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망 있는 학자와 이야기할 때는 상대방이 말을 할 때 군데군데 이해가 되지 않는 척해야 한다. 너무 모르면 업신여기게 되고, 너무 잘 알면 미워한다. 군데군데 모르는 정도가 서로에게 가장 적합하다.”
중국의 문호 노신(魯迅)의 말이다. 이해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중요하고도 어렵다. 뉴욕 브룩클린의 가난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대학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작은 눈과 오종종한 인상은 결코 잘생겼다고 할 수 없는 얼굴이다. 그런 그가 지난 20년간 미국 최고의 인터뷰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지금까지 그가 인터뷰한 사람은 무려 3만5000여 명. 쟁쟁한 정치인부터 사형 집행 직전의 여죄수까지, 마이클 조던에서부터 미하일 고르바초프에 이르기까지 그는 어떤 계층, 어떤 게스트들과도 자연스런 대화를 이끌어간다.
바로 커뮤니케이션의 달인으로 불리우는 CNN의 명 사회자 래리 킹의 이야기다. 그가 진행하는 ‘래리 킹 라이브’는 명실공히 세계적인 장수 프로그램이다. 그는 말 잘 하는 재주를 타고난 사람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내가 하는 대화의 첫번째 규칙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 속에 비결이 숨어있다. 솔직하고 깊이 있게 상대의 입을 열도록 하는 것은 자신의 듣는 태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수칙으로 ‘1. 2. 3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한 번 말하고, 두 번 듣고, 세 번 맞장구치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화의 시작이다. ‘사람의 귀가 둘이고 입이 하나인 이유는 듣는 것을 두 배로 하라는 뜻이다’라는 탈무드의 한 구절도 의미심장하다.
혹자는 우스갯소리로 귀가 둘인 이유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위해서라고 농담을 하지만, 탈무드의 이 말은 대화의 규칙만이 아니라 세상 사는 자세를 간파하고 있다. 말을 잘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경청인 것이다. 정치인을 비롯해 각계 분야의 고위층 인사들이 모이는 행사장에 갔을 때의 일이다. 입가에 미소를 띤 참석자들은 와인 잔을 기울이며 서로 인사를 건넸다. 5분씩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도 마련되었다. 그런데 그중 몇몇 정치인들이 주어진 시간을 초과해 자기 소개를 그칠 줄 모르는 것이었다.
온갖 자랑을 늘어놓고 화려한 경력을 열거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어이없었던 것은 자기 자랑에 여념이 없었던 사람일수록 정작 남이 이야기를 할 때는 거의 듣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일단 자기 순서만 끝나면 남이야 무슨 이야기를 하든 말든 무성의한 자세를 보였다. 말 그대로 매우 정치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참여였던 것이다. “‘말을 너무 많이 한다’는 비난은 있지만 ‘너무 많이 듣는다’는 비난을 들어 본 적은 없을 것이다”라는 노만 아우구스틴의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듣기보다는 말하는 데 열심임을 드러낸다. 자신은 과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대로 경청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이 이미 훌륭한 경청자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들으면서 이미 자신의 답변을 준비하는 산만한 마음이 문제이다.
그런가 하면 정말 듣지 않는 이들이 있다. 고개는 계속 끄덕이면서 손으로는 자신이 받은 명함들을 계속 뒤적이거나 수시로 휴대폰을 확인하는 경우, 그들은 흔히 ‘듣고 있다’고 말하지만 단어를 들을 뿐 상대의 메시지를 듣지는 못한다. 제대로 경청하기 위해서는 귀와 마음, 몸 모두가 필요하다. 우선 진심을 담아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딴 생각을 하면서 마치 잘 듣고 있는 것처럼 위장해서는 안 되며, 위장이 되지도 않는다. 이미 아는 내용이라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단어 하나 하나가 아니라 상대방이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맥락을 파악하려고 해야 한다. 잘 들어주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다시 만났을 때는 전에 했던 질문을 되풀이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다시 입을 열기조차 싫어질 것이다. 또 중요한 것은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전화 통화 중에 다른 전화를 받으면 당신은 불성실하고 무성의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상대방에게 확실하게 심어주게 된다.
컴퓨터를 보며 이메일을 확인하면서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도 상대방에게는 건성으로 듣는 것처럼 비쳐진다. 책상에 앉아 있다면 최소한 책상에서 시선을 들어 말을 하는 상대방을 바라보고, 시선을 한동안 상대방에게 고정시켜야 한다. 테니스든 탁구든 주거니 받거니 하며 공이 지속적으로 오가야 재미있다. 한번 치고 공 주우러 가고, 나만 열심히 치고 상대는 대충 손 뻗는 시늉만 하고 있다면 정말 맥이 빠져버린다.
대화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줄 때 의미 있는 대화로 이끌 수 있다. 경청은 단지 매너가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나눔의 시작이기에 매번 중요히 다루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