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강 -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
본 강의에서도 지난 강의와 같은 맥락에서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조명해보고자 한다. 강의를 통해 살아 계셔서 이 순간에도 역사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길 바란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생각할 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까닭은 무엇인가? 둘째, 왜 다양한 종교 중에서 예수님만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가? 셋째,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해 돌아가셨다 할지라도, 왜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그토록 참혹하게 죽으셔야만 했는가? 이 질문들의 답을 찾아가기에 먼저 확고히 해야 할 것은 믿음은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1. 구원자 예수님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마 1:16) 본문은 예수님을 가리켜 그리스도라 부르고 있다. 헬라어 ‘그리스도’(χριστός)는 히브리어 ‘메시아’와 같은 뜻으로 ‘구원자’란 의미를 담고 있다. 왜 예수님만 구원자가 되시는가?
첫째, 그분만이 우리를 본질적인 죄의 굴레에서 구원해 내실 수 있기 때문이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인류 역사상 위대한 성현들은 무수히 많았지만 타인의 죄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목숨을 버리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 다른 종교는 죄의식이 없든지 희박하다. 단지 도덕만 강조한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도덕적으로 산 다해도 본질적인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7강에서 다룰 것임). 예수님께서는 친히 우리의 죄 값을 치러주시므로, 인간의 능력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죄의 굴레를 끊어버리셨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일을 위해 오셨고 십자가 위에서 그 일을 다 이루셨다.
둘째, 예수님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속죄양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세상을 위해 죽는다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은 속죄양이 아니므로 구원자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속죄양이었다.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내 죄 값을 대신 치를 자격과 능력을 갖고 계셨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2. 부활하신 예수님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지만, 죽은 지 사흘 만에 죽 다시 살아나심으로 영원한 부활자가 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부활자라는 사실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첫째, 예수님께서 영원한 부활자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다. 예수님께서 아무리 내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끝났다면 죄와 더불어 또 하나의 근본 문제인 죽음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죽음의 문제 또한 간단히 해결되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둘째, 예수님께서 영원한 부활자가 되셨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유효하다. 예수님이 만약 부활하지 못하셨더라면 유한한 한 인간의 말을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믿어야 할 까닭이 없다. 그러나 그분은 부활하셨기에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할 수 있고, 그분의 말을 믿고 따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그분의 이름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새 생명을 얻고 있는 것, 예수님의 시체가 들어있는 무덤이 없다는 것에서 증거를 찾을 수 있다. 마지막 결정적인 증거는 거짓은 절대로 은폐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는 닉슨 대통령의 보좌관이었던 찰스 콜슨(Charles W. Colson)의 『Loving God』에서 중요한 고백을 볼 수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졌을 때 대통령 측근들은 사건을 은폐하기로 서로 말을 맞추었지만 오래지 않아 모든 것이 들통 났다. 이와 같은 엘리트들이 무슨 까닭에 몇 마디의 말을 지키지 못해 감옥신세를 지게 되었는가? 그것은 진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예수 부활’은 제자들이 서로 입을 맞추어 꾸며낸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제자들이 전한 ‘예수 부활’의 증거는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살아 역사한다. 그것은 아무도 허물 수 없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3. 인성과 신성을 가진 예수님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人子)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3)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가리켜 ‘인자(人子)’, 즉 ‘사람의 아들’이라 부르시고 이 사실을 강조하셨다. 이 사실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인간을 품으시려 이 땅의 가장 낮고 비천한 곳인 구유 속으로 내려오셨다.
한편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고 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 1:35)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은 인간이었으나 신성을 지닌 존재로서 인간의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흠 없는 어린양으로 드려질 수 있었다.
4. 임마누엘 예수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함이라”(마 1:23)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시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또 하나님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 한번만 깊이 생각해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토끼의 새끼는 토끼고, 참새 새끼는 참새이며, 사람의 자식은 언제나 사람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 역시 하나님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에게 왜 중요한가? 첫째,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므로 그분의 도우심은 완전하면서도 근본적일 수 있다. 둘째,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으나 죄 없는 참 사람일 수 있으셨다.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기에 원죄가 없다. 태어나신 후에도 하나님이신 고로 육체를 갖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범치 않는 완전한 삶을 사실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는 예수님만이 어떤 흠도 없이 완전한 삶을 산 진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자시요, 부활자시며, 참 인간이시요, 참 하나님이시며, 우리와 언제나 함께 계시는 분이시다. 이를 깨닫고 나서야 요한복음 14장 6절이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없다고 하는지, 사도행전 4장 12절이 예수의 이름이 아니고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증거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그렇다면 좀 더 본질적인 문제로 들어가서 왜 예수님께서는 그토록 피를 흘리시며 십자가 위에서 처참하게 죽으셔야만 했는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기 위해 내린 10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이 애굽 땅에서 처음 난 것을 모두 죽이는 재앙이었다(출 11:5). 이 재앙은 애굽백성과 그 땅에 거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애굽의 첫 것은 사람과 가축 할 것 없이 모두 죽게 되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 재앙이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 이유는 1년 된 어린 수컷 양을 잡아 그 피로 집 좌우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피의 흔적을 보고 죽음의 재앙은 넘어갔고‘(pass over)’, 이를 기념하여 ‘유월절’이 지켜졌다. 중요한 점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앙이 임하지 않은 이유가 흠 없는 어린양이 이스라엘백성 대신 죽어주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양이 사람을 대신하여 피를 뿌리고 죽었기에 하나님의 심판은 넘어갔고, 그 결과 사람이 살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인 까닭에 결코 죄를 용납하시지 않는다. 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뒤따fms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범했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 ‘속죄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그러나 불완전한 제물인 동물과 불완전한 제사장인 인간의 제사는 결코 완전한 제사일 수 없었다. 죄를 범할 때마다 쉼 없이 반복하여 양을 잡아 피를 뿌리면서도 인간은 본질적인 죄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본질적인 죄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친히 영원한 제사를 마련해 주셨다. 그것은 흠 없고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제물이 되었던 십자가였다. 제사를 하나님께 바쳐 드리는 제사장 또한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이보다 완전한 제사장이 어디 있는가? 완전한 제사장에 완전한 제물, 그야말로 완전한 제사였다.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7-18)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인간의 죄를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사해 주시기 위하여, 자기를 십자가 위에서 제물 삼아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된다. 예수님은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사 나의 죄를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철저하게, 온전히, 본질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대속해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셨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죄는 심판 받았고, 또한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동시에, 그리고 완벽하게 완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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