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경제관련 도서를 추천해 봅니다..
일전에 진화론 관련 책에 빠져서 산적이 있습니다..
저는 창조론을 기독교인들처럼 완벽하게 믿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중간입니다.
이 도서리뷰는 제 블로그에 올린 독백체글이라 경어체가 아님을 밝힙니다.
(1) 저서명 : 풀하우스, 저자 : 스티븐 제이굴드
진화론도 여러 갈래가 있다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 저서에서는 "왜 요즘 4할 타자들이 사라졌는가" 라는 원인을 분석하면서 자신의 분야인 생명의 역사까지 확장하며 자신의 논리를 펴는 것을 읽고 있으면, 그의 논리에 쏙 빠져들어간다.
이 저서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1)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2) 진화는 사다리 타기가 아니라 가지가 갈라지는 과정이다.
3) 진화에서 우연의 역할이 중요하다.
( 이 분은 복잡계 부분에도 귀를 열어두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복잡계 관련 부분도 조금씩 공부하고 있습니다.
몇년전부터 복잡계 경제, 진화심리학, 행태재무학 분야들도 공부하고 있는데 참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이 얼마나 청천병력과 같은 소리인가?
현재 우리 인간이 자연선택의 산물임과 아울러 그래도 진보적인 형태를 띄는 방향으로 어느정도 진화되어 온 산물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착각속에 살지마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을 다른 생물들과 분리시켜서 우월감을 느끼는 전통적 관점을 버리고, 인간을 생명의 거대한 역사속에 나타난 우연한 존재로서 다른 생물들과 하나로 보는 관점을 택해야 함을 제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 진보가 생명의 역사를 규정한다던지, 진화에 보편적인 경향 - 즉, 진화가 어떤 지점으로 나아가려는 편향성이 있다던지 - 이 있다던지 하는 견해를 부정하고 있다..
이 부분을 평균값, 중간값, 최빈값이라는 통계용어를 대가며 우리 인간들 (생명 역사에서 진보론자들) 이 얼마나 자신이 보고 싶은 부분만 끄집어 내서, 그것만을 보려고 했는지 비판하고 있다.
어떤 존재의 (집단, 사회조직, 진화적 계통) 역사를 이야기 할때도, 모든 다양한 구성요소를 (풀하우스 전체가) 그대로 어떻게 변화는가를 추적해야지, 단선적인 경로를 따라서 움직여 가는 하나의 항목을 (예를들어 평균값 같은 추상적인 것) 끄집어 내어서 그것이 전체를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나타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더이상 자기기만을 하지 마라는 소리다..
그렇다고 해서 생명역사의 시간 흐름에 따라 가장 복잡한 생물의 정교함이 증가하는 것을 부인한 것은 아니다.
단지, 이렇게 극히 제한적이고 사소한 사실들을 '진보가 생명 역사의 추진력' 이 되는 것 마냥 주장의 근거로 삼는 것에 맹렬히 반대하고 있을 뿐이다.
리처드 도킨스와 아울러 이분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 글도 어쩜 이렇게 쉽게 잘 쓰는지 감탄할 따름이다..
이분과 도킨스와의 지적 논쟁이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고 하니, 참 그럴만도 하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리처드 도킨스 저서로는 "이기적 유전자" , "만들어진 신" 이라는 저서가 있다.)
참 두분다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 두분과 관련된 저서를 전부 다 읽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제이굴드 의견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음을 느낀다..
전문용어를 거의 배제해서 쓴 저서이니만큼 이 책도 조심스럽게 추천해 본다..
(2) 저서명 : 이타적 유전자, 저자 : 매트 리들리
말콤 그래드웰의 "블링크" 라는 저서의 반론으로 "씽크" 라는 저서가 있듯이,
이 저서도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에 대한 반론의 저서인 줄 알았는데, 읽다보니 그게 아니다.
"이기적 유전자" 라는 저서에, 정확히 말하자면 "이기적" 이라는 단어 자체에 오해를 가진 분들을 위해 좀더 살을 붙이고 보충했다고 해야 할까?
올바른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가 미시경제에 해당한다면,
리들리의 <이타적 유전자> 는 거시경제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는 철저히 유전자 관점에서, 개체와 집단을 바라보았을 때 결과론적으로 이기성을 띤 유전자가 생존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체들간의 행동/협력이 유전자 관점에서는 자신의 유전자를 살아남겨 복제/증식 (유전자의 영속성을 위해) 시키려는 이기성의 발로였다는 것이다.
이렇지만 이러한 이기성을 띤 행동조차도 결국에는 전체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동 저서는(이타적 유전자) 의존과/협동/상호부조에 대해 사회학, 철학, 생물학, 경제학,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실제 사례등을 보충해 주고 있다.
"이기적" 이라는 단어 자체에 맹목적인 거부감이나 오해 때문에 이 저서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다시 말하자면, 유전자는 이기적이지만, 때로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개체의 이타성을 활용하는데, 이는 그들이 애초에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기적 유전자> 이론 덕분에 개체의 이타주의를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기보다는 행위 그 자체에 큰 무게를 두었다) - 이 부분은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과 유사하다. -
우리들이 갖고 있는 이기적이라는 단어의 맹목적인 거부감과 아울러, 이타성이라는 맹목적인 미화 및 호의에 대해서도 이 저서는 냉철함을 잃지 않고 있다.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이타성의 그 내면에는 이기성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이타주의" 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라는 생각이 들지만, 존재한다면 극히 드물 것이고 (극히 드물기에 개체와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이타주의' 로는 현실적으로 개체와 집단의 존재자체가 불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이 저서에 나타나 있는 듯 하다. 진정한 이타성이라는 자기희생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잘못하면 전체주의 쪽으로 흘러가 모두가 멸망하는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감도 베어나 있다.
논리적으로 대단히 불합리하게 들릴지 모른다.....
맞다... 우리는 이렇듯 불합리한 논리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정리를 하고 싶어도 잘 정리가 되지 않는...
그러나 무언가를 정리하려는 욕구에,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집착에, 일목요연하게 보이려는 욕구에, 정치적인 동기에 등등.. 의
이유로 거기에 억측에 가까운 논리를 들이대며 미화시키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이 저서는 개체의 이익과 공동의 이익이 상충되는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죄수의 딜레마> 에 대한 고찰과 해결방안들이 지면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개체의 입장에서는, 논리적으로 최선의 행위인 '배신' 이라는 이기적인 행동이 가장 합리적이지만, 집단을 놓고 보았을 때는 최악의 선택이 된다는 딜레마)
이에 대한 해결동력으로 "호혜주의", 즉 이타주의가 아니고,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상호적 호혜성을 들고 있다..
우리는 개체들간에는 때론 투쟁하고 이기적이지만, 화합을 이끌고 가려는 집단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존재론적 관점에서는 이기적인 유전자 (혹은 세포, 개체) 일지라도, 행동주의적 관점에서는 상호호혜성에 기반한 협동과 상호부조가 우리를 여기까지 진화시킨 동인인 것이다..
군체라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사회라는 집단은 이성에 의해 고안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본성의 일부로서 진화되어 온 것 뿐이다. 인체와 마찬가지로, 사회도 인간 유전자의 진화적인 하나의 산물일 뿐 인 것이다. 그래서 이 저서에는 무엇이 옳다라는 말이 없다. 어떻게 하라는 말도 없다. 다만 계속 변화하는 그 무언가가만 있다라고만 하는 것 같다... 그렇다.. 우리는 그 속에서 계속 진화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일독 뿐 아니라 재독도 권해보는 저서이다..
(3) 저서명 :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저자 : 최재천
"흔히 닭이 달걀을 낳는 개체라고 생각하지만, 생각의 각도를 조금 달리하면,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만들어내기 위해 닭을 매개체로 사용했다" 라고 볼수도 있습니다. 달걀안의 유전자가 자신의 복제품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한 방법으로 고안한 것이 닭이라는 설명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전자의 관점이고, 도킨스에 따르면 생명체는 그저 '생물기계' 일 뿐이고 실제생명을 주관하는 주체는 유전자라는 것입니다." (본문 중)
본인은 진화론에 대해 다소 회의론적인 시각을 가지고 자라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렸을 때부터 종교적인 이유로 인해 창조론에 대해서만 많이 듣고 각인이 되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특별한 존재로써의 인간..
창조론을 믿지 않더라도 누구나가 인간이라는 동물을 다른 동물과 확연히 구별하여 아주 특별한 존재로 자리매김 시킨다.
분명 인간은 언어를 대뇌에서 관장하고, 사고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으나,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 인간은 '특별하다' 라는 그런 특권의식만 젖어서, 이 저서에 따르면 " 우리의 사촌과도 같은 생물들을 그토록 착취하고 짓밞았는가?" 라는 의문이 든다.
이 저서를 읽는 내내, 내가 몰랐던 동물과 인간의 (엄밀히 말하면 인간도 동물이지만) 유사한 행동 분석들을 여러 예시를 통해 유전자 관점에서 풀어 쓴 글들을 보면서 "아니, 미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이런 행동을? " 이라는 놀라움과 아울러, 한 인간으로써 한없이 작아지고, 부끄러운 기분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종교적인 이유를 떠나서 신이 우주만물과 모든 생물을 창조하고, 맨 마지막날에 인간을 창조하고 계획대로 진행시켰다는 기저에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왜 인간을 처음과 중간이 아닌 맨 마지막날에 창조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진화론을 믿든, 위의 물음에서 생각할 수 있는 창조론을 믿든간에, 인간은 현재와 같이 교만해 질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창조론을 편리대로 오역한 것이다. 그리고 진화론을 오랫동안 배척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저서를 통해서 미물이라고 치부했던 곤충, 동물, 생물들 하나하나의 행동을 관찰하면 우리와 흡사한 사회를 구성하며 서로 돕고 가르치고 배우며, 그들 나름대로 언어를 사용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행동과 아울러 인간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정치적 행동과 경제학적 선택에 이르기까지... 실로 기나긴 역사속에서 그들 나름대로 존속과 번식을 위해 진화해왔다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 많은 생물 중에 단지 하나가 인간일 뿐이고, 우리는 이렇게 현재처럼 진화해 왔던 것이다..
몇년전에 타계한 하버드 대학의 한 고생물학자의 말처럼 " 지구의 역사를 기록영화로 만들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만들기로 했을 때, 맨 마지막 장면에 인간이 주인공으로 다시 나올 확률이 얼마나 될까? 라는 물음에 그는 단호하게 " 0 " 이라고 대답했던 것처럼, 자연선택과 같은 다양성에 기반을 둔 영겁의 진화의 시간속에서 살아남아, 지금의 형태를 갖춘 우리 인간 뿐 아닌 모든 생물들을 경이롭게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좀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 저서의 첫 장은 '알면 사랑하게 된다' 라는 어구로 시작된다.
이 말이 우리 인간은 지금까지 눈과 귀를 모두 닫고, 똑똑한 척 무지했기에 "너희들을 그렇게도 착취하고 쫓아내고, 죽였다." 라는 인간으로서 자기반성으로 한없이 느껴진다.
강력히 추천하고 픈 저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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