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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설명
안동 차전놀이는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안동지방에서 행해지던 민속놀이의 하나로 동채싸움이라고도 부른다. 유래에 대하여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후백제의 견훤과 고려 태조 왕건의 싸움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이 놀이를 위해 연말이면 안동 근처에서 적당한 나무를 미리 골라 두었다가 산신에게 고사를 지내고 나무를 베어 운반한다. 동채의 크기나 견고성이 싸움의 승패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동채를 만들 때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대문을 잠그고 만든다. 마을을 동서로 나누어 편을 가르는데 거주지가 아닌 태어난 곳을 위주로 편을 나누기 때문에 때로는 부부간에도 편이 다를 수 있다. 대보름날이 되면 동서 양편이 대치하고 서서 농악으로 흥을 돋우고, 동채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기세를 올린다. 동채 위에는 대장이 올라 타고 떨어지지 않도록 왼손으로는 끈을 쥐고 오른손으로는 동채를 멘 사람들을 지휘한다. 동채 앞에서 힘센 장정들이 무리를 이루어 팔짱을 끼고 적과 부딪쳐 서로 어깨로 밀어 길을 낸 뒤, 동채가 밀고 들어가 상대방의 동채를 눌러 땅에 닿게 하면 이기게 된다. 하지만 싸움 도중에 자기 편이 유리한 순간이라도 적의 머리꾼이 쓰러져 위기에 처하게 되면 즉시 후퇴하여 구출하고 다시 승부겨루기를 한다.
안동 차전놀이는 남자들의 집단놀이를 한층 세련되게 향상시킨 모의전투놀이이며, 우리민족의 흥겨운 민속놀이로 안동지방 특유의 상무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동부가 이기면 동부에 풍년이 들고, 서부가 이기면 서부에 풍년이 든다고 믿어 농경민의 풍년기원을 바탕으로 한 농경의례놀이라 할 수 있다.
※ 보충설명
경상북도 안동에는 향토놀이로서 차전놀이가 전하는데 일명 동채 싸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서 동채놀이가 벌어진다. 동채놀이를 하기 위해서 연말을 앞두고 미리 사람을 시켜 안동 인근에서 동채목을 물색한다.
동채는 길이 10여 미터쯤 되는 튼튼한 참나무 두 개를 베어다 만드는데, 안동골 안에 없을 때에는 영양군 근처에까지 가서 구해왔다고 전한다. 새해를 맞이해서 정월 4, 5일경에 제관(祭官)이 정장을 하고 목수를 대동하고 나무를 베러 간다. 산에 이르러 우선 산신에게 고사를 하고 나무를 베어 정중하게 운반하는데 인근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힘을 모은다. 옛날에는 원님이 나와서 직접 지휘했다고 한다. 나무 운반이 끝나면 동채를 만드는데,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대문을 잠그고 만든다. 동채의 크기나 견고성이 싸움의 승패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알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상원(上元)날이 되면 안동시내가 동서로 갈라져 두 편이 서로 동채를 메고 백사장이나 넓은 보리밭으로 나간다. 서로 대치하고 서서 동채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환성을 지르면서 기세를 올린다. 이때 시내의 청장년들은 거의 모여들었다고 한다.
동채 위에는 대장이 정장을 하고 올라타 떨어지지 않도록 왼손으로 끈을 쥐고 오른손으로 동채 멘 사람들을 지휘한다. 동채를 멘 사람들은 동채꾼이고 동채 앞에서 힘이 센 장정들이 무리를 이루어 팔짱을 끼고 적과 부딪쳐 서로 어깨로 민다. 상대방을 밀어젖혀 길을 내어 동채를 밀고 들어가 상대방 동채를 눌러 땋에 닿도록 하면 승부가 나는 것이다. 그러나 승부는 좀처럼 쉽게 나지 않고 몇 번이고 전진 후퇴를 하게 되는데 동채 위에 있는 대장이 사태를 잘 판단해서 전진 후퇴를 지시한다. 수백 명 때로는 수천 명이 모여 서로 밀고 엎치락뒤치락하기 때문에 부상할 위험성도 있으나 동채 싸움에서는 손을 쓰지 못하고 오직 어깨로 미는 것만 허용되어 있어서 부상자는 거의 없다.
동채싸움을 할 때에는 동부와 서부로 편을 가르는데 출생지를 위주로 해서 편을 짜기 때문에 때로는 부부간에도 편이 다를 수가 있다. 이 날만은 임시로 출생지 편을 들어 응원하게 된다.
동채싸움의기원을 고증할 문헌은 없으나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싸운 고사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청장년들이 정정당당하고 용감하게 대장의 지휘에 의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상무정신을 나타내는 민속놀이이다. 동체 앞머리를 높이 쳐들고 전진하는 모습에서 당당하고 진취적인 기상을 느낄 수 있다.
- 먼저 더블 클릭 하이소 -
* 차 전 놀 이 *
동채싸움이라고도 한다.
경상북도 안동지방에서 줄다리기와 함께 집단적으로 행한 큰 놀이였다.
외바퀴 수레를 만들어가지고 각 동네별로 편을 짜서
서로 앞으로 밀고나가면서 싸우는 것으로서 차전에 패하여
쫓겨가는 편에는 그해 흉년이 든다고 한다.
경기도 가평의 풍습도 이와 같다"라고 하여 놀이의 기원이 풍요를
점치는 것과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문헌의 기록에는 없으나
경상북도 안동지방에서는 동채싸움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차전이 전승되었다.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차전은 태백산 마루를 타고 춘천과 안동을 연결하는
영서 일대의 고유한 놀이로서 상당히 일찍부터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모여라 ! 모여 ~
마을끼리 차전이 붙으면 기력이 왕성한 청장년들이 서로 힘껏 싸웠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대동단결하여 응원하면서 겨루었다.
1968년도
경상북도 안동지방의 동채싸움이라고 부르는 차전놀이에서 동채는
초헌 대신에 굵은 서까래 정도의 동채 2개를 십자(+)형으로 엇갈려놓고
중간의 교차점을 쇠줄로 묶은 다음, 그 위에 1명의 지휘자가 타고 있다.
모 여 라 ~ !
동부와 서부로 나눈 각 편의 대장이 영기(令旗)를 들고 지휘하는 가운데
일동이 함성을 지르면서 풍물에 맞추어 상대편을 제압한다.
각 편의 이름을 쓴 깃발과 전필승(戰必勝)이라고 쓴 깃발을 들고 기세를 올린다.
1969년에는 '사단법인 안동차전놀이 보급회'가 설립되고
이 해에 안동 차전놀이가 중요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면서 차전놀이의 대표격이 되었다.
우 샤 ! 우 샤 !
안동차전놀이의 유래는 통일신라 말에 후백제(後百濟)의 왕 견훤(甄萱)이
고려 태조 왕건과 자웅을 겨루고자 안동으로 진격해왔을 때
와 ~ !
이곳 사람들은 견훤을 낙동강 물속에 밀어 넣었는데 이로 말미암아
팔장을 낀 채 어깨로만 상대편을 밀어내는 차전놀이가 생겼다고 한다.
서 부 야 ~ !
놀이는 마을단위로 진행되었는데, 온 마을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공동체 행사였다.
동 부 야 ~ !
뒤 로 ~, 뒤로~
강원도에서는 외바퀴수레를 만들어 이 동네 저 동네 편을 갈라
양편이 서로 밀어서 밀리는 쪽이 지는 것으로 했다.
좌로 ! 좌로 돌격~ 하라 !
우로~ 밀어 붙여라 ~!
힘센 사람들이 동채를 어깨에 메고 싸우는 싸움이다.
돌격 하라~ !
군(郡) 대항으로 많은 사람이 모여 편을 나눠 집단적인 놀이를 펼쳤다.
더,,, 더,,,, 더 올려라 ~!
동채 머리에는 고삐를 매어 대장이 잡고 지휘할 수 있게 하고
판자 뒤에는 나무를 X자 모양으로 하여 4귀를 체목에 묶어
동채가 부서지거나 뒤틀리지 않게 한다.
더 ~ 올 려 라~ !
또 다른 전설에는 견훤이 쳐들어왔을 때
이 고을 사람인 권행(權幸)·김선평(金宣平)·장정필(張貞弼)(이들을 모셨다.
여 서 ~ !
결 판 ~ !
내 자 ~ !
3태사묘가 안동에 있어 지금도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이 짐수레와 같은
수레 여러 개를 만들어 타고 이를 격파한 데서 비롯한 놀이라고도 한다.
1972년도
놀이는 먼저 부정을 타지 않게 정성껏 베어 온
길이 20∼30척의 참나무를 X자 모양으로 묶어 동채를 만들고
1976년도
끈으로 단단히 동여맨 다음,
가운데에 판자를 얹고 위에 방석을 깔아 동여맨다.
동채꾼은 대장·머리꾼·동채꾼·놀이꾼으로 이루어지며
대체로 25~40세의 남자 500여 명이 동서로 갈리어 승부를 겨룬다.
동부의 대장을 부사(府使), 서부의 대장을 영장(營將)이라고 하며
승부는 상대편 동채가 땅에 닿거나 동채를 빼앗으면 이긴다.
이를 동채싸움이라고도 한다.
군중들은 풍물을 울리며 응원을 하고 안동 군내가 온통 신명나게 놀았다.
짚신 날려 뿌라 !
동채싸움에서 승리하면 "월사, 월사, 동부 이겼다"라고 하면서 전군중의 환호가 대단했다.
하루 종일 흥청거리던 군중들은 노래와 춤으로 즐기다가
풍물을 울리면서 〈칭칭이소리〉를 부르며 자기 마을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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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차전놀이가 중요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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