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우상이 아인슈타인에서 법대 교수로 바뀐 지 오래다.” 서울대 자연대 교수인 고향 친구의 말이다.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이론이 쉴 새 없이 쏟아져 이공계 교수는 피곤하다고 했다. 최신 이론을 귀동냥하기 위해 자기 돈으로 해외 학회를 바삐 돌아다닌다. 그래야 강의실에서 망신을 안 당한다는 것이다. 그는 “법대 교수라면 헌법이 바뀌지 않으면 좀 편하지 않을까”라고 부러워했다.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가 교수에게 전염되는 양상이다.
이공계는 한번 헛다리를 짚으면 만회가 쉽지 않다. 원전 25기를 새로 짓는 미국은 요즘 고민이다. 1979년 드리마일 사고 이후 29년간 한번도 원전을 세워본 적이 없어서다. 기술자부터 씨가 말랐다. 그래서 웨스팅하우스가 손을 내민 곳이 한국전력기술(KOPEC). KOPEC은 계약금 300억원을 받고 50여 명의 직원을 동원해 최신 원자로를 설계해 주고 있다. 건설업계 왕자인 벡텔도 마찬가지다. 원전 토목공사를 해본 엔지니어들이 멸종돼 KOPEC에 협조를 요청했다. 이 회사 지계광 사업부장은 “원전 종주국에 설계·엔지니어링 기술을 역수출하면서 묘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이공계 기술을 당장 돈으로 구분짓기도 어렵다. 나중에 대박을 터뜨리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에디슨의 전구에 필라멘트 유리를 처음 공급한 코닝. 이 회사가 70년에 개발한 광섬유는 “21세기에나 쓰일 제품”이라며 외면당했다. 코닝은 12년을 기다렸다. 82년 AT&T 분할을 맞아 통신업체들이 앞다퉈 광섬유를 깔면서 돈을 긁어모았다. 코닝이 60년에 운명을 건 자동차 유리도 마찬가지다. 당시 적용한 기술이 현재 LCD 유리를 만드는 퓨전 공법. 그러나 가격이 너무 높아 회사는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그래도 코닝은 이 기술을 끌어안고 30년을 참았다. LCD 시장이 열리면서 퓨전 공법은 화려한 백조가 됐다. 삼성과 코닝이 합작한 삼성코닝정밀유리는 지난해 매출액 2조원, 영업이익만 1조원에 육박했다.
전국 대학생의 이공계 비율이 99년 45.4%에서 지난해 35% 선으로 떨어졌다는 소식이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딴 이공계 인력의 73.9%가 현지에 남겠다고 한다. 제조업으로 먹고사는 나라가 이래서는 미래가 없다. 자꾸 영국의 숙련 기술자 이주 금지령(1719~1825년)이 떠오른다. 전문기술자의 해외 유출을 막고, 귀국 경고를 받고도 6개월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토지·시민권까지 박탈한 가혹한 법률이다. 우리도 뭔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과학기술부는 사라지고 청와대·내각에는 이공계 출신이 드물다. 일본은 도쿄대 이공계 박사과정 수업료부터 공짜로 해준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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