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사이가 됐건 혹은 친구 사이가 됐건 너무 자주 만나기 때문에 으레 당연하게 여기고 범속해지는 일은 없는가? 일이 있건 없건 걸핏하면 습관적으로 전화를 걸고 "띵동"하고 찾아가는 것도 우정의 밀도에 어떤 몫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무료하고 심심하니까 그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 친구를 찾는다면 그건 "우정" 일 수 없다.
시간을 죽이기 위해 찾는 친구는 좋은 친구가 아니다. 시간을 살리기 위해 만나는 친구야말로 믿을 수 있는 좋은 친구 사이다.
친구 사이의 만남에는 서로 영혼의 메아리를 주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너무 자주 만나게 되면 상호간에 그 무게를 축절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마음의 그림자처럼 함께 할 수 잇는 그런 사이가 좋은 친구일 것이다. 만남에는 그리움이 따라야 한다. 그리움이 따르지 않는 만남은 이내 시들해지게 마련이다.
법정스님의 <오막막 편지> 中
법정스님의 글에는 영혼의 칡을 잘라내어 즙으로 만든 그 그윽한 맛이 있다.
예전에 내가 위의 글처럼 살았다. 생각나면 전화하고 외롭다고 금새 사람을 찾고 술 한잔 하자고 전화하고 만나는 유아기적 말과 행동을 했었다. 지금도 많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명상을 하고 산에 오르며 내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속에서 조금 성숙했을 뿐이지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살고 싶다. 고여있는 물이 아닌 흐르는 물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사람을 볼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인상이다.
첫인상은 몇 초에 걸쳐서 판가름이 나는 데 전문가들은 2~3초라고 한다.그 다음으로 그 사람의 진가를 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의 미래를 한 번 점쳐볼 수 있다는 것은 말과 행동이다.
그 사람의 실체를 안다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점쟁이들이 그 감각이 뛰어나다고 한다.
대면하는 몇분안에 그 사람을 현미경 보듯이 꿰뚫어 본다는 것이다.
사람이 얼마나 빠르고 정확한지를 알려주는 일례다. 좋고 나쁘고를 결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직감을 믿는다. 내 안에서 알려주는 그 자신의 신념을 믿는다.
문제의 해결을 밖에서 찾는 사람이 있다.
남에게 묻고 조언을 얻는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진지한 자세로 자신에게 고요히 물어보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파랑새는 항상 자신의 어깨위에 있는 법이다. 자신을 살리고 죽이는 법도 자신에게 있다.
쇠는 자신의 녹 때문에 삭는다. 자신이 자신을 죽이고 살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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