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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가족 vs 바람난 가족 : 그들이 틀리지 않고 다른 이유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9. 4. 11:27

 

 

 

* 영화 전체를 비교 한 것이 아니라, 가족 형태의 구조에 대해 비교, 비판을 해보았습니다.

 


 ‘틀리다’와 ‘다르다’의 차이를 아는가? 우선, 두 서술어의 공통점을 말해보자면 두 가지 이상을 비교대상으로 놓았던 것이지만 선자는 어느 것을 기준으로 한 채, ‘맞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두 개의 차이를 인정하고 ‘같지 아니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차이점을 우선 언급을 한 것은 지금부터 이야기 할 영화 ‘가족’과 ‘바람난 가족’의 비교를 위해서다. 즉, 어느 가족의 형태가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두 가족의 형태가 어떻게, 왜 다른 것인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 인류의 형태가 모두 다르듯 가정의 형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영화 ‘가족’의 가족의 형태와, ‘바람난 가족’의 형태 중 어느 것을 선호할까? 아마도 대부분이 영화 ‘가족’을 선택 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우리의 조상이 현재까지 이룩해왔었던 전형적인 ‘전통적 이데올로기’를 밑바탕으로 한 가족 형태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을 중심으로 가족, 혈연공동체, 모든 실수를 덮어줄 수 있는 관용 혹은 용서, 사랑과 이해를 가진 가족상이 그에 속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등에서 등장하는 이상적인 안정적 가족 형태이다. ‘가족은 응당 이래야만 한다’라는 법칙이 있는 듯한 이러한 모습은 영화 ‘가족’에서 아주 적절하게 표현해 내고 있다. 갓 출소한 딸과 한 쪽 눈을 잃은 힘없는 아버지의 대립을 중심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둘은 서로에게 뼈아픈 말들을 내뱉지만 그것은 자신을 찌르는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 그것을 서로가 아는지 모르는지 두 캐릭터는 가슴앓이를 할뿐이다. 그렇게 영화는 중반부를 넘어 후반부로 치닫는다. 후반부, 아버지의 백혈병을 알게 된 딸과 조직에서 딸을 빼내려는 아버지의 사투가 벌어진다. 서서히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된 부녀, 아버지의 죽음으로 모든 문제점을 해결이 된다. 아주 극단적인 상황들로 이루어진 영화 ‘가족’은 현실성을 떨어뜨리는 부분이 꽤 크지만 그 대신 우리에게 눈물을 선사한다. 또한, 중요한 것은 그런 극단적인 상황들이 아니라 우리네 가족과 닮아있는 그들의 촌스러운 화법들이라는 것이다. 영화 ‘가족’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즉, 가부장의 희생으로 결국 ‘가부장 적인’ 질서가 완성되는 전통적 가족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아버지는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무심코 지니게 된다. 이는 한국사회의 큰 강점같은 약점인, 한국의 아버지상 - ‘부성이데올로기’의 뿌리가 된다.


그에 반해, 이와 상반된 가족상을 표현하는 영화 ‘바람난 가족’은 불륜, 입양, 불신으로 가득 찬 가족 형태를 아슬아슬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영화 ‘바람난 가족’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모든 불협화음의 요소들이 한데 뭉쳤지만 완성이라도 한듯이 영화 초반을 주름잡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후반부분은 현대가족의 해체주의의 결과를 나타내고 있지만 말이다. 한 가족은 이렇게 구성되어있다. 옆집 고등학생과 바람난 부인, 다른 여자에게서 위로를 받으려는 남편, 입양된 아들, 초등학교 동창과 바람난 시어머니, 자신의 뱃속만을 채우려는 알콜 중독자이자 간암 말기의 시아버지. 제대로 된 불협화음이 아닐 수없다. 그러나 이렇게 툭하고 내던지 가족의 형태는 현대 사회의 가족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곧 알게된다. 바람은 곧 이혼으로 다가오고, 입양된 아들은 정적과 같은 죽음으로, 다른 남자와 오르가즘을 느낄 때 남편은 피를 토하며 죽게 되는 것. 그것들은 현재 이슈거리가 되는 에피소드 혹은 밥 먹듯 벌어지는 해프닝일 뿐이라고 영화는 말하는 듯 하다. ‘바람난 가족’의 가족상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투철한 개인주의’와 ‘단절된 가족의 불화합’이다. 부인도, 남편도, 시어머니도, 시아버지도 모두 각자의 쾌락을 위해 살며 상대방에게 ‘당신’이나 잘하라는 말을 툭 내 뱉는다. 즉, ‘나는 내 식대로 살테니 내 걱정말고 당신은 당신이나 챙겨’라는 소리다. 현대의 가족은 이렇게 나에게 필요한 것을 채우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는 하되, 상대방이 내가 될 수 없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 또한, 남편은 어느 정도의 ‘가부장적인 가족’형태를 지니는 자다. 초반부터 할아버지의 유골무덤에서 구른다든지, 아버지가 아들에게 나쁜 피를 뿜어낸다든지 남성우월주의나 혈연주의, 가부장적 사고를 나타내는 것은 영화 부분 부분에 숨겨져 있다. 그에 반해 부인은 ‘진보적 가족’을 나타내고 있다. 혈연을 중요시 여기지 않고 자식을 입양한다든지,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행위는 반가부장적임을 선포하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일까, 이 두 남녀의 만남은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끝나게 된다. ‘바람난 가족’은 우리에게 남성, 즉 아버지상의 그릇된 양상을 보여주면서 가족의 행복보다는 개인의 추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또한, 과거 어머니상이 하지 못한 의지없이 홀로 일어서는 일, 남편을 아웃시킨 채 주체적인 삶을 살게 되는 일등으로 현대 어머니상과 아버지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 두 영화의 비교가 재미있는 것은 공통점과 차이점에 있는데, 공통점이 즉 차이점이 되고만다. 첫 번째, 공통점은 두 영화 모두 현대사회의 가정을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족’의 ‘전통적 가족’이든, ‘바람난 가족’의 ‘진보적 가족’이든 말이다. 시대는 같지만 너무나도 다른 형식의 가족상을 표현하고 있는 것, 그래서 또한 차이점이 되기도 한다. 두 번째 ‘신뢰와 불신’에 있다. ‘가족’은 서로를 불신하는 부녀가 신뢰로 어려움을 이겨내지만, ‘바람난 가족’은 이 시대 부족함 없어 보이는 가족의 불신이 결국 가족해체로 이르른다. 세 번째 ‘부성 이데올로기’와 ‘반 부성 이데올로기’이다. 부성 이데올로기, 즉 우리가 믿고 따르던 아버지상을 이끌어 가는 것이 ‘가족’이라면, 아버지 또한 개인적 가치추구를 하는 존재로 나타내는 것이 ‘바람난 가족’이다. 마지막으로 ‘사랑받는 대상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영화 ‘가족’은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상대방과 상호관계를 중요시여기는 반면, ‘바람난 가족’은 자신의 사랑을 채우기 위해 상대방과의 만남을 시도한다. 그것은, 현대인들의 부족함을 채우려는 노력이며 만족감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두 가족의 형태를 비판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이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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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유디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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