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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스테반 설교와 베드로 설교-1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2. 21. 07:29

스테반 설교와 베드로 설교-1

 

설교(說敎)란 무엇인가?
설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종교적인 교리를 설명한 것"이라고 하는데 주로 기독교에서 쓰는 용어(用語)로 다른 종교에서는 별로 쓰는 말이 아니다.설교에 대해서 기독교 신학자들의 정의(定意)는 여러 가지인데 대체적으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 중에서 좀더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설교는 "복음의 선포다.", "인간에 대한 구원의 선포다." 라고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학자도 있다.

이러한 정의를 내린 학자들의 책을 읽어보지도 못하였고 연구해보지도 못한 입장에서 어떤 뜻으로 내린 정의인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글자 그대로 보면 대체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설교란 무엇인가? 사람들이 정의한 내용에서 벗어나서 성경에서 가르쳐주는 진정한 의미의 설교는 어떤 것인가? 성경에서 제시하는 설교에 대한 정의는 어떤 것인가? 성경으로 들어가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그런데 고맙게도 신약성경에는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설교가 몇 편 있다. 사도들의 복음전파를 기록한 사도행전에는 복음 전도 중에서 기록된 몇 편의 귀중한 설교 문이 있다. 그리고 이외에도 사도들이 기록한 여러 편의 복음서신(福音書信)도 설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구두(口頭)로 한 설교 중에서, 상반(相反)된 특징으로 인하여 대조(對照)되는 두개의 대표적인 설교 문을 비교 분석함으로서 설교에 대한 성경의 정의를 도출(導出)해보고자 한다.

 

사도행전에서 보여지는 전혀 상반되는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두 편의 설교는 2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설교와 7장에 나오는 스테반의 설교다. 이 두 설교는 설교의 내용이 서로 상반될 뿐 아니라 설교를 들은 청중(聽衆)의 반응도 극단적으로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두 편의 설교와 청중들의 반응을 연결하여 비교분석(比較分析) 해 봄으로서 성경에서 제시해주는 진정한 의미의 설교가 어떤 것인지 연구해보고자 한다.

 

먼저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청중들의 반응을 살펴보자.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과 문도(門徒)들은 예수 님이 부활 승천(復活昇天) 하신 후에 주님의 명령에 따라 성령 강림을 기다렸다. 그들은 열흘동안 기도에 전력을 기울였는데 폭발적인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 것을 보면 아마 이들은 철야(徹夜)하며, 금식(禁食)하며 기도했을 것이다.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 인하여 성령의 권능으로 강하게 무장된 베드로는 자신들에게 나타난 성령의 표적을 이상하게 여기는 유대인들에게 저 유명한 오순절 설교로 청중들을 강력하게 압도하고 그들을 회심(悔心)시킨다. 그리하여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무리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세례 받은 제자의 수가 삼 천명이나 되었다.

 

유월절 절기를 지키러 외국에서 예루살렘으로 몰려든 유대인들로 구성된 그 당시의 청중들이 모두 몇 명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절기를 지키는 유대교의 관습으로 모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모였다. 유월절에는 유대 전국에서뿐만 아니고 외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이 모였으므로 예루살렘은 많은 사람이 모였을 것이다. 일설(一說)에는 유월절에 모인 군중의 수가 백만이 넘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하다가 일어난 성령강림 사건을 보고 모여든 청중들임을 감안 할 때에 다락방 주변이 얼마나 넓은 광장이 있었는지 모르나 장소 적으로, 시간적으로 보아서 그 당시에 모여든 사람은 수 천명을 넘지 못하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첫번 설교에서 삼 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대략 추산(推算)하여 수 천명이 모인 청중들을 향하여 설교 한 편으로 삼 천명이나 회심시킨 것은 대부분의 청중들을 변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고 이는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강력한 역사를 일으킨 배후의 힘은 바로 성령의 능력으로 임한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영혼 구원을 일으키는 회개의 사건은 성령 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것이고 인간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 다만 인간은 복음을 전파하는 도구로서 성령 님이 사용하는 매개체(媒介體)일 뿐이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자신의 능력으로 삼 천명이나 회심시켜서 영혼구원을 한 것이 아니고 성령 님이 사용하는 도구로서 자신을 바쳐서 성령 님이 하시는 복음 전도의 통로 역활을 했을 뿐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베드로의 설교를 통한 놀라운 회심 사건은 베드로가 성령 님의 도구로서 얼마나 잘 사용될 수 있도록 자신을 헌신하였는가? 라는 헌신도(獻身度)에 따라서 결정되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자면 베드로는 하나님이, 복음전도의 도구로 사용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철저하게 자신을 헌신하였기에 위와 같은 놀라운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복음전파의 놀라운 사건을 이루는 요인(要因) 중에서 설교자의 이러한 능력 뿐만 아니라 복음을 듣는 대상인 청중의 태도도 매우 중요함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다.


복음전도의 결실은 설교자뿐만이 아니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청중의 반응에 따라서 좌우된다. 이는, 같은 베 드로의 설교를 들은 일반 민중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았지만 일반민중이 아니고 그당시 지식층이요, 교권주의자(敎權主義者)들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베드로의 성령이 충만한 설교를 듣고도 그들의 강팍함을 버리지 못했다.

 

베드로의, 앉은뱅이 된 자를 고치는 기적을 보고 오순절 때와 같은 내용의 성전 미문에서 설교를 들었던 일반 대중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행 3:1-26,4:1-4). 그러나 이런 기적을 확인하고도 베드로의 복음 증거를 배척했던 그 당시 지식층들과 교계 지도층들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오히려 베드로와 사도들을 잡아 가두고 위협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까지 하였다(행4:1-21, 5:17-40).

 

같은 설교자의 같은 복음을 듣고도 이렇게 청중들에 따라서 반응은 극단적이다. 이로 보건대 복음전도의 열매는 설교자의 능력뿐 아니고 복음을 듣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당시 종교와 사회지도층 사람들은 복음전파에 대해서 더욱 강경하고도 적대적인 입장이 강화(强化)되고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스테판의 설교와 그 상황을 살펴보면 스테판은 생명을 걸고 설교를 한 것 같다.


복음을 듣는 청중의 질에 따라서 복음의 결과가 이렇게 좌우된다면 스테판은 최악의 청중들에게 설교한 셈이기 때문이다. 스테판을 심판하려고 소집한, 그 당시 교권주의자(敎權主義者)들의 모임인 산 헤드린 공회(公會)에서 설교하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사회와 종교가 일체를 이룬 유대사회에서 종교 지도자들의 모임인 산 헤드린 공회는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집단이었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가장 적대적이었던 집단이었다. 그들은 예수를, 자기들의 교권을 위협하는 적으로 인식하고 대적하였을 뿐 아니고 죽이려고 공모(共謀)했고 결국은 십자가에서 처형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적으로 여기고 예수를 처형했지만 이제는 예수의 제자들이 세력을 확장하고 그들의 종교적인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자 당황하게 되고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만 제거하면 자신들의 종교적 기득권이 위협받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헛된 것임을 알게 되자 그들은 다시금 반대자들의 싹을 잘라버릴 결심을 하게 되고 칼을 갈고 있었다.

 

이러한 위험한 상황에서 스테판은 가장 악한 감정을 보이는 교권주의자들인, 산헤드린 공회원 앞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설교했다. 그리고 가장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 청중들에게서 돌에 맞아 죽는 순교자가 되었다.

 

스테판이 일반민중들을 상대로 설교하였더라면 돌에 맞는 일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일반 민중은 회심했지만 산헤드린 공회에 속한 교권자들은 베드로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예수 님의 설교를 듣고도 예수 님을 죽일 정도로 자신들의 종교적 선입관과 기득권에 눈이 어두워진 그 당시 교권 자들이니 이런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 당시 스테판이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서게 된 것은 설교를 하기 위해 선 것이 아니고 공회앞에서 심문(審問)을 받고 재판을 받는 피의자(被疑者)로 서게 된 것이었다.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을 모독하였다는 죄목으로 거짓 증인들을 세운 당시 교권 자들의 스테판 살해 음모극(陰謀劇)의 희생자였다.

출처 : 충신사 기독교 문서 선교회
글쓴이 : joseph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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