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테크/경매투자

[스크랩] 어느 입찰 수기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1. 21. 18:21

2003년 성남에 거주할때의 일이다. 성남시 수정구 단대동 선경논골아파트 14평형이 감정가 6,500만원 1회 유찰되어 최저경매가 5,200만원에 진행되었다. (사건번호2003타경5643)
최저가보다 430만원을 더 써넣어 최고가낙찰자가 되었다.

명도를 위해 소유자를 만나러 갔더니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쌍동이 형제들만이 집에 있었다. 엄마는 가출을 했으며 아빠는 가끔 집에 들어온다는 그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홀로 된 여동생이 연년생 핏덩이들을 데리고 친정집으로 온 이래 내 새끼인양 키우고 있던 당시의 내 처지와 견주어 마음이 아팠다.
아빠에게 연락이 오면 전화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그집을 나왔다. 며칠이 지나 연락이 되어 만났는데 친구와 함께 동업으로 사업하느라 은행대출을 받았는데 부도가 나서 집이 경매로 넘어가게 되었고 급기야 부부싸움끝에 아내도 가출하고 말았단다. 본가로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겠다고 말하는 그는 이사비용으로 150만원을 달라고 했다. 나는 100만원을 제시했다가 그의 처진 어깨와 고개숙인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서 150만원을 주기로 약속했다. 그대신 한가지만 부탁하겠다고 말했다. 여자들만 사는 처지라 헌짐을 남겨놓고 가면 내가 처리하기가 곤란하니 남자인 당신이 버릴물건을 미리 버리고 깨끗하게 집을 비워달라고 했다. 그는 약속된 날짜에 이사짐을 꾸렸는데 관리사무실에서 관리비 정산이 덜 되어 이사를 보낼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 82만여원. 작은아파트 낙찰이고는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게 되었지만 내가 대납할테니 이사를 보내라고 했다. 그는 고맙다는 말을 여러번 했고 난 아이들 생각해서 열심히 일하시고 부인과 화해하라는 말로 명도를 마쳤다. 헌짐은 약속한대로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도배 장판을 새로하고 신발장을 산뜻한 색상으로 바꾸자 새 주인이 보자마자 계약하자고 했다. 6,750만원에 매도했으니 비용빼고 나면 남는것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경매를 할 때 나만의 철학을 가지고 시작했다. 채권자들의 채권회수를 위해 경매가 진행되고 공적기관인 법원에서 그 모든업무를 대행해 주지만 실패한 채무자가 있어 명도의 어려움이 따르는 것도 사실 경매의 한 모습일것이다. 이 경우 그 어떤사람이 낙찰을 받는 것보다는 내가 낙찰받았을 때 인간적으로 그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일처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것이다. 집수리를 할 때에도 금방 팔아치울텐데 돈 많이 들여서 할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은 안했다. 내가 거주한다면 이것만은 꼭 해야한다는 마음으로 성의껏 수리하고 화장실이며 베란다 구석구석까지 팔걷어 부치고 청소를 말끔이 했다. 그래서 경매경력 10여년이 되었지만 한번도 세입자나 채무자를 내보내면서 크게 마음 상한일이 없었고 집을 넘기면서 양심에 거리낌이 있었던 일도 없었다.

소위 경매물건은 재수가 없다느니 왠지 거주하기가 찜찜하다느니 하는것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하지 않아서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헌집을 새집으로 바꾸고 새로운 기운을 집어 넣어 이 집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앞으로 잘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경매를 계속 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얼마전 북부지원에서 경매에 입문하려는 아주머니와 대화를 한적이 있다. 그 분에게 나의 경험담과 위에 언급한 마음가짐으로 시작하라고 얘기를 했더니 정말 감사하다며 연락처를 달라고 하신다. 복된 자리로 내 스스로 만들려고 애쓰면 하늘은 더 큰 복으로 나를 도와 주신다는 것을 난 잘 알고 있다. 11년전 IMF가 시작되기 직전에 불과 3천만원으로 시작된 나의 부동산 투자가 지금은 12-3억은 좀 넘는 금액으로 불어났기 때문이다.
이익을 창출할 수도 때로는 손해를 볼 수도 있는것이 경매실전이지만 경매고수를 자랑하기보다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모처럼 글을 올리게 되었다.

출처 : 신영균과 함께하는 부동산 투자여행
글쓴이 : 고향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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