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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설명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이 고수(북치는 사람)의 장단에 맞추어 창(소리), 말(아니리), 몸짓(너름새)을 섞어가며 긴 이야기를 엮어가는 것을 말한다.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영조 30년(1754)에 유진한이 지은 춘향가의 내용으로 보아 적어도 숙종(재위 1674∼1720) 이전에 발생하였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하고, 조선 전기 문헌에 보이는 광대소학지희(廣大笑謔之戱)가 토대가 되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판소리가 본래 여러 가지 놀이와 함께 판놀음으로 공연되던 것이어서 판놀음이 있었던 신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판소리는 느린 진양조, 중모리, 보통 빠른 중중모리, 휘모리 등 극적 내용에 따라 느리고 빠른 장단으로 구성된다. 고수의 반주는 소리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면서 “얼씨구”, “좋다”, “으이”, “그렇지” 등의 감탄사를 내는데, 이를 추임새라고 한다.
판소리는 순조(재위 1800∼1834) 무렵부터 판소리 8명창이라 하여 권삼득, 송흥록, 모흥갑, 염계달, 고수관, 신만엽 등이 유명하였는데 이들에 의해 장단과 곡조가 오늘날과 같이 발전하였고, 동편제(전라도 동북지역), 서편제(전라도 서남지역), 중고제(경기도·충청도) 등 지역에 따라 나뉜다.
판소리가 발생할 당시에는 한 마당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아서 판소리 열두 마당이라 하여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 배비장타령, 변강쇠타령, 장끼타령, 옹고집타령, 무숙이타령, 강릉매화타령, 가짜신선타령 등 그 수가 많았다. 그러나 현실성없는 이야기 소재와 소리가 점차 길어지면서 충, 효, 의리, 정절 등 조선시대의 가치관을 담은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만이 보다 예술적인 음악으로 가다듬어져 판소리 다섯마당으로 정착되었다.
판소리는 우리나라 시대적 정서를 나타내는 전통예술로 삶의 희노애락을 해학적으로 음악과 어울려서 표현하며 청중도 참여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며 판소리 다섯마당이 모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예능보유자는 춘향가에 김여란·김연수·김소희(본명: 김순옥), 심청가에 정권진, 흥보가에 박녹주·강도근, 수궁가에 정광수(본명: 정용훈)·박초월, 적벽가에 박봉술·박동진·한승호(본명: 한갑주) 등이 인정되었으나, 현재는 한갑주(적벽가), 송순섭(적벽가), 오정숙(춘향가), 성우향(본명: 성판례/ 춘향가), 성창순(심청가), 조상현(심청가), 박송희(본명: 박정자/흥보가)가 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다.
판소리 공연의 빠질 수 없는 고법(鼓法:북치는 장단기법)은 197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9호로 별도 지정되었으나, 1991년 판소리에 통합되었고 현재 김성권(본명 김성래:金成來), 정철호가 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다.
※ 보충설명
판소리는 한 사람이 긴 이야기를 노래로 부르면서 중간중간에 몸짓(발림)도 하고 말(아니리)도 섞는 성악의 한 분야이다.
판소리가 언제부터 불려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조선 영조 30년에 유진한(柳振漢)이 지은 만화집 춘향가(晩華集春香歌)가 오늘날의 춘향가와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숙종 이전에 판소리가 발생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조선전기 문헌에 보이는 광대소학지희(廣大笑謔之戱)가 판소리의 모태가 되었을 것으로 봐서 조선전기에 원초(原初) 판소리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하며, 판소리를 부르던 창우(倡優)들이 신라 때부터 팔관회(八關會)나 나례(儺禮)에서 가무백희(歌舞百戱)를 벌였던 것을 두고 신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 신라의 선악(仙樂)이나 창악(倡樂)에 판소리의 근원을 찾기도 하지만 분명히 밝혀진 바는 없다.
판소리 명창으로 가장 오래된 우춘대(禹春大), 하한담(河漢潭)이 영조정조 때 원초(原初) 판소리를 부른 것으로 보이며 순조 때에는 권삼득(權三得), 송흥록(宋興祿), 모흥갑(牟興甲), 염계달(廉季達), 박유전(朴裕全)과 같은 명창들이 나와서 판소리 조(調)와 장단(長短)을 오늘날의 판소리와 같게 구성하여 판소리의 음악적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철종 때에는 박만순(朴萬順), 이날치(李捺致), 김세종(金世宗), 정창업(丁昌業), 송우룡(宋雨龍)과 같은 명창들에 의하여 판소리는 크게 확장되었으며, 고종 때 김창환(金昌煥), 이동백(李東伯), 송만갑(宋萬甲), 정정렬(丁貞烈)과 같은 명창들에 의하여 판소리는 오늘날과 같이 밀도있는 음악성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판소리가 발생할 당시에는 한 마당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아서 한 가객(歌客)이 많은 종류의 이야기를 판소리로 부를 수 있었기 때문에 판소리의 종류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 배비장타령, 변강쇠타령, 장끼타령, 옹고집타령, 무숙이타령, 강릉매화타령, 가짜신선타령 등 열두 가지를 추려서 판소리 열두 마당이라 일컬었다. 그러나 점차 판소리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한 가객이 많은 소리를 부르기가 벅차게 되자, 판소리 다섯마당이라 하여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만이 전승되고 나머지는 없어져버렸다.
판소리 다섯 마당은 모두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으며 예능보유자는 춘향가에 김여란·김연수·김소희(본명: 김순옥), 심청가에 정권진, 흥보가에 박녹주·강도근, 수궁가에 정광수(본명: 정용훈)·박초월, 적벽가에 박봉술·박동진·한승호(본명: 한갑주) 등이 인정되었으나, 현재는 한갑주(적벽가), 송순섭(적벽가), 오정숙(춘향가), 성우향(본명: 성판례/ 춘향가), 성창순(심청가), 조상현(심청가), 박송희(본명: 박정자/흥보가)가 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다.
판소리는 고수(鼓手) 한 사람이 북장단을 쳐 반주하는데 느린 진양조, 중모리, 보통 빠른 중중모리, 빠른 자진모리, 휘모리 그밖에 엇중모리, 엇모리가 있어서 판소리의 극적 내용의 긴박과 이완에 따라 느리고 빠른 장단을 가려 짠다. 그리고 슬픈 계면조(界面調), 화평스러운 평조(平調), 웅장한 우조(羽調), 씩씩한 설렁제(드렁조), 경쾌한 경드름(경조(京調)) 등을 판소리의 극적 내용의 희노애락에 따라 적절하게 가려 쓴다.
판소리는 사설(辭說)의 극적 내용과 음악이 융합되는 훌륭한 극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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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흥보가)
▒ 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 32 호
▒ 지정연월일 : 2004.1.15
▒ 보 유 자: 이옥천
▒ 전 승 지: 서울특별시

판소리는 조선 후기에 민중문화가 융성하면서 생성된 서민 예술의 하나로, 서민의 삶을 구체적으로 반영시켜 노래한 창악(唱樂)이다. 조선 후기의 민중 회화가 사실주의적 기풍을 지녔던 것처럼, 판소리 역시 사설과 창곡뿐만 아니라 지향한 정신까지 사실적이었다.
판소리는 광대가 병풍을 두르고 돗자리를 펼친 마당이나 공연장에서 고수의 북 반주로 짧게는 세시간, 길게는 여덟시간 정도 걸리는 긴 이야기를, 몸짓을 섞어 가며 흥미롭게 노래하는 판의 예술이다. 연행하는 형태로 보자면 음악극의 모습이기도 하며, 담고 있는 내용으로 보자면 이야기를 연극으로 보여주는 서사극이기도 하다. ‘판’에서 이야기와 노래와 연행이 함께 이루어지는 종합 예술의 형태가 바로 판소리인 것이다.
판소리는 애초에 ‘소리’로 범칭되었으며, 타령(打令), 잡가(雜歌), 광대소리, 극가(劇歌), 창극조(唱劇調) 등의 용어로도 통용되었다. 원래 판소리는 완강한 틀로 짜여져 있기 때문에 쉽게 변화하지 않은 채 전승되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공연 현장에서 관중과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즉흥성을 도입하여 원래 짜여진 판의 내용이나 곡조와는 다른, 새로운 요소를 삽입하여 부르기도 한다.
판소리 창자는 우선 훌륭한 소리꾼으로서 좋은 목을 타고나야 되며, 오랜 훈련을 통하여 완성된 성음을 구사해야 한다. ‘득음(得音)’은 판소리에서 필요로 하는 음색과 여러 가지 발성의 기교를 습득하는 것을 가리킨다. 판소리는 목소리를 표현 매체로 사용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목소리의 특징을 설명하는 ‘목’, ‘성음(聲音)’ 등의 용어로 소리의 특징과 완성도를 규명하고 있다. ‘성음’은 명창이 내는 소리의 특질을 해명하는 용어로, ‘통성’, ‘수리성’, ‘천구성’, ‘떡목’ 등의 표현으로 소리의 등급과 완성도를 표현한다. ‘통성’은 뱃속에서 바로 위로 뽑아 내는 호방한 소리를 말하며, ‘수리성’은 쉰 목소리와 같이 껄껄하게 나오는 소리를 의미한다. ‘천구성’은 거칠고도 맑으면서 높은 음역으로 내는 슬픈 선율의 소리를 말하며, 가장 좋은 ’성음’으로 친다.
판소리 명창은 연희를 보여주는 배우로서, 소리뿐 아니라 몸짓을 통해서도 판소리를 연기한다. 판소리 광대가 소리를 하면서 보여주는 몸짓이나 연기를 ‘너름새’와 ‘발림’이라고 한다. ‘너름새’는 사설이 그려내고 있는 장면을 춤이나 동작을 통하여 보조적으로 보여주는 행위이다. 부채를 펴서 박을 타는 흉내를 내거나, 부채를 떨어뜨려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비양을 하듯, 너름새는 사실적이기도 하지만 상징화되고 양식화된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신재효는 그의 <광대가>에서 광대가 갖춰야 할 요건으로 ‘인물치레’, ‘사설치레’, ‘득음’, ‘너름새’의 네 가지 덕목을 꼽고, 그 가운데서도 순식간에 천태만상을 보여주기 위하여 ‘너름새’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판소리는 18세기 이후부터 그 형태를 갖추면서 서민예술로 성장하였으며, 지배 체제를 풍자하고, 신분 제도의 모순을 지적하며, 경제적 궁핍의 부당성을 폭로하였다. 19세기에 이르면 판소리는 서민층뿐 아니라 양반층과 왕족까지도 즐기는 온 민족의 예술이 되었다. 19세기 전반의 이름난 명창으로 권삼득·고수관·송흥록·염계달·모흥갑 등이 있다. 명창들은 자신이 계발한 독창적인 더늠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을 자신의 후배와 제자들에게로 전수했다. 판소리는 동편제와 서편제, 그리고 중고제로 유파를 분화하여 판소리의 미학적 성격을 달리하면서 명창을 배출하고 유파간에 서로 경쟁하였다.

이옥천은 박녹주 명창에게서 동편제"흥보가"를 온전히 전수받았으며, 역시 박봉술 명창에게 동편제"적벽가"와 "수궁가" 전판을 전수받았다. 박녹주 명창에게서 "춘향가"의 3/4정도를, 정광수 명창에게 "적벽가" ‘삼고초려 대목’을 전수받았다. 어려서 김향란 명창에게서 전수받은 "심청가"까지 포함시키면 판소리 5바탕을 모두 구사할수 있는 명창이라 할 수 있다.
동편제 송흥록 → 송우룡 → 송만갑 → 김정문 → 박녹주 → 이옥천, 박송희
이옥천의 성음은 박녹주 명창의 성음과 소리특징을 닮았다. 박녹주 명창의 목구성의 특징인 통성과, 감는 목, 졸라떼는 목 등을 흡사하게 구사한다. 특히 이옥천은 박녹주제 <흥보가>의 탁월한 계승자라 할 수 있다. 정확한 발음구사와 적절한 장단운용이 돋보이며. 발림이나 버슴새가 우아하여, 판에 어울리는 탁월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자료 : 대광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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