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테크/파랑새의원( 제주도)과 섬이야기

[스크랩] 내가 부자인 이유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2. 12. 00:42

내가 부자인 이유.

 

나는 내가 생각해도 부자다.

그것도 시시한 부자가 아닌 큰 부자다.

대한민국에서 내노라하는 에스그룹 이모씨나 에이치그룹 정모씨도 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최소한 이 나라에서 일등 부자라면 나정도는 되야지 앞에 지적한

이모씨나 정모씨는 나하고는 당최 게임이 안된다.

 

우선 나의 재산 부터 공개하겠다.나의 재산은 동산 부동산 합하여 천문학적인 숫자

이므로 여기서 시시 콜콜하게 거론함은 옳지않다.또한 내가 워낙 숫자엔 젬병인 점도

거론함을 주저케하는 한 이유이다.다만 공개키로 했으니 숫자(금액)는 빼고 내가 가

지고 있는 재산 하나 하나를 공개하겠다.

 

나의 재산 1호는 뭐니 뭐니해도 <牛城亭>이란 정자다.대개의 부자들은 별장이나 정자

정도는 다 갖고 있을 것이다.오죽하면 조선 초엽 간신의 상징인 한명회란 벼슬아치는

한강변에다 루각 같은 정자,정자 같은 루각을 지어 거들먹 거리지 않았는가.

어디 그뿐이랴.그 당시 한명회는 주체 못하는 부와 권력으로 정자를 지어 세상을 내려다

보며 안하무인으로 한 세상 걸출하게 폼재지 않았나 싶다.바로 그 정자가 있던곳이 요즘도

빵빵  잘 나간다는 동내가 압구정동이다.한명회의 정자 <狎鷗亭>에서 유래한 동내 이름이란다.

 

나의 재산 1호 牛城亭을 재산 1호에 자리메김 함은 다른 뜻이 있는게 아니라 우성정이란

정자를 지은 내력이 너무 아름답고 고마워서다.이 나이(지천명)들도록 그 많은 재산을 거느리고

살지만 변변한 정자 하나 없다는 것은 부자의 자격이 없다는 뜻도 되므로 어떻게하면 번듯한

정자를 세울까 근심 걱정, 노심초사 하는데,나의 그 걱정을 눈치챈 문우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제주도 문우들이 함께 모여 시도 읊으고 주님도 섬기며 요즘 흔한 말로 커무니케이션을 도모 한다

는<**제주>란 문학 모임에서 만난 詩人 김앵국이다.그 김시인은 시 짓는일 말고 본업으로

<**건설주식회사>대표이사란 명함을 갖고 댕기는 이다.소식에 의하면 제주도에서 발급되는

관급 공사인 정자 건설엔 노하우가 대단한 회사란 소문이 자자하다.

 

어느날 문우 몇몇이서 酒님을 모시고 酒器掉們(주기도문)을 하면서 이 말 저말하는 가운데

김시인이 나보고 "두령님,두령님 집앞에 정자 하나 번듯하게 지어 드리겠습니다"하기에

이 사람 주님을 많이 섬기다 보니 훼치는 소리 하는구나.아무려면 수십억이 소요되는 정자 건설

을 이렇게 간단하게 말하나 싶어, 긴가 민가 잊고 지났다.그리곤 속으로 걱정이 태산 같았다.

아무리 나에게 재산이 많고 부자지만 떡하니 정자를 지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저, 이두령은 그 많은 재산이 있으면서 뭐 한다고 정자까지 지어 폼을 재려는가"

"아니 이두령에게 정자라, 어디 가당치나 한 얘기인가"라는 말들,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근심과 걱정,설레임 속에 어느듯 날이 가고 달이 가니, 봄 지나 여름이요.여름 지나 가을이라.

가을 지나 겨을, 겨을 지나 봄, 그러니까 금년 봄(08년)에 김앵국 시인으로 부터 연락이 왔다.

"두령님 준비하소 4월 아무날 아무시 부터 정자 지을 공사를 할 테니 단단히 준비하소"

 

때는 바야흐로 봄이였다.춘 삼월 봄바람이 살랑 불어 되니 이 마음도 살랑살랑, 덩달아 우성강

강바람도 비릿내 풍기면서 아롱다롱 불어오는디,자칭 '있지망 데모도'(일등 잡부의 일본어)라

자부하는 오조리 이장을 지낸 강이장과 역시 건설회사를 경영하며 노하우가 풍부한 현사장이

우성정 공사에 일꾼으로 보조를 맞춰 주는구나.

김앵국 시인이야 알아주는 도편수가 이니든가.김시인과 함께 대목 기술을 터득하는 오뱅열

시인, 나와 다섯이서 기둥을 세우고 나무를 짜르고 주춧돌 자리 땅을 파고, 얼~~슈 어얼~슈

이 아니 노래 가락이 없을소냐.

 

조선 말엽 흥선대원군(이하응)은 자기 두번째 아들 명복(고종)이 왕이되자 수렴청정을 한다.

아시다시피 대원군은 공과가 많은 사람이다.그가 정권을 잡자 제일 먼저 한 일이 경복궁 창건

이다.임진왜란때 백성 손에 불태워진 경복궁이 아닌가.왕권 강화가 목적이든 대원군 자신이

정치적인 목적이든 어쨌거나 경복궁을 짓는다.

 

그 궁을 짓는데 양반이 짓지는 안했을거고 그러면 굼주리고 배고픈 백성을 동원하여 지었을

것이다.그 당시 동원된 백성들 오죽 괴로웠으면 경복궁 타령이란 은유적인 가락이 나오겠는가.

 

에헤, 남문을 열고 파루를 치니 계명산천이 밝아온다
에헤 에헤 어랴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에헤

을축 사월 갑자일에 경북궁을 이룩일세
에헤 에헤 어랴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에헤

우리나라 좋은 나무는 경복궁 중건에 다 들어간다
에헤 에헤 어랴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에헤

도편수의 거동을 봐라 먹통을 들구선 갈팡질팡한다
에헤 에헤 어랴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에헤

조선 여덟도 유명탄 돌은 경북궁 짓는데 주춧돌감이로다
에헤 에헤 어랴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근정전을 드높게 짓고 만조 백관이 조하를 드리네
에헤 에헤 어랴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그런데 어쩌랴.우성강을 짓는데 동원(?)된 강이장이나 현사장은 도편수 김시인의 지시에 따라

나무를 나르고 자잘한 공구들을 갖다주고 기분이 좋으면 막걸리 한 잔에 어깨가 덩실덩실 춤을

춘다네,이두령네 정자 짓는데 강이장, 현사장이 기분 좋은 이유가 무엇일까.

우성강에 흐르는 아름다운 우정을 본 탓일까.아니면 경복궁 짓듯 우성정을 지은 나의 기분을

알아서일까.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정자는 지어 졌다.누가 봐도 고급스럽고 심플하다고 그런다.

마치 평생 소원이 풀린듯 하여 기분이 매우 흡족했다.앞에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한명회의

<狎鷗亭>정자는 권세와 권력으로 지었을 테지만 제주 성산포 우성강변에 지은 <牛城亭>

정자는 권세나 권력으로 지은게 아니고 순전히 우정으로 지었기에 나의 재산 1호라 하기에

의의가 없음을 밝힌다.(계속)

 

 

 

출처 : 밝은 토끼생
글쓴이 : 바당 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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