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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및병창-2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9. 21. 09:05

가야금산조및병창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명     칭 가야금산조및병창(伽倻琴散調및倂唱)
분     류 무형유산 / 전통연행/ 음악/ 민속음악
수량/면적
지 정 일 1968.12.21
소 재 지 서울 서울전역 
시     대
소 유 자
관 리 자
설     명 산조란 장구반주에 맞추어 다른 악기를 독주형태로 연주하는 것을 말하며, 4∼6개의 악장을 구분하여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 순서로 연주한다.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산조를 가야금산조라 하고, 직접 가야금을 타면서 노래부르는 것을 가야금병창이라 한다.

모든 산조는 느린 장단으로 시작하여 차츰 빠른 장단으로 바뀌는데, 이는 듣는 사람을 서서히 긴장시키며 흥겨움을 끌어올리게 한다. 가야금산조는 4∼6개의 장단으로 짜여지는데, 진양조는 아주 느리고 서정적이며 중모리는 안정적이다. 중중모리는 흥취를 돋우며, 자진모리는 밝고 경쾌하다. 휘모리는 흥분과 급박감이 있다. 다른 악기의 산조에 비해 가야금산조는 가야금의 악기적인 특성으로 인해 여러 명인들이 다양한 음악유파를 형성할 수 있었다. 가야금병창은 단가나 판소리 중 한 대목을 따다가 가야금반주를 얹어 부른다. 가야금병창은 원래 가야금산조의 명인들이 불렀지만, 오늘날에는 산조와 병창의 연주자가 분리되는 추세이다. 원곡이 따로 있는 노래를 병창으로 부를 때에는 가야금 특유의 선율로 인해 본래의 곡과 다른 맛이 나고 독특한 개성을 표현하게 된다. 판소리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 춘향가 중 “사랑가”, 수궁가 중 “고고천변”, 심청가 중 “심봉사 황성가는 대목”은 가야금병창의 유명한 대목이다.

가야금산조 및 병창은 전통음악 중에서 순수한 음악미를 추구하는 중요한 독주곡으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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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설명

산조란 장구반주에 맞추어 다른 악기를 독주형태로 연주하는 것을 말하며, 4∼6개의 악장을 구분하여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 순서로 연주한다.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산조를 가야금산조라 하고, 직접 가야금을 타면서 노래부르는 것을 가야금병창이라 한다.

모든 산조는 느린 장단으로 시작하여 차츰 빠른 장단으로 바뀌는데, 이는 듣는 사람을 서서히 긴장시키며 흥겨움을 끌어올리게 한다. 가야금산조는 4∼6개의 장단으로 짜여지는데, 진양조는 아주 느리고 서정적이며 중모리는 안정적이다. 중중모리는 흥취를 돋우며, 자진모리는 밝고 경쾌하다. 휘모리는 흥분과 급박감이 있다. 다른 악기의 산조에 비해 가야금산조는 가야금의 악기적인 특성으로 인해 여러 명인들이 다양한 음악유파를 형성할 수 있었다. 가야금병창은 단가나 판소리 중 한 대목을 따다가 가야금반주를 얹어 부른다. 가야금병창은 원래 가야금산조의 명인들이 불렀지만, 오늘날에는 산조와 병창의 연주자가 분리되는 추세이다. 원곡이 따로 있는 노래를 병창으로 부를 때에는 가야금 특유의 선율로 인해 본래의 곡과 다른 맛이 나고 독특한 개성을 표현하게 된다. 판소리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 춘향가 중 “사랑가”, 수궁가 중 “고고천변”, 심청가 중 “심봉사 황성가는 대목”은 가야금병창의 유명한 대목이다.

가야금산조 및 병창은 전통음악 중에서 순수한 음악미를 추구하는 중요한 독주곡으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보충설명

가야금산조는 가야금으로 연주하도록 짜여진 산조를 가리킨다. 산조란 판소리에서 보이는 남도 향토가락이 4∼6개의 장단으로 구분되는 악장(樂章)으로 짜여진 것인데,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 순으로 구성된 독주형식이다. 가야금병창이란 가야금 연주자가 직접 가야금을 연주하며 단가나 민요, 판소리 가운데 한 대목을 부르는 것이다.

가야금은 본래 가얏고라 불렸다. 옛 기록에 보면 변진(弁辰)에 현악기가 있었고 초기신라에도 현악기가 있었는데 고라 불렸다. 가야국에서 발전한 고가 가얏고이며 고구려에서 발전한 고가 거문고이다. 가얏고는 가야국 가실왕(嘉實王)이 고를 개조하여 만들어서 악사 우륵(于勒)에게 곡(曲)을 지어 타게 하였다.

가야금은 고신라에서 가무(歌舞)에 썼고 통일신라 때에는 거문고, 비파(琵琶), 대금(大금), 중금(中금), 소금(小금)과 함께 삼현삼죽(三絃三竹) 음악에 편성되어 가무에 쓰이다가 뒤에는 무용음악보다 가곡합주에 주로 쓰여온 것으로 보인다. 그 뒤에도 민간악으로서 줄곧 쓰이어 조선후기에는 거문고, 세피리, 젓대, 해금, 장고와 같이 편성되어 가곡과 현악영산회상(絃樂靈山會相) 연주에 주로 쓰였다.

한편 가야금은 민속악사들에 의하여 시나위나 봉장취(鳳將吹)라는 민속악을 탔었다. 조선말기에는 김창조(金昌祖)가 시나위음악을 토대로 판소리음악을 도입해서 가야금산조를 연주하여 이름을 떨쳤다. 같은 무렵에 한숙구(韓淑求)와 박팔괘(朴八卦)가 가야금산조를 짜서 연주하였다 한다. 이들의 뒤를 이어 한성기(韓聖基), 강태홍(姜太弘), 최옥산(崔玉山), 박상근(朴相根)과 같은 많은 가야금산조 명인들이 나왔다.

가야금산조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한숙구 계통을 이은 김윤덕(金允德)과 박팔괘, 박상근 계통을 이은 성금연(成錦鳶)이, 김창조, 함동정월(咸洞庭月, 본명 함금덕:咸金德), 한성기 계통을 이은 김죽파(金竹坡, 본명 김난초:金蘭草)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다가 이들이 작고 및 해외이주로 해제되고 지금은 이영희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가야금에는 큰 오동나무를 파서 통을 만들고 한 끝에 양이두(羊耳頭)를 달고 열두 줄을 매어 안족(雁足)을 고인 정악(正樂)가야금과 거문고 통처럼 만든 통에 열두 줄을 매어 안족을 고인 산조(散調)가야금이 있는데, 산조는 산조가야금으로 한다. 정악가야금은 규모가 커서 우람한 소리를 내어 정악을 타는 데 좋고, 산조가야금은 규모가 작아서 빠른 가락을 연주하는 데 편하여 산조를 타는 데 쓰인다.

가야금산조는 느린 진양조, 보통 빠른 중모리, 좀 빠른 중중모리, 빠른 자진모리, 매우 빠른 휘모리 장단으로 곡을 짠다. 그리고 우람한 느낌을 주는 우조(羽調), 화평한 느낌을 주는 평조(平調), 슬픈 느낌을 주는 계면조(界面調), 경쾌한 느낌을 주는 경드름 등 여러 정조(情調)를 나타내는 조의 변화, 촉급한 리듬과 유장한 리듬 등 리듬의 맺고 푸는 변화를 주어서 죄었다 풀었다 하여 희노애락의 감정을 표출한다.

가야금병창은 조선조 말기에 김창조, 박팔괘 등 가야금 명인들이 가야금을 타며 단가(短歌)나 판소리 한대목을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그뒤 오수관(吳壽寬), 오태석(吳太石), 강태홍(姜太弘), 심상건(沈相健), 박귀희(朴貴姬, 본명 오계화 吳桂花)가 가야금병창의 명인이었다. 가야금병창으로 부르는 노래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단가나 판소리 중 한 대목을 병창(倂唱)으로 얹어 부른다.




관련 자료 

http://blog.empas.com/power0075/24073055
 
 

고령군 『2007 가얏고 음악축제』

가야금의 고장 고령군에서는 10월 13일 오후7시부터 군청광장 특설무대에서 지역주민 2,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1500여 년간 우리민족 대표악기로 고락을 함께한   가야금의 역사성과 예술성을 널리 선양하기 위한 ‘2007 고령 가얏고 음악 축제’를 개최했다.
 

숙명가야금연주단의 젊은 퓨전국악 연주와 세계를 놀라게 한 비보이 춤꾼들이 펼치는 개막연주에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가야금산조 및 병창 기능보유자 강정숙 명인과 가야금병창보존회 ‘열두줄 가야금’ 등의 가요곡으로 알려진 대중가수 김용임의 열창, 동서양의 다양한 악기로 구성된 작곡가 강상구가 리드하는 관현악 연주단의 다양한 음악적 시도가 큰 주목을 받았으며 이번 가얏고 음악제 무대를 통해 고령 가야금음악의 미래 주역이 될 30여명 고령청소년가야금반이 무대에 올라 축제의 의미를 한층 더 하게 했다.
 

또한, 10월 13일~14일 양일간 고령읍 쾌빈리 우륵박물관에서는 가야금 창시자  인 악성 우륵선생과 근대가야금 음악을 국민적으로 유행시킨 근대 가야금 명인들을 기념하고 이들의 유품과 악기 등을 전시하는 ‘가야금 명인 특별전’도 함께 개최got다.
 

가야금의 본고향 고령에서 최초로 열린 '가야금 명인 특별전'에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김죽파, 성금련, 김윤덕, 함동정월 선생이 직접 연주하던  악기들과 축음기, 녹음기, 음반 등 관련 음향 유물 유품이 특별 전시되었고, 작고한 명인들의 연주실황도 영상으로 직접 소개되었다.
 

군 관계자는 이번 “‘2007 고령 가얏고 음악 축제’가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을   탈피하여 찬란했던 대가야의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21세기 월드음악으로 새롭게 진화하고 있는 가야금 음악과 함께 국악의 활기찬 생명력을 느끼며 진한 감동과 낭만, 그리고 재미를 선사하는 계기가 되었다.”라고 전하고 “앞으로도 가야금의 고향인 고령에서 격조 높은 문화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가야금 공연을 지속적으로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자료 

http://kr.blog.yahoo.com/gjtmsla1000/4836.html?p=1

가야금(伽倻琴), 가야고, 가얏고

[국립국악원 소장] 동1 동2


가야금산조(연주 : 강태홍)

좁고 긴 장방형의 오동나무 공명판 위에 명주실로 꼰 12개의 줄을 걸고, 줄마다 그 줄을 받치면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작은 나무기둥[雁足]을 세워놓은 현악기. 연주자는 오른손으로 줄을 뜯거나 퉁기고, 왼손으로 줄을 떨거나 눌러서 소리를 조절한다. 음색이 맑고 우아하며 연주기교가 다양하다. 궁중음악이나 풍류에 사용되는 것을 법금(法琴) 또는 풍류가야금이라 하며, 민속악에 사용되는 것을 산조가야금이라 하는데, 법금이 원형이고 산조가야금은 19세기말 이후에 널리 쓰게된 것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가야국의 가실왕이 6세기에 당나라의 악기를 보고 만들었으며, 우륵(于勒)에게 명하여 12곡을 지었는데, 그 뒤 가야국이 어지러워지자 우륵은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 진흥왕에게로 투항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4세기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의 흙인형(土偶)에서 가야금이 발견되고, 중국의 문헌인 《삼국지》 중 <위지 동이전>에 삼한시대에 이미 고유의 현악기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진흥왕 이후 가야금은 신라에 널리 퍼져 그 곡 수가 185곡에 이르렀다고 하며,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궁정과 민간에서 크게 애호되었다. 19세기말 김창조(金昌祖) 등에 의하여 가야금산조가 창시되면서, 전통적인 가야금, 즉 법금보다 빠르고 다양한 산조 기교에 적합한 소형의 산조가야금이 만들어져 널리 보급되었다.

법금과 산조가야금은 크기와 구조가 서로 다르다. 법금은 하나의 오동나무 판의 뒤를 파서 만들고, 부들을 고정시키는 공명동 하단에 T자 모양의 양이두(羊耳頭)가 있지만, 산조가야금은 거문고처럼 오동나무 앞판에 밤나무로 된 뒤 판을 붙여 만들고, 양이두 대신 봉미(鳳尾)를 붙인다. 법금은 길이가 151㎝, 너비 28.5㎝이며, 산조가야금은 공명동의 길이가 136㎝이며, 너비가 20㎝ 정도이다. 가야금줄은 명주 생사로 만드는데, 음높이에 따라 줄의 굵기가 달라, 낮은 음은 굵고, 높은 음은 가늘다.

가야금은 영산회상과 보허자계 변주곡, 가곡반주 등 지난날 풍류방에서 연주되었던 대부분의 악곡에 편성되는데, 이 경우는 법금을 주로 사용한다. 산조가야금은 민속풍류, 가야금병창, 민요, 창극, 무용곡 등의 반주로 널리 쓰이지만, 19세기 말경에 발생한 산조에서 악기의 특성이 가장 두드러진다. 이 가야금산조야말로 예술적 가치가 높은 순수한 기악독주곡이다. 현재 연주되고 있는 산조로는 강태홍(姜太弘), 김병호(金炳昊), 김윤덕(金允德), 김죽파(金竹坡), 성금연(成錦鳶), 심상건(沈相健), 최옥삼(崔玉三), 서공철 등의 가락이 있다. 특히 가야금은 1960년대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창작국악곡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하였는데, 황병기, 이성천 등의 작품을 통하여 독주악기로서의 가치와 그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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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당야유도(부분) - 신윤복 그림 :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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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연주모습 : 연주자 - 황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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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너와집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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