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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낙서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0. 21. 06:56


낙서 화가 바스키아





장 미셸 바스키아는 "검은 피카소"로 불리면서, 어느날 갑자기 뉴욕화단에 별처럼 등장한 첫 흑인 화가가 되었으며 27살에 요절함으로써 20세기 미국미술의 신화가 된 인물이다.

1977년부터 79년까지 길거리나 버려진 건물에서 지내면서 낙서 화가인 친구 Al Diaz의 도움을 받아 낙서 시리즈(graffiti text)에 힘을 쏟기 시작하고, 곧 낙서화가(grafitti artist)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SAMO라는 고유명으로 작업을 하면서 키스 해링, 앤디 워홀(Andy Warhol)등과 전시회를 갖고, 개인전에서 극찬을 받는 등 천재 아티스트로 활동한다.



바스키아의 낙서에 대한 관심은 뉴욕시의 담벼락에 스프레이로 낙서 그림을 그리던 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바스키아의 낙서에 대한 정의는 지하철에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는 훨씬 폭 넓었다. 그것은 기존의 이미지들, 미술의 형식적인 정의 이외의 것, 어린이, 부랑자, 원시인, 원주민들이 만든 작품들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특히 80년대 초반의 많은 바스키아 작품들은 거칠고 낙서화되고 지나치게 물감으로 범벅된 도시의 벽을 재현하고 있다. 깊이 감이나 이야기, 상대적 크기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2차원적 화면은 광적이고 추상적이며 전면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하나의 큰 캔버스는 신속하고 산만한 이미지들로 채원진 검은 색의 넓은 면들로 구성되었다. 암벽미술은 낙서의 초기 형태로 오늘날의 주택 계단통이나 건물 외관과 마찬가지인 동굴이나 산의 측면에 그려지거나 새겨진 미술의 형태이다.



코카인 중독으로 27세의 나이에 요절한 뉴욕출신의 화가 바스키아의 생애를 다룬 영화.OST




이러한 아프리카 등지의 계곡 암벽화들을 바스키아는 캔버스로 옮겨 현대적인 해석을 창조해 내기도 했으며, 특히 자신의 시각 어휘를 풍부하게 할 수 있는 기화와 상징, 표식의 풍부한 공급원을 찾았다. 예를 들어 그래픽 미술가, 건축가, 디자이너, 상업 미술가들이 이용하는 국제적 기호와 상징을 종합해 놓은 드레이퓌스(Henri Dreyfuss)의 '상징자료책'에서 바스키아는 '호보 기호(Hobo Sign)'애 관심을 가지고 이 기호 체계를 회화와 드로잉에 이용하였다.



호보(Hobo)란 초기 거지들의 세대라 할 수 있는 부랑자들을 일컫는 말인데, 이들이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던 추상적 기호들을 모아놓은 것은 호보 기호라고 하였다. 이리저리 떠도는 실업자들이 담벼락이나 울타리, 보도, 문에 분필이나 흑연으로 낙서처럼 써서 남긴 기호들은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



그는 이 기호들이 주는 시각적인 즐거움과 낙서적인 성격 그리고 기호가 의미하는 바가 작품의 주제와 때때로 관련을 가졌기 때문에 이를 즐겨 사용했다. 그러나 바스키아의 미술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냉장고 문짝이든, 여자 친구 드레스든, 신문 쪼가리든 세상 만물이 다 캔버스가 되어 그곳에 단어를 쓰고 기호를 긁적였던 바스키아. 그가 담벼락에 찍찍 그은 낙서의 의미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말했다. "해독은 무슨 똥 같은 해독? 단어일 뿐이야."

장 미셀 바스키아 http://jmbasquiat.new21.org/
바스키아 생애 http://www.basquiat.pe.kr/

위 사이트에서 바스키아에 대해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데, 관심있으면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출처 : 살맛 나는 세상이야기들...
글쓴이 : 크레믈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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