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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경해석학 - 제8장 교리적 해석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0. 12. 10:45

제 8장 교리적 해석


성경의 교리적 해석은 성경의 문자적, 역사적, 문화적 해석의 의미를 넘어선다. 그 이유는 해석학의 임무가 신학과 개인 경건의 삶에 있어서 성경을 바르게 사용하도록 도와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리적 해석의 정당성(正當性)은 ‘가르침’(didake)으로 표현될 수 있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경의 주장과 부합(附合, correspondence)된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신앙은 단지 종교적 경험이나 가르침에 의한 종교적 추론(推論, induction)이 아니다. 성경적 참 종교는 하나님에 대한 객관적 지식에 근거하는 것으로서 ‘계시적 유신론’(revelational theism)이라 할 수 있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참된 계시에 대한 믿음은 건전한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한다는 신학적 해석의 관점으로 인도해 준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향한 지상 명령들 가운데 가르침을 강조하시며 자신의 복음전파 사역을 시작하였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마4:23)


예수께서는 ‘가르치심’(teaching)으로 시작하여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preaching) 백성 중에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는’(healing) 사역으로 확대하시며 조화를 이루어가셨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역에 있어서도 ‘교리적인 교사’(a doctrinal teacher)이셨다.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7:28-29)


또한, 예수께서는 무리들로 하여금 자신의 신적 교리를 깨닫도록 초청하셨다.


1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7:17-18)


바울도 자신의 말하는 교리에 순종할 것을 말하면서(롬6:17) 오랜 후에 나타날 믿음의 후손에게 거짓 교리의 해악에 대하여 교훈하였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4:14)


나아가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바른 교리에 주의할 것을 당부하면서 성경의 첫 번째 유익이 교리임을 언급하였다.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3:14-15)


이처럼 교리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그 실체와 형식을 준다. 만일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자신을 계시지 않으셨다면 어떤 교리도 결코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계시가 존재함으로써 교리는 성립되는 것이므로 이 교리를 통해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실체와 형식을 갖추게 된다.


성경이 타당한 하나님의 계시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나 리츨(Ritschl) 그리고 대부분의 종교적 자유주의자들은 이를 거부하였다. 이들의 바탕 위에 선 신정통주의는 성경의 ‘명제적 계시’(propositional revelation)에 대하여 과격한 공격을 가하여 왔다. 그들은 오직 ‘내적인 만남’(inward encounter)으로서의 받아들이기 때문에 성경을 ‘증언’(testimony)이나 도구적 ‘방편’(a means)의 수준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교리적 해석은 주해적 작업이 끝나는 시점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교리적 해석도 주해의 일반적 원리에 의해 인도함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성경에서 바른 교리적 연구를 위하여 적용해야할 기본 원리와 적용 원칙은 무엇인가?

 

1. 구원 체험의 선행


교리를 연구하는 신학자는 중생의 체험과 헌신된 사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 안에서 진리를 발견한 사람이어야 한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라(요5:39)


해석자는 종교적 사변가로서가 아니라 진지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적 계시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경험의 충만한 의미를 드러내야 한다. 또한, 신학자의 동기는 복음에 대한 자신의 체험에서 출발해야 하며, 성경의 기록의도를 찾음으로써 성경에서 복음 선포의 출발점을 찾아내는 것이어야 한다. 성경은 그 근본에 있어 개인적으로 받아들인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구속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기록이다. 인격적, 도덕적, 윤리적, 영적으로서 보이지 않는 영역에 속한 것에 대한 해석자의 신학 작업은 믿음과 헌신의 순환 속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만약 해석자가 건조하고 추상적이며, 비인격적 검색으로 신학 작업을 한다면 본인의 불행은 물론 학계에도 누를 끼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바람직한 신학의 교리적 적용의 주제는 무엇인가? 신학의 주요 주제는


첫째,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역사에 관한 사항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제사장 사역, 속죄, 부활, 승천 그리고 재림에 관한 사항

셋째, 성령의 내주, 위로, 교통, 인도, 보호, 가르침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견인에 관한 위대한 진리에 관한 사항을 담고 있어야 한다.


성경은 무슨 예언 모음집이 아니다. 또한, 피라미드주의(pyramidism)나 영국 이스라엘주의(British-Israelism, 기독교의 부흥을 이루었던 영국을 영적 이스라엘로 간주)나 러셀주의(Russelism,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인 ‘찰스 러셀’이 1886년에 천년왕국이 임한다고 주장), 밀러주의(Millerism, 1843년에 세상의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이 온다고 주장)의 성경에 대한 취급처럼 세계 정치학 참고서도 아니다. 이러한 접근은 성경의 핵심인 ‘기독론적 구원론적 관계’(Christological-soteriological nexus)를 바로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또, 한편으로 극단적 세대주의나 부주의한 세대주의처럼 잡다하고 세세한 시대 구분에 열심낸다면, 잘못된 교리와 잘못된 시대 구분에 따라 가르쳐진 그릇된 실천이 강요될 것이다.


이러한 예견은 어디에 근거하는가?


세대주의 해석자들은 성경의 다양한 본문들을 그 적합한 시기에 배치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으로 인하여 그들은 때로 복음적인 경건한 주해와는 거리가 먼 해석을 하기도 한다. 성경의 교리적 해석에 있어서 예언적 해석이나 세대주의적 해석이 아주 배제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극단적이거나 부주의한 세대주의적 해석은 지양되어야 한다.

 

2. 문자적 해석의 우선 원칙


성경의 문자적 의미를 주해하여 해석하는 것은 성경을 이해하기 위하여 가장 우선되는 지배적 원리이다. 그러므로 문자적 해석 원칙은 교리적 해석에도 적용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이러한 원칙이 교리적 해석에 의한 성경의 주요 교리적 진리들을 상징적, 비유적, 모형론적 그리고 시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징적인 표현들도 우선 문자적 의미에 의존해야 하며 문자적 의미의 범위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히7:5)


로마가톨릭교회처럼 제사장 제도를 영적으로 해석하여 사제직을 정당화하려는 해석은 신약의 통시적 관점에서 볼 때 확증이 없으므로 마땅히 거부되어야 한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은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참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모형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히7:28)


이 본문이 가르치는 바대로 제사장은 신약의 또 다른 사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 한 분으로 족하다. 이처럼 믿음의 주요 교리들은 반드시 성경의 의미를 문자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에 의해 결정될 수 있는 것들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말씀의 통제를 무시하는 신학은 중세 교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굳세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을 혼돈과 미궁으로 빠뜨리게 할 것이다.

 

3. 주해의 우선성


성경은 그 자체로서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이다. 해석자는 오직 올바른 성경 주해로부터 하나님의 진리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해석자의 주해 연구는 어떤 신학 체계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17:11)


신학의 체계나 틀이 성경 밖에서 왔을 때 신학은 교회에 폐를 끼쳤다. 그 예로 범신론은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의 근본 원리였고, 논리적 범신론은 기독교 해석에 대한 헤겔의 중심사상이었다. 칸트의 기독교에 대한 개념은 자신의 윤리학 이론에 의한 것이었으며, 리츨의 신학은 칸트의 인식론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또한, 신정통주의의 많은 주장은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 1813-1855,덴마크 출신의 실존주의 철학 창시자), 헤겔(Hegel,1770-1831, 독일의 번증법적 관념주의자), 에브너(Ebner), 칸트(Kant,1724-1804, 독일의 인식론을 바탕으로 한 이성주의자) 그리고 부버(Buber, 1878-1965,유대인출신의 시온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 등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신정통주의의 이러한 신학적 폐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기독교 신학의 근거는 반드시 ‘계시적 유신론’에 근거하고 ‘철학’에 근거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적으로 개신교의 입장은 신학의 근거를 성경 주해에 두어야 함을 가르쳐 왔다. 그러므로 정통적인 조직신학자(systematic theologist)의 과업은 주해 결과의 개별 유니트를 전체적 신학으로 조직화(systematization)하는 것이었다. 개별적 신학의 성과가 주해적 연구의 결과라는 것을 확신할 때 비로소 ‘일반화’(generalization)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 결과는 신학 체계를 조직화하기 위한 종합적이고도 창조적인 활동을 가능케 한다. 따라서 철학이 신학 작업에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체가 신학적 체계를 조직화하는 이슈가 될 수는 없다. 주경 신학자와 조직 신학자는 신적 계시의 내용을 확정하고 철학 신학자는 이를 검색해야 한다. 두 신학 계열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철학을 주시하면서 기독교 신학과 연관지어 유익한 점과 해로운 점을 간파해야 한다. 또한, 현대 과학이 기독교에 미치는 영향과 의미를 가늠하며 새로 발간되는 출판물 중 이단이 정통교리로 가장한 흔적(痕迹)이 있는지 면밀하게 조사해야 한다.


이처럼 교회가 주경 신학자와 조직 신학자와 기독철학 신학자 모두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 셋 중 어느 하나가 결여되면 교회는 큰 곤란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주경 신학자는 이단(異端)들의 잘못된 성경 해석으로부터 교회를 지켜내야 하고, 조직 신학자는 주경신학의 성과를 체계화(體系化)해야 하며, 기독철학 신학자는 비성경적 원리들의 교회 침투(浸透)를 막아내야 한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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