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나라 불란서는 와인생산을 위한 포도밭이 전국 곳곳에 퍼져있다. 식용달팽이인 에스까르고는 포도나무 잎을 좋아하기 때문에 포도밭이 있는 곳이면 쉽게 사육할 수 있으며 달팽이의 품질 또한 와인으로 유명한 지역의 달팽이가 풍부한 맛으로 유명하다.
특히 와인으로 유명한 부르고뉴와 샹파뉴(샴페인의 불란서식 발음) 지방의 에스까르고는 특별한 품질로 프랑스에서는 전국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다.
달팽이를 양식하여 먹거리로 활용한 역사는 고대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식에 대한 남다른 집착으로 보였던 고대 로마의 귀족들은 달팽이 요리를 즐겼으며 이 시기에 이미 양식된 달팽이가 등장하였다고 한다.
귀족들의 별미로 남아 있던 달팽이가 불란서를 대표하는 먹거리로 등장한 것은 15세기 이후이다. 15세기 경 프랑스의 한 법관이 빈민을 구제할 목적으로 자신의 영지를 포도밭으로 만들어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포도 재배가 늘어나자 그 잎을 갉아먹는 달팽이가 자연스럽게 증가하였고 해충구제 차원에서 잡은 달팽이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는 가운데 식용이 보편화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달팽이 요리가 대중화 된 것은 18-9세기 이후이다.
달팽이는 살에 끈끈한 점액이 있어서 자극적인 맛을 내는데, 이는 뮤신의 일종인 콘드로이친 황산이 주성분이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달팽이에는 단백질이 많고, 칼슘이 풍부하며, 지방질이 적어 우수한 건강식품으로 꼽히고 있다
일반적으로 달팽이는 정력과 강장에 좋은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불란서에서 즐겨먹는 달팽이는 우리네 달팽이와는 종류가 다르다. 우선 크기에 있어서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달팽이 보다 크기가 무척 크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소비되는 부르고뉴 달팽이의 경우 대락 4cm 정도로 우리나라 달팽이에 비하여 무척 크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프랑스산 식용달팽이가 사육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국내에서는 달팽이가 대부분 약용으로 쓰이는데, 약용달팽이는 백와(속살이 흰 달팽이)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식용으로 쓰기에도 백와가 무난하다고 여겨지지만, 국내에선 달팽이 관련 음식 문화가 보편적이지 않기 때문에 요리법이 매우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의 인지도가 매우 낮다고 볼 수 있다.
모든 먹거리에는 때가 있듯이 달팽이도 겨울 직전의 달팽이가 가장 맛이 좋다. 봄부터 가을까지 왕성한 식욕으로 먹이를 충분히 먹은 달팽이는 겨울이 다가오면 껍질 안으로 몸을 숨기고 석회질이 주성분인 껍질을 만들어 동면을 준비한다. 동면 직전의 달팽이가 가장 기름지고 맛이 좋다.
프랑스에서 에스까르고 요리는 20가지가 넘는다. 보르도 지방의 북쪽 사랑트 지역에서는 수프나 조림으로 애용하고, 프로방스지방에서는 튀김 옷을 입혀 기름에 튀기거나 우리네 해물탕과 유사한 부야베스(bouillabaisse)에 넣어 먹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유명하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에스까르고의 조리법은 부르고뉴식 구이(escargots la bouruignonne)이다.
부르고뉴식 구이는 먼저 달팽이를 껍질에서 분리하여 밑손질을 하여 살을 익힌다. 익힌 살을 껍질에 다시 채우고 소금과 후추, 다진 마늘, 에샬로트, 파슬리 등을 섞어서 만든 향신버터를 가득 채워서 에스까르고 요리를 위하여 특별히 고안된 전용 접시(escargotierre)에 담아서 오븐에 굽는다. 버터가 녹아서 보글보글 끊을 때 오븐에서 꺼내 바로 먹는다.
먹을 때는 왼손으로는 ‘에스까르고체르’라 불리는 집게로 달팽이를 껍질 채 들고 오른손으로 작고 길쭉한 포크로 달팽이 살을 꺼내 먹는다. 줄리아 로버츠와 리차드 기어가 주연한 영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을 보면 고급 불란서 레스토랑에 간 이 두 남녀가 전채요리로 달팽이를 주문하지만 줄리아 로버츠가 집게사용에 익숙치 않아 달팽이를 허공에 날려 버리고 웨이터가 능숙한 솜씨로 잡는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달팽이요리가 먹기에 까다롭다는 선입관을 전제로 한 이 장면만을 보면 먹기에 서양식 테이블 매너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가 먹기에 무척 힘들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에스까르고의 특별한 맛은 2가지로 즐길 수 있다. 에스까르고의 특유의 오톨도톨 씹히는 감촉과 향미를 즐기고, 달팽이를 다 먹은 후 그릇과 껍질에 남아 있는 향신버터를 바게뜨에 찍어 먹으면 아주 특별한 맛이 있다. 어떤 이는 달팽이 보다도 향신버터에 바게뜨 찍어 먹는 맛에 달팽이요리를 즐긴다는 사람도 있다.
에스까르고에 어울리는 술은 샴페인 드라피어 (CHAMPANE DRAPPIER) 다. 샹빠뉴 (Champanue) 지방이 원산지인 드라피어 샴페인은 그들 최상의 지질학적 조건과 기후덕분으로 샴페인중의 왕(king of Champagne)을 탄생시켰는데 매우 귀족적이며 상쾌하며 섬세한 뒷맛을 남기는 와인이다.
에스까르고를 즐기기 위해 일류 레스토랑을 찾을 경우에는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하며,예약의 취소는 설사 30분 전이라도 반드시 알려주어야 한다. 레스토랑에 들어서면 예약의 유무와 상관없이 마음대로 자리에 앉아서는 안된다.
입구에 서 있으면 예약 여부를 묻고 나서 자리에 안내한다. 자리에 앉으면 가르송이 메뉴를 들고 온다(프랑스에서는 메뉴를 la carte라고 하고, le menu는 정식을 뜻한다.). 식사 주문전에 아페리티프(식전에 식욕을 돋우기 위해 마시는 술) 주문을 받기도 하는데, 아페리티프는 키르, 베르모트, 샴페인 등이 있으나 생략해도 된다.
가을의 파리는 아주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오페라 시즌이 개막되고 기온이 내려가면 거리는 온통 가을의 낭만으로 가득찬다. 지난 여름 거리를 가득 메운 여행객의 자취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코트 깃을 올려 세운 파리지앙들의 발걸음과 거리의 낙엽은 가을의 정취를 새롭게 한다. 이 가을 파리를 여행할 기회가 있는 사람은 달팽이요리를 맛보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낭만적인 레스토랑에서 한잔의 와인과 함께하는 에스까르고는 신선한 미각의 충격일 것이다.
정 번 식 (여행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