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훌훌 날아가는가 하면 질질 끌고 가는 것처럼 지루하다.
우리는 늦었는가 하면 이르다. 우리는 시간을 벌려고 하는가 하면 낭비한다. 우리는 시간을 관리하고 제어하려 하지만 종종 그와는 반대로 시간이 우리를 통제한다.'(친닝 추의 '작은 노력으로 성공하라')
이것이 시간의 딜레마다. 우리는 출근 도중 교차로의 신호를 위반하며 아등바등 절약한 5분을,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커피 한 잔 마시고 수다떠는 데 써버린다. 그러면서도 늘 '너무 바쁘고' '턱없이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현대 사회에서 바쁘지 않고 여유시간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실업자들뿐이다.
사람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잠을 줄여보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자포자기 상태가 된다. 쌓여 있는 서류를 보며 이것을 언제 다 처리할지 고민하는 사이에 또 시간이 흐른다.
시간을 현명하게 불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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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은 3600초, 하루는 8만6400초, 1년이면 3153만6000초, 칠십 평생으로 잡으면 22억752만초.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시간은 똑같지만 흐르는 속도는 상대적이다. 아인슈타인은 “아름다운 여자와는 2시간 동안 같이 앉아 있어도 2분처럼 느껴지고, 뜨거운 화덕 위에는 2분만 앉아 있어도 2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로 '상대성' 개념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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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상대적으로 흐르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어떤 사람은 정말 필요한 일에 2분을 쓰고, 어떤 사람은 필요한 서류가 어디 있는지 찾거나 쓸데없는 걱정에 2시간을 쓴다.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에 따라 부족하기도 하고 넉넉하기도 하다.
이를 위해 서구사회에서 발달한 것이 '시간관리' 개념이다. 원래 시간관리는 덴마크에서 유래한 것으로, 업무에 바쁜 기업경영자들이 시간을 좀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개발됐다. 시간관리는 궁극적으로 업무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 목표이며, 특히 적은 시간에 많은 일을 짜맞추도록 '압력'을 가한다. 실제 타임매니저라 불리는 사람들은 이를 통해 15~25% 정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80대 20'의 저자인 경영컨설턴트 리처드 코치는 이런 식의 시간관리는 “1ℓ의 물을 0.5ℓ의 용기에 담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넘치는 시간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문제는 그 시간 중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단 20%뿐이라는 데 있다. 80대 20의 법칙에 따르면, 일주일에 이틀만 일하고도 지금보다 60% 이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다.”
코치는 일의 성취를 위한 것이든 개인적 행복을 위한 것이든 가치가 낮은 활동은 단호하게 포기하라고 충고한다. 그냥 “노”하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최악의 시간 활용법은 다음과 같다.
1. 타인으로부터 부탁받은 일을 한다(전화를 받아서, 아는 사람이어서)
2. 항상 같은 일을 같은 방법으로 한다
3. 특별히 소질이 없는 일을 한다
4. 재미없는 일을 한다
5. 항상 방해받는 일을 한다
6. 타인은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일을 한다
7. 원래 예상한 시간보다 2배나 더 걸린 일을 계속한다
8. 신뢰할 수 없는 사람,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과 일한다.
코치의 충고 중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여유 시간에 대한 죄의식을 버리라는 부분이다. 가장 게으른 20%의 사람들에게는 더 열심히 일하라고 해야 하고, 가장 열심히 일하는 20%에게는 일을 줄이라고 하는 것이 마땅하다. 중요한 것은 노동의 양이 아니라 질인 것이다.
'작은 노력으로 성공하라'의 친닝 추도 '시간관리'라는 개념 자체가 허구라며 “시간은 인간의 관리를 받아본 적이 한번도 없다”고 했다. 그는 14개월 간 질질 끌어온 일을 단 3시간 만에 끝내버린 자신의 경험을 통해 시간은 덧없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몰입 여부에 따라서는 단 5분도 긴 시간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어떤 일을 끝마칠 시간이 충분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의 조언은 비교적 간단하다.
△당신이 잘 하지 못하는 일은 남의 도움을 받거나 아니면 위임하고
△스무 시간 걸릴 일을 열 시간 안에 다 하겠다고 무리하게 계획하지 말라. 차라리 하루 여섯 시간 분량의 일을 여덟 시간 안에 해치우는 계획을 세운다. 모든 것이 처음 생각한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규정시간보다 더 오래 일하는 것을 개의치 말라. 일은 놀 듯이 한다.
△시간약속은 반드시 지키거나, 지킬 수 없다면 다시 약속을 한다. 다른 사람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내 시간을 아끼는 방법이다.
△일에 집중해야지, 시간에 집중하면 안 된다. 너무 빠듯한 마감에 쫓기다 보면 일 자체를 그르친다.
시간경영의 달인으로 알려진 제프리 메이어식 시간관리법은 철학자들로부터 “인간을 속도의 노예로 만든다”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반복적인 업무를 재빨리 처리하고 나머지 시간을 하고 싶은 일에 할애한다는 점에서 유혹적이다. 그의 저서 '천재 B반을 위한 타임 매니지먼트'에 소개된 시간관리 전략전술은 앞의 두 컨설턴트의 조언과 일맥상통하면서 보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담고 있다. 다음은 메이어식 시간관리학의 핵심내용이다.
1단계 : 책상부터 치워라
책상, 책꽂이, 의자 바닥에까지 서류철이 흩어져 있다. 벽에는 나비 떼를 연상케 하는 포스트잇, 모퉁이마다 읽지 않은 신문더미와 잡지들. 컴퓨터는 계속 새로운 전자우편의 도착을 알리고, 이 아수라장 어딘가에 달력, 스케줄수첩, 해야 할 일의 목록이 숨어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책상 상태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먼저 △책상 위와 서랍을 차지하고 있는 필요 없는 서류를 과감히 버리고 △당장 필요 없으나 보관하고 싶은 서류가 있다면 철해서 다른 곳에 두고, 책상 위에서는 치운다 △여기저기 붙어 있는 포스트잇을 떼버리고 큰 종이 한 장에 '주요업무'를 기록한다 △지금까지 읽지 못한 신문이나 잡지가 있다면 부담없이 버리고, 새로 도착하는 것 중에서 관심 있는 기사가 있으면 그때그때 오려둔다. △컴퓨터 하드드라이브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대청소를 한다.
2단계 : 큰 종이 한장을 활용하라
충고의 핵심은 '주요업무 목록'의 활용이다. △큰 종이 한 장에 해야 할 프로젝트와 업무, 사업상 필요한 사항을 모두 적는다. 전화번호나 그 밖의 메모도 무조건 적어둔다. △다 한 일은 ×표로 지우고 끝내지 못한 일은 새 종이에 적어두었다가 퇴근 전 다시 읽어본다(다음 날 일정이 일목요연하게 머릿속에 들어온다)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는 전화번호부 책(컴퓨터 파일)에 옮겨놓는다.
3단계 : 매일 계획표 이용하기
주요업무 목록에 있는 것을 실제 그 일을 해야 할 날짜에 다시 옮겨 적는다. 어떤 일은 오늘하고 어떤 일은 내일하고 남은 일은 다음날 하고…. 그리고 갑자기 새로운 업무가 떨어졌을 때 당황하지 말고 비어 있는 시간이 언제인지부터 확인한다. 이미 업무가 꽉 차 있는 날에 하겠다고 표시를 해봤자 소용이 없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휴가 날짜를 미리 빼놓는 것이다. 달력에 주요 업무를 먼저 기록하고 비는 날짜를 택해 휴가를 확보하지 않으면 영원히 휴가를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생일과 기념일 등은 2주 전에 미리 기록해 선물 등을 보낼 수 있는 시간 여유를 갖는다. 이것을 제대로 실행하려면 여기저기에 스케줄을 적어놓아서는 안 된다. 한군데로 몰아 기록해야 하는데 이때 소형 휴대용 컴퓨터가 유용하다. 시간을 관리하는 데 유용한 첨단기기를 적극 활용하라.
4단계 : 일은 제때 치운다
자신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에 하루 업무의 대부분을 해치운다. 아침 2시간 정도가 가장 활기가 넘치는 시간이고, 다른 일로 방해받을 가능성도 적다. 그러므로 하루 2시간 정도는 자신을 위해 비워두고 일정을 잡을 때 이 시간에는 아무 것도 계획하지 않는다. 사무실에 도착해 문을 닫고 전화도 받지 말고 방해받지 않은 상태에서 일에 몰두한다.
또 스케줄을 잡을 때는 예상치 못한 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남겨둔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중요한 일은 하루의 앞부분에 해야 한다. 약속은 몰아서 하되 약속 중간에 숨 돌릴 시간을 남겨둔다. 9시30분에 회의가 시작돼 10시면 끝날 줄 알았는데 9시45분까지도 회의가 시작되지 않고 10시25분까지도 회의가 끝나지 않는다면? 하루를 계획할 때는 모든 회의가 생각한 것보다 50%는 길어진다고 가정한다. 30분 회의에는 45분의 여유를, 1시간 회의라면 1시간 반 정도의 여유를 남겨둔다.
천천히, 단순하게, 꼭 할 일만
제프리 메이어의 충고는 분명히 빠듯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왜 이렇게 온 힘을 기울여 시간을 관리해야 하는가. 과학저널리스트 제임스 글릭은 시간관리법의 유행에 대해 “시간절약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바칠 것이냐”고 비꼬았다.
“언제 시간이 절약되는 것인가, 할 일 없는 시간을 확보해냈을 때인가, 아니면 그 시간을 좀더 많은 행위들로 채웠을 때인가. 유용하게 썼을 때인가 아니면 기쁘게 썼을 때인가. 시간절약이란 더 많은 일들이 처리된 것을 의미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몽상은 시간을 소비한 것인가 절약한 것인가. 해변에서 휴대전화기에 대고 얘기하는 것은?”
그는 '빨리빨리'라는 책에서 컴퓨터, 엘리베이터 등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장치를 고안하고 전략을 짜낼수록 우리는 점점 더 바빠진다고 했다.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닫힘 버튼을 눌러야만 직성이 풀리는 현대인들. 만약 출입문이 닫히기도 전에 엘리베이터를 향해 돌진해오는 새로운 승객이 눈에 띄면 우리의 도덕성은 시험대에 오른다(열림 버튼을 눌러줄 것인가 딴청을 피울 것인가). 그래봤자 단 2분 지체한 것인데 사람들은 10분을 기다린 것처럼 생각한다.
영국의 경제평론가 찰스 핸디도 저서 '헝그리 정신'에서 우리가 도대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모든 노동자의 42%가 하루가 끝나면 기진맥진함을 느낀다. 60%는 좀더 편안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30년 전보다 40%가 줄었다. 최근 20년 동안, 1인당 소비증가는 45%에 이르지만, 사회 건강지수에 나타난 삶의 질은 51% 감소했다.”
이제 사람들은 '시간을 절약하는 365가지 방법'(92년 발간된 타임워너 속독 시리즈 중 하나)에 환호하는 대신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피에르 쌍소 지음)에 감동한다. 올해 6월 초 국내에 소개된 이 책은 예상 외로 줄곧 종합베스트셀러 10위 권을 지키며, 밀란 쿤데라의 '느림'이나 버틀랜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과 함께 '느림'의 가치를 새롭게 부각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사소한 것을 털어버리고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책들은 앞으로도 계속 인기를 끌 것이다. '단순하게 더 단순하게'의 기젤라 크레머는 “주말 밤 시끄러운 파티로 보내고, 영혼의 균형을 잡기 위해 월요일 아침 태극권 강좌를 찾는” 현대인의 이중성을 비웃었다. 그런다고 집중력이 강화되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한 시간 일찍 침대에 드는 편이 낫다는 충고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윙윙거리는 복사기와 팩스, 컴퓨터. 동료들과의 대화 중에도 잠시 심호흡을 하고 자신이 조용히 머물 여백을 찾는 여유가 필요하다. 크레머는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몇 분을 즐기고 △저녁 때 적어도 1시간 정도 TV와 라디오, CD플레이어를 끄고 잠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다음날을 위해 힘을 모으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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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느리게 산다는 게 결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쌍소가 주장한 한가로이 거닐기와 집중해서 듣기, 권태, 몽상, 글쓰기와 같은 행위는 다음 행동을 위한 에너지와 상상력을 만들어준다. 쌍소는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또한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빠름과 느림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야말로 시간을 가장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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