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님께서 ‘사다리 걷어차기’를 비판하신 이유 중 하나는 소장님께서 평소 정부개혁의 중요성과 심각한 내부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 지적해 오셨기에,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와 같은 논의가 자칫 내부로 향해야할 개혁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거나, 정책실패의 원인을 음모론적 원인으로 귀착시켜 정책당국자와 재벌체제를 정당화하는 논의로 사용되는 것을 경계하시는 것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장하준 교수의 논의에 대해서 다른 학자들도 그러한 부분을 지적하고 있으며 저 또한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장님께서 ‘사다리 걷어차기’를 독해하시는 과정에서 저자의 주장을 약간 극단적으로 해석한 측면이 있는 것 같아서 이 글을 통해 논의를 해 보았으면 합니다.
① 우선 장하준 교수의 논의를 선진국에 의한 음모론적 논의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선진국의 개도국 착취 구도라는 모델 통시대적이고 통상황적이라고 설명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선진국과 개도국이 일방적인 착취관계가 아니라 세계 경제에서 선도적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으며, 선진국과 개도국은 결정론적인 구조가 아니라 개도국의 산업정책과 전략적 선택에 의해 변화할 수 있는 구조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도국이 제도적 혁신과 기술적 추격을 통해 선진국을 따라잡았다는 것이 경제사적 현실이기 때문에, 경쟁과정에서 선진국이 개도국의 성장을 막기 위해 취하는 ‘사다리 걷어차기’ 전략은 항상 있어왔고 그것을 극복해가는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논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방 선진국들은 대부분 처음부터 선진국이었기에 이들의 경험을 현재의 개도국에 일반화시키는 것은 무리이다’ 라는 것 또한 약간의 보완이 필요합니다. 장하준 교수의 초점은 흔히들 서방 선진국이 처음부터 선진국이었던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들 국가 내부는 산업구조와 경쟁력 면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들이 서로 각축해가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함으로써 ‘사다리 걷어차기’의 실상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이들 보다는 약간 늦은 미국과 일본, 동아시아 신흥경제국에게도 적용됨을 보여줌으로써 그러한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 결코 당시의 유럽 개도국과 지금의 개도국을 단순 등치시키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② 장하준 교수의 논의가 재벌 옹호나 국가에 대한 독재적 통치 정당화로 이어진다는 비판은 어느 정도 일리는 있으나 이 또한 섬세한 접근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하준 교수 또한 다른 책(쾌도난마 한국경제, 개혁의 덫)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재벌의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내부 개혁에 대한 요구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으며, 국가의 잘못된 산업정책과 무능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산업정책과 한국적 경제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재벌과 독재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이 논리적 필연성을 갖는 것이 아님을 나타냅니다. 물론 잘못된 재벌체제에 대한 정당화와 구조적 비효율성을 내재한 국가체제를 옹호하는 경향에 대해서는 항상 예의주시해야겠지만, 저자의 저서에 대한 엄밀한 독해에 의하면 그러한 비판은 저자에게 돌려져야 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자의 주장을 단선적으로 재벌, 독재 정당화 논의로 해석할 수 밖에 없는 한국의 역사적 경험에 그 혐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③ 소장님께서 음모론류의 IMF 원인설에 대해서 비판하시고 소장님의 저서를 통해 실증적인 논의를 하고 계시다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하준 교수가 IMF 사태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음모론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 적은 없다는 사실 또한 지적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장하준 교수가 신장섭 교수와 함께 쓴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무엇이 문제인가?> 라는 책을 보면 장하준 교수가 IMF 사태와 그 후의 한국경제에 대해서 어떠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서 장하준 교수가 지적하고 있는 IMF 사태의 원인은 외인론보다는 내인론에 가깝습니다. 즉 김영삼 정부 이후에 국가의 산업정책이 해체됨에 따라 중복투자와 부실이 발생하였고, 기업의 중복투자와 금융자유화에 따른 금융시스템의 부실운용이 IMF를 초래한 원인이며, 그 후 정책결정자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영미식 경제시스템이 한국적 상황에 부조응하면서 낮은 성장과 양극화 등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론적인 의미에서 IMF원인에 대한 외인론적, 음모론적 설명을 비판하신 것은 정당하지만, 그것을 장하준 교수의 논의와 연결시키는 것은 저자의 논지에 대한 오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외에도 사다리 걷어차기가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일어난다는 점에서 아르헨티나 브라질의 미국으로의 농산물 수출이 ‘사다리 걷어차기’에 대한 반론이 될 수 없다는 점과, 저자가 논의가 함축하고 있는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의 전환가능성을 간과하고 저자의 논의가 인종적 편견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은 약간 무리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저는 소장님께서 평소 주창하고 계시는 정부개혁과 한국경제의 내부의 체질 개선과 함께 세계화에 따른 무역, 금융의 통합이 한국경제에 끼치는 외부적 규정력 또한 균형있게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장하준 교수의 논의는 세계화된 경쟁체제 속에서 어떻게 국가적 자율성을 유지하며 산업적 경쟁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시발점으로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율성이 전제되어야만 소장님께서 제시하시고 계신 정부개혁과 기술집약적 질적 성장경제로의 전환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반대의 경우인 내부의 개혁이 진정한 의미의 국가적 자율성과 효율적 산업정책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부의 규정력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내부 개혁에 대한 비판적 사고가 결합되어서 생산적인 논의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지, 서로의 논의에 대한 극단적인 해석이 자칫 서로가 공유하고 있는 비판적 친화성과 문제의식의 공통분모를 희석시키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에 짧은 글을 써 보았습니다.
소장님의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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