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 - 성경이 말하는 교회
사람들은 ‘교회’라 할 때 일반적으로 ‘건물’을 연상한다. 그러나 그것은 ‘예배당’이지 교회가 아니다. 그렇다면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란 단어 ‘엑클레시아’(έκκλησία) 자체가 ‘부르심을 받은 자’란 뜻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교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전 1:1-3) 교회란 건물이나 제도가 아닌, 사람들의 모임,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들의 모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들의 모임’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모여 무엇을 하는 모임인가?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5-18)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인간의 죄를 대속하러 이 땅에 오시는 구원자, 동시에 임마누엘 하나님이 되시는 메시아를 학수고대해왔다.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 “주는 그리스시요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한 것이다. 이 고백을 들으신 주님께서는, 마치 반석과도 같은 베드로의 이 신앙고백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실 것을 천명하셨다. 따라서 교회란, 베드로의 이 신앙고백을 자기의 고백으로 삼고 실천하는 자들의 모임이다.
그렇다면 이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할까? 381년 교회는 니케아 신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하였다. 이 고백 속에서 교회 된 우리를 어떤 모습으로 가꾸어 가야 하는지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1. 교회는 하나여야 한다.
교회가 하나여야만 하는 이유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교회가 믿는 주님이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엡4:3-6) 교회가 하나여야 한다는 것은 한 분이신 주님을 믿는 자들 중에 서로 다른 파(派)가 있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크게는 로마 카톨릭, 동방 정교회, 영국 성공회, 개신교로 나누어져 있고, 개신교는 그 속에 수많은 분파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만 하는가?
복음서는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지만 하나가 아니다. 내용도 상이한 부분이 많다. 그렇지만 핵심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시다. 성령님께서는 복음서의 기자들에게 감동을 주어 각각 저자의 인격을 사용하셨다. 마태라는 세관원의 인격, 마가라는 청년의 인격,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의사 누가의 인격, 요한이라는 노인의 인격을 감동케 하시어 그들이 만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쓰게 하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체적이고 입체적이며,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교회의 분파는 긍정적일 수 있다. 유한한 인간이 하나의 시각만으로 주님의 존재를 온전히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의 분파가 긍정적인 면을 유지하기 위해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그것은 자기 교리를 절대시하지 말고, 타 교파를 수용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교리는 진리가 아니라, 진리에 대한 인간의 고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 교회는 거룩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성도, 거룩한 사람’이라 부른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거룩한가? 그런데 어찌 성도일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그리스도의 의를 통하여 거룩하다고 인정해 주시기 때문이다.
교회가 거룩한 또 하나의 이유는 거룩하신 주님께서 교회의 주인이요, 머리시기 때문이다.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 1:22-23)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고 교회는 머리되신 주님의 몸이다.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시니 그 몸인 우리 또한 거룩한 교회일 수 있는 것이다. 거룩하지 않은 자를 거룩하다 구별하여 주셨으므로, 우리는 지금부터 거룩한 삶을 살면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증거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교회 된 그리스도인이 감당해야 할 의무이다.
3. 교회는 보편적이어야 한다.
교회가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구별 않는 만민을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만민을 위하여 오셨고, 또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명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교회는 누구든지 올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만민을 구원하시는 주님의 집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동안 주님 곁에는 어부, 세리, 장교, 학자, 정치인, 군인, 부자, 거지, 병자, 창녀, 강도, 남자, 여자, 노인, 아이 등 모든 이들이 섞여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님께서 그처럼 보편적인 구원을 이뤄주시지 않았다면 나를 비롯한 여러분 모두도 하나님의 교회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4. 교회는 사도적이어야 한다.
사도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사도들이 전하여 준 말씀 위에서야 한다는 의미이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 2:20) 말씀을 통하지 않고는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되시는 주님과 연결될 길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와 같은 모습의 교회로 이 땅에 존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교회의 주인이 주님이신 고로 주님의 목적이 곧 교회의 목적이다. 주님께서는 죄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인간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인도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여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교회의 목적이요, 사명이다. 그러므로 교회 된 우리는 이미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세워가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의 가정과 일터, 그리고 이 사회를 천국으로 일구어 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구체화시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통해 인간에게 천국의 모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셨다. 그것은 바로 죄로 말미암아 상실했던 낙원이다. 구원받는 자들은 그 에덴 동산을 이 땅 위에 복원시켜야 하는데 그것이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첫째, 에덴은 ‘강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강은 물이고, 물은 생명이다. 참다운 생명은 언제나 희생적인 사랑으로 드러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랑하시어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 위에 못박으셨다. 물의 자기 희생은 완벽하다. 자기를 소멸시킴으로 사람의 생명을 유지시켜 준다. 자기가 더러워짐으로 사람의 추함을 깨끗케 한다. 에덴에서 발원한 강은 네 근원으로 갈라져 동서남북 사방으로 흘러갔다. 교회 된 우리는 어디든 필요한 곳이라면 나아가 생명의 사랑을 내어 뿜어야 한다. 그럴 때, 에덴의 회복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에덴은 ‘울타리가 쳐진 정원’이다. 우리나라 개역 성경은 에덴을 ‘동산’이라고 번역했다. 히브리어로 ‘간’이라 명기되는 이 단어는 ‘뜰’, ‘정원’이란 뜻이다. 그러나 이 ‘간’은 그냥 정원이 아니다. 반드시 울타리로 보호된 정원이 ‘간’이다. 어느 곳이듯 에덴을 복원하기 원한다면 그곳에 세속적 사고방식과 구별된 울타리를 쳐야만 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자기 부인은 세속적 생각을 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셋째, 에덴은 ‘의무를 다하는 곳’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에덴을 선택하셨을까? 에덴이란 ‘기쁨’이란 뜻으로, 이것은 주어진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을 때 주어지는 내적 기쁨을 의미한다. 타인을 향한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려 할 때 우리는 철저하게 타락해 버린다. 교회는 자신에게 맡겨진 의무를 다하는 에덴이 되어야만 한다.
넷째, 에덴에는 ‘선악과’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에덴에 각종 나무를 만드신 뒤 아담에게 그 실과를 마음대로 먹게 하셨지만 먹을 수 없는 ‘선악과’가 있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사람을 구별해 주는 나무였다. 그런데 사단은 인간을 유혹했다. 그 실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차이를 부정해 버려 죄를 지었고, 이의 결과는 에덴의 상실이었다.
교회 된 우리는 이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 내 가정과 일터, 그리고 이 사회를 천국으로 일구어 가야 한다. 그것은 선악과를 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공장에도, 학교에도, 국회에도,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마음 한가운데 심어야 한다. 우리 마음 한가운데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실 때에만, 성도도, 교회도, 하나님 나라도 가능함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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