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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경해석학 - 제7장 문화적 해석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0. 12. 10:46

제 7 장 문화적 해석


중세가 끝나면서 시작된 르네상스는 많은 인문주의(人文主義, humanism) 학자들을 양산하였다. 그들은 헬라와 라틴의 고전들을 열정적으로 연구하면서 언어학과 ‘문헌학’(Philology)에 심취하였다. 루터와 칼빈도 인문주의 학문에 크게 영향을 받아 당대의 문헌학적 해석 방법을 택하였다. 칼빈은 특히, 원문 성경과 고전 문헌의 직역주의를 적용하였다. 루터와 칼빈에 있어 문헌학은 언어의 연구만이 아니라 문헌이 기록된 당시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까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현재의 개신교 성경해석학은 이 같은 개혁주의자들의 전통으로서 문헌학적 해석학(philological  hermeneutics)이라는 표현방식인 것이다.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다루는 것은 필수불가결(必修不可缺)한 요소이다. 최근의 성서고고학적 발견은 구약의 배경이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수세기 전에 학자들도 해박한 문법지식을 갖추고 있었지만 성경의 많은 본문은 해석이 불투명한 채로 남아있었다.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이해해야 하는 중요성은 신약의 해석에 있어서 더욱 증대된다. 수세기 동안 학자들은 고전 헬라어와 신약의 헬라어를 연구한 후에 고전 연구에서 얻은 역사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성경의 주해에 적용하였다. 고대 헬라 문화권의 역사와 문학은 암묵적(暗黙的)으로 신약 주해의 출발점이 된다. 그러나 오늘날 신약의 참된 배경은 헬라 문화권의 중심인 그리스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이다. 문학에 있어서도 헬라 고전보다는 랍비 문헌이 신약학자들에게 더욱 중요시된다. 또한, 성경 배경을 찾기 위한 언어문화의 연구 비중도 고전 헬라어 보다는 예수님 당시의 아람어의 비중이 더 높아졌다. 오늘날 신약의 이해를 위한 역사 문화적 배경의 초점은 아테네에서 예루살렘으로 집중(集中)된다.


‘문화적’(cultural)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한 씨족, 부족, 그리고 국가가 삶 속의 정황에서 나타난 다양한 관습, 제도, 수단,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누구나 저술을 하는 과정에서는 자신이 속한 문화적 배경을 드러낸다. 자신이 속한 문화는 표현방식을 형성하고 결정하며 묘사방법을 채색한다. 문화를 살펴봄으로써 해석자는 어떤 낱말의 의미인 ‘유스스 로쿠엔디’(usus loquendi)를 알아낼 수 있다. 그 예로서, 모든 대속의 교리는 성경의 기록자들이 갖는 고유한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되어야 한다. 경건한 교리들은 어떤 새롭거나 낯선 형이상학적, 신지식학적 또는 철학적 체계에 의해 기독교에 덮어씌워져서는 안 된다. 이교주의자들은 대개 탈 문화적이다. 그들은 성경위에 나름대로 믿는 자신들의 이념이나 전통을 덮어씌운다. 실제로 크리스찬 사이언스(christian science)의 경우, 그들은 고대 성경의 세계에 아무런 가치도 부여하지 않았으면서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교리에 훈련된 교사들에 의해 낯선 개념들을 기독교 위에 덮어씌웠다. 모든 이교들은 성경을 기록한 원래 기자들의 문화적 배경을 무시함으로써 해석의 원리를 깨뜨려 버린다. 이러한 현상은 이교의 아류인 분파(sect)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1. 성경 배경에 대한 이해


성경의 모든 사건들은 역사의 흐름과 상황 속에서 발생하였다. 오늘날에는 수 천 년 동안 묻혀 있던 성경시대 유물들이 성서 고고학의 발전으로 많이 발굴되었다. 성서고고학의 발전은 성경배경사의 연구로 이어지고, 그 결과물은 성경배경사를 통한 성경 본문의 해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예로서 이집트의 건축물과 고분들(mounds), 팔레스타인의 인공 언덕에 대한 고고학적 문서(tells), 앗시리아 열왕기, 고대 바벨론의 점토판, 소아시아의 기념비와 비문(inscription)들이 발굴되었다. 이것들의 연구 분석 성과는 난해했던 역사적 사건의 본문 해석에 간접적인 큰 도움을 준다. 또한, 역사가의 직접적 서술인 이집트 마네토(Manetho)의 역사기록물, 요세푸스(Josephus)의 역사기록문서들 그리고 로마 타키투스(Tacitus)의 역사기록문서들이 오늘날에도 남아 성서시대의 배경사를 밝혀주고 있다.


성경본문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한 성경배경사의 중요성은 오늘날 더욱 증대되고 있다. 한 예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유대인들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슨 경로를 통해서 십자가 처형제도가 형성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마27:22)


십자가는 고대 페르시아, 애굽, 앗시리아에서 죄인을 고문하고 사형에 처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형틀이다. 이 형틀은 페르시아에 의해 로마에 전해졌고 모양이 더욱 발전되었다. 예수님 당시 십자가형은 너무 가혹하고 치욕적이어서 로마시민이 아닌 이방인의 사형집행에만 적용되었다. 로마의 십자가는 죄인이 직접 사형집행의 장소에까지 운반토록 하였다. 그 이유는 ‘죄인의 이제까지 걸어온 삶이 한 인간으로서의 삶으로는 공개적으로 완전히 부정됨’을 의미하는 법의 정신이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8:34)


십자가형은  예수님 당시에 정복지의 반란 예방과 치안 유지를 위하여 자주 행하여졌다. 예수께서는 로마 정권이 사람의 목숨을 세상과 분리시켜야 할 만큼 중죄인에 대하여 십자가형으로 다스리려는 로마의 법의 정신을 잘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본문은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자신이 져야 하는 십자가의 참된 의미와, 이후의 그리스도인이 자신이 삶과 사역 속에서 져야하는 십자가의 의미를 무리와 제자들에게 교훈하신 것이었다.


부활이 없다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마22:23)


예수님 당시에는 여러 유대종파로서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헤롯당이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 신념과 정치적 목적에 따라 평소에는 서로 반목하였으나 예수님과 그 메시지를 거절하는데 있어서는 일치단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요18:31)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의 사법의 기초는 모세의 율법이었다. 예수님을 체포한 대제사장은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이었다. 그는 율법을 주관하며 율법에 의하여 예수님을 정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예수님을 빌라도 총독에게 보내야 했는가? 예수님의 불법적인 재판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산헤드린 공회의 특성과 권한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당시 로마 정권 치하의 산헤드린 공회는 모세의 율법과 종교 관습에 따라 심판할 수 있었지만 사형의 집행은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로마 정권을 대표하는 빌라도로 하여금 로마의 사법제도에 의한 사형집행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해석자는 십자가 처형제도의 역사적 기원에 대해 찾아보고, 로마가 이 제도를 어떠한 범위 내에서 운영하였는가를 알아야 한다. 이러한 해석자의 노력이 성경 본문 해석의 완성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해석자의 노력이 본문의 의미를 더욱 밝히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됨을 부인될 수는 없다.

2. 성서지리에 대한 이해


해석자는 성서지리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역사가 성경의 시간적 배경이라면 지리는 공간적 배경이기 때문이다. 해석자가 성경 지리의 배경이 되는 산, 강, 평야, 곡물, 식물, 동물, 계절 그리고 기후에 대해 해박하다면, 성경의 본문은 해석자로 하여금 더 밝은 조명으로 인도할 것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족장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정의 경로를 알아야 한다. 출애굽 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이동경로와 광야에서의 삶의 환경을 알아야한다. 구약의 많은 본문들은 그 지리적 위치와 관계에 대한 지식을 갖출 때 명쾌하게 다가온다. 또한, 사도행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울의 전도여행 경로와 주변의 지리에 대해 익숙해야 한다.


6 아브라함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 7 여호와께서 …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 세겜에 들여왔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 세겜에서 아브람에게 더 이상 옮겨가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아브람은 세겜에 와서야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이 땅을 네게 주리라’ 하신 말씀을 들었다. 그는 자신의 여정이 끝난 것을 알고 나서 하나님께 경배의 단을 쌓았던 것이다. 그의 지리적 이동여정이 끝난 것을 아브라함이 깨달았다는 것을 아는 해석자라면, 문자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문맥의 상황에서 아브라함의 심리적 상황(어떠한 마음과 각오, 불안과 평안이 공존하는 생각, 그리고 여전히 인간적인 믿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


성경이 유기적으로 영감되어 역사성과 지리적 배경을 담고 있다는 사실은 기록 당시의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배경이 투영되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후대의 성경해석자는 시간적, 문화적, 격차를 뛰어넘어 성경기록자의 경험과 배경으로 거리를 좁히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왕하2:9)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그의 영을 갑절로 구하였다. 이 말은 문자적으로 ‘당신의 영감을 갑절이나 상속받기를 원한다’(Let me inherit a double portion of your spirit)의 의미이다. 두 선지자의 문화적 배경(신21:17)에 비추어 본다면, 엘리사가 원한 것은 장자의 유산이었다. 그는 엘리야의 ‘영적 상속자’(spiritual inheritor)가 되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이러므로 본문의 일차적인 의미를 밝히기 위해서는 우선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배경 속에서 찾아보아야 한다.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달라 하거늘(마25:8)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쓰여진 기름등잔은 아주 작아서 한 손에 서 너 개 까지 들 수 있는 크기였다. 이러한 등잔의 지속 시간은 약 세 시간 정도였으므로 혼인 전야제가 끝나기까지 기다리려면 충분한 기름이 필요하였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9:23)


본문은 마가복음 8:34과 병행구절이지만 청취자를 ‘무리와 제자’가 아닌 ‘무리에게’로 기술하고 있다. 마가(Mark)는 로마식 이름표기이다. 그는  자신이 문화적으로 익숙한 이방인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복음의 참된 의미를 전하고자 하였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진다는 것을 어떤 어려움이나 고통을 받는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성육신시대 당시의 사람들은 십자가는 처형을 받으러 가는 죄인만 십자가를 지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시의 죽음의 개념은 육체적이든 영적이든 단순한 어려움이 아니라 ‘생명과 분리된’(be seperated from life) 직접적인 죽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특히, 예수님 자신의 죽음에 대한 말씀은 이러한 의미를 생생하게 부각시켜 준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일차적으로 생명에서 완전히 분리되는 죽음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리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로 밝히 알게 하시리라(삼상12:17)


사무엘은 밀 베는 때에 비가 내리기를 하나님께 아뢰겠다고 말하였다. 가나안의 여름(4월-10월)은 비가 오지 않는 극심한 건기이다. 밀을 베는 수확기는 4월 중순에서 5월 중순까지이다. 따라서 사무엘의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참 왕이신 하나님을 불신하고 인간 왕을 구한 불신의 죄를 드러내는 하나님의 능력의 증거를 선포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기후에 있어서 비는 11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 이어지는 겨울에 집중된다.


왕이 크게 소리하여 … 바벨론 박사들에게 일러 가로되 무릇 누구든지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 옷을 입히고 금사슬로 그 목에 드리우고 그로 나라의 셋째 치리자를 삼으리라 하니라(단5:7)


자주옷은 왕이 입는 옷으로 고대 세계에서는 왕의 위엄을 상징했고, 금사슬은 군주의 주권과 영광을 상징했다. 셋째 치리자는 벨사살 왕 다음의 지위를 의미한다. 당시의 치리 왕 벨사살의 부친 나보니두스는 섭정 왕으로서 바벨론 제국의 실질적인 왕이었다. 그러므로 벨사살은 분벽에 쓰여진 글자를 해석할 다니엘의 권세 위치를 왕 자신의 바로 다음 지위인 셋째 치리자로 표현한 것이다.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쌔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요4:3-4)


남쪽의 유대에서 북쪽의 갈릴리로 가려면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지름길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었다. 즉, 요단 동편으로 돌아서 가는 길은 대략 6일 정도 걸리지만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은 3일 밖에 소요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이 길을 이용하지 않은 배경이 있었다. 그것은 B.C. 722년 앗시리아에 의해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이래 사마리아인들은 혈통과 신앙의 순수성의 상실한 때문이며, B.C. 538년 바벨론으로부터 유대인이 귀환한 이래 B.C. 534년부터 520년까지 14년간이나 유대인들의 성전재건을 방해한 해묵은 감정 때문이었다. 이후로도 이들 간의 반목은 1세기 초까지 계속되었었다. 그러므로 본문은 이러한 반목적인 배경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해묵은 금기관례를 깨고 사마리아로 전도여행을 떠나신 암시적인 상황이 내재된 것이다.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요13:5)


가나안의 전통 관습에서 발을 씻기는 일은 종의 직무였다. 제자들은 서로 간 경쟁심이 있었고 아무도 발을 씻기는 종의 일을 원치 않았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의 생각을 아시고 하늘의 교훈을 이론뿐만 아니라 직접적 실천으로서 봉사와 겸손을 가르치고자 하셨다.


이처럼 역사적 감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려면 그 배경을 알아야 한다. 이 배경에 관한 지식은 어떻게 습득 할 수 있는가? 이 지식을 습득하려면 성경학자의 연구 성과(성경사전, 성경주석, 성서지도 등)를 참조하는 것이 가장 무난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배경 설명은 성경 속에 있다. 성경해석에 필요한 배경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역사서에 익숙하여야 한다. 구약의 역사는 신구약의 배경이 된다. 모세오경은 성경의 문화적 전체배경이 되며 신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해석자가 생각하는 눈으로 성경을 깊이 묵상하면 성경의 각 시대에 따른 문화적 지식을 많이 얻게 될 것이다. 성경의 각 시대에 나타난 문화적 배경은 다음과 같이 개괄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 창세기 1:11장의 창조시대 역사는 메소포타미아 문화가 그 배경이다.

․ 애굽에서의 요셉 기사(창37:50장)와 출애굽 사건(출1:15장)은 이집트 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 여호수아의 정복시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착해온 아모리인 등 패역한 족속들과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 사사시대는 믿음이 희석된 정복시대 이후의 세대들이 오히려 원 거민들의 신앙에 오염되어 영적 간음 문화에 빠진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 통일왕국시대는 주변국가의 정복으로 인한 번영과 왕들의 교만에 의한 징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 분열왕국시대는 하나님께 속한 나라와 백성의 영적 간음의 급속한 확산으로 인한 징계와 회복과 심판 선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 포로시대는 하나님의 경고(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방인에게 문화적으로 동화)를 무시한 나라와 백성들에 대한 심판, 심판의 도구로서의 바벨론, 그리고 바벨론의 포로된 상황에서의 문화적 적응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 포로귀환시대는 미리 선포된 징계와 심판이 종료됨에 따라 약속의 땅으로 다시 들이시는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바벨론으로 돌아온 후 영적으로 혼란한 문화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신약에서의 바울 선교여행은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사회 문화적 배경을 전제로 하고 있다(행17:16;행25:6-1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행17:22)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 쌔 혹은 이르되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 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행17:18)


아덴(Athene)은 에피쿠로스 학파(a group of Epicurean)와 스토아 학파(a group of Stoic)의 철학 발생지였다. 에피쿠로스(B.C. 342-270)는 쾌락을 인생의 주된 목표라고 생각하였다. 그 쾌락은 육욕적인 것이 아니라 미신적 공포, 죽음에 대한 염려, 모든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 평온한 상태(아타락시아)에 도달함으로써 얻는 것이었다. 이들은 신들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인간의 삶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으로 간주했다. 제논(B.C. 340-265)에 의하여 창시된 스토아 학파는 자연과의 조화된 삶을 통하여 이성적 만족을 얻는 삶을 가르쳤다. 그는 인생의 목표를 이성에 일치하는 삶에 두었다. 이성과 일치하는 삶이 도덕적인 삶이며, 선한 삶이라고 판단하였으므로 그는 범신론적 신관과 세계관을 옹호하였다. 이처럼 해석자가 아덴에서 행한 바울의 설교와 그 상황을 이해하려면 헬라철학과 그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골로새서와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기록하고 있지만 문화적 배경에 따른 기록 내용은 많이 다르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1:15-17)


바울은 골로새 서신의 실질적 주제인 ‘기독론’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골로새교회에 침투한 이단자들에게 대항하였다. 골로새 교회의 이단자들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중재자는 천사들이라고 가르침으로써 참 중재자이신 그리스도의 지위와 신분을 피조물의 위치로 격하시켰다. 이에 대한 반박으로 바울은 본문에서 그리스도와 피조물과의 관계를 분명히 밝히는 명제를 설정하였다. 이어서 그는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신분의 탁월성(골1:18)을 명백히 밝히고자 하였다. 이와 같이 해석자가 골로새서에서의 바울의 기독론을 이해하려면, 바울이 언급한 신학적 내용이 특정한 철학과 종교적 이교에 대한 전투적 배경에서 나온 것임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처럼 해석자는 성경의 사건을 접할 때, 반드시 특정한 문화적 관습-가족제도, 노예제도, 할례, 혼인, 장례, 상거래 관습, 복지, 목축과 영농, 정치, 경제, 사회, 경제구조, 법체제, 종교적 관행 등-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문화적 배경은 해석자로 하여금 성경에 언급된 최초 기록자의 의도로서 ‘원래의 것들’(original things)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해석자가 바르고 절제된 문자적 해석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기본적 조건은 본문의 사회 문화적 배경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타난 단어, 문장 그리고 표현들은 일차적으로 그 안에서 형성된 문화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4. 문화적 배경과 비평


18세기와 19세기의 비평이론들은 성경의 역사적 정당성, 과학적 지식에 의한 성경의 사실성 그리고 성경의 문화적 온전성(穩全性)에 도전했다. 그 결과로 인하여 성경 각 권의 원 기록자, 기록연대, 그리고 정경성에 대한 전통적 견해가 배척당했다. 비평주의자들은 히브리어 본문을 임의로 재구성하는 ‘새로운 말씀’(neo logism)으로 ‘본문비평’(저등비평, lower criticism)에서부터 시작하여 ‘문학비평’(고등비평, higher criticism)에 까지 비평을 확대하였다. 이들의 경향은 전통적 성경비평의 관점에서 극단적으로 이탈(離脫)하였기 때문에 ‘극단적 비평’(radial criticism)으로까지 치달았다.


성경 본문의 권위에 대한 이러한 비평주의는 왜 극성 하였는가? 그것은 성경의 많은 부분이 당대의 문화를 반영하고 있어서 현대 자유 신학자들에게는 구속력과 신뢰성이 결여된 것처럼 편협(偏狹)된 것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한 예로, 불트만은 신약이 문화적 조건하에 기록된 것으로 간주하여 아주 급진적(急進的)인 해석을 가하였다. 그는 신약의 많은 부분이 당대의 문화적 배경 하에 신화적 형태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현대의 계몽되고 진보된 자신은 본문의 메시지를 그대로 수용할 수 없다’고 하였던 것이다.


오늘날의 성경 해석자는 문화와 해석학의 문제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접하게 된다. 과거의 문헌학적 방법론은 당대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해석자로 하여금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성경이 당대의 문화를 반영한다는 사실이 성경을 신적 계시로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원인으로 작용되기로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현대의 문화비평주의자들의 시각에서 성경은 진리가 아니라 당대 문화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불트만과 실존주의자들은 신약을 진리의 기록으로 본 것이 아니라 실존적이고 케리그마적인 단면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들은 이런 부분들이 문화적일 수는 있지만 현대인들이 믿기 어려운 신화라고 단정하였던 것이다.


성경은 유대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주어졌다. 그러므로 성경 안에는 특정한 문화적 전통과 현상들이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이 비록 유대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 또한, 성경이 기록 당시 당대의 문화적 배경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을 초월하여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기록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언제 어디에서든지 누구에게나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다. 해석자가 문화적 배경의 감각을 가지고 성경 본문을 대하고자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는 긍휼과 지혜와 신비 안에서, 그리고 해석자의 거듭난 영 안에서 진리의 성령으로 하여금 본문의 핵심과 깊이를 깨닫게 하신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2)


▣ 제 7 장 연구과제


1. 성경의 문화적 배경 연구의 중요성과 부주의에 대하여 기술하라.

2. 문화적 해석을 위한 성경 배경의 이해에 대하여 기술하라.

3. 문화적 해석을 위한 성서지리의 중요성에 대하여 기술하라.

4. 해석자의 성서 문화적 배경 연구의 중요성에 대하여 기술하라.

5. 문화적 배경에 대한 비평적 관점에 대하여 기술하라.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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