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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다리 걷어차기’에 대한 짤막한 비판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1. 27. 10:44

사다리 걷어차기에 대한 짤막한 비판

 

 

무엇보다도 세계경제를 선진국 대 개도국 간의 대결구도로 나누어 지나치게 이분법적으로 도식화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특정 시기와 특정 상황에서는 이른바 선진국의 개도국 착취 구도라는 모델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을 수 있으나, 이런 이분법이 통시대적이고 통상황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한계가 많다고 할 수 있다.

 

18세기 이후 세계경제의 변화를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는데, 이 도표로부터 이분법적 도식화의 한계가 명확해질 것이다.

 

<세계경제의 발전 과정>

   18세기 : 중농주의 시대, 중상주의식민지 쟁탈전

   19세기 : 산업혁명을 계기로 제조업 및 교통 혁명 시대

            초기 약탈적 자본가계급 출현으로 이농과 도시빈민층 양산

            유럽에서 공산주의 출현

   20세기 :

     1) 1,2차 세계 대전 :

→ 공업에 기반한 부국강병의 제국주의 패권주의와산업자본가가 결탁한 시기

후진국 자원약탈 및 보호무역주의 팽배

     2) 2차 대전 후 :

2차례의 전쟁은 각국 정부의 제국주의적 패권확립을 위한 무리한 정책과, 정부의 인위적 시장개입에 의한 국제교역 질서의 혼란에 기인한다는 반성에서 새로운 교역질서 확립의 중요성을 절감하여 GATT체제와 IMF체제를 출범시킴

물론 GATT체제와 IMF체제가 전후 유일한 승전국인 미국 주도하에 이루어졌다는 비판을 할 수 있음

그 경우 선진국 대 개도국의 대결구도가 아니라 미국-기타선진국-개도국의 구도가 되는 것이 옳을 것임

GATT 체제:

• 미소 냉전 체제

→미소 중심의 동서 진영간 블록 경제 형성

   서방국은 미국중심 교역질서 형성

   미국의 패권주의를 주장할 수 있으나 미국중심 교역질서는 결과적으로 미국을 최대 무역적자국으로 전락시킴

 →이른바 미국의 개도국에 대한 ‘사다리 걷어차기’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임

           • 달러 기축통화 체제 확립

미국 중심의 국제금융질서 형성

               →미국의 ‘사다리 걷어차기’ 음모라기보다는 금본위 또는 금태환주의의 금생산 부족 한계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음

               →현실적으로 1999년 유로화 탄생 전까지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기축통화가 없었다고 할 수 있음

     WTO체제 :

IT혁명

금융, 서비스산업의 국제 교역 급증

            • 농산물 교역 확대

미국의 비교우위 품목으로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 해결 방안의 하나임

               한국, 일본 등은 농업시장 개방이 사다리 걷어차기로 보일지 모르나, 많은 개도국(중국,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오히려 압도적으로 많은 국가)에서는 주요 수출품목임

            • 달러 기축통화 체제의 한계 노출

외환위기, 금융시장 혼란 빈발

유로화로의 이행, 위안화의 등장 등 변화 예상

 

또 다른 비판으로, 위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미국의 최대 무역적자국이 중국이라는 사실은 사다리 걷어차기 모델로는 도저히 설명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사다리를 걷어 차고 있다면 세계 모든 나라들에 대해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 정반대이다. 그런가 하면 농업시장 개방을 주장하는 미국과는 달리 선진국인 일본이 농업시장 보호를 위해 FTA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설명하기 어렵다.

 

무역의 질(부가가치의 차이 또는 기술의 차이)을 주장할 수 있으나, 그것은 기술을 노동 및 자본과 더불어 생산요소로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근본적인 문제부터 논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기술을 생산요소가 아닌 특별한 것이라고 본다면 그나마 억지로라도 사다리 걷어차기 주장이 설득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술을 생산요소로 인정하는 순간 사다리 걷어차기 논리는 모두 공중분해 되고 만다고 할 수 있다. 또 소프트웨어나 서비스와 같은 지적 상품의 범위와 보호 문제 역시 단순히 선진국의 사다리 걷어차기 식의 횡포로 몰아 부치거나 양보를 강요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이 내포되어 있다. 사다리 걷어차기로 몰아 부치기보다는 선진국과 개도국간에 서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서방 선진국들은 대부분 처음부터 선진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영국의 경우 현재의 중국과 같은 힘든 개도국 시기를 거쳐서 선진국이 되었다고 하기보다는 사실 처음부터 줄곧 선진국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국가에 따라서는 다소간의 시차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산업화를 가장 먼저 이루어온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국가들의 과거 초기 산업화 시기를 개도국으로 간주하여 현재의 개도국과 동등한 것으로 간주하여 시간을 뛰어넘어 횡단적 비교를 한다는 것은 방법론적인 면에서도 무리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대결구도보다는 선진국간의 대결구도가 더 치열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증거로 1차 대전과 2차 대전 모두가 선진국과 개도국간 싸움이 아니라 선진국간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크게 개입된 제국주의적 패권 싸움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작금의 21세기 세계경제 변화 구조를 외부 선진국의 사다리 걷어차기나 신자유주의적 음모로 해석하는 한, 외부의 엄청난 음모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정부 역할과 대기업의 필요성을 강조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자연스럽게 개도국에서 독재와 재벌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연결될 위험을 내포하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힘을 한군데로 결집하여 총력전으로 선진국의 음모에 대항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도국에서는 또는 경제발전 초기단계에서는 독재나 재벌 특혜를 허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제3세계의 빈곤이 선진국의 신자유주의적 음모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경제발전 초기 내지는 중간 단계에 있는 개도국 내부의 독재와 소수 특권계층 및 기업의 부정과 부패에 기인하는 것인지는 잘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사다리 걷어차기는 경제사 전공 학자들의 전형적인 한계와 자기모순을 잘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경제를 보면, 지난 민주화 정부 이후 거의 모든 정책실패가 외부 선진국의 음모나 사다리 걷어차기 때문이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의 정책실패와 부정과 부패 그리고 반칙으로 얼룩진 구태를 답습하고 있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은 참여정부 부동산정책 실패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새로운 성장패러다임의 변화가 발 밑에서 일어나고 있는데도 그런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 채 정부관료와 정치인 등 기득권 계층이 과거의 패러다임에만 집착하여 엄청난 시행착오와 기회비용을 유발시키고 있다. 이로 볼 때, 정말로 필요하고 시급한 것은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을 위한 과감한 내부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개혁, 정치개혁, 사법개혁, 언론개혁, 교육개혁, 국민의 의식개혁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물론 경험으로 볼 때 경제성장 초기단계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역할이 중요하다는 것과 그래서 독재나 재벌이 필요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반드시 인과적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가 하면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정부의 역할은 바뀔 수 밖에 없으며 또 그렇게 바뀌어 오고 있다. 한국경제를 여전히 과거 7,80년대의 개도국 경제 또는 양적인 자본집약적 성장경제로 생각한다면 과거 식의 정부주도형 경제성장 전략을 강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현실과 이론의 한국경제> III권에서도 설명한 바 있듯이 한국경제는 이미 90년대 후반부터 자본집약적 양적 성장 경제에서 기술집약적 질적 성장경제로 변모해오고 있다. 기술집약적 질적 성장 경제에서는 정부의 대규모 자본동원 능력과 대기업의 대규모 양산체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창의성이 절대적 필수요건이 된다. 그래서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창의적 벤처정신 없이는 더 이상 발전하기 힘든 것이다. 이미 지난 IMF사태 이후 한국경제는 그런 한계를 경험하고 있지 않는가!

 

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사다리 걷어차기나 음모론은 자칫 서구인종의 우월성을 인정하는 인종적 편견에 기반을 둔 것으로 확대 해석할 우려도 있다. 선진국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모든 것을 조직하려 하며, 개도국은 이런 음모에 대해 간파조차도 못하고 놀아나는 무지하고 미개한 인종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개도국이 인종학적으로 열등하지 않다면 선진국의 음모론을 간파하고 그에 대해 얼마든지 대항할 수 있는 현명한 수단을 마련할 수 있다. IMF사태가 미국의 음모라고 생각해버린다면 한국은 영원히 미국의 패권주의적 음모에 놀아날 수 밖에 없게 된다. 오히려 그런 음모론을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의 무지의 표현이거나 아니면 그런 음모론 주장을 내세워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고 하는 또 다른 음모가 아닐까?

 

신자유주의적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90년대 말의 한국의 IMF사태를 비롯한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그 대표적인 증거로써 내세운다. 그러나 이는 결과론적으로 그렇게 볼 뿐이며 실제 현실은 음모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80년대 말 일본을 비롯한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엄청난 부동산 투기와 주가버블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투기버블은 90년대에 들어오면서 붕괴되었다. 당시 버블 붕괴로 갈 곳을 잃은 서방 금융기관들의 투기자금들이 새로운 투자처로 찾아낸 것은 한국을 비롯한 대만 등 네 마리 용과 아세안 국가였다. 이들은 21세기에는 아시아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방 금융기관들은 한국을 비롯한 아세안 국가에 무차별적인 대출 경쟁을 벌였던 것이다. 그러나 1995년부터 이들 국가들의 경제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하고 자신들이 과다 대출로 물려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순간,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 이번에는 반대로 자금인출 사태(run)가 발생한 것이다.

 

외환위기의 피해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만이 본 것이 아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러시아에 대규모 투자를 한 미국의 롱텀캐피탈의 파산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서방 국가들도 적지 않은 피해를 보았다. 미국이 아무리 강대국이라 한들 세계경제를 제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다음에야 미국의 외환위기 조작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위기 발생 후에 경제대국으로서 그리고 달러가 기축통화라는 점에서 미국이 이들 국가의 위기극복 과정에 주도적으로 개입하였기 때문에 마치 미국의 음모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다. 또 음모가 있었다고 한다면 외환위기 조작 음모가 아니라 외환위기 발생 후에 미국에 유리한 조건을 강요하는 음모가 있었다고 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만일 한국 정부관료들과 정치인들이 <현실과 이론의 한국경제> I권의 제1장에서 설명한 바대로 이런 세계경제의 변화를 올바로 파악하고 미리 합리적인 정책대응을 했다면 과연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것인가는 의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외환위기가 없었다면 미국의 음모도 없었던 것이 된다. 만일 외환위기가 미국의 음모였다고 주장한다면, 정부관료들과 여야 정치인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이들의 엉터리 무능과 무책임을 면피시켜주는 셈이 되어 버린다. 그런가 하면 만일 외환위기가 없었다면 과연 한국경제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하지 않았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설령 외환위기가 없었더라도 한국경제는 내부적으로 재벌경제의 심각한 구조적 모순이 누적되어 스스로 붕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비판의 결론을 맺기로 하자. 물론 사다리 걷어차기가 부분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대표적으로 강자의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또 현실적으로 선진 강대국이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있으며 따라서 세계경제의 게임의 법칙도 그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결코 그것이 다가 아닌 것도 사실이다. 모든 국가는 크든 작든, 선진국이든 개도국이든 모두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선진국간 또는 개도국간에도 모두 천차만별의 서로 다른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2000년부터 추진된 DDA 다자간협상 타결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일방주의가 논란이 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경제구조 변화와 더불어 국제정치와 역학관계도 변해오고 있다. 예컨대 최근의 중남미 좌파정권 탄생이 과거 냉전시대였다면 과연 가능했겠는가! 세상의 틀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변하게 마련이다. 이런 변화를 올바로 인식하고 현명한 대응책을 강구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의 음모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세계화 역시 세계경제 구조의 변화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야만 문제를 올바로 볼 수 있게 되고 합리적 문제해결 방안에 대한 논의가 가능해진다. 세계화를 그저 생각 없이 맹목적으로 찬성하거나 반대한다면 혼란만이 가중될 뿐이다. 한국의 IMF사태가 <현실과 이론의 한국경제> I권에서 설명한 것처럼 미국 등 서방 선진국의 음모와 사다리 걷어차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내부의 정책실패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중요한 것은 선진국이든 개도국이든 각 나라마다 이런 세계경제 구조의 변화를 올바로 인식하고 자기의 형편에 맞게 그 변화에 어느 정도의 속도로 적응해갈 것인가 하는 내부 정책적 선택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고 할 수 있다. 외부 선진국의 음모가 아니라 부정과 부패로 만연된 개도국 내부의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합리성 그리고 공동체의식의 강화가 더 시급한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21세기 한국경제가 기술집약적 성장패러다임으로 이행해가는 상황에서, 외부의 사다리 걷어차기 음모를 논하기 전에 먼저 내부의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논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고 생각한다. 선진국의 사다리 걷어차기 음모론을 주장해버리면 문제 자체를 올바로 인식할 수 없게 되고 스스로 문제해결을 위한 합리적 논의도 불가능해지게 된다. 그저 소모적 이념투쟁이 난무하고, 무능과 무지가 넘쳐나는 엉터리가 판을 칠 뿐이다.

 

출처 :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
글쓴이 : 김광수경제연구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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