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액질의 도마 2.
2. 성경에 나타난 도마의 모습들
공관복음에는 도마의 이름이 나타나지만, 도마의 행적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요한과 각별한 사이였기에, 요한만 세 번 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여기서 그의 점액질 기질을 보여준다.
(1) 요한복음 11장
요11장은 나사로가 부활한 장이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께서 유대로 가시려고 하자, 제자들은 이를 극구 말렸다.
돌멩이로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을 벗어났는데, 그곳에 다시 들어가자니 정말 괴로웠다. 모든 제자들이 이렇게 반응할 때, 유독 도마 한 사람은, (16)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하였다. 우리 한글성경으로 보면, 굉장히 용감해 보인다. 그러나 문맥과 원문을 살피면, 빈정거리는 말투다.
그래서 우리 정서에 맞게 번역하면, “그래 사람이 한번 죽지 두 번 죽어?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 스승이 가자면 가야지!” 이렇게 빈정거리며 따라 간다. 이런 기질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기질이다. 좋고,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 되어져갈 때, 뒤에서 우리는 구시렁거린다.
점액질의 사람들은 대게, 좋은 일에 대해서도 불평하고 원망한다. 그러면서 늘 질질 끌려 다니는 인생, 적극적이지 못한 인생을 산다. 소위 많이 배웠다는 지성인들 가운데도 점액질이 많다. 그들은 항상 비판적이고, 문제 제기를 많이 한다. 불평을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구시렁거리지만,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교회에서 어떤 부정적인 말로 주변을 설득하는 사람,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 믿음이 흔들리게 하는 사람이, 점액질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다.
점액질은 긍정적인 일의 대변인이 되어서, 좋은 일에 앞장을 서기보다는, 불평이 있을 때 불평의 대변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어떤 모임에 모두 불평불만을 가지고 있을 때, 누군가 대표로 불평을 터뜨려 주는 사람이 점액질이다. 이런 사람은 불평을 선동할 가능성이 크다.
처음에 신앙생활을 같이 했던 사람들을 다 떠나보내고, 혼자 남는 사람, 그런 상황을 조장해놓고 주변에 믿음 있는 사람이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이다. 정작 자신은 끝까지 남아 있어 믿음이 좋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의 불평하는 말 때문에, 사람들이 떠나감을 정작 본인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다.
교회를 예로 들면, 우리 교회당도 없는데 무슨 선교냐? 우리 교회가 있어야 선교도 할 수 있잖아? 목사님께서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이렇게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다.
한참 남을 비방해 놓고 나서 “내가 미워서 그런 게 아니야, 다 사랑해서 그런 거야, 내 마음 이해하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의 말을 듣고, 상처를 입을 대로 입었다. 자신은 성실하기에 저가 자리를 지키려고 돌아오지만, 주변 사람들은 이미 실족한 다음이다.
(2) 요14장
예수님께서 모든 사역을 정리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다락방에서 하늘의 진리를 가르쳐 주셨다. 이제 십자가를 지시겠노라고 선언하시자, 제자들은 두려워하자, 두려워하는 그들을 향해 말씀하신다.
(1-4)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너희를 위하여 예배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내 처소에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길을 너희가 알리라”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천국을 예비하신 다음에, 우리들을 다시 영접하겠다고 하셨다. 알 듯 모를 듯한 영적 비밀을 말씀하셨다. 이때 도마는 (5)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라고 하였다.
도마는 주님께서 가신다는 아버지의 집도 모르고, 가는 길도 모르니까, 가시지 말고, 함께 하자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영적인 말씀을 하시는데, 도마는 그 ‘길’을 문자적으로 알았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유하시는 장소가 일정하지 않았다. 거할 장소가 없이, 이곳 저곳으로 돌아다녔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자고 하셨지, 언제 우리가 알고 있고, 정해진 곳으로 가셨나요? 그러니까 우리가 가는 곳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압니까? 이런 말이다. 도마는 영적인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 실제적으로 대답하고 있다.
이렇게 점액질 사람은, 이상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믿음의 놀라운 역사, 영적인 일에 대해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꿈을 말할 때 냉소적이다. 영적인 일을 말할 때, 성경을 보아도 영적으로 해석하지 못한다. 므두셀라가 몇 살 살았고, 12사도의 이름도 잘 외운다.
그러나 주님께서 내게 주신, 영적인 진리에 대해서는 둔하다. 교회 안에서도 교회의 여러 제도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다. 구제를 해도 뜨거운 복음 중심의 구제가 아니라, 효율이 어떤가에 관심이 더 많다. 그러나 영적인 일을 경험하지 못하고, 영적인 일에 같이 흥분하고 기뻐하지 못한다.
막스베버는 신앙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과 일상 생활 사이의 긴장”이라고 했다. 일상 생활에는 강하나 영적인 일에는 약한 사람이 있고, 영적인 일에는 강하나, 일상 생활에는 약한 사람이 있다. 서로 보완하는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성이 탁월하면 그는 기도를 배워야 한다.
기도만 하는 사람은, 일상생활을 배워야 한다. 공부도 하고, 먹고사는 길도 찾아야 한다. 그럴 때 올바른 삶이 될 수 있다. 일상생활만 아니라, 영적인 생활도 배워야 한다. 믿음의 일, 영적인 일을 얼른 깨닫지 못한다. 실질적이기 때문에, 영적인 일에 둔하기 때문이다.
(3) 요20장 : 부활하신 후에 나타나신 주님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피신한 곳으로 찾아오셨다. “평강이 있을 지어다”하시면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흔적인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자 제자들은 기뻐했다(19-20).
제자들은 이어, 성령을 받으라는 축복의 말씀과, 죄사함의 권세를 부여받았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다. 도마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없었기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 평강과 기쁨을 누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후에 도마는 제자들로부터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지만 도마는 믿지 못했다. 한 사람이 말하지 않고, 10명의 제자들이 말했는데도 믿지 않았다. 10명의 제자들이 실성했거나,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본 사람 10명이 보지 못한 1사람의 의심을 해결할 수 없었다. 때론 10명의 사람이 똑똑히 보았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믿지 못하겠지만, 주변 사람들이 많이 믿으면, 그리고 신실한 사람들이 믿으면, 따라서 믿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도마는 너희는 보았다고 하지만, 내가 보지 못했기에, 나는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다른 제자들이 보았다고 하자, 손은 넣어보았냐고 하였다.
(27) 예수님은 도마의 의심하는 말을 들으시고, 네 손을 내 밀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다. 여기서 도마는 깨어진다. 도마는 예수님께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8)라고 고백했다.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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