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를 심은 사람 지은이: 장 지오노 |
‘나무를 심은 사람’과 문명의 위기 -편집자의 말 .'희망을 심은 사람'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은 1953년 처음 발표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 지 약 40년 동안 왜 그토록 여러 나라의 말로(13개 언어) 옮겨져 널리 읽히고 있는 것일까? 어린이의 동화책보다 얇은 이책이 왜 그렇게 큰 무게를 지닌 책으 로 읽히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이 조그만 책이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온갖 이기주의를 벗어나 자기의 이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그리 고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는, 고결한 인격을 지닌, 한 사람의 불굴의 정시노가 실천이 이 땅에 기적같은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이 작품 이 전해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한 사람의 끈질긴 노 력->새로운 삼림의 탄생-> 수자원의 회복->희망과 행복의 부활이 그것이다. 그 리고 이러한 아름다운 과정은 인간이 지닌 추하고 악한 또 하나의 과정과 대조 를 이루고 있다. 즉 인간의 이기심과 무절제한 욕망, 앞날을 조금도 내다보지 못 하는 무지, 나무를 비롯한 자연에 대한 무자비한 파괴,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살 육하는 두 차례의 전쟁이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반대과정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선과 악이 이처럼 교차하는 가운데 이 작품의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는 장엄 하리만큼 숭고한 인물로 등장한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오늘의 시대에, 이기주의가 충만하여 만인대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시대 에, 그리하여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HOMO HOMINI LUPUS)인, 그리고 온 인 류가 ‘무한경쟁’상태에 들어가 있는 오늘의 시대에 자기의 이익을 돌보지 않 고 남을 위해, 공동의 선을 위해 일하는 부피에 같은 사람은 얼마나 경이로운 인물인가? 부피에의 이러한 품성은 어쩌면 작가인 지오노 자신의 인간성과 긴밀하게 연 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한 작은 예로, (나무를 심은 사람)은 1954년 미국의 (보그-VOGUE)지에 의해 (희망을 심고 행복을 가꾼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판되었는데, 그는 이 책의 판권으로 단 1페니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 작품 은 1953년 (리더스 다이제스트)지에 처음 발표되었고 책으로는 1954년 (보그)지 에 의해 처음 간행되었다. 그는 공동의 선을 위해서 아무런 보상도 받지 않고 이 책을 출판함으로써 주인공 부피에를 닮은 발자취를 이 지상에 남기고 싶어했 다. ‘이 작품은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이 책은 나에게 단 1페니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점이야말로 내가 이 작품을 쓴 목 적의 하나를 이루어 준 것이기도 하다.’고 지오노는 말했다. 자신과 신을 만나게 해주는 ‘고독’ 이 작품의 감명깊은 대목은 여러 군데 있을 테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부피에 의 철저한 ‘외로움’,‘고독’일 것이다. 아내와 외아들마저 잃은 그에게 동반 자가 있다면 오직 그가 키우는 개와 양떼들, 그리고 나중에는 그가 기르는 벌들 뿐이다. 그러므로 그는 거의 ‘절대적인’ 고독 속에서 살았다고도 말할 수 있 다. 견디기 어렵다는 고독, 많은 사람들이 무서워서 피해마지않는 고독을 그는 선 택하여 살았다. 그리하여 생의 마지막 시기에 그는 말하는 습관조차 잊어버렸다 고 한다. 부피에의 이러한 특성은 고독 속에서만 사람은 참다운 자기(자아)를 만 나며, 자연과 우주와 만나며 마침내 신을 만난다는 이야기와 통한다. 부피에의 이러한 모습은 동양의 현자를 많이 닮았는데, 지오노의 문학을 연구 한 사람들에 따르면 다른 작품 속에서도 이러한 영웅들이 자주 등장한다고 한 다. 때로는 목자로, 이야기꾼으로, 품꾼으로도 나오며 이들은 대개 양이나 소, 꿀 벌, 사슴, 두꺼비 같은 동물들을 데리고 다닌다고 한다. 이런 주인공들은 거의 모두가 외롭게 살아가며, 이러한 외로움 속에서 오히려 기쁨과 행복을 느끼고 고독 속에서 신의 음성을 듣는다. 그리하여 이러한 현자들은 통해 하느님(신)은 이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작가 자신이 어린시절 부터 고독과 정적과 무인의 땅을 좋아 했으며, 산의 웅장함과 엄격함, 고요함, 인자함 속에서 우주와 일체감을 느끼고 청순한 기쁨을 , 때로는 관능적인 기쁨 마져 느꼈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체험이 자신의 작품에 반영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가 보여준 인류애적 사랑과 헌신은 또한 성서에 나오 는 예언자의 이미지를 많이 닮았다. 주인공 엘제아르라는 이름은 성서에 나오는 ‘엘르아잘’이라는 이름의 프랑스어식 표기가 아닌가 여겨지는데, 성서에는 ‘ 알르아잘’이란 이름을 가진 사제나 용사가 7명이나 등장한다. 그리고 이 작품 의 간결하고도 힘있는 문체 또한 인상적이다.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사랑을 원한다’ 부피에가 많은 어려움과 실패를 무릅쓰고 죽기까지 나무를 심었던 것은 나무 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작가 지오노는 ‘사 람들로 하여금 나무를 사랑하게 하기 위해, 그리고 나무를 심는것을 사랑하게 하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고 말했다. 그런데 주인공 부피에가 이 작품에 나오 는 것과 같은 기적을 이룩하려면 나무는 물론이고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가 졌어야만 할 것이다. 지오노는 일찍이 1920년대부터 인간과 땅(지구)사이의 뗄 수 없는 관계에 주 목하면서 이 양자 사이의 신비로운 비밀을 소중하게 다루어 왔다. 그리고 인간 과 땅 사이의 조화와 더불어 인간과 동물, 그리고 식물사이의 공존관계도 소중 하게 다루어 왔다. 지오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살아 흐르는 강물이 인간이 만든 댐에 막 혀 단절되어 버릴 때, 그리고 인간에 의해 동물들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죽어 갈 때 동정심과 자비를 느낀다. 그리고 그때의 우리는 올림푸스 산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고대의 신들을 닮았다. 그러나 나무꾼들에 의해 숲이 잘려나갈 때 우리는 왜 나무들에 대해 동정을 표시하지 않는 것일까? 지오노의 이러한 말은 죽음을 당하면서도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는 침묵의 식 물세계와도 우리가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소리로 도 들린다. 모든 식물은 땅을 정화시키고 인간을 정화시킨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인간을 죽음과 화해시킨다. 모든 생명은 반드시 죽으며 그 주검은 썩어서 흙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대지는 풀과 나무의 씨앗과 뿌리를 품어 또 다시 새로운 생명을 길러낸다. 즉 거의 모든 생명은 근원적으로 식물을 통해 새 로운 생명으로 전화하고 부활하며, 바로 이러한 부활의 과정을 통해 죽음과 화 해한다. 나무가 잘리고 숲이 남벌당하는 데 대한 지오노의 동정은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사랑을 원하며’ 적의와 살의를 싫어하고 죽음을 거부하려 한다는 현대과 학의 가설과 이어지고 있다. |
출처 : 살맛 나는 세상이야기들...
글쓴이 : 크레믈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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