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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 강릉단오제-1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9. 21. 08:58

강릉단오제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
명     칭 강릉단오제(江陵端午祭)
분     류 무형유산 / 전통연행/ 의식/ 공동체의식
수량/면적
지 정 일 1967.01.16
소 재 지 강원 강원전역 
시     대
소 유 자
관 리 자 강릉단오제보존회
설     명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높은 날’또는 ‘신 날’이란 뜻의 수릿날이라고도 한다. 강릉단오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축제로, 마을을 지켜주는 대관령 산신을 제사하고, 마을의 평안과 농사의 번영, 집안의 태평을 기원한다. 강릉단오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매년 3, 4, 5월 중 무당들이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3일동안 굿을 벌였다는 남효온(南孝溫)의 문집(『추강냉화(秋江冷話)』) 기록과, 1603년(선조 36년)에 강릉단오제를 구경하였다고 기록한 허균(許筠)의 문집(『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등이 있다.

마을사람들은 단오제를 드리지 않으면 마을에 큰 재앙이 온다고 믿어 대관령서낭당에서 서낭신을 모셔와 강릉시내의 여서낭신과 함께 제사를 드리는데, 대관령산신은 김유신 장군으로 전해지며, 단오제에서 주체가 되는 서낭신은 범일국사이고, 여서낭신은 강릉의 정씨처녀로 전해진다.

단오제는 신에게 드릴 술을 담그면서 시작된다. 대관령산신당에서 제사를 올리고 신성시하는 나무를 모시고 내려와 국사성황당을 거쳐 홍제동에 있는 국사여성황당에 모셨다가 행사 전날 저녁 영신제를 지내고 남대천 백사장에 마련된 제단에 옮겨 모심으로 강릉단오제의 서막을 올린다. 단오장에서는 5일간 아침, 저녁으로 제를 올리고 굿을 하며 농사의 번영과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며 모두 한마음이 되어 제를 올린다. 이밖에 양반과 소매각시, 장자머리, 시시딱딱이가 가면을 쓰고 말없이 관노가면극놀이를 하거나, 그네타기, 씨름, 농악경연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된다. 단오 다음날에 신성시하는 나무를 태우고 서낭신을 대관령으로 모시면서 단오제는 막을 내린다.

강릉단오제는 제관의 의해 이루어지는 유교식 의례와 무당들의 굿이 함께 거행되는 동해안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마을축제로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고 난장이 크게 벌어진다. 특히 관노가면극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무언극으로 대사없이 몸짓으로 관객을 웃기고 즐겁게 한다. 민간신앙이 결합된 우리나라 고유의 향토축제이며, 지역주민이 화합하고 단결하는 협동정신을 볼 수 있다.

강릉단오제는 그 문화적 독창성과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아 2005년 11월 25일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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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설명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높은 날’ 또는 ‘신 날’이란 뜻의 수릿날이라고도 한다. 강릉단오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축제로, 마을을 지켜주는 대관령 산신을 제사하고, 마을의 평안과 농사의 번영, 집안의 태평을 기원한다. 강릉단오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매년 3, 4, 5월 중 무당들이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3일 동안 굿을 벌였다는 남효온(南孝溫)의 문집(『추강냉화(秋江冷話)』) 기록과, 1603년(선조 36년)에 강릉단오제를 구경하였다고 기록한 허균(許筠)의 문집(『성소부부고(惺所覆부藁)』) 내용으로 보아 약 400년 전으로 추정된다.

마을사람들은 단오제를 드리지 않으면 마을에 큰 재앙이 온다고 믿어 대관령서낭당에서 서낭신을 모셔와 강릉시내의 여서낭신과 함께 제사를 드리는데, 대관령산신은 김유신 장군으로 전해지며, 단오제에서 주체가 되는 서낭신은 범일국사이고, 여서낭신은 강릉의 정씨처녀로 전해진다.

단오제는 신에게 드릴 술을 담그면서 시작된다. 대관령산신당에서 제사를 올리고 신성시하는 나무를 모시고 내려와 국사성황당을 거쳐 홍제동에 있는 국사여성황당에 모셨다가 행사 전날 저녁 영신제를 지내고 남대천 백사장에 마련된 제단에 옮겨 모심으로 강릉단오제의 서막을 올린다. 단오장에서는 5일간 아침, 저녁으로 제를 올리고 굿을 하며 농사의 번영과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며 모두 한마음이 되어 제를 올린다. 이밖에 양반과 소매각시, 장자머리, 시시딱딱이가 가면을 쓰고 말없이 관노가면극놀이를 하거나, 그네타기, 씨름, 농악경연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된다. 단오 다음날에 신성시하는 나무를 태우고 서낭신을 대관령으로 모시면서 단오제는 막을 내린다.

강릉단오제는 제관에 의해 이루어지는 유교식 의례와 무당들의 굿이 함께 거행되는 동해안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마을축제로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고 난장이 크게 벌어진다. 특히 관노가면극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무언극으로 대사없이 몸짓으로 관객을 웃기고 즐겁게 한다.

강릉단오제는 민간신앙이 결합된 우리나라 고유의 향토축제이며, 지역주민이 화합하고 단결하는 협동정신을 볼 수 있다.

※ 보충설명

강릉에는 동해안에서 가장 큰 향토신제(鄕土神祭)로 단오제가 전승되어 있다. 강릉은 영동지방 큰 도시의 하나로서 옛날부터 행정, 경제, 농업의 중심지였고 또 바다에 접해 있어서 인근에서는 어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음력으로 5월 5일 단오일을 맞이해서 대관령 서낭당에서 서낭신을 모셔다가 강릉 시내에서 제사를 지낸다. 대관령 서낭신은 허균(許筠)의 『성소부부고(惺所覆부藁)』에는 ‘김유신 장군(金庾信 將軍)’이었으나 근자에는 강릉 태생의 범일국사(泛日國師)가 죽어서 서낭신이 되었다고 전하며, 강릉 정씨(鄭氏) 집 딸이 서낭신의 부인이 되었다고 해서 여서낭이라 부르고 있다. 그래서 단오제 때에는 대관령 서낭당에 있는 서낭을 모셔다가 시내에 있는 여서낭당에 며칠 동안 머물게 한 다음 서낭 내외분을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게 된다.

단오제를 지내기 위해서 임원을 선출하는데 이 임원들은 자신이나 가족에게도 부정한 일이 없는 사람을 선정하고 있으며 헌관(獻官)은 관례적으로 지방행정의 책임자인 시장, 군수, 경찰서장 또는 교육장이 맡고 있다. 강릉 단오제가 큰 향토신사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지방관원에 의해서 주관되고 여기에 지방민들이 참여하여 왔다.

단오제의 본제는 음력 5월 5일 단오날에 거행하지만 그 준비는 3월에서부터 시작된다. 3월 20일에 제주(祭酒)를 담그고 4월 1일을 초단오(初端午)라 해서 헌주(獻酒)하고 무악(巫樂)이 있으며 4월 8일은 재단오(再端午)라 해서 역시 헌주와 무악이 있다. 4월 14일에 임원과 시민들은 서낭신을 모시러 강릉을 떠나 대관령으로 향하며 4월 15일 삼단오(三端午)에 대관령 서낭신과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여서낭당으로 서낭신을 모셔온다. 4월 27일은 사단오(四端午)이므로 무악이 있고 5월 1일은 오단오(五端午)로 본격적으로 굿이 벌어지고 관노(官奴)들에 의해서 가면희(假面戱)가 시작되며 화개(花蓋)를 메고 동네를 한바퀴 돈다. 5월 4일을 육단오(六端午)라고 해서 관노가면희(官奴假面戱)와 무악이 있고 5월 5일은 칠단오(七端午)로 본제(本祭)를 지내고 관노 가면놀이가 있어 제사와 굿의 절정에 이른다. 5월 6일은 팔단오(八端午)라고 해서 소제(燒祭)를 지내고 서낭신을 대관령까지 모셔 가는 봉송(奉送)의 의식이 있다. 이것으로써 3월 20일부터 약 50일에 걸친 단오제가 막을 내린다.

단오제의 목적은 제화초복(除禍招福)으로 마을 사람들의 생활안정을 기원했다. 즉 풍년이 들고 풍어를 이루며 질병이 없이 평안한 생활을 소원하여 제사를 지냈다. 또 강릉에서 서울로 오려면 대관령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옛날에는 호환(虎患)에 대한 산로안전(山路安全)을 비는 목적도 있었다.

강릉 단오제에 관한 내용은 남효온(南孝溫)의 문집(1454년)과 허균의 문집(1603년)에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들을 통해 강릉단오제가 당시에도 큰 행사였으며, 백여명의 무당이 굿을 하였다고 전해오는 점을 통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단오제 때에 관노들에 의해서 무언극(無言劇)인 관노가면놀이(官奴假面놀이)가 있어 특징을 이루고 있다.





관련 자료 

http://kr.blog.yahoo.com/gjtmsla1000/4682.html?p=1
 

단오는 일명 수릿날[戌衣日·水瀨日], 천중절(天中節), 중오절(重午節), 단양(端陽)이라고도 한다. 단오의 '단(端)'자는 첫번째를 뜻하고, '오(午)'는 다섯의 뜻으로 통하므로 단오는 '초닷새'를 뜻한다. 중오는 오(五)의 수가 겹치는 5월 5일을 뜻하는 것으로 양기가 왕성한 날로 풀이된다.

음양사상(陰陽思想)에 따르면 홀수[奇數]를 '양(陽)의 수' 라 하고, 짝수[隅數]를 '음(陰)의 수' 라 하여 '양의 수'를 길수(吉數)로 여겼다. 예컨대 전통사회의 절일(節日)로서 설(1월 1일)·삼짇날(3월 3 일)·칠석(7월 7일)·중구(9월 9일) 등이 있는데, 이러한 속절은 '양수(陽數)'를 '길수(吉數)'로 여기는 기수민속(奇數民俗)들이다. 이러한 기수민속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수릿날이라고 부르게 된 유래는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5월조의 기록에 전한다. 그 기록에 의하면 이 날 쑥떡을 해 먹는데, 쑥떡의 모양이 수레바퀴처럼 만들어졌기 때문에 '수리'란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또 수리란 고(高)·상(上)·신(神) 등을 의미하는 우리 의 고어(古語)인데, '신의 날', '최고의 날'이란 뜻에서 불리워졌다고도 하며, 일설에 의하면 단오의 유래와 더불어 중국의 초(楚)나라 사람 굴원(屈原)이 수뢰(水瀨)에 빠져 죽었다 하여 수릿날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단오의 유래는 중국 초나라 회왕(懷王)때에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굴원(屈原)이라는 신하가 간신들의 모함에 자신의 지조를 보이기 위하여 멱라수[汨羅水]에 투신자살하였는데, 그날이 5월 5일 이었다. 그후 해마다 굴원을 위하여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단오가 되었다고 한다.

입하(立夏)와 소만(小滿)을 지나 음력 오월(五月)이 되면 태양의 열기가 뜨거움을 더해 간다. 오월의 절기(節氣)로는 망종(芒種)과 하지(夏至)를 들수있다. 절기는 태양의 운행에 기초를 둔 것 이며, 농사력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예컨대 망종은 보리나 벼와 같이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 을 거두거나 모를 내는 절기이며, 하지는 낮시간이 가장 긴 절기를 말한다. 이 시기의 농사력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오월조의 농사관련 부분에 잘 나타난다.

문앞에 터를 닦고 타맥장하오리라
도리깨 마주서서 짓내어 두드리니 잠농을 마를 때에 사나이 힘을 빌어
누에섭도 하려니와 고치나무 장만하소 오월오일 단오날 물색이 생신하다.
외밭에 첫물따니 이슬에 젖었으며 모찌기는 자네하소 논심기는 내가 함세
들깨모 담배모는 머슴아이 마타내고 가지모 고추모는 아이딸 너 하여라.
맨드람 봉선화는 네 사천 너무마라.

오월은 여름철 세시풍속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대표적인 명일로는 5월 5일 '단오날'을 들 수 있다. 단오날은 고려시대의 9대 명절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설날, 한식, 추석과 함께 4대 명절 에 속하였다. 단오는 일년 중에서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이라 해서 큰 명절로 생각하여 여러가지 풍속과 행사가 행해졌다. 전통사회에서 농가의 부녀자들은 '단오장(端午粧)'이라 하여 창포뿌리를 잘라 비녀 로 만들어 머리에 꽂아 두통과 재액(災厄)을 막고, 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아 윤기를 더하게 하였다.
또 단오날 새벽 상추밭에 가서 상추잎에 맺힌 이슬을 받아 분을 개어 얼굴에 바르면 버 짐이 피지 않고 피부가 고와진다고 한다. 남자들은 단오날 창포뿌리를 허리에 차고 다니는데, 이는 벽사( 邪)의 효험을 기대하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단오날 중에서도 오시(午時:오전 11시∼오후 1시)가 가장 양기가 왕성한 시각으로 생각하여 전통사회의 농가에서는 약쑥, 익모초, 찔레꽃 등을 따서 말려 두기도 한다. 말려둔 약쑥은 농가에서 홰를 만들어 일을 할 때에 불을 붙여놓고 담뱃불로도 사용하기도 한다. 또 오시에 뜯은 약쑥을 한다발로 묶어서 대문 옆에 세워두는 일이 있는데, 이는 재액을 물리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농가에서는 대추풍년을 기원하기 위하여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놓는 습속이 있는데, 이를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라 한다.


단오의 대표적인 놀이로는 그네뛰기와 씨름을 들 수 있다. 그네뛰기는 단오날 여성들의 대표적 인 놀이이다. 조선 후기의 화가 신윤복의 '단오풍정'을 보면 한복을 차려 입은 부녀자들이 치마폭 을 바람에 날리며 하늘로 치솟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와 쌍벽을 이루는 대표적인 남성들의 놀이로 씨름대회가 있다. 씨름대회에서 이기는 사람에게는 관례로 황소를 상품으로 주는데, 경기방 식은 요즘과 같이 토너먼트식이 아니라 도전자들을 모두 이겨 상대자가 없게 되면 우승을 하게 된다.
한편 지역민들의 일체감을 고취시키는 의례로서 '단오제'와 '단오굿'을 들 수 있다. 예컨대 강원도 강릉지방의 강릉단오굿, 경남 영산의 문호장굿, 경북 자인의 한장군놀이 등이 있는데, 이러한 의례들은 각종 놀이 및 행사들과 접목되어 지역민의 축제형식을 띠고 있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5월 조의 기록에 의하면 "궁중의 내의원(內醫院) 에서는 옥추단(玉樞丹)과 제호탕(題湯)을 만들어 왕에게 진상하였다.", "공조(工曹)에서는 단오 선(端午扇)을 만들어 왕에게 진상하였다."는 궁중풍속이 전한다.

제호탕
은 한약재를 꿀에 섞어 달 인 약으로 더위가 심한 여름철 건강을 유지하는 데
사용하였으며, 옥추단은 일종의 구급약으로 여름철 곽란이 났을 때 물에 타서 마신다.
 

부채
는 더위를 식히기 위한 도구로 단오 무렵이면 더 위가 찾아오니, 이날 부채를 만들어 왕에게 진상한 것을 '단오선'이라고 하였다. 전통사회에서 단오의 세시풍속은 더운 여름철의 건강을 유지하는 지혜와 신체단련을 위한 놀 이, 재액을 방지하기 위한 습속, 풍농을 바라는 의례가 주를 이루고 있다.

단오의 시절음식으로는 수리떡과 약떡이 있다.《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기록에 의하면 "이 날은 쑥잎을 따다가 찌고 멥쌀 가루 속에 넣어 반죽을 하여 초록색이 나도록 하여 이것으로 떡을 만든다. 그리고 수레바퀴 모양으로 빚어서 먹는다."라는 풍속이 전한다. 이것이 바로 수리떡을 가리키는 것이다.

약떡은 전라남도 지역에서 전하는 시절음식이다. 전라남도 지역에서는 떡을 하는 예가 잘 없으나, 떡을 할 경우에 5월 4일 밤 이슬을 맞혀 두었던 여러 가지 풀을 가지고 단오날 아침에 떡을 해 먹는데, 이를 약떡이라고 한다.

앵두가 제철인 단오무렵이면 앵두화채를 만들어 먹기도 하며, 아이들의 주전부리로 옥수수나 쌀 등을 튀겨 주기도 한다. 또 이 날은 새 쑥을 넣어 만든 떡으로 차례를 지내는 것이 상례이다. 제주도에서는 보릿가루에 누룩을 썩어서 부풀게 만든 기루떡과 곤떡·새미떡·인절미·표적·율적·해어·실과 등을 제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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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너와집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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