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테크/성서와 신앙을 알고싶어요

[스크랩] 신자(信者)의 생활(生活)-1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2. 21. 06:49

 교회생활(敎會生活)
  예수 믿고 성령 받고 구원받은 자의 이 세상에서의 생활 모습은 먼저 교회를 통한 신앙생활입니다. 교회는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을 불러모아서 이룬 신앙공동체(信仰共同體)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통하여 주님의 복음전파사역을 감당케 하려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주님의 뜻을  따라서 교회 원(敎會員)으로서의 신앙생활을 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고 중생(重生)한 자녀를 홀로 두시지 않고,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형제 자매의 의식을 가지고 함께 믿음 생활을 하기 원하십니다. 또한 함께 힘을 합해서 주님의 지상명령(至上命令)인 복음전파(福音傳播)를 감당케 하여 이 세상에 믿지 않아 멸망 받을 영혼들을 구원하려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나님의 집에서 같이 살 가족들이 되었으므로 이 세상에서도 같이 모여서 생활하도록 부르신 것이 교회 생활입니다.


  예수 믿고 중생한 자녀를 따로가 아니고 둘을 하나님 앞에서 하나의 새사람을 지었습니다.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들어 신앙공동체로 만드셨습니다. 먼데 있는 자나 가까운데 있는 자나 원수 된 자라도 주님 앞에서  한 몸으로 만들어 둘이서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셨습니다(엡 2:13-18). 이 것이 신앙공동체인 교회입니다. 혼자가 아니고 둘이서 하나되어 하나님께 나오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몸, 즉 교화의 구성원으로서 주님의 지체가 되게 하셨습니다(엡 1:22,23).


  그리하여 우리는 영적으로는 주님의 몸이요, 주님의 지체(肢體)가 되어 온전한 몸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과 연결된 손가락 발가락입니다. 몸은 발가락 하나로 설 수 없듯이 많은 발가락 손가락이 있어야하고 몸의 여러 부분 지체(肢體)와 기관(器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그의 몸 된 교회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합니다(엡 2:21,22).


  그러므로 믿는 자는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고 서로 봉사하며 주의 몸을 온전히 이루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합쳐진 힘으로 주의 복음사역을 감당하며 세상을 향하여 교회에 맡겨진 주님의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며 교회 신앙공동체가 장성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도록 해야합니다(엡 4:11-14). 개인은 약합니다. 그러나 삼 겹줄은 강하듯이 여럿이 모여서 힘을 합쳐 주의 맡긴 사명, 전도사역을 효과적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이렇게 주의 나라를 확장하고 주의 선한 사업을 하기 위하여 믿는 자들을 부르신 곳이 교회입니다.


  성경에 기록되기를 "몸도 하나이요, 성령도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엡 4:4)"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자는 주님의 지체로서 사명을 받았고 이 사명을 수행키 위해 교회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부르심이요, 예수 님의 부르심이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부르심의 목적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모인 신앙공동체를 통하여 주님의 일, 생명 구원의 일인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케 하기 위함입니다. 교회를 통한 예배, 교육, 봉사, 구제 사업 등은 오로지 주의 복음을 전하여 주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요 이것이 교회의 참 된 목적이 됩니다(벧전 2:9. 엡 1:5,6, 3;20,21).

 

 교회 원으로서의 믿음의 자세
   교회 원으로서의 믿음의 자세는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서 지체의식(肢體意識)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교회 원과의 한 몸 된 의식으로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며 섬겨야 합니다. 또한 교회 제도 속에서 신앙생활을 해야합니다. 교회 원으로서 주님이 주신 사명(使命)대로 교회를 섬기되 주님을 섬기듯 하며 교회의 치리(治理)와 권면에 순복(順服)해야 합니다.

 

남을 자신보다 귀히 여기며 높아지려 말고 낮아지려 하며 섬김을 받으려 말고 섬겨야 합니다(마 20:26-28). 이 정신은 주님께서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신 것으로 세상에서 통용되는 의식과는 전혀 다른 정신입니다. 이러한 정신과 의식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교회 원으로서의 생활이 잘되며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교회에 세워진 성직자(聖職者), 즉 교역자인 목사, 전도사를 순종하고 세우신 평신도 지도자인 장로(長老)를 배나 존경하며(딤전  5:17), 교회 원 상호간에 말다툼이나 분쟁을 말아야 합니다(딤후 2:14), 망령되고 헛된 말을 말아야 합니다(딤후 2:16). 그리고 교인을 인도하는 자들인 목사. 지도자들을 순종하고 복종하여야 합니다. 이로 인해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일을 하게 하라 하였고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다 하였습니다(히 13:17). 그러므로 교회 지도자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면 신앙적으로나 영육(靈肉)간에 유익이나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교회 지도자는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뜻대로 세우고 폐하는 태도를 가지면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과 같이 되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예를 들면 세상에서의 조직생활인 회사(會社)에서 평사원이, 사장이 세우고 임명한 간부사원인 부장이나 과장이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제 뜻대로 쫓아 낼 수 없습니다. 이것은 그 회사의 대표인 사장의 권한인 인사권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평사원의 입장에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습니다. 잘못하면 사장의 직무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반사원은 감히 사장을 무시하는 이러한 잘못을 범하지 않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요, 예수 님입니다. 주님이 세우고 임명한 교회 지도자를 적대(敵對)하면 이것은 그를 세운 하나님을 적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인사권을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나 직분은 비록 사람이 뽑고 세운 것 같으나 실상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뜻 안에서 모든 성직(聖職)과 직분(職分)을 세우는 것임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부활(復活)하신 후 디베랴 바닷가에서 수제자(首弟子)였던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그에게 소명(召命)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목양(牧羊)의 소명이었습니다. 자기의 피로 값을 지불하여 구한 양(羊), 즉 예수 믿는 사람들을 먹이고 기르라고 목자(牧者)의 직분과 소명을 주셨습니다(요 21:15-18).


  전체적으로 보면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 양(羊)들입니다(겔 34:31). 이 양 무리 중에서 택(擇)한 양을 세워서 목자의 사명을 주신 것인데 이것이 초대교회(初代敎會)의 사도(使徒)와 지도자들이요, 지금의 성직자인 목사와 교역자들입니다. 다 같은 양들이지만 주님께서 따로 세워 목자(牧者)의 직분(職分)과 권능(權能)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목사와 교역자를 제외한 평신도(平信徒)는 영적(靈的)으로 신앙적(信仰的)으로 다 한 마리 양(羊)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세상 적으로 지위가 있고 훌륭해도 영적이나, 신앙적으로는 양을 돌보는 목자의 다스림과 인도와 돌봄을 받아야 살아 갈 수 있는 양들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뜻이나 생각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무리 똑똑한 체 하여도 인간은 연약하고 어리석은 양입니다. 그러므로 양이라는 자신의 영적 신분(靈的身分)을 망각(忘却)하면 안됩니다. 이렇게 육신적(肉身的)으로는 다 같은 사람이지만 영적(靈的)으로는 목자(牧者)인 교회 교역자를 대적하거나 불순종하면 주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며 징계(懲戒)를 받게 됩니다.


  목사나 일반 교인은 다 같이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믿음의 형제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신앙 공동체를 이끌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制度)가 목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양 떼인 믿는 자들은, 주님의 목양(牧羊)을 대리케 한 목자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구성원들은 주님께 순종하듯이 목사에게 순종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입니다. 우리는 육신적으로 성년(成年)이요, 당당한 사회인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하나의 연약한 양(羊)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관점이요, 우리의 진정한 영적, 신앙적 모습입니다.


  양이라는 동물은 제 몸을 스스로 돌보지 못하는 동물로 정평(定評)이 있습니다. 다른 짐승이나 다른 가축(家畜)과는 달리 양은 제 스스로 제 몸을 돌보지 못하고 돌보아 주는 목자가 있어야 살수가 있습니다. 연약하고 어리석은 양들은 맹수(猛獸)의 위협에서 약하므로 지켜주어야 합니다. 어리석은 습성(習性)으로 자기가 거(居)하는 목장을 금방 황폐시키는 양 무리를 합당한 목장으로 인도하며 관리 해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목자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그 양떼는 목자 없는 양이 되어 질병(疾病)과 굶주림과 맹수들의 침로로 다 멸망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영적으로 연약한 양과 같은 우리를 보살피라고 목자의 사명으로 목사와 교역자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주님께서 권능으로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다 양이므로 홀로 살 수 없습니다. 양들은 무리를 이루어 목자 밑에서 보호와 관리를 받아야 합니다. 홀로 있는 양은 길 잃은 양으로 언제 맹수의 밥이 될지 알 수 없는 위험한 상태가 됩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목장이요, 우리 믿는 자들은 양이요, 목장의 목자는 교회 지도자인 목사요, 목자들의 우두머리인 목자장(牧者長)은 예수 님입니다(벧전 5:4).


  우리 믿는 자는 양이므로 양 무리 중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목자의 인도를 받아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생활이 교회생활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생활이 없는 양은 주님의 진정한 양이 아닙니다, 양으로서 홀로 살 수 있다면 주님께서 구태여 목자를 세우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믿는 자로 주님의 양이 된 자는 반드시 교회 생활을 통하여 신앙생활을 해야 번성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또한 한 우리 속의 양 떼로서 그 우리를 맡은 목자를 믿고 복종해야 합니다. 이렇게 그의 인도를 순종할 때에 양들이 풍성한 꼴과 물을 먹으며 살수 있듯이 교인도 목자의 인도를 잘 받아야 풍성한 삶을 살수 있습니다. 자기를 좋은 길로 인도하는 목자를 따르지 아니하면 길 잃은 양처럼 방황하고 고난을 겪게됩니다. 세상에는 다른 사람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다른 목자, 즉 다른 교회의 목사를 흠모하여 이리저리 방황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해 보여도 그는 나의 목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목자를 알고 목자가 나를 알아야 양과 목자의 진정한 관계가 이루어집니다(요 10:14,15). 아무리 잘나 보여도 나는 그를 알지만 그는 나를 모르므로 그와 나는 양과 목자의 관계가 아닙니다. 나를 알고 내가 아는 그 목자가 ,즉 내 교회의 목자가 진정한 나의 목자입니다. 내 이름을 알고 나의 가족을 알고 내 이름을 불러주고 기도해주며 나를 위해 축복(祝福)해주며 나와 슬픔을 같이 나누며 나와 염려 근심을 나누며 나를 잘 아는 목자 ,이 목자만이 나의 진정한 목자요, 내가 예수 님 다음으로 존경하는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양과 목자에 대한 뚜렷한 신앙의식은 우리의 교회 생활과 믿음 생활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치므로 이에 대한 깊은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출처 : 충신사 기독교 문서 선교회
글쓴이 : joseph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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