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불패신화?...미분양 물량의 증가와 의미
미분양 물량이 전국적으로 10만 가구를 넘었다. 미분양 물량 공식 집계의 신빙성을 전제하면 실제 수치는 이보다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여하튼 팔리지 않고 남은 물량이니 1차적인 책임은 업체에게 있다. 그러나 팔리지 않는 곳에 지은 주택의 미분양은 시장 정상화와 관련 없다는 지적 또한 적절하지 않다. 미분양의 내용이 문제다. 수도권은 재료가 없으면, 지방은 재료가 있어도 미분양이 발생하고 있다. 미분양의 양극화 심화가 주택시장과 주택정책의 구조적인 문제로 누적되고 있는 양상이다. 미분양 물량의 증가는 한국판 서브프라임 문제로 비하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파주 신도시의 청약은 마무리 되었지만 3순위 미분양으로 나름의 지명도에 타격을 입었다. 파주 신도시의 경우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는 까닭에 분양가격이 낮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3순위 미분양은 다소 의외였다. 은평뉴타운도 마찬가지다. 전체적으로 일부 평형의 높은 청약경쟁률에 묻혔지만 청약에 대한 관심이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지금까지 최소한 택지개발사업을 통한 신도시 분양은 어떻든 문제가 없었다.
수도권 신도시 불패신화가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예견된 결과라는 반응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수도권 신도시 아파트 분양에 미분양이 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고 전국적으로 늘고 있는 미분양의 증가는 어떤 시사점을 주는 것일까?
지방의 미분양은 예고되던 바다. 2003년 이후 시장안정을 위해 강화된 각종 규제를 피해 업체가 사업장을 서울과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대거 옮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방에서의 미분양은 이로부터 비롯된 측면이 크다. 수요를 초과한 업체의 공급과잉은 당연히 업체의 문제고 업체의 책임이다. 그러나 과다한 규제로 인해 수요가 억제된 상황에서 공급과잉이 유발됐다면 정부의 "책임 없음"은 다 옳다고 할 수 없다.
수 억대의 주택을 마련하면서 준공된 시점의 완성된 주택을 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견본주택은 마다하고 사이버공간상에서 온라인으로 선택하기를 강요한 판교신도시 및 이외 몇몇 사업장의 청약시스템은 주택구매에 따른 최소한의 편익이 제한된 구매방법이다.
청약가점제의 복잡함도 한 몫 했다. 청약 한번 잘못하면 청약제한을 받는다. 여기에 7년 내지 10년 동안 청약통장 사용을 할 수 없도록 만든 재당첨 금지는 실수요자들에게까지 청약통장을 "실탄"으로 오인시켰다는 지적이다. 분양가상한제 아파트에 당첨될 경우 일정기간 다른 아파트에 청약하지 못하도록 하는 재당첨 금지제도는 수도권(과밀억제·성장관리권역)의 경우 10년(85㎡ 이하)과 5년(85㎡ 초과)을 각각 적용하고 비수도권은 5년(85㎡ 이하)과 3년(85㎡ 초과)을 시행하고 있다.
10년이면 몇 차례의 라이프사이클이 바뀌는 기간이다. 각종 계획의 사이클로 보더라도 단기가 아닌 중장기적 기간에 해당된다. 초등학생을 둔 부모가 청약을 통해 내 집을 마련했다면 대학진학을 목전에 둔 자녀로 성장해 중간에 라이프 사이클(life cycle)상 평수 넓히기를 했어야 할 기간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고 부모의 경우도 최소한 한 두 차례 직장을 옮겼을 기간임을 감안하면 주거이전의 필요성에 따라 소유주택을 처분하고 다른 주택을 구매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하기에는 버거운 기간인 셈이다. 유사한 기간 동안 분양권을 전매하지 하지 못하도록 한 분양권 전매제한 제도 역시 길다.
지방 실수요자의 선택...못 사? 안 사?
수도권에서조차 차별화와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어려움을 얘기할 정도니 지방시장의 어려움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부도난 전국 건설업체 109개사 가운데 63%인 69개사가 지방소재 기업이다. 당연히 미분양물량은 지방에 더 많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2007년 10월말 현재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10만887가구다. 이 가운데 수도권이 9천880가구로 1만 가구 미만인 반면 지방은 9만1천7가구에 이른다.
정부는 35세 이상의 무주택자를 실수요자로 본다. 따라서 정부의 주택구입을 위한 정책적 대상은 이들이다. 그러나 지방 미분양의 해소를 위해서는 이러한 실수요자로는 한계가 있다. 실수요자들이 분양가상한제 등의 실시로 매수시점을 더욱 뒤로 미루고 있다. 여기에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의 대출제한과 재당첨 금지 등의 전매제한이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청약경쟁에 아니 경쟁이 필요 없는 시장에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분양가상한제 이후 예상되는 청약의 편익을 포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은 실수요자라고 하더라도 못사는 게 아니라 안 사는 상황인 것이다. 사고 싶어도 조금 더 있다가 분양가격도 싸고, 경쟁도 치열하지 않고, 대선의 결과에 따라 후보자가 밝힌 구체적인 제도개선 상황까지 감안해서 구매시점을 정해도 된다는 기대감으로 "선택"을 유보시키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대선정국까지 "선택의 필요성"을 상쇄시키는 효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단기적인 수요 증진을 위해서라도 지방의 추가적인 투기과열지구 해제 등이 요구된다. 해제해도 우려할 만한 가수요는 유발되지 않는다. 혹 분양가가 높은 아파트가 여전히 많고, 이것으로 인해 주변 아파트 값이 따라 오르는 부작용이 발생된다고 하더라도 절차상의 과정인 분양가심의위원회를 통과했다면 문제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시장상황으로는 고분양가 아파트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주변 아파트 값이 오르는 상황은 아니다. 어차피 제한된 시장이고 어차피 제한된 수요가 존재하는 까닭에 주변 아파트 가격을 끌어올릴 정도로 시장이 탄력적이지도 못하고 거기에 끌려갈 수요자도 없기 때문이다.
주택가격의 안정이 시장의 안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지금의 상황을 "시장의 안정"으로 보면 안 된다. 지방시장의 경우에는 불안정성이 더 커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2007년 대선을 며칠 앞둔 연말, 수도권과 지방, 대책과 정책 사이에서 우리는 향후 주택정책의 방향 설정에 참고할 만한 중요한 유전적 우성인자를 잉태하고 있다. "비싸면 안 사고, 기다리면 내려가는 가격구조 속에서 시점을 고르는 안목"을 소비자들은 갖추고 있는 것이다. 현재 미분양 물량이 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을 어떤 "시그널(signal)"로 볼 것인지는 정부의 몫이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금융학과 교수/jysuh@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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