 앙코르 왓을 구경했다.

 

폐허로 방치된 타프롬 사원

 

사원 입구에서 우리는 너무도 익숙한 음악 소리를 들었다. 아리랑이다. 알고 보니 입구 쪽에 전쟁 중 사고를 당한 상이군인들이 모여 관광객을 보면 그 나라의 대표적인 노래를 연주한다. 우리가 한국인인 줄 어떻게 알고 아리랑을 연주하는지를 궁금했으나, 가이드를 보고 미리 판단하여 연주한단다.

이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가 그의 모친을 모시기 위해 건립한 불교 사원이다. 사원의 규모는 위압적일 만큼 거대하고 천 년 세월의 풍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발견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방치해 놓고 있다. 석벽이 무너지고, 기울어지고 석재가 이곳저곳 산만하게 흩어져 겨우 골격만이 유지되고 있다. 무너진 돌 틈으로 나무가 자라서 거대한 나무뿌리가 마치 문어발처럼 석벽을 힘차게 장악하고 있다. 자이언트 팝나무는 우람한 억센 생명력을 과시하는 듯 무너진 돌 틈으로 뿌리를 힘있게 뻗치고 있다. 이것을 보니 자연 앞에 인간이 만든 문명은 초라하게 보인다. 어찌 보면 나무뿌리가 석축 담벼락을 감싸고 있어 역설적으로 이를 보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로의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폐허로 변한 사원은 700년 유장한 세월의 풍상을 맞으며 그동안의 부침과 영욕 성쇠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오히려 원형대로 복원한 고적들보다 오랜 세월을 견디며 여기저기 풍화되어가는 모습 자체가 꾸밈없이 역사의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자연의 파괴력이 인간의 유적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알려주기 위해서 일부러 방치해 두었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유명한 영화 ‘툼래이드’에서 안젤리나 졸리가 연기했던 장소도 이곳이란다.

 

앙코르 문화의 절정인 앙코르 톰

앙코르톰 입구에 들어서면서 우선 원경에서 바라 본 우람한 규모에 압도되어 이곳이 그 유명한 앙코르왓인 줄로 착각하였다. 이처럼 앙코르톰은 불교사원으로는 앙코르왓과 함께 앙코르 문화의 쌍벽을 이루는 곳이다. 캄보디아는 고대 시대부터 인도로부터 힌두교와 불교를 받아들였다. 힌두교가 보다 폭넓게 퍼져 앙코르 사원에서는 유적 대부분이 힌두양식을 보이고 있다. 불교 양식 또한 혼재해 있다.

거대한 도시라는 의미의 앙코르톰은 크메르왕조의 수도였다. 한 변이 3km의 정사각형 모양으로 높이 8m의 붉은 흙인 라테라이트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평지인 지리적 특성과 강우량이 풍부한 기후적 조건에 의지하여 외부로부터 침입에 대비하였다. 특히 성 외부를 둘러싸는 폭 100m의 장방형 해자를 설치하고, 야생 악어를 방목하여 내부의 안전을 도모하였다. 출입 통로로는 동서남북으로 5개의 다리를 설치하였으며 성 내부에는 바이욘 사원, 바푸온 사원 등이 있다. 특히 바이욘 사원은 왕의 방으로 앙코르 지역에서 가장 이상적인 사원 중의 하나다. 200여 개의 부처의 얼굴로 구성된 54개의 탑들은 4면 상탑의 각 면에 커다란 얼굴이 조각되어있다. 왕 자신의 얼굴을 신격화해서 조각한 것이다. 이 얼굴들이 띠고 있는 미소를 ‘바이욘의 미소’ 라 하며 이 또한 모나리자의 미소 와 함께 잘 알려졌다.

남문 위의 관세음불의 얼굴은 한없이 자비로우면서도 늠름한 기상과 강인한 표정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이제 이곳은 신의 영역이라는 말없는 선언과도 같다. 또한 사원의 벽면에는 크메르 왕조 창건 내역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여러 세기 동안 밀림에 방치된 관계로 목조 건축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석조 건축물들은 크메르 왕조의 번창과 화려했음을 전해준다. 특히 동쪽 방향의 코끼리 부조 상의 테라스에 서보면 그 시대의 축제나 군사 행렬로 군왕의 위엄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그중 나왕 상은 크메르 왕조의 몰락을 증언하듯이 눈길을 끈다. 나왕이 사냥하기 위해 숲으로 갔는데 길을 잃게 되었다. 그는 부처에게 기도하여 길을 밝혔다. 그러자 뱀이 그를 공격하였고 그는 뱀을 물리쳤다. 그러나 나왕도 뱀의 저주에 걸려 나병으로 죽었다. 그리하여 크메르에 전염병이 퍼져 사람들이 떠나고, 앙코르 유적들도 폐허가 된 것이라는 전설이 유래해오고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앙코르 왓

 

점심을 먹고 이번 여행의 백미인 앙코르왓을 찾았다.

앙코르왓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고 세계 최대의 석조유적이다.

앙코르는 왕도를 뜻하고 와트는 사원을 뜻한다. 앙코르의 문명은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600여 년 동안 캄보디아를 통치한 절대왕정 시대 중 이 앙코르왓의 출연과 더불어 전성기로 접어든다.

앙코르왓은 신을 모신 사원이며 왕과의 교신을 위한 장소이기도 했다. 해자(인공수로)에 둘러싸인 앙코르왓은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의 표상이었고, 우주와 지구, 신과 인간, 과거와 현재, 야만과 문명을 이어주는 장소였다.

그 외벽의 크기가 가로 1,3km, 세로 1,5km에 달하고 사원 주변을 둘러싼 인공수로(해자)는 폭 200m, 길이 5,5km에 이른다. 7톤짜리 기둥만 1,800 개가 사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역사학자들은 이 사원의 건축을 위해 매일 2만 5천 명의 인원이 37년 동안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해자를 건너기 전 멀리서 바라본 앙코르왓은 검은색 석조건물로 우선 그 웅장한 규모에 압도당한다. 광활한 캠퍼스에 장엄한 위용을 뽐내며 고색창연하게 자리 잡은 대학의 건물처럼 으리으리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다.

사막을 헤매다 녹색의 풀들이 가득 핀 신선한 오아시스를 본 느낌이라고 할까? 마술에 걸린 것처럼 앙코르왓을 보는 순간 야만에서 문명, 어둠에서 빛으로 이동하는 느낌을 받는다.

문명은 진화한다는 가설을 깨뜨린 서구학자의 반성은 세계최대규모의 석조유적인 앙코르왓을 보는 순간 더욱 솔직하게 들린것 같다.

입구에 들어서면 세속과 영계를 구분하는 해자의 돌다리 앞에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나가(뱀)가 지키고 있다. 돌다리를 건너면 왕이 드나드는 출입문이 중앙에 있고, 우측에는 신하와 제사장이, 좌측에는 하인과 코끼리가 드나들었다는 문이 있다. 우리 일행은 여기서 기념촬영을 했다.

왕도의 길에 들어서면, 정동향에 우뚝 솟은 5개의 탑신이 보인다. 이 사원은 힌두교 사원인 동시에 12세기경 왕국을 통치한 수르야바르만 2세가 자신의 사후에 머물 곳으로 지었다고 한다. 가운데 가장 높은 탑신은 65m에 이르는데, 이는 왕과 비뉴수 신이 하나가 되었다는 곳이다. 5개의 탑신은 메루(수미산)라 부르고 크메르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뜻을 지닌다.

우리는 건물 내 수많은 회랑 중에서 대표적인 제1 회랑만을 보았다. 줄잡아 500m도 넘을 것 같은 회랑 벽면에는 상단에서 하단까지 온통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양각으로 표현된 이 그림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서사시 ‘마하바라타’를 표현한 것이다. 벽면을 삼등분하여 3단으로 되어 있는데 아래는 근경, 가운데는 중경, 위가 원경으로 독특한 원근감을 표현하고 있다.

정당한 왕권 획득을 위한 전쟁 장면, 전쟁에 승리하고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는 장면, 천국과 지옥으로 보낼 사람을 분류하는 장면, 천국과 지옥으로 보내겠다고 협박하는 장면, 결국은 합심하여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장면이 차례로 표현되어 있다. 결국 절대군주인 왕권을 확립하고 유지하기위한 상징적 의미로 보아진다.

말을 타고 전투에 임하는 전사들, 그들이 입고 있는 복식과 병기들, 선과 악의 신들, 신분이 낮은 하급 여신, 아름다운 무희의 신, 여러개의 머리를 부채처럼 치켜 든 뱀의 무리 등…

이러한 그림을 통해서 당대인의 풍속이나 종교관, 지옥과 천국, 불교적인 윤회설, 인생관, 세계관 등 인간사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가 된다. 재미있는 것은 지옥과 천국행을 분류하는 심판자 앞에서 애걸하거나 잘 보이기 위해 아부하거나 아양을 떠는 모습은 동서고금 어디서나 똑같아 보였다.

그 당시 문명수준에서 동원 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고문기구로 형벌을 가하는 32개의 지옥도도 흥미로웠지만, 37개의 인간이 죽어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행복과 안락한 생활을 그린 37개의 천국도는 힌두교의 종교관에 바탕을 둔 당시 크메르 사람들이 상상으로 만들어 낸 그림일 것이다. 현대 지식인의 시각에서는 일면 단순해 보이고 개그적이고 희화화된 일면도 엿보인다.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이 벽면 부조 내용을 체계적으로 해석한 책이 있느냐고 가이드에게 물으니 아직은 보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를 안내한 노석기 가이드는 상당한 수준의 인문 교양적 수준에서 종교와 역사를 넘나들면서 격조있는 설명을 하여 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건물 내부의 시설 모두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해석하고 음미하려면 몇날 몇일도 모자란단다. 우리는 주마간산 식으로 요소만을 대충 살펴보는 것으로 이를 대신했다.

이 방대한 면적의 석조 벽면을 가득 채운 어마어마한 분량의 양각 부조를 이처럼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정교하게 조각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능히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 장대하고 화려한 벽화를 조각한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종교 건축물 중에서 최고라는 이 앙코르와트는 과연 어떤 동기를 갖고 지어진 것일까? 그들의 종교적 사명이 빚어낸 결과일까? 정말 비뉴수를 진심으로 신봉했기 때문일까? 절대 군주의 강압적인 통치로 왕권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 왕의 위엄을 보이게 하려고 한 것일까?

주변은 평지로 석재를 발굴할 산도 없다. 12세기 무렵, 기중기도 별다른 장비도 없던 시대에, 사람들의 힘만으로 이처럼 7톤에 이르는 돌기둥 1,800여 개를 어디서 어떻게 제작하고 운반하여 현대 건축 기술로도 풀기 어려운 고난도의 거대한 석조 건축과 탑을 축조할 수 있었는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3층 중앙 신전으로 오르는 계단은 발을 제대로 디딜 수 없을 만큼 폭이 좁고 70도의 급경사를 이룬다. 올라만 보아도 현기증이 날만큼 가파르다. 마치 계단 다음은 신의 세계라는 것을 세속의 인간에게 엄중하게 경고하는듯하다. 성스러운 곳을 가기위해서는 자세를 낮추고 가야하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었단다. 이 계단을 오를 수 있었던 사람은 신의 화신인 왕과 제한된 몇몇 고위 승려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관광객들이 쉽게 오를 수 있도록 남쪽으로 별도의 계단을 설치해 두었다.

이 계단을 오르기 위해서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두 줄로 장사진을 치고 대기하고 있다.우리 일행도 후미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하루에도 15,000명의 관광객이 찾는다는 이곳은 주로 서양 사람들, 그 중에서도 여성들이 많이 눈에 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하루 1,000명 1주일에 6,000여명이 찾는다고 한다.

어렵게 3층 신전에 올라갔으나 신비스럽거나, 특별히 눈을 끈 시설이나 장치는 없고 긴 회랑의 공간만이 썰렁하게 비어있다. 한 쪽 구석에 부처님 비슷한 입상이 어둠속에서 희미한 조명을 받으며 보이지만 이분이 비뉴수 신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높다는 것, 더 높은 곳에서 왕과 승려들이 신을 경배하는 의식의 장소로 사용되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주변을 둘러보니 거대한 석조건물이 군데군데 허물어져 부분적으로 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세계적인 인류문화유산이 이처럼 망가져가고 있는데도 캄보디아 정부에서는 이 복원공사를 감당할 재력이 없다고 한다. 보다 못한 다른 나라의 뜻있는 민간단체들이 이 복원 공사를 대신해 주고 있다고 한다. 어차피 세계인의 문화유산인데 수긍이 가는 일이다.

앙코르왓 후문의 천년 묵은 숲과 이를 가로 지르는 인공수로의 푸른 물, 그 위로 저 멀리 떠있는 푸른 하늘의 흰구름은 한 폭의 그림이다.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앙코르 왓이구나’하는 깊은 감회에 젖어 다음 행선지로 발길을 옮긴다.

 

 

 

 

출처 : 향기좋은우리카페
글쓴이 : 동산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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