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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경 연구 자료 - 7강 - 성경이 말하는 인간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0. 12. 11:09
 

7강 - 성경이 말하는 인간


사람이 자기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한 자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때문이다. 누가복음 15장에는 ‘탕자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아버지의 재산을 들고 객지로 가서 방탕한 생활로 재산은 물론 인생을 탕진해 버렸던 탕자가 언제 아버지께 돌아갔던가? 바로 자기 자신을 발견했을 때였다. 자기 자신의 처참한 몰골을 인식했을 때 그에게 아버지는 종이 되더라도 반드시 돌아가야 할 절대적인 존재였다. ‘탕자의 자기 발견’ ‘새로운 아버지 발견’ ‘아버지와의 바른 관계 맺음’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인간 창조의 기사를 창세기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짐승과는 달리 흙으로 빚으신 후, 생기를 불어넣어 주심으로 ‘생령’이 되게 하셨다. 여기서 ‘생기’는 히브리어로 ‘루하’라고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영’을 의미하며 ‘생령’(生靈)이 되었다는 것은 짐승처럼 그저 산 존재가 아니라, ‘영적으로 산 존재’가 되었음을 말한다. 따라서 영적인 면을 상실해 버린다면 그는 더 이상 짐승과 구별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영적으로 창조된 인간이 ‘생령’으로서의 삶을 바르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에 대해 성경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롬 3:10-18) 바울은 인간이 영적인 삶을 살지 않는 것은 제쳐두고서라도, 하나님을 두려워조차 하지 않는다고 통탄한다.


그렇다면 생명을 품고, 사랑하며, 정직하게 진리의 도구가 되어 생령이 되어야할 인간이 왜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전면적으로 부정 당하는 ‘죄인’이 되어버리고 말았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여기서 ‘한 사람’이란 바로 인류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을 의미한다. 즉 아담 한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범한 결과, 그에게서 태어난 모든 인간이 다 죄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또다시 질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아담 혼자 저지른 죄에 대해 왜 우리도 똑같은 죄인이 되어야 하는가?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롬 5:14) 성경은 ‘범죄’‘죄’를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다. ‘범죄’가 드러난 행위를 의미한다면, ‘죄’란 보이지 않는 본질적인 상태를 뜻한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으로부터 비롯된 우리는, 동일한 범죄를 저지르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이미 죄인이다. 왜냐하면 범죄로 말미암아 아담은 본질적으로 죄인이 되었고, 그 죄인 된 본질로부터 우리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 사는 흑인들은 세계 최강대국인 미합중국의 시민이다. 그들은 아프리카 흑인들에 비해 더 높은 학식, 세련된 매너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본질적으로 아프리카계 흑인들이다. 그들의 본질이 바로 아프리카 흑인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범죄 한 아담의 후예로 태어난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전부 죄인들이다.



그렇다면 죄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죄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헤트’나, 헬라어 ‘하마르티아’‘과녁에서 벗어난 것’(Missing a Mark)을 의미한다. 궁수가 쏜 화살이 과녁에서 벗어났다면 그것은 결과일 뿐이고, 그 원인은 이미 조준이 과녁을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범죄는 죄의 결과일 뿐이요, 죄는 그 사람의 삶의 조준이 과녁을 벗어나 있던 상태이다.


아담이 죄인이 되어간 과정은 이렇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1-6)


1. 말씀에 대한 불신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절대로 선악과를 먹지 말 것과 만약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셨다.(창 2:17) 아담은 그 말씀을 믿고 지켜야만 했지만 스스로 저버리고 말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 곧 과녁을 벗어난 것이요, 그것이 ‘죄’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화’(肉化)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다. 말씀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2. 죄의 유혹에 빠진 인간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뱀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을 변질시켰다. 여기서 뱀은 사단이다. (계12:9) 사단의 유혹과녁을 벗어나 지켜야 할 자리를 이탈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유혹에 빠진 인간은 새로운 의미로 선악과가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창 3:6 상) 왜 하필이면 그 날만은 선악과의 열매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게 보였을까? 사단의 유혹에 빠진 그녀는 이미 과녁에서 벗어나 있었다.


3. 범죄한 인간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6 하) 하와는 범죄를 저지르자마자 곧 남편인 아담도 그 범죄에 동참케 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여자가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남자에게 찾으셨다. 그 이유는 아담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셨기 때문이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최초의 인간이었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축복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그 말씀을 지켜야 할 책임도 함께 주어졌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여자가 아닌 남자에게 범죄의 책임을 물으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4. 범죄의 결과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범죄의 결과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인이 되었고 그 결과 말씀대로 사망에 이르고 말았다. 이는 인간을 ‘생령’ 되게 했던 영의 죽음을 의미한다. 즉 인간은 이제 ‘영적으로 죽은 존재’가 되고 만 것이다.


자신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본질적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도대체 무엇인가? 성경에 그 해답이 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26) ‘에노스’란 이름의 의미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인간은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기 전에는 여호와를 찾지 않았다. 그러나 인생이란 죽을 수밖에 없는 ‘에노스’임을 절감했을 때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생명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그들에게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에노스의 존재임을 깨달았다면, 당장 해야 할 일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당신의 삶의 과녁으로 삼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려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메시아시요,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형벌을 친히 받으셨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4-25) 당신이 정녕 시드는 풀이요, 떨어지는 꽃이요, 피할 수 없는 에노스임을 바로 알았다면 이제부터 할 일이란 주의 말씀 속에 거하는 일이다. 이 말씀을 통해서만 구원자이신 예수님과 생명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면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에노스임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나라는 존재는 영영 씻을 수 없는 죄인임을 겸허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사 내게 복음의 말씀을 주시고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낮고 낮은 마음으로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이다. 바로 그와 같은 마음속에 주님은 충만하게 임하신다. 건강한 자에게가 아니라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주님께서는 자신을 의인이라 생각하는 자들이 아니라 죄인임을 통감하는 자들을 구원하시러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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