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테크/책방이야기

[스크랩] [김 훈]다시 읽은 칼의노래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0. 21. 06:02


    칼의노래-김훈

   지은이 : 김훈

   출판일 : 2001. 05. 11 

  
출판사 : (주) 생각의 나무




칼의 노래는 지금까지 피상적으로 알아왔던 이순신 장군의 모습과는 분명 다른 모습을 제시한다. 세계전사에 길이 남을 승리를 지휘한 무장의 이면에서 볼 수 있는 인간적인 모습과 그의 섬세한 인간미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이순신 장군이 임금에 대한 무한한 충성심과 함께 언제 그 임금에 의하여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살았다는 것이었다. 이미 한차례 누명을 쓰고 백의종군을 하면서 임금과 조정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탓인지는 모르지만, 모략과 중상에 의해 언제 자신이 희생될 지 모른다는 고뇌가 그를 따라다녔다.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나는 나의 충을 임금의 칼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세우고 싶었다”. 왜적의 칼과 임금의 칼. 그 두칼 모두 자신을 겨누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매일 전장에 서서 싸우면서 이러한 생각을 해야하는 장군의 자리는 얼마나 외로운가.

강하게만 느껴지는 이순신장군의 내면은 어떠했을까. 매우 인간적인 면이 있다. 어깨에 입었던 총상과 모략에 의해 투옥되었을 때 받은 고문으로 인하여 다리 허리의 통증이 수시로 그를 괴롭혔고, 그로 인하여 이른 새벽에 항상 식은 땀을 흘리며 깨어 가위 눌린 듯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 명나라 장군과의 과음으로 인하여 취하고 토하는 모습, 인간의 본성인 성욕을 느끼는 모습, 이 모든 모습이 실제 난중일기를 통하여 기록된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창작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인공호흡기만 떼면 죽어버릴 것 같은 조국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진 삼도수군통제사의 외로움과 고뇌가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아들의 죽음을 묘사한 부분은 무척 남성적으로 무뚝뚝하게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기에 더욱 슬프다. 자신을 빼닮아 특별히 사랑했던 세째아들 면. 그 아들이, 자신들을 명량해전에서 처참하게 부수어 버린 적장의 가족을 노리는 왜구 특공대의 칼에 희생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충무공의 아픔은 “나는 소금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마니 위에 엎드려 나는 겨우 숨죽여 울었다.”는 절제된 글귀에 절절하다.

저자에 의해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로 묘사된 충무공은 그렇게 현재의 자신의 위치에서 순결하게 충성했다. 그렇게 단순하고 순결하게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충성하다가 두려움 없이 자신의 목숨을 던진다. 나약한 임금도, 시건방진 명나라 장군도, 정쟁으로 요란한 조정도, 충무공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책소개>

이순신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나라를 구한 한 영웅의 찬란한 삶을 그린 김훈의 소설. 동인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책은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작가가 직접 다듬고 삽화를 곁들여 선보인 것이다. 작가 김훈은 이 책에서 이순신의 전기를 실증적으로 복원했을 뿐만 아니라, 신화로 남은 자의 내면의 전투까지도 형상화해내고 있다.

<작가소개>

김훈

휘문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산악부에 들어가서 등산을 많이 다녔다. 인왕산 치마바위에서 바위타기를 처음 배웠다 한다. 대학은 처음에는 고려대 정외과에 진학했다.(1966년). 2학년 때 우연히 바이런과 셸리를 읽은 것이 너무 좋아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정외과에 뜻이 없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영시를 읽으며 영문과로 전과할 준비를 했다. 그래서 동기생들이 4학년 올라갈 때 그는 영문과 2학년 생이 되었다.

영문과로 옮기고 나서 한 학년을 다니고 군대에 갔다. 제대하니까 여동생도 고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집안이 어려운 상태라 한 집안에 대학생 두 명이 있을 수는 없었다. 여유자금이 겨우 한 사람 등록금이 겨우 나오길래 작가는 \"내가 보니 넌 대학을 안 다니면 인간이 못 될 것 같으니, 이 돈을 가지고 대학에 다녀라\"라고 말하며 그 돈을 여동생에게 주고, 자신은 대학을 중퇴했다.

중앙일보 :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녹화한 MBC TV의 오락프로 '!느낌표'에 출연, 청소년들에게 소설가 김훈씨의 <칼의 노래>(생각의나무)를 추천했다. 대통령은 이 프로에 함께 나온 초등학생 출연자가 읽을 만한 책을 골라달라고 요청한데 대해 처음엔 질문자의 나이를 고려해 링컨 전기를 언급했다.

하지만 뒤이어 MC 김용만이 "수준 높은 초등학생이니 마음 놓고 책을 추천해달라"고 주문하자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담은 <칼의 노래>를 얘기했던 것. 정작 출판가에서 주목하는 것은 이 책이 지난 2001년 8월, 당시 강금실(현 법무장관) 변호사가 대한변협신문의 법조칼럼에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올려 한차례 화제를 불렀다는 점이다.

이후 이 책은 지난 해 선거 때 노무현 후보 진영의 필독서에 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생각의나무 박광성 사장은 "선거 당시 노대통령 캠프에서 이 책에 관심을 보였던 점을 감안, 대통령께서도 이 책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간접 전달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책의 전달 여부에 대해선 까마득히 잊어버렸으나 지난 11일 시인 김지하씨의 회고록 흰 그늘의 길출판 기념회장에서 만난 청와대의 한 비서관으로부터 대통령께서 칼의 노래를 읽고 감명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해 그런 줄로만 알았다"고 덧붙였다.

느낌표의 노창곡 PD는 "노 대통령께서 요즘같이 격동기를 살아가야하는 사람들,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번에 대통령과의 특별한 만남 - 어린이, 청소년,그리고 아시아를 주제로 만들어진 !느낌표는 오는 19일 저녁 9시45분부터 1백분간 특집 방송된다. - 정명진, 신예리 기자 ( 2003-07-18 )



지승호 정치 인터뷰 - 지승호 편집실

가짜 극좌와 가짜 극우, 그리고 김훈과 이문열

등록 : 지승호 조회 : 7,455 점수 : 544 날짜 : 2005년 03월 18일 (20시 30분)

1. 가짜 극좌와 가짜 극우

우리 사회는 너무 많은 가짜들이 범람하고 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우리 사회를 망쳐온 주범들은 가짜 극우들이지만, 가짜 극좌들 역시 만만치 않은 해악을 끼쳐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물론 바람직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극우라면 “씨바! 우리 너무 당하고 살았잖아. 핵무기 만들고 힘을 키워서 일본 놈들도 쳐부수고, 범죄를 일삼는 미국 놈들한테도 본때를 보여줘야지”라고 말해야 그게 원래 극우의 개념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본 사람들이 우리 할머니들을 정신대로 끌고 가기도 하고, 생체 실험도 하긴 했지만, 잘 살게 해준 부분도 있지 않나? 그걸 감사하지 않는 우리 민족은 배은망덕한 민족”이라고 말하거나 “미국이 6.25 때 우리를 구원해줬는데 거기에 대한 은혜도 잊고, 좀 강간당했다고, 장갑차에 좀 치어 죽었다고 지랄을 하는 정신나간 국민” 취급을 하는 이상한 극우들만 존재한다.

하지만 난 한승조나 지만원 같은 사람들은 짜증은 날지언정 위험한 사람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예전 세상 같으면 인간백정이 되었을 개연성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지금 세상에서는 그들이 발언을 하면 할수록 그들이 원하는 세상과는 거리가 멀어질 것이고,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은 더 과격한 발언들을 할 것이다.

난 좌파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아는 수많은 존경받아 마땅한 좌파들은 가슴 속에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그리고 유머와 여유가 있다. 부당한 현실에 저항하고자, 억압받는 사람을 해방하고자 총을 든 신부, 그러나 자신이 강해졌을 땐 적대 세력까지 포용할 수 있는게 좌파일거다. 가슴이 따뜻하지 않은 체게바라를 상상할 수 있을까?

올 초엔가 강헌, 신해철의 주도로 ‘노동의 새벽 20주년 기념 헌정음반’이 나왔고, 그 후 기념 공연도 있었다. 그때 노동계 일부에서 거센 반발이 있었던 것 같다. 니들이 뭔데, 그런 걸 하냐는 뜻이었나 보다.

신해철은 어느 인터뷰에서 씁쓸하다는 듯 이런 뉘앙스의 얘기를 했다. “‘노동’자가 들어가면 모두 자기들이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내가 보기에는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진다. 다시는 이런 일을 하고 싶지 않다.”

사실 먹고 사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밥그릇 싸움이라는 것을 일방적으로 폄하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것도 룰은 있어야 하고, 일방적으로 상대방을 배제한 채 우리만 해야 한다고 한다면 그렇게 욕하는 자본가들이나 독재자들과 얼마나 다르다는 것일까?

2. 김훈과 이문열

난 가끔 사석에서 김훈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곤 한다. 그러면서하는 말이 “내가 볼 때 김훈은 얼마든지 이문열처럼 될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을 하면서도 내 예측이 빗나가기를 바랬었다.

하지만 점점 내 예측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아니 오히려 요즘은 이문열 같은 경우 그의 공적인 행동이 잘못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으로는 이해해주고 싶은 구석이 있다.

그에 비해 요즘의 김훈은 훨씬 얄밉다. 이문열은 충분히 맞을 만큼 (자업자득이라고 할지라도) 맞았는데, 그와 멘탈리티가 비슷한,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훨씬 위험할 수 있는 김훈은 아직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보수, 진보 양진영에서 공히 대접받는 작가는 드물다. 한겨레에서 기자로 불러줬을 정도고, 조선일보는 그에게 동인문학상을 안기면서 ‘한국 문학사에 떨어진 벼락 같은 축복’이라는 찬사를 남겼다. 그래서 사람 보는 눈에 관해서는 이쪽 진영보다 저쪽 진영이 더 정확한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다. 일찌감치 우리 편(?)임을 간파했던 건 아닐까?

나는 노 대통령이 김훈의 『칼의 노래』를 극찬할때 뜨아했었다. ‘아니 왜 저 책을?’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분명 내가 판단할 때 노무현 대통령이 원하는 세상과 김훈이 원하는 세상은 달랐기 때문이다. 아니 김훈이 원하는 세상이란 있기는 한 걸까? 작품과 세상살이는 별개라고 말할지는 몰라도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기에는 그는 너무 세상에 관한 냉소적인 발언을 많이 한다. 실상 현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이나 고민도 없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는 시사저널의 편집장까지 지냈고, 한겨레신문사의 기자로까지 있었지 않은가? 예전에 그의 상사로 있던 한겨레 기자가 쓴 글에 ‘신문사 기자가 정당에 가입할 수 있는가?’를 두고 논란이 있을 때 홍세화는 ‘이 불공평한 상황 속에서 기자가 진보정당에 가입해서 힘을 보태는 것은 오히려 해야 할 일’이라는 식으로 조목조목 자신의 행위를 설명한 반면 김훈은 ‘안된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 후배들의 ‘선배 왜 안돼요?’라는 대답에는 ‘그냥 무조건 안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지식인이라면 자신이 설명할 수 없는 일을 주장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는 너무 많이 현실개입적인 발언을 한다. 그것도 대단히 가짜 우익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를 대단한 문장가요. 인간적으로 미워할 수 없는 쿨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이런 얘기를 주고 받을 때 도무지 남을 인정해주지 않는 평론가 한 분은 내게 호통을 치셨다. ‘니 주제에 감히 김훈 선생의 글을 논할 수 있느냐’고. 나는 김훈의 문체를 가지고 얘기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내 주제가 한심하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공적인 역할에 대해 한 마디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걸 누구 편이냐, 아니냐, 그런 식으로의 해석은 사양한다. 난 오히려 우리 편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을 많이 한 사람이고, 현재의 정치적 입장이 조금 다르더라도 칭찬받을 사람은 충분히 칭찬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내가 『자전거 여행』을 쓴 김훈을 비판하고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걔네들이 날 좋아하긴 하지만, 난 걔네들을 한심하다고 생각해”라고 발언하는 김훈에 대해 아직도 호의적인 사람들을 보면서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반면 요즘 이문열이 망가진 것이 온전히 이문열만의 탓이고, 이문열의 욕심 때문에 생긴 일일까 하는데 생각이 미친다.

내가 보기에 이문열은 상당히 영리한 사람이다. 반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하는데, 난 그 사람이 여린 사람이고, 자신이 받은 상처가 커서 판단력이 흐트러진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문열은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이 정치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국회의원들은 많지만, 자신이 곱게 늙는다면 이문열은 많지 않을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이미 곱게 늙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긴 하지만, 여기서 과거로 돌아가서 문제점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는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시다시피 이문열은 연좌제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레드 콤플렉스라는 게 사람들로 하여금 “난 빨갱이가 아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게 하는 방식이라면 이문열의 강박관념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의 초기 작품들에서는 요즘과 같은 망가진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도 어떤 미덕은 있었을 것이다.

마광수의 말대로 많은 한국의 작가들은 자신은 팔고 싶으면서 팔리는 작품을 경멸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한때 일군의 민족문학 진영은 자신들이 쓰는 작품 이외에는 모두 쓰레기 취급하는 배타성이 있었다. 이문열은 자신을 쓰레기 취급하는 그들에게서 말 못할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듯하다. 그리고 그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꾸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갔었던 듯 싶다.

운동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설득해서 세상을 좀 더 밝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만약에 그들이 이문열에 대해 좀 더 따뜻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고, ‘당신 괜찮긴 하지만, 이런 부분을 더 생각해주는 게 어떨까?’라고 말해줬다면 결과는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를 생각하는 것은 부질없는 상상일까?

우파가 진짜 우파가 아니었듯이, 가짜 좌파들의 이런 좌파적 태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가짜 우파들의 너무나 꼴통스러워서 역겹긴 하지만, 뻔히 잘못이 드러나 오히려 건전한 세력들의 분노를 통한 결집 같은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지만, 도덕으로 무장한 듯한 그들의 거친 말투는 어쩌면 더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우익의 세가지 즐거움(右翼三樂) - 진중권/문화비평가
: 1257 : 470

최근에 소설가 김훈이 재미있는 얘기를 한 모양이다. 나는 그의 그 유명한 소설을 아직 안 읽었는데,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공적인 것으로, 박정희 시절의 이순신 이데올로기와 그것의 시대착오적 리바이벌에 이미 충분히 질려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사적인 것으로, 이순신을 사무라이 삼아버리는 어설픈 일본 우익 미학의 촌스러움이 내 미감을 적잖이 거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김훈은 미시마 유키오와 달리 사무라이 미학으로 비장하기에는 너무 귀여운 사람이다. 어쨌든 김훈은 그 ‘꽈’가 아니다.

노무현과 이순신

소설 ‘칼의 노래’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실 <칼의 노래>가 베스트셀러가 된 데에는 정치적 배경이 있다. 2001년에 그 책이 나왔을 때만 해도 그렇게 요란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게 갑자기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어떤 정치적 사건과 관련이 있다.


김훈이 그토록 싫어하는 386 세대의 두목이 언젠가 국회에서 탄핵 먹고 잠시 청와대에 들어앉아서 근신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직무를 정지당한 그 황건적 두목이 정신수양 차원에서 읽고 있다며 공개한 책의 목록에 우연히 <칼의 노래>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예수를 믿는 이들이 예수를 닮기를 원하듯, 노짱을 믿는 사람들은 노짱을 닮기를 열망한다. 이런 것을 전문용어로 ‘미메시스’라 하는데, 내가 전공하는 미학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이기도 하다.


<칼의 노래>가 나온 지 2년 후에 갑자기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데에는 황건적들의 이 예술적 습성이 대단히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안다. 덕분에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방송에 소개가 되기도 하고, 최근에는 김훈이 “아동극”이라 평한 그 드라마를 낳기도 했다.

우익일락


김훈에게는 이게 한편으로는 반가웠던 모양이다. 김훈의 말대로 “우익에겐 세 가지 즐거움(右翼三樂)이 있어. 세금 왕창 내고, 아들 최전방으로 보내고, 질서를 지키고.” 책이 많이 팔리면 인세를 많이 받고, 인세를 많이 받으면 “세금을 왕창” 낼 수 있다. 이로써 우익일락(一樂)이 저절로 해결된다.


有錢而自進納稅면 不亦樂乎아. 돈이 생겨도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에 “세금 왕창” 낼 수 있기에 즐거운 것이 우익의 미덕. 거기에 비하면 담배 한 값에 500원 더 받는다고 절필 선언하는 일부 문인들의 좌익적 심성은 얼마나 옹색한가?

다른 한편 이게 부담스럽기도 했을 게다. 우익 김훈이 하필 국가에 “왕창” 공헌을 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게 바로 황건적 두목, 그 휘하의 386 장수들, 그들을 따르는 노란 졸병들이 아닌가.


김훈이 종종 연출하는 우익 낭만주의적 위악은 그가 가진 모종의 결벽증에서 나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김훈이 맥락 없이 386 비난을 늘어놓는 것은 그가 수구 꼴통이라서가 아니라, 마음 속에서 이 불편한 고리를 잘라버리려는 무의식적 기제의 작동이다. 일종의 문학적 알리바이의 마련이라고나 할까?

우익이락


지난해 10월 종교단체와 보수·우익단체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개최한 ‘국가보안법 사수 국민대회’ 집회에 10만여명이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강윤중기자

우익의 두 번째 즐거움은 “아들 최전방으로 보내”는 것이다. 우익과 좌익 미학의 차이는 그들이 처한 물질적 상황의 관념적 반영이리라.


대한민국에서 병역은 국민의 4대의무의 하나로 부과된다. 때문에 좌익의 물적 토대에 처한 이들에게 아들을 군대 보내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적어도 존재미학의 대상이 아니다. 왜? 그것은 자유로이 선택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가 이렇게 즐거움을, 우익이락의 열락을 온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 국민 된 보람이 아니던가.

어떤 이들에게는 아들 군대 보내는 것도 존재를 완성하는 미적 수단이 된다. 여기서 우익은 선택할 수 있는 두 개의 옵션을 갖고 있다.


하나는 김훈처럼 아들을 군대 보냄으로써 그 즐거움을 긍정하는 우익 에피쿠로스(쾌락주의)의 길이다. 다른 하나는 그 즐거움을 애써 거부하는 우익 스토이시즘(금욕주의)의 길이다.


가령 국가안보를 위해 시청 앞에 수만의 인파를 동원한 모 우익 목사. 그는 자신의 쾌락을 7개월 단기복무로 절제하고, 자식 셋 모두 군대에 보내지 않음으로써 성직에 따르는 금욕의 모범을 보여준 바 있다.

우익삼락


우익의 세 번째 즐거움은 “질서를 지키고”이다. 먼저 우익일락의 예를 들어 보자.


“세금 왕창” 내는 우익에게는 존재미학인 것이, 그 주제가 못 되는 좌익에게는 “질서”라는 이름의 의무가 된다. 우익이 세금 내면서 기쁨을 느끼는 것은 안 내도 될 세금을 낸다는 뿌듯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반면 담배 한 갑 살 때마다 500원씩 전에 안 하던 애국을 덤으로 하면서 좌익들이 기쁨을 못 느끼는 것은 아마 그것이 강요된 것이기 때문일 게다. 우익의 존재미학은 좌익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지켜야 할 “질서”가 된다.

우익이락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익의 자식들이 군대에 가지 않는 것은 우익 된 쾌락을 자제하는 스토이시즘의 존재미학이나, 좌익의 자식들이 군대에 한번 안 가려면 난리 바가지를 쳐야 한다. ‘양심적 병역 거부’니 어쩌구 하며 아무리 변명을 해도, 감히 국가에서 제공한 즐거움을 거부한 죄를 단단히 치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익의 마지막 즐거움, 즉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위하여 반드시 지켜져야 할 “질서”라는 것이다.

소설가 김훈씨
/경향신문 자료사진

짜라투스트라는 귀엽게 놀았다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우익들이 삼락(三樂)을 마다하고 저 스스로 불행해지는 금욕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저 홀로 과감하게 쾌락을 긍정하는 소설가는 새 시대의 열림을 알리는 짜라투스트라다.


남들 다 내는 세금 내고, 남들 다 가는 군대 가고, 남들 다 지키는 질서를 지키면서 거기서 남다른 즐거움을 느낀다면, 참으로 귀한 일이다. 내가 우익 미학의 그 처참한 촌스러움을 그나마 참아줄 수 있는 것은,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 여유 때문이다.

ps.

아, 김훈씨께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이순신과 노무현의 동일시는 귀엽지만, 이순신과 박정희의 동일시는 징그럽다.



진중권 / 문화비평가

      입력: 2005년 01월 06일 18:02:22 / 최종 편집: 2005년 01월 07일 10:33:47



출처 : 살맛 나는 세상이야기들...
글쓴이 : 크레믈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