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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진명]황태자비 납치 사건을 읽고...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0. 21. 06:03

나는 추석 연후 3일동안 김진명씨의 "황태자비 납치사건"을 꼭 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졌다. 어쩌면 이 책을 읽지 않으려고 애를 썼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명성황후의 죽음이 갑남을녀들이 생각하고 있는 부분과 동떨어진 표현으로 되어 있어, 소설이지만 왜곡된 관점으로 쓰여 졌다면 다소 황당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고,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일본을 생각하는 본인에게 다시금 분노하게 하기 때문이다.

한 때 김진명씨 소설"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해냄"을 읽고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작가와 같은 공감대를 가졌지만... 그러나 "황태자비 납치사건" 상당히 흥미로움을 느끼는 책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황태자비 납치 사건 1,2

   저자 : 김진명

   출판사 : 해냄출판사

   발행일 : 2003.01.10






이 소설의 내용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둘러싼 일본의 만행과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된 관점에서 출발하는데, 일본 황태자비 "마사코"를 납치하는 사건을 허구적으로 만들어서 연관시킴으로서 사건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왜곡과 명성황후의 죽음에 대해 결벽한 원한을 가지고 있는 남자가 동경 한복판 가부키 공연장에서 일본 황태자비 "마사코"를 납치한다.

여기서 일본의 상징인 일본의 황태자비 "마사코"의 등장은 일본인들이 훌륭한 지성과 올바른 성품으로 과거의 왜곡된 역사를 참회하는 일본인들의 대표적 양심인 것 같다.

황태자비 납치 사건을 수사하던 다나카 형사는 이 사건의 공범 중 한 사람이 제일 한국인 유학생임을 밝혀내어 범인의 행적을 추적하던 중 일본의 외무성 비밀문서와 황태자비 납치가 어떤 연관성이 있음을 알게 된다.

납치범의 조건은 명성황후시해사건 당시의 조선 내부 고문관이었던 에조가 일본 외무성으로 타전한 비밀문서 제435호 전문을 공개하라는 것인데, 경악된 일본은 황태자비가 납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에선지 이 문서를 절대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이에 본인은 매우 황당한 느낌이 들지만 이 문서가 과연 존재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비밀문서 제435호는 명성황후 시해당시의 사건현장에 대한 기록이며, 명성황후 죽음의 부당함을 이야기를 전해 들은 황태자비와 납치범간에 인간적이 유대가 형성되고 황태자비 역시 자신의 역사에 대해 다시 바라보게 되는 스톡홀름 신드롬에 빠지게 된다.

[스톡홀럼 신드롬 또는 증후군 - Stockholm syndrome]

인질이 인질범들에게 동화되어 그들에게 동조하는 비이성적 현상을 가리키는 범죄심리학 용어로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도 한다. 인질사건에서 인질로 잡힌 사람들이 인질범들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오히려 자신들을 볼모로 잡은 법인들에게 호감과 지지를 나타내는 심리현상을 말한다.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은행에 침입한 4명의 무장강도가 은행 직원들을 볼모로 잡고 6일간 경찰과 대치한 사건에서 처음 관찰되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처음에는 인질들도 범인들을 두려워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그들에게 동화되어 자신들을 구출하려는 경찰들을 적대시하고, 사건이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강도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심리현상을 말한다.

심리학자들은 인질사건과 같은 극한상황에 처하게 되면 강한 스트레스와 두려움으로 인해 인질범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 것을 오히려 고맙게 여겨 차츰 그들에게 온정을 느끼게 되고, 결국은 자신을 구출하려는 경찰들에게 반감까지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와 반대로 인질범들이 인질들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자신을 인질과 동일시함으로써 공격적인 태도가 완화되는 현상을 리마 증후군이라고 한다. 1997년 페루 리마에서 반정부조직 요원들이 127일 동안 인질들과 함께 지내면서 차츰 인질들에게 동화되어 가족과 안부 편지를 주고받고, 미사를 개최하는 등의 현상을 보였다는 데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다나카는 수사를 진행, 추적을 통해 황태자비를 찿게 되지만 스톡홀럼 신드롬에 빠진 황태자비는 비밀문서 435호를 찾아 유네스코 마지막 심사일에 발표함으로 일본 교과서의 심의 통과를 막는다는 이야기인데, 고래로 역사 앞에 등을 돌린 한국인의 비겁함과 진실 앞에 눈을 감은 일본인들의 수치를 화끈하게 표현하여 우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아 정말 흥미있고 재미있다고 느낀다.

우리들은 말한다.
"한국인들은 냄비와 같다"고...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펄펄끓어 시끄럽지만 식으면 쥐죽은듯 조용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왜곡된 역사를 배우면서 그것이 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며 살아간다지만 우리는 세계화속에서 일본의 망령된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가! 이러 슬픈 역사를 우리가 잊어야만 하는가! 우리가 위정자가 되어 역사의 대물림을 하여야만 하는가!

이소설은 무었보다도 역사의 진정한 진실이 무엇인지를 우리들에게 일깨워 주고, 우리 자신이 얼마나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하였는가 생각케 하며, 소설 역시 잘못된 역사를 지적하면서 올바른 인식을 가지도록 우리들에게 면면을 보여 주고 있다.

김인후는 말한다.
"선생님, 죽음으로라도 우리 한국인의 비겁함에 참회할 수 있다면..... 저는 백번이라도 죽겠습니다."

아래 글은 옮겨온 글인데 김진명씨와 일문일답입니다.

<황태자비 납치사건>을 쓰게 된 배경이 있는가?

우리 한국인의 비겁함에 참회하고 싶었다. 또 차제에 일본의 역사왜곡을 끝내지 못하면 앞으로 독도침공이나 더 심한 사태를 부를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생겼다.

이런 일본의 만행을 말릴 수 있는 사람들도 역시 일본인이다. 나는 선량한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어떤 논리로도 호도할 수 없는, 그냥 부끄러움과 미안함으로 고개를 들지못할 충격적 소재를 발굴하려 애쓰던중 일본의 양심적 다큐작가 쓰노다 후사코 여사가 쓴 <민비암살>이라는 책의 행간에서 민비시간의 예감을 떠올렸다.

쓰노다 여사는 (민비시해 당시 일본인인 나로서는 차마 묘사할 수 없는 행위)를 했다는 보고가 있다고 쓴 후 그 보고서의 머리만을 소개하고 있었다. 비록 시간에 관한 아무런 언질은 없었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뭔가가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것을 추적했다. 참고로 이 책은 얼마전 한국어로도 번역되었다. 한국교원대학교 김은숙 교수가 번역하여 <조선일보 출판국>에서 <최후의 새벽>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는데 민비암살에 관한한 최고의 보고서이다. 일독을 권한다.

에조의 비밀 보고서는 정말 존재하는가?

이시즈카 에조의 보고서.


물론 이 보고서는 틀림없이 존재한다. 내가 처음 이 보고서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쓰노다 후사코 여사가 쓴 『민비 암살』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거기에서 여사는 이렇게 쓰고 있다.

"고바야가와도 썼듯이 40대로는 보이지 않는 민비의 젊음은 유해 확인 과정에서 매우 문제가 되었던 듯하다. 후에 사건을 담당한 히로시마 지방재판소의 구사노(草野) 검사장은 사법대신 요시가와 아키마사(芳川顯正) 앞으로 보낸 11월 9일자 전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젊었으나 다시 젖가슴을 살펴보니 나이가 든 사람이었다.'

살아서는 외국 사신에게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던 민비가 죽어서는 이국의 사내들에게 이와 같은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더욱이 민비의 유해 곁에 있던 일본인인 나로서는 차마 묘사하기 괴로운 행위를 하였다는 보고가 있다. 전 법제국 참사관이며 당시 조선정부의 내부고문관이었던 이시즈카 에조는 법제국 장관 스에마쓰 가네즈미 앞으로 보낸 보고서에서 '정말로 이것을 쓰기는 괴로우나……'라고 서두에 쓴 후에 그 행위를 구체적으로 쓰고 있다."

쓰노다 여사는 이렇게 행간에 슬쩍 흘리고 지나갔지만 그후로부터 나의 관심은 이 보고서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미 젖가슴을 유린한 일본의 낭인들이 자행한 그 다음의 행위는 무엇인가?
쓰노다 여사가 차마 담아내지 못한 보고서의 내용은 무엇일까?

나는 그 당시의 일을 보고한 모든 문서와 자료, 논문, 서적을 샅샅이 뒤졌지만 이시즈카 에조의 보고서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도쿄는 물론 규슈 등의 지방 도서관도 뒤졌지만 그 보고서의 원문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가장 가능성이 큰 문서는 일본 방위청 방위연구소 전사부에 있는 <조선내란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된 조선공사관의 전문들이었다. 교활한 일본인들은 당시의 사건을 조선인끼리 일으킨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제목조차 <조선내란사건>으로 붙인 것이었다.

명성황후 시해에 관한 모든 보고서를 망라한 것이었지만 여기에서도 나는 이시즈카 에조의 보고서를 찾아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쓰노다 후사코 여사가 뭔가를 잘못 본 것일까?
이시즈카 에조의 보고서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일본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그 보고서를 찾아내려던 노력을 포기했다. 그리고는 쓰노다 후사코 여사와 연락을 취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현재 88세인 쓰노다 여사는 분명히 에조의 보고서를 보았다면서 『민비 암살』이라는 책을 번역한 교원대학교의 김은숙 교수를 통해 여섯 종류의 자료를 추천해 주었다.

그러나 이 자료들에도 이시즈카 에조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 자료들에서 가담자 모두가 숨기고 있는 비밀이 틀림없이 존재한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나를 도와 도쿄의 국회도서관과 외무성사료관, 방위청, 여러 대학의 도서관, 심지어는 규슈 대학까지도 뒤졌던 권용석 선생(선생은 성장기를 거의 일본에서 보낸 최고의 일본어 실력자로 현재는 히토츠바시 대학에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역시 그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자료로 방위청의 <조선내란사건>을 꼽았다.

하지만 그는 한국인 그 보고서를 직접 보는 것은 불가능할 거라고 했다. 일련번호가 없는 전문 중 하나를 빼버리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므로 이런 치명적 문서는 빼버렸을 가능성이 너무도 크다는 것이었다.

나는 김은숙 교수를 통해 그 문서의 내용이 시간(屍姦)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김은숙 교수는 쓰노다 여사, 신조사(新潮社)의 가토 기와코 부국장과 함께 그 "차마 쓸 수 없는 행위"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고 그 내용은 분명 시간(屍姦)이었다고 얘기해 주었다.

나는 쓰노다 여사가 어디서 그 보고서를 보았는지 기억을 되살려주기를 바랐지만 노령에 몸조차 불편한 여사를 혹독하게 몰아세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일본의 대표적 역사학자인 야마베 겐타로(山邊建太郞)가 쓴 『일한병합소사』에서 다시 관련되는 대목을 발견했다.

"낭인들은 민비를 시해한 후 능욕하고 불태웠다."

나는 '능욕'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여자를 강간하여 욕보임."
나는 권용석 선생에게 일본인들은 능욕을 어떤 의미로 쓰는지 물었고, 권용석 선생은 일본에서의 능욕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쓰인다고 했다.

야마베 교수는 어떤 자료에 근거하여 능욕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권용석 선생은 필사적으로 야마베의 다른 논문과 저서를 조사했다. 그는 단서를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마침내 다음과 같은 글을 찾아냈다.

"이시즈카 에조의 보고에 의하면……."
야마베 교수 역시 이시즈카 에조의 보고서를 인용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보고서는 실재하는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우리는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이 어떤 것이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모두는 그 보고서를 두 눈 부릅뜨고 한 자 한 자 생생히 읽어내고 싶은 것이다. 세상이 이럴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떻게 일본의 깡패들이 경복궁에 난입해 우리 나라의 왕비를 살해하는 것도 모자라 세계사에 존재한 적이 없는 그런 짐승보다 못한 일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그러고도 반성은 커녕 한국을 도와주었느니, 이제 와서 은혜도 모른다느니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지난 106년 간 이런 엄청난 일이 왜 정식으로 제기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이 있다는 것만은 안다.

우리는 일본 정부에 이시즈카 에조의 보고서를 정식으로 공개할 것을 강력히 요구해야만 한다. 나는 한국인인 나 혼자의 힘으로는 그 원본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렇다면 또다시 침묵으로 넘어갈 것인가. 또다시 굴종과 비겁의 역사를 반복할 것인가. 안 된다. 이번만은 결코 안 된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에게 당부하고자 한다. 세계사에 존재한 적이 없는 이런 일본의 행위를 전세계에, 무엇보다도 일본인들의 가슴에 꽂아주는 일에 동참해 주기를 간곡히 당부한다.

아직은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다.

각 소설 속의 내용 중 어디까지가 사실이며, 그런 정보는 어떻게 얻는가?

나는 철저히 사실에 근거해 소설을 쓴다. 그러므로 내 소설의 뼈대가 되는 사실은 그닥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정보는 주로 내 자신만의 의심과 사색으로 얻는 편이다. 사람들은 중요한 일을 아무런 의심없이 넘기는 경우가 많다.

독자들에게 수수께끼를 던짐으로써 예를 한 번 들고싶다.

과거 전두환 대통령은 취임직후 유럽을 방문했고 이 때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의 네 나라를 각 일 박씩 공식방문했다. 그래서 모든 언론은 유럽 4개국 순방이란 제목으로 보도했는데...

실제 전 대통령은 상기 사 개국외에 스위스를 비공식으로 방문했다. 그리고 그 스위스에서는 행적이 베일에 싸인채 이 박이나 했다. 데리고 간 수많은 수행원들을 그냥 놀리면서 스위스에서 휴식을 취했을 리는 없고보면 그가 거기에서 무엇을 했을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혹시 박정희의...

나는 이런 것을 추적한다.

출처 : 살맛 나는 세상이야기들...
글쓴이 : 크레믈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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