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식 길라잡이>에서는 평소 알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 상황에 부닥치면 막막해지는 생활 속 불교 의식과 신행을 살펴본다. 2008년에는 ‘기도’를 테마로 한다.
종교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라 할 만큼 종교는 긴 세월 동안 인간과 함께해왔다. 지금까지 역사에 등장한 온갖 종교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동시에 공통적인 종교적 행위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기도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불교는 그와 다르다. 불교의 출발점에서는 그 어디에도 기도의 대상을 상정하거나 누구를 향해 기도하는 행위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도란 본래 인간 존재 이상의 그 무엇, 즉 초월적인 존재를 향한 대화 행위라는 일반적인 정의를 고려하는 한, 불교 속에 기도를 인정할 여지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불교에서는 그 어떤 초월적인 존재를 인정한다거나 인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신격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금은 절마다 기도법회가 열리고, 스님과 불자들은 기도를 하기 위해서 불단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왜 전지전능한 신(神)도 아닌 불상 앞에서 기도를 올리는 것일까?
붓다의 꿈은 인생 승리자
불교의 시작은 가우타마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이후 전법을 시작할 때부터라고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싯다르타의 꿈은 교단의 지도자가 아니었다. 출가하여 수행을 시작할 즈음 싯다르타의 목표는 어떤 종교적인 교단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고, 더구나 초월적인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싯다르타의 최초의 꿈은 오로지 인간으로서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것이었다. 다만, 그 승리의 기준이 남달랐다.
사람들 대부분은 예나 지금이나 한없는 재물을 소유하고 온갖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을 꿈꾼다. 반면에 싯다르타는 그러한 욕망에서 벗어나기를 꿈꾸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기를 꿈꾼다. 다시 태어나면 금생보다 훨씬 더 고귀한 신분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다시는 태어나지 않기를 원했으며, 금생이 마지막 생이 되기를 꿈꿨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싯다르타는 6년 동안의 출가 수행기를 거친 뒤 마침내 정각을 성취하고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열반의 경지를 얻었다고 선언했다. 그때로부터 사람들은 그를 승리자요 영웅이라 불렀다. 깨달은 이, 붓다는 인간 중에 최고의 승리자이자 영웅이 된 것이다.
깨닫고 나서 최고의 경지를 성취한 붓다는 스스로 ‘불사(不死)’의 경지를 얻었다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하여 붓다 자신이 영생불멸의 신이 되었다고 말했던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그를 신으로 인정한 것도 아니었다.
붓다가 스스로 깨우친 진리를 말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그의 말에 공감하고 그를 지상 최고의 스승으로 인정했다. 붓다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사람들은 그를 그리워하며 그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기 시작했다. 이처럼 지혜로운 최상의 스승에 대한 존경과 추종의 역사, 그것이 불교사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결단코 신적인 붓다에 대한 신앙 때문이 아니었다.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더 이상 붓다의 제자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붓다의 최초의 꿈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채, 과연 그의 가르침대로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위대한 영웅이 되는 꿈
인도에서는 전통적으로 무력으로 남을 이기거나 세상을 정복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을 극복하는 자가 진정한 영웅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영웅이라는 말은 전쟁터의 승리자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자기 욕망을 극복한 수행자를 가리킬 때 쓰이곤 했다. 그래서 모든 욕망을 극복하고 완벽하게 제어하는 데 성공한 붓다를 가리켜서 마하비라, 즉 위대한 영웅이라 불렀던 것이다.
우리나라 많은 절의 중앙에 자리한 대웅전(大雄殿)은 위대한 영웅을 봉안해둔 건물이라는 뜻이다. 위대한 영웅이라는 붓다의 호칭은 그가 욕망을 버렸고, 재생의 사슬을 끊어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다. 붓다가 절멸시켰던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안에서 쉼 없이 끓어오르는 온갖 욕망의 허깨비들을 다 쳐부수고 나서 위대한 영웅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내적인 욕망을 극복한 사람에게 영웅이라고 부르는 전통은 없다. 그래서인지 종종 붓다의 위대한 꿈은 외면당하곤 한다. 아니다. 번연히 붓다의 출가 동기를 알면서도 우리는 기도한다. 불상 앞에 꿇어앉아서 기도하는 내용들은 붓다의 꿈과는 무관한 온갖 욕망의 거품들뿐이다. 물론 꿈이 우리들의 무릎을 꿇게 하고, 손을 맞잡게 한다.
그대의 꿈은 무엇인가? 그 꿈이 우리를 미래로 데려간다. 아니, 그 꿈의 내용에 따라 남아 있는 오늘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면 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 어떤 꿈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인가?
우리들 한 생이란 우주 공간에서 잠시 잠깐 드난살이하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붓다도 나도 너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면 금생에서 참으로 위대한 영웅이 되기를. 아주 가끔은 우리도 붓다의 꿈을 마치 붓다처럼 꾸어도 볼 일이다.
참된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참된 목표를 세워야 한다. 인간이 세울 수 있는 참된 목표가 과연 무엇이겠는가? 기도를 통해서 성취되는 목표가 따로 있다. 그것을 불자들은 똑바로 알아야 한다. 목표가 바르지 않으면 아무리 기도를 하고 또 한들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붓다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이 나를 부처님 앞으로 인도합니다.
내 꿈은…….
부디 이 꿈이 이루어지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 볼 수 있는
지혜로운 눈을 갖게 하소서.
그리하여 오늘 걷는 이 길이
승리의 문으로 이어져 있기를
온 맘으로 기도합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김미숙_ashoka@hanmail.net 철학박사. 저서로 『인도 불교사』, 『붓다의 발자국』, 『불살생의 이론과 실천』 등이 있다. 현재 동국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종교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라 할 만큼 종교는 긴 세월 동안 인간과 함께해왔다. 지금까지 역사에 등장한 온갖 종교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동시에 공통적인 종교적 행위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기도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불교는 그와 다르다. 불교의 출발점에서는 그 어디에도 기도의 대상을 상정하거나 누구를 향해 기도하는 행위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도란 본래 인간 존재 이상의 그 무엇, 즉 초월적인 존재를 향한 대화 행위라는 일반적인 정의를 고려하는 한, 불교 속에 기도를 인정할 여지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불교에서는 그 어떤 초월적인 존재를 인정한다거나 인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신격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금은 절마다 기도법회가 열리고, 스님과 불자들은 기도를 하기 위해서 불단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왜 전지전능한 신(神)도 아닌 불상 앞에서 기도를 올리는 것일까?
붓다의 꿈은 인생 승리자
불교의 시작은 가우타마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이후 전법을 시작할 때부터라고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싯다르타의 꿈은 교단의 지도자가 아니었다. 출가하여 수행을 시작할 즈음 싯다르타의 목표는 어떤 종교적인 교단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고, 더구나 초월적인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싯다르타의 최초의 꿈은 오로지 인간으로서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것이었다. 다만, 그 승리의 기준이 남달랐다.
사람들 대부분은 예나 지금이나 한없는 재물을 소유하고 온갖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을 꿈꾼다. 반면에 싯다르타는 그러한 욕망에서 벗어나기를 꿈꾸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기를 꿈꾼다. 다시 태어나면 금생보다 훨씬 더 고귀한 신분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다시는 태어나지 않기를 원했으며, 금생이 마지막 생이 되기를 꿈꿨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싯다르타는 6년 동안의 출가 수행기를 거친 뒤 마침내 정각을 성취하고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열반의 경지를 얻었다고 선언했다. 그때로부터 사람들은 그를 승리자요 영웅이라 불렀다. 깨달은 이, 붓다는 인간 중에 최고의 승리자이자 영웅이 된 것이다.
깨닫고 나서 최고의 경지를 성취한 붓다는 스스로 ‘불사(不死)’의 경지를 얻었다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하여 붓다 자신이 영생불멸의 신이 되었다고 말했던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그를 신으로 인정한 것도 아니었다.
붓다가 스스로 깨우친 진리를 말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그의 말에 공감하고 그를 지상 최고의 스승으로 인정했다. 붓다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사람들은 그를 그리워하며 그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기 시작했다. 이처럼 지혜로운 최상의 스승에 대한 존경과 추종의 역사, 그것이 불교사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결단코 신적인 붓다에 대한 신앙 때문이 아니었다.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더 이상 붓다의 제자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붓다의 최초의 꿈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채, 과연 그의 가르침대로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위대한 영웅이 되는 꿈
인도에서는 전통적으로 무력으로 남을 이기거나 세상을 정복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을 극복하는 자가 진정한 영웅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영웅이라는 말은 전쟁터의 승리자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자기 욕망을 극복한 수행자를 가리킬 때 쓰이곤 했다. 그래서 모든 욕망을 극복하고 완벽하게 제어하는 데 성공한 붓다를 가리켜서 마하비라, 즉 위대한 영웅이라 불렀던 것이다.
우리나라 많은 절의 중앙에 자리한 대웅전(大雄殿)은 위대한 영웅을 봉안해둔 건물이라는 뜻이다. 위대한 영웅이라는 붓다의 호칭은 그가 욕망을 버렸고, 재생의 사슬을 끊어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다. 붓다가 절멸시켰던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안에서 쉼 없이 끓어오르는 온갖 욕망의 허깨비들을 다 쳐부수고 나서 위대한 영웅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내적인 욕망을 극복한 사람에게 영웅이라고 부르는 전통은 없다. 그래서인지 종종 붓다의 위대한 꿈은 외면당하곤 한다. 아니다. 번연히 붓다의 출가 동기를 알면서도 우리는 기도한다. 불상 앞에 꿇어앉아서 기도하는 내용들은 붓다의 꿈과는 무관한 온갖 욕망의 거품들뿐이다. 물론 꿈이 우리들의 무릎을 꿇게 하고, 손을 맞잡게 한다.
그대의 꿈은 무엇인가? 그 꿈이 우리를 미래로 데려간다. 아니, 그 꿈의 내용에 따라 남아 있는 오늘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면 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 어떤 꿈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인가?
우리들 한 생이란 우주 공간에서 잠시 잠깐 드난살이하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붓다도 나도 너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면 금생에서 참으로 위대한 영웅이 되기를. 아주 가끔은 우리도 붓다의 꿈을 마치 붓다처럼 꾸어도 볼 일이다.
참된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참된 목표를 세워야 한다. 인간이 세울 수 있는 참된 목표가 과연 무엇이겠는가? 기도를 통해서 성취되는 목표가 따로 있다. 그것을 불자들은 똑바로 알아야 한다. 목표가 바르지 않으면 아무리 기도를 하고 또 한들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붓다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이 나를 부처님 앞으로 인도합니다.
내 꿈은…….
부디 이 꿈이 이루어지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 볼 수 있는
지혜로운 눈을 갖게 하소서.
그리하여 오늘 걷는 이 길이
승리의 문으로 이어져 있기를
온 맘으로 기도합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김미숙_ashoka@hanmail.net 철학박사. 저서로 『인도 불교사』, 『붓다의 발자국』, 『불살생의 이론과 실천』 등이 있다. 현재 동국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출처;buddhistculture.co.kr>
불교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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